338화. 기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
"그래서 오딘이 어디에 처박혀 있었다고?"
주헌의 눈이 꽤나 초롱초롱했다.
그리고 그 눈빛에 설아는 죽으려고 했다.
'단장니이임, 어디가서 그런 눈빛 하지 마세요!'
마치 새끼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걸 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클로에도 심쿵하고 일순 기침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남자 단원들은 못 들은 척하라며 시선을 교환했다.
'야. 솔직히 제우스가 거길 뜯겼어. 오딘이라고 무사하겠어?'
'헐, 그럼 오딘이면 눈을 뜯기는 거야?'
'아니지, 지식을 탐한 신이니까 뇌를 뜯기지 않겠어?'
'야씨 눈하고 뇌만 뜯기면 다행이지. 오딘도 여성편력 쩐다고.'
'아... 그럼 진짜 거기까지 뜯을지도.'
'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눈 마주치면 당장 무덤 끌려간다.'
'아 맞다. 그러네.'
남자단원들은 질색했다.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주헌이 웃으며 유재하를 보았다.
"진짜 오딘을 본 건 맞지? 혼자 있던? 빼낼만 했어?"
"아... 그게..."
유재하가 입을 열려고 하자, 율리안이 퍽 배를 쳤다. 닥치라는 의미였다.
'인간적으로 하룻밤은 자고 가자.'
단원들도 넌저리를 치며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오딘, 분명히 있었고요. 아마 우리가 있던 곳에서 더 북쪽 지하에 있을 거예요. 다른 유물들 더 있었고요, 슬레이프니르는 사기쳐서 가지고 나왔어요. 뭣하면 방법 다 알려드려요?"
랩하듯 튀어나오는 말에 일리야와 율리안이 바로 화를 냈다.
"야! 말하지 말랬지!"
"미쳤냐! 지금 당장 무덤 들어갈 일 있어?"
하지만 유재하는 울려고 했다.
"아오 차라리 그게 나아! 니들이 한 번 단장님 눈빛 견뎌봐!"
토나올 것 같다며 유재하는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부아앙!
갑자기 슬레이프니르가 흥분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와 함께 주변의 건물이 터져나갔다. 쾅쾅!
"단장님!"
시선을 돌리자 피투성이가 된 로키와 권혁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기꾼 놈이."
"저놈이 장유유서도 모르나."
두 유물사용자는 눈을 번득이면서 슬레이프니르를 잡으러 왔다.
아니, 정확히는 주헌을 잡으러 온 것 같지만.
"우리가 무슨 야생 멧돼지냐?"
"당장 거기서 내려!"
졸지에 로드킬을 당한 둘은 굉장히 빡친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흉흉한 유물의 힘이 주변의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 율리안이 탄식했다.
"봐! 쟤네 빡쳤잖아! 어쩔 거야!"
물론 정작 주헌은 코웃음을 쳤지만.
"저것들이 한 번으로는 부족했나보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엑셀을 밟자 다들 비명을 질렀다.
"단장님! 설마 또 치시려고요?!"
"그래, 꽉 잡아!"
"야!"
차는 무섭게 휠을 굴렸다. 이번엔 제대로 박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실제로 주헌의 눈이 불타올랐다.
"아주 뼈도 못 추스르게 해주지."
그리고 그 광경에 로키 사용자와 권혁수는 같잖다는 듯 웃었다.
"그래, 어디 한 번 와봐라!"
"이대로 잡아서 끌고 가주지!"
그들은 자신있게 육체강화 유물을 발동했다.
하지만.
슝!
"?!"
주헌은 그들을 개무시하고 지나쳤다. 그야말로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만전의 준비를 하고 있던 둘은 황당해했다.
"야! 서주헌!"
그리고 그들을 여유롭게 지나친 주헌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라는 건 거짓말. 뭐하러 내가 쟤들이랑 힘겨루기를 해. 수리비만 들어."
"야! 놀랐잖아!"
율리안은 화를 냈지만, 다른 단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단장님도 고소당하긴 싫겠지."
유재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 다들 죽고 나 혼자 남았을 때 저 둘이 화상이었거든."
"그래?'
"그래. 복원하기 싫다니까 내 손발도 부러트리고, 꽤나 괴롭혔거든. 특히 저 로키 놈."
"..."
그 말과 함께 주헌이 핸들을 확 꺾었다. 덕분에 안에 있던 단원들의 몸이 단번에 쏠렸다.
"꺄악!"
그리고.
뻐엉! 주헌은 또 다시 로드킬을 시전했다. 덕분에 권혁수와 로키 사용자는 피를 머금어야 했다.
"저 개새...!"
육체강화 유물을 써도 1톤이 넘는 무게에 속력까지 더해진 슬레이프니르를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앞바퀴를 들어 올린 슬레이프니르는 쿵쿵쿵 놈들을 찍어댔다. 단원들은 들썩이는 차체에 비명을 질렀지만, 주헌은 눈을 번득였다.
"더 찍어. 아주 똑같이 팔하고 다리 다 갈아버려."
권혁수와 로키 사용자는 죽을 맛이었다. 악신 유물과 각종 유물로 초인이 된 그들이었지만, 막강한 탱크에 깔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기회를 틈타 슬레이프니르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어지간한 유물 능력은 다 튕겨냈다.
'역시 마제스티급 유물...!'
정말 무지막지한 차였다. 헤라클레스급의 괴력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급이었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그리고 어느정도 깔아뭉갰을까. 람보르기니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쿨하게 날아올랐다.
그러자 깔려 있던 로키가 겨우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젠장!"
슬레이프니르가 멀어지자 그는 다급해졌지만 이대로는 말을 쫓을 수도 없었다. 팔하고 다리는 물론, 갈비뼈까지 말에게 짓밟혀 너덜거렸으니만큼. 그는 박살 난 핸드폰을 던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할 수 없지. 다른 기사들이라도 불러서...!'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콰지지지직!
"?!"
깔아뭉갠 걸로는 볼일이 끝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저건!"
운전석 밖으로 쿨하게 나와 있는 주헌의 손. 거기엔 콰직거리고 있는 창이 들려있었다. 그건 바로 궁니르!
곧 주헌이 살벌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놈들 부를 시간은 없을걸?"
젠장! 곧 주헌이 궁니르를 던졌다. 그러자 강력한 살의를 품고 치솟아오르는 주신의 창! 로키 사용자는 당황해서 부유 유물을 써 달아났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젠장!'
궁니르는 적을 끝까지 쫓아가 맞추고 돌아오는 기특한 유물. 미친 듯이 로키를 쫓았다.
쇄애애애액! 그리고 궁니르를 날려보낸 주헌이 이번엔 권혁수를 보았다.
"노친네, 그래서 아직도 내 말이 탐나나?"
같잖다는 미소였다. 일단 임시 동업자긴 하니 이쯤으로 하겠지만, 쓸데없이 욕심내면 진짜 사황급끼리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눈빛. 그래서일까.
"아고고고! 오늘은 허리가 아파서 쉬어야겠어!"
그는 아주 현명한 판결을 내렸다.
***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로키한테 연락오지 않았어요?"
"대감옥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왔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지금은 그걸 처리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거?"
"왜 그, 지금 뉴스에서 난리인 슬레이프니르요. 그걸 가지고 오느라 늦는 거겠죠."
"아."
드루이드의 시계탑. 원탁의 유물이 있는 그곳엔 제법 어둑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헌 때문이었다.
"서주헌은 마제스티의 키를 가지고 계속 그 대감옥을 드나들 겁니다. 다른 유물도 다 털어가겠죠."
"그 키가 굉장히 골치 아프네요."
실제로 주헌 때문에 판도라 병사들이 대감옥에 갇히지 않았나. 전부다 그 마제스티의 키 때문이었다.
"다 그 열쇠 때문에 그 감옥이 자기 성이라고 활개치고 다니지 않습니까. 말이 발굴자이지, 실제론 도굴꾼 같은 놈."
"그러니까 우리도 자유롭게 거길 드나들 키가 필요해요."
"그럼 우리도 키를 만들죠."
그 말에 멀린이 하하 웃었다.
"그 말을 할 줄 알았지."
"가능하겠어요?"
그 말에 멀린이 웃었다.
"뭘 새삼? 우린 이미 마제스티의 재보 중에서 '요람'도 만들어냈어요. 키라고 못 만들겠어?"
그랬다. 그들은 괜히 수뇌부가 아니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마제스티의 재보까지 만들어냈다. 그렇게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마제스티의 요람>이 바로 언노운이다.
그리고 그 인공 재보들을 만들 수 있는 건 판도라 시스템 유물이었다. 그건 프로메테우스와 맨 처음 만났을 때, 놈이 가져왔던 유물. 동시에 그건...
"마제스티의 옥좌가 참 유용하게 쓰이네요."
그랬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지고 온 그 유물은 바로 <마제스티의 옥좌>였다. 그것이 유일하게 그들이 가진 진짜 마제스티의 재보.
그리고 그게 있기에 그간 프로메테우스나 자신들이나 마제스티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뭐 비록 대리청정의 개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키를 만들려면 일단 로키가 빨리 와야 해요. 로키가 가지고 간 프로메테우스의 힘까지 끌어모아서 키로 가공해보는 게..."
그런데 이때였다.
쿠웅!
"뭐야!"
철벽의 드루이드 시계탑이 크게 흔들렸다. 깜짝 놀란 그들이 밖을 보았다. 창문 밖에는 놀랍게도 로키 사용자가 있었다.
"한슨!"
"자네 어떻게 된 거야! 그 꼴은 뭐고!"
하지만 부유 유물로 겨우 날아온 그는 다급하게 창문을 두드렸다.
"빨리 문 열어! 빨리! 언제 놈이 올지 모른다고!"
그는 자꾸만 뒤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멀리서 쫓아오고 있는 건 주헌이 날린 궁니르.
로키사용자는 자신을 미친 듯이 쫓아오는 궁니를 피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왜?
'여긴 난공불락, 철벽의 탑이야.'
판도라 본부. 원탁의 유물이 있는 이 건물은 유물 그 자체였다. 그 어떤 유물의 공격에도, 재앙에도 견딜 수 있는 철벽의 성.
"뭐하고 있어, 빨리 열라고!"
지금도 사실 궁니르가 어디까지 쫓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10초 뒤에 나타날지, 1분 뒤에 나타날지,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공포.
"그러니까 빨리 열어어!"
그러자 그들은 당황하면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가짜는 아닌 것 같네요."
문이 열리자 로키사용자가 가까스로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이걸로...'
그렇게 그가 철벽의 성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이었다.
푸욱!
"?!"
순식간에 날아온 철심이 로키 사용자의 등 뒤에 박혔다.
"커...커헉!"
로키사용자는 피를 머금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암살.
"꺄악!"
아무리 그라고 해도 주신급 유물에 무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성 안에 있던 원탁의 기사들이 까무러쳤다.
"이, 이건!"
곧 로키를 쑤셔 박은 궁니르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즐거워했다.
[$*#&*!]
그리고 궁니르는 자신들을 보는 기사들을 향해 자꾸만 몸을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마치 뭔가를 봐달라는 듯이. 몸통에 달려 있는 건 다름 아닌 질끈 묶여 있는 쪽지였다.
"이건...!"
쪽지를 펼쳐든 그들은 경악했다.
[다음은 니들 차례일 수도 있음.]
"이 무슨... 헉!"
동시에 임무를 완수한 궁니르는 신이 나서 슝 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쪽지의 글씨를 본 누군가가 몸을 떨고 있었다.
***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불렀는데?"
주헌은 누군가를 보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가 방문한 곳은 바로 도심의 비싼 펜트하우스.
그리고 주헌은 눈앞에서 끙끙거리는 사내를 향해 뭔가를 흔들어보였다.
"허리가 아프다길래 파스를 잔뜩 사왔는데, 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군."
"허, 당연하지!"
그랬다. 주헌이 찾아온 곳은 바로 권혁수의 별채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깁스를 하고 있는 권혁수는 요양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물 사용자니 이 정도지.
"진짜 고소하지 않은 걸 고맙게 여기라고. 그렇게 차로 뻥뻥 치기나 하고."
"아예 갈아버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노친네."
"..."
권혁수는 뭐라고 하려다가 곧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당연했다.
"키야, 람보르기니! 이거 진짜 죽인다!"
"사진 한 번 찍어봐도 되나? 괜찮겠지?"
"이거 엄청 비싼 거 아니야?"
펜트하우스 밖, 도로변에는 보란 듯이 주헌의 람보르기니... 아니 슬레이프니르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냥 람보르기니여도 사람이 붙기 마련인데, 밖에 세워져있는 건 무려 하늘을 나는 차였다.
"하늘을 나는 차래, 지금까지 그런 건 없지 않았냐?"
"다른 기업들도 아직 개발 못한 거라던데."
TV에서 떠들썩하던 그 유물은 아주 유명했다. 아주 기자들까지 몰려오는 터라 권혁수는 짜증을 냈다. 안 그래도 저걸 못 가져서 화가 나는데, 제 집 앞에서...!
"자네 일부러 가져온 거지?"
"알면 용건이나 말해.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정보라는 게 뭔데. 말해두지만 지금은 동맹이어도 댁은 내 적이야. 헛소리하면 바로 전쟁이야."
그러자 권혁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뭐."
"사실 넌 내 아들이야."
주헌은 조용히 궁니르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