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최종보스? (4)
"사정 봐주지 말고 모두 쳐라!"
주헌의 외침과 함께 수많은 미라 군단이 포효했다.
땅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함성이었다.
코끼리가 발을 구르는 듯한 쩌렁쩌렁한 함성.
그 함성은 지하를 뒤흔들고 순식간에 상층으로 뻗어나갔다.
쿠구궁!
그리고 이에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이제 막 대감옥에 들어온 판도라 발굴팀이었다.
"야.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한 병사가 몸을 떨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게 영 기분이 찜찜했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러자 동료병사들이 비웃었다.
"차라리 배까지 아프다고 하지 그러지?"
"뭐?"
"그렇게 겁이 많아서 판도라에 어떻게 붙어 있대."
"아니, 그게 아니라...!"
"시끄럽고, 여긴 노다지라고! 빨리 삽질이나 해!"
"딱 봐도 여긴 다른 무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다이아몬드 광산이야!"
경험상 척하면 척이었다.
처음엔 판도라 수뇌부의 명령으로 들어온 것이었지만, 감옥에 들어오고 나니 생각이 바뀔 정도로.
"알았어? 여기건 아무거나 바쳐도 승진 확정이야."
"그래, 그러니까 병신 같은 소리말고 따라와!"
베테랑들이 신나서 나아갈 때였다.
쿠구궁!
또다시 무덤이 흔들리자 한 병사가 경기를 일으켰다.
"야 역시 이 무덤은 아닌 거 같아! 지금이라도 나가자!"
"무슨 개소리야! 이 노다지를!"
"그래! 서주헌만 여기를 독차지하게 할 순 없잖아!"
"계속 헛소리를 하면...!"
그런데 이때였다.
쿠구구궁!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다.
이어서 들려오는 포효!
작았던 포효하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치 기둥을 치는 듯한 강렬한 소리.
그쯤 되자 병사들 모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야, 잠깐! 이 소리 뭐냐?!"
"봐!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사방에서 흉측한 미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뭐야 이게!!"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미라 병사들의 숫자만 수백!
그들은 인간들을 보자마자 딱 걸렸다는 듯 칼과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으아아아악!"
감옥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주헌의 아누비스 군대는 감옥에 들어온 모험가(?)들을 때려잡았다.
아누비스 군에게도 위험한 간수들과 함정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것까지 감안해서 주헌은 평소보다 넉넉하게 아누비스 군을 풀어댔으니까.
뭐, 덕분에 겁도 없이 대감옥에 들어온 발굴팀들은 그야말로 압살을 당해야 했지만.
"끄아아아악!"
"살려줘! 으아아아악!"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정작 단원들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확실했다.
저 수많은 비명들의 원흉은 딱 한 명일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설마 마제스티의 키로..."
결국 참다못한 율리안이 타고 있던 악마에서 뛰어내렸다.
"서주헌 이 자식을 콱!"
"부단장님!"
물론 아누비스의 군대가 나타났을 땐 마냥 기뻤다.
그건 죽은 줄 알았던 주헌이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바닥에 착지한 그는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주헌의 못된(?) 행동도 행동이지만 그건 이미 초탈했고.
"도대체 몇 마리나 불러낸 거야!"
그러나 정작 주헌은 태연했다.
"흠, 간수랑 함정도 있어서 일단 넉넉하게 만 마리쯤?"
율리안은 뒷목을 잡았다.
"야! 천 마리 이상 부르지 말랬지! 아누비스 군이 얼마나 힘을 많이 쓰는 유물인데! 너 또 리스크로 유체이탈하고 싶어?!"
그러나 정작 주헌은 그를 비웃었다.
고작 만 마리 가지고 뭘.
"시끄러. 하여간 내 대타라는 놈이 느려터져가지고는."
"뭐가 어째?!"
'오는 게 늦길래 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지.'
장소가 장소인 만큼 주헌도 내심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딴 녀석들은."
"네 덕분에 간수들 몰려와서 간만에 바쁘지."
주헌은 웃었다.
"그럼 네 유물도 갈기 전에 빨리 움직여. 저걸 얻어야해."
"?"
그 말에 율리안이 뭔가를 발견한 듯 비명을 질렀다.
***
"세상에. 저게 재보야?"
율리안은 단번에 치우를 알아보며 놀라워했다.
굳이 공명의 유물로 분석하지 않아도 표가 확 났다.
"척 봐도 엄청난 유물이야."
"그래. 저 안에 들어가려면 귀찮은 함정부터 어찌 해야겠지만."
"나태의 열쇠는?"
주헌은 네로의 유물, 월계수 잎을 들어보였다.
"일단 멍멍이들한테 각성재료들을 긁어모아오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과 아누비스 앞에 다른 미라 병사가 나타났다.
미라 병사는 고개를 숙이며 엄숙하게 외쳤다.
[대감옥에 들어온 잡놈들은 모두 잡았습니다! 당장 주인의 앞에 대령할까요!]
"오냐."
웃는 게 마치 마왕과 같은 포스였다.
동시에 사방에서 다른 종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악! 우리 유물이!"
"으아아악!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꿈과 희망을 안고 들어왔던 병사들은 게거품을 물었다.
난데없이 흉측한 미라들이 나타난 것으로도 모자라 유물들을 납치해가다니!
유물을 놓치는 건 죽기보다 싫었던 사람들은 유물을 붙잡고 있다가 졸지에 끌려오기도 했다.
"크아악!"
그렇게 주헌의 앞에 떨어질 사람들의 숫자만 수십 명.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유물의 산더미들!
"이, 이게 뭐야!"
그들은 제 발밑에 모래사장마냥 깔린 유물 더미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사방에서 모아온 전 세계 발굴단의 유물들이었다.
"이게 웬 떡이야!"
덕분에 그들은 침을 흘리다가도 곧 격분의 침을 튀겼다.
왜?
"너! 서주헌!"
눈앞에는 주헌이 눈을 번득이며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인간들이네."
뭐, 머리에 뿔이라도 달려 있으면 진짜 용사들을 맞이하는 마왕으로 보일 판이었지만.
물론 그들을 본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니들은 여기 왜 왔냐? 난 분명 유물만 잡아오라고 했는데."
"뭐, 뭐?!"
"아아, 기생형이구나. 죄송."
곧 주헌은 큭큭큭 웃으며 일어섰다.
"뭐 기생형은 그래도 봐준다. 피할 수 있으면 알아서 피하고."
그 미소가 불길해서 사람들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BOMB!"
그 외침과 함께 함정 안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마치 캠프파이어 장작처럼 쌓여 있던 유물들이 순식간에 터져나간 것이었다.
바닥에 깔아뒀던 폭탄 유물 덕분이었다.
그리고.
'유물파괴!'
콰과과광!
아이고 이 개놈아!
저 인간 놈을 그냥!
치솟아오르는 불길, 그와 함께 판도라 발굴단이 가지고 있던 유물들이 뻥뻥 터져나갔다.
모두 각성의 재료로 뻥뻥 터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주헌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피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피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
[피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1,400개의 피가 모였습니다.]
그 메시지를 본 주헌이 네로의 월계수 잎을 휙 던졌다.
그러자 월계수 잎은 유물들이 터져나간 자리에서 빛을 냈다.
[나태의 유물이 각성합니다.]
***
한편 그 무렵이었다.
"아아아악!"
발굴단을 들여보낸 지 어연 20분 째.
바깥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장관들과 원탁의 기사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뭐? 무슨 일!"
"저기, 저 안에서 보이는 빛은 뭐죠?!"
"엄청난 오라야!"
동시에 눈살을 찌푸린 누군가가 확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로키님!"
원탁의 기사 중 로키 유물의 사용자였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힘을 가지고 황급히 들어갔다.
안이 어떤 구조인지 알기에 직접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서주헌 그놈이 마제스티의 재보를 얻으면 안 돼!'
***
[나태의 유물이 각성합니다.]
그 자리에는 유물의 핵이 터져나가면서 새어나온 굉장한 에너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삼키며 마침내 네로의 유물이 번쩍거렸다.
[나태의 열쇠가 마제스티의 키에 합류합니다.]
번쩍이던 빛줄기가 주헌의 반지에 스며들어왔다.
물론 동족들의 피로 각성한 네로는 혀를 찼지만.
[이런 천하의 못돼쳐먹은 폭군을 봤나. 백성들을 다 죽일 놈일세.]
"니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곧 사정없이 터져나간 유물들을 보며 유재하가 탄식했다.
"아이고, 아까워라 아까워. 상급도 꽤 많았는데 아깝네. 단장님 진짜 너무한다. 아니 방법이 없다는 건 아는데... 아니, 그래도..."
그러자 쿨하게 주헌이 말했다.
"정 그러면 니가 고쳐놓든가."
유재하는 움찔했다.
"...저기요. 강화에 쓴 광석이 다시 복구되는 거 봤어요?"
"응. 너한텐 쉬운 일이라는 거지?"
"아니 저기... 아무리 저라도 핵이 저렇게 밀가루가 되었는데 최소 1년은 붙잡고 있어야..."
"그래, 그러니까 그냥 산이나 바다에 뿌려줘."
"진짜 뿌리면 죽일 거잖아!"
결국 유재하는 울었다.
주헌은 전혀 미련이 없어보였지만, 복원사는 훌쩍거리며 흩어진 유물들 잔해를 싹싹 쓸어담았다.
그리고 주헌이 마침내 치우의 무덤에 향할 때였다.
스르륵!
전부터 계속 자신들을 귀찮게 굴던 문제의 안개.
일리야를 분쇄했던 분쇄의 안개가 사납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주헌의 괴이한 행동을 눈치챈 대감옥이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정확히는 무덤을 지키는 간수들이!
이어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개는 우리 편이다! 어서 저놈들을 잡아라!"
주헌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주헌이 불러들인 판도라 발굴단들 사이에 원탁의 기사가 끼어있었던 것이다.
율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로키 유물.'
놈은 놀랍게도 주변의 간수들을 부리고 있었다.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놈은 주헌을 보며 웃었다.
"우리를 들여보낸 게 네놈의 실수다. 자! 뭐해! 어서 저기 있는 재보를 가져와라!"
그 말과 함께 다른 병사들이 우르르 함정으로 뛰어들었다.
살육의 안개도 짙어졌다.
"또 저 안개가!"
하지만 그 안개는 적들을 피해가고, 주헌 일행만 집요하게 노렸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등신. 저걸 얻고 싶으면 좀 더 빨리 왔어야지!"
그 비웃음소리와 함께 상당한 오라가 뻗어나갔다.
[상실의 문이 열립니다.]
네로는 자신의 본분을 잊은 나태의 왕.
나태 열쇠의 고유능력이 발동한 것이다.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구구궁!
꿈틀거리던 함정 속 안개가 순간적으로 멈췄다.
'!'
[상실의 힘이 뻗어나갑니다.]
[함정의 근원이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
안개를 멈춰세운 주헌은 단숨에 치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 나와 함께 가자!"
주헌은 마제스티의 키를 활용해 치우의 감옥을 열어버렸다!
쾅!
"!"
로키 유물의 사용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이어 자신들이 들어와 있던 함정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좋지 않은 징조에 로키 사용자가 급하게 외쳤다.
"일단 퇴각해라! 모두 감옥 밖으로 나간...!"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치우의 감옥에서 섬뜩한 얼굴을 본 것 같았다.
"!"
누군가가 나왔다.
도깨비의 투구를 쓴 마제스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