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달리는 재보 (3)
"다들 경찰 안 따라 붙게 해라~"
이 자식이!
주헌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단원들은 뒷목을 잡았다. 아니 지금 뭐가 어쩌고 저째!
동시에 2인승에 기어이 낑겨 앉아있던 유재하가 까무러쳤다.
"아니 잠깐, 그럼 전에 지렁이 얻으러 갈 때! 그때도 단장님이 운전했잖아요! 그럼 그때도!"
그러자 주헌은 아주 해맑게 웃었다.
"에이, 그때도 당연히 무면허지~"
조수석의 율리안은 망했다는 듯 얼굴을 짚었다. 얼굴을 감싼 그는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무면허운전 적발시 도로교통법에 의해 법원에 출두, 범칙금을 지불하게 되며 이 경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만일 사고 적발 시..."
"이봐요? 변호사님? 진정하시고요."
"신분증이 없는 경우 불법 체류자로 오인 받을 소지가 있으며, 이를 대체할 영주권 혹은 노동비자 등 허가증을 가지고..."
"저기요. 진정하라니까."
그러자 이리저리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율리안이 포기한 듯, 탄식했다.
그리고.
"아 몰라. 사고만 내지 마. 알았지? 제발 사고만."
"안 내 자식아. 겁도 많기는."
"야,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거든! 너 안 그래도 이리저리 걸릴 거 많아서 진짜 변호하기 개 귀찮거든!"
"알았어, 알았다니까. 근데 말이야. 2인승에 4명이나 낑겨 타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뭐?"
"네?"
그들은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고보면 율리안은 조수석에, 유재하와 설아는 중간에 종이짝마냥 구겨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이 활짝 웃었다.
"설아 빼고 다 내려."
"뭐라고?!"
"특히 공명이 너. 누구 맘대로 내 옆에 앉으래. 죽을래?"
슈퍼카를 남자 따위와 타다니. 그 말에 두 남자들은 밖을 슬쩍 보았다. 점점 다가오는 추격자들의 모습이 살벌했다.
그래서일까.
"저기. 저는 깍두기여도 되는데..."
"그, 그래 봐야 이거 유물이니까 그냥 모양을 변형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주헌은 칼 같았다.
"내려. 아무리 유물이라고 해도 이렇게 덩치 큰 걸 바꾸는 게 쉬운 줄..."
그런데 이때였다.
주헌이 무심결에 툭 의자를 치자 내부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
콰직, 콰직! 놀랍게도 차체 내부에 스파크가 튀면서 엔진의 위치가 바뀌고, 좌석이 늘어나고 이동하면서 내부가 여유로워졌다. 모두 주헌의 지배력에 반응한 것이었다.
그렇게 결국, 까다롭다고 한 차체의 변형이 순식간에 완료되었다.
"..."
그 모습에 남자 단원들이 물개박수를 쳤다.
"여, 역시 단장! 작은 유물도 아닌데, 쉽게 바꾸네! 역시 대단해!"
"대박, 이거 무슨 영화 속 장면인줄!"
주헌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다른 애들 다 태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재하가 만세를 불렀다.
"야! 전원 타래! 빨리!"
잠시후 주헌은 단원들이 전부 올라타자마자 바로 엑셀을 밟았다.
부아아아앙! 차는 밟는 대로 미친 듯이 나아갔다. 하지만.
"단장님! 맞은편에 경찰차하고 추적자들이!"
그 불빛에 주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꽉 잡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질주하던 차가 스핀하듯 돌았다.
끼기기긱!
"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그 충격으로 안에 있던 단원들이 옆으로 쏠리고 찌부러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아아악!"
주헌은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시전된 공포의 드라이빙 테크닉!"
순식간에 미끄러진 차는 코너를 돌며 적들을 우롱하기 시작했다.
쾅! 쾅!
자칫 전복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깔끔한 코너링. 완벽한 드리프트!
그렇게 차는 미꾸라지처럼 순식간에 추격자들을 떨궈내고 쭉쭉 나아갔다. 어디 그뿐인가. 주헌은 어떤 장애물이 닥쳐도 유연하게 피해냈다.
오히려 그런 주헌을 미친 듯이 쫓아오다가 부딪치고 전복 되는 건 도리어 적들일 정도였다.
물론 정작 단원들은 죽으려고 했지만.
"으아악, 으아아아아악!"
360도로 회전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끔찍한 감각.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단원들은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가드 레일을 보며 기겁했다. 결국 불리해진 율리안이 외쳤다.
"야! 잠깐! 여기 강 위야! 너 설마!"
아니나 다를까 주헌은 날아올랐다!
사정없이 핸들을 꺾어 고가도로의 가드 레일을 부수고 뛰어내린 것이다.
쾅!
동시에 느껴지는 부유감. 그리고 그 감각이 가짜는 아닌지, 단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그 순간 단원들은 정말 기절할 것 같았다.
'망할! 이래서 단장한테 운전을 안 맡기는 건데!'
그런데 설마하니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진짜 죽여버릴거야아아아!"
물론 주헌은 해맑게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늘을 나는 차잖아! 날 수 있다고!"
하지만 하늘을 날기는 개뿔! 쿠웅!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차가 뚝 떨어졌다. 쾅, 콰과광!
"아아아아악!"
마침내 차는 고가도로 밑에 있던 강에 처박히고 말았다. 풍덩!
그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차안으로 물이 들어오자 단원들은 씩씩 거렸다.
"뭐? 날 수 있어? 괜찮아?"
"아 미안. 처음 다뤄보는 유물차라 좀 안 익숙하다."
아이고 두 번 안 익숙하다간 진짜 죽겠다!
그러나 정작 주헌은 태연했다.
"아니면 저승에도 가는 말이라고, 지금 우릴 명계로 보내려고 한 걸지도 모르지."
단원들은 기가 막혔다.
"야, 지금 농담할 때 아니거든! 뭐? 사고를 안 내? 타고 있는 사람들이 다 죽게 생겼다고!"
율리안은 성화를 냈고 유재하는 훌쩍였다.
"이거 아마도 내 생각인데. 아마 여기까지 오면서 사람을 친 것 같아. 그래서 천벌 받은 걸 거야, 그런 걸 거야."
주헌은 하하하 웃었다.
"안 쳤어 자식아. 칠 일도 없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지배력을 사용했다. 쿵! 그러자 침몰하던 차가 부웅 떠오르기 시작했다.
"떠, 떴어!"
그제야 주헌은 기특하다는 듯 차체를 쓰다듬었다.
"옳지, 옳지. 자식 이제야 좀 말을 잘 듣네."
슬레이프니르는 이제 좀 진정한 느낌이었다. 그 증거로 먼저 온순해졌고. 끼긱, 끼긱. 의자는 최상의 상태로 주헌의 몸에 피팅되었으며. 푸쉬이익. 전 좌석의 의자에서 바람이 나오며 자동으로 보송보송해지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유재하는 황당해했다.
"와, 내 말은 지지리도 안 듣더니."
그러자 보송보송해지는 내부를 보며 신기해하던 설아가 말했다.
"궁니르를 가지고 계셔서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그러게. 아무튼 이제 말도 잘 듣는 것 같으니 돌아가..."
그런데 이때였다.
쿵!
"이 유물 차는 못 가져간다!"
뜻밖의 인물이 차 뒤에 올라타 있었다.
***
로니 한슨. 30대로 보이는 사내였다.
주헌이 대감옥에 가두고 왔던 원탁의 기사 중 하나.
건물 위에 있던 그는 타이밍에 맞춰서 차체에 올라탄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저놈도 밖에 나온 거야?"
유재하는 아차 싶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망할 저새끼, 슬레이프니르로 탈출할 때 같이 따라 나왔나 보네."
"허. 근데 쟨 꼴이 왜 저래?"
같은 대감옥에서 나온 주제에 유재하는 멀쩡하고, 로키 사용자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완전히 거지꼴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차 뒤에 문어처럼 달라붙은 그가 외쳤다.
"당장 멈춰! 이건 내 힘으로 정당하게 꺼낸 마제스티의 재보라고!"
그는 특히 차 안에 있을 유재하를 집어 삼킬 기세였다.
"그러니까 너 당장 내려와! 감히 내 걸 가지고 튀어? 날 속여?"
그 외침에 다들 유재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재하는 땀을 삐질 흘렸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요..."
***
그러니까 유재하가 막 감옥에 갇혔을 때였다. 주헌의 유물들이 신나게 외부의 판도라 병사들을 대감옥에 처넣던 바로 그때.
"야이씨! 나까지 처넣으면 어떡하냐!"
주헌의 유물들에게 뻥 걷어차여 대감옥에 갇힌 유재하는 억울해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아오, 망할 단장놈! 출입문까지 닫아버렸어!"
꼼짝없이 대감옥에 갇힌 유재하는 정말 서러웠다. 게다가 하필이면 판도라 병사들하고 같이 갇히다니! 심지어 그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유물까지 도둑맞고 정말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호구왕 이 새끼, 너 딱 걸렸다."
"이걸 어쩔 거야! 당장 너희 단장한테 이 문 열게 해!"
"아니면 너부터 죽여버리겠어!"
아이고 내 팔자야. 결국 빡친 유재하가 화를 참듯 머리를 쓸어올렸다.
"야. 지금 나도 빡돌거든? 어디 한 번 해볼래?"
호구왕이라고 불려도 괜히 왕급은 아닌 듯, 흉흉한 피닉스의 오라가 폭발했다. 물론 그는 친화력 성향인 만큼, 주헌처럼 지배력으로 적들을 굴복시킬 순 없었다.
하지만 유물의 힘, 그리고 왕급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적들은 겁에 질려 바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때였다.
"야, 너희들. 그만둬. 왕급들은 상대할 수 없으니 건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로키 님!"
동시에 유재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녀석은...?'
유재하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바로 불쾌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마도 전생 때였나. 멤버들이 모조리 죽고 나서, 독방에 갇혀 복원만 할 때였다.
'야 복원해봐. 귀중한 유물들이니까 조심히.'
그 당시 유물을 들고 유재하를 찾아오는 독식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로키 놈이 가져온 유물은 하나같이 위험한 유물들이었다.
앙그라마이뉴, 아마겟돈, 소돔과 고모라, 노아의 방주 등 멸망과 관련된 유물들뿐이었다.
물론 놈은 유물의 정체를 숨겼지만, 눈치 빠른 그에겐 척 하면 척이었다.
'이 자식들, 멸망하고 관련된 유물을 끌어모으고 있네.'
그리고 노예처럼 갇혀있는 자신에게 뭐라고 비웃었더라.
'너 마제스티라는 거 안 할래? 별 거 아냐. 그냥 명줄만 붙어 있으면 되는 건데. 어차피 다리도 불구가 된 거 같고, 니가 딱이네.'
아무튼 그런 놈을 또 만나자 기분이 나빠진 그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인간이다!]
[침입자를 죽여라!]
"칫!"
갑자기 몰려오는 간수들의 모습에 서둘러 도망치려는 순간!
"아아아악!"
그들은 순식간에 안개에 휘말렸다. 그건 대감옥의 안개 중, 분쇄의 안개가 아닌 희귀한 순간이동의 안개. 다들 함정이라며 게거품을 물었지만, 유재하만큼은 눈을 반짝였다.
왜?
'이 느낌은 까마귀!'
그랬다. 미약하긴 하지만 안개에서 까마귀의 오라가 느껴졌던 것이다. 주헌의 옆에 늘 있는 만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까마귀가 보낸 안개는 로키부대와 유재하를 어디론가 날려버렸다.
덕분에 간수들에게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 여기가 어디야?"
자신들이 이동된 곳은 아주 낯설고 깊은 감옥.
그리고...
[라그나로크를 부를 놈이 나타났구나.]
거기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로키 사용자는 어째서인지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주신! 주신급 유물이다!"
***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단원들은 까무러쳤다.
"뭐? 그럼 오딘 유물을 만났다고?"
"진짜로?! 그래서?"
"아무튼 그 오딘한테서..."
유재하가 말을 이으려는 그때였다.
"야, 잠깐. 한가롭게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네?"
"귀찮은 놈이 붙었어."
주헌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놀랍게도 권혁수까지 쫓아와 있었다.
"저 영감이 어떻게!"
하지만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할 수 없지. 다들 멀미 조심."
"네? 멀미라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가 무섭게 스핀했다.
"으아아아악!"
동시에 차에 올라와 있던 로키 사용자가 뚝 떨어졌다.
"크흑! 저게!"
동시에 그런 그의 옆으로 권혁수가 다가왔다. 그는 같잖다는 듯이 로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는 빠지게. 저 유물은 내거..."
그러나 이때였다.
"아니, 둘 다 빠지셔."
"!"
동시에 로키와 권혁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어?"
주헌의 슬레이프니르가 무섭게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콰아앙! 슬레이프니르는 한순간에 로키와 권혁수를 쳐버렸다.
"아아악!"
그리고 사정없이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로키와 권혁수.
아무리 초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70kg대의 인간들이었다. 당연히 들이박는 엄청난 힘에 날아갈 수 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난 로드킬, 아니 뺑소니에 단원들은 입을 떡 벌렸다.
특히 율리안은 거품을 물었다.
"야, 야 너 미쳤어?!"
"사람 안 친다며!"
그러나 주헌은 태연하게 말했다.
"쟤들 초인이야. 안 죽어."
"야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아아!"
하지만 주헌은 상쾌한 얼굴로 유재하에게 말했다.
"자, 이제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으니 말 계속 해봐."
"네, 네?"
"그래서 오딘이 어디에 처박혀 있었다고?"
주헌의 눈이 꽤나 초롱초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