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최종보스? (3)
"딱 걸렸어. 다음 제물 놈."
주헌이 얼굴을 붙인 곳엔 손바닥 크기의 틈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끔찍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휘오오오.
마치 한랭지옥을 보는 듯한 얼어붙은 동굴.
들어가기만 해도 얼어붙을 한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놈이 갇혀있었던 것이다.
'분명 신급이야.'
그리고 주헌은 놈의 부하를 노리는 것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 유물이 맞다면 유물 1,000개의 부하정도는 주변에 있을 테니까.
'천 마리만 갈면(?) 분명 나태의 열쇠도 각성할 수 있을 테지.'
그래서 제물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뭐, 후환이 두렵지 않겠느냐만은 상관없었다.
'부하들은 특별히 정성껏 복원해주마.'
하지만 곧 주헌은 다른 이유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왜?
"젠장. 이미 다 파괴됐잖아."
어디 그뿐인가.
"저 군신을 저딴 냉동고기로 만들어 놓다니."
그 말에 멍멍이들이 내심 놀란 듯했다.
[주인, 저놈이 누구인지 아는 거냐?]
"지금 누구한테 그딴 질문을 하는 거야."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세계의 모든 신화와 민담, 심지어 소멸된 기록까지도 찾아내 머리에 구겨넣었던 주헌이었다.
물론 이번엔 굳이 그게 아니어도 외견적 특징이 너무 명확했다.
황소와 같은 뿔, 쇠로 된 이마에 구리로 된 머리.
'치우천왕.'
단군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먼 기원전 시대.
동방의 군신으로서 섬겨졌고, 환단고기의 설화에서는 중국의 황제와 싸운 맹렬한 신으로 그려졌다.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이기고, 특히 무기 제작에 능해 수많은 무기들을 발견한 인물로도 그려지는 고대의 제왕.
'치우 정도면 상당한 능력을 가졌겠지.'
후천적으로 신격화가 된 케이스이기도 하고.
'뭐 그래봐야 모태신급들이 보기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하지만 이게 웬걸.
[주이이이인! 절대로 저놈은 꺼내면 안 된다!]
[젠장, 저놈을 꺼내주면 나 가출할 거야아아!]
[돌아가자 주인! 지금도 안 늦었어!]
뜻밖에도 그 모태신급들 조차도 덜덜덜 떨고 있었다.
멍멍이들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빌어먹을 마제스티의 재보!]
마제스티가 그 흉흉한 철갑의 가면을 쓰면 누구든지 겁에 질린다고 했다.
마치 바다에서 봐서는 안 되는 죽음의 깃발을 본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만큼 그건 단순한 투구가 아니었다.
황제 출정의 신호탄.
그 귀신의 투구를 뒤집어쓰면 인간왕은 그때부터 신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신이 된 인간왕은 천지개벽을 일으키고, 유물도 인간도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했다고.
그게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 시대를 직접 겪어본 멍멍이들은 질색했다.
[주인, 우리 다른 거 찾으러 가자.]
[저건 아니야.]
"응, 그래 닥쳐."
주헌은 흥얼거리며 틈새를 벌리려고 했다.
그러자 멍멍이들은 기겁했다.
[제바아알! 주이이인!]
얼마나 급했는지, 물건이었던 놈들은 멍멍이로 변해 주헌의 옷자락을 물고 늘어질 정도였다.
[그 불길한 가면은 두 번 다시 보기 싫단 말이야아아아!]
[제발! 뭐든지 할 테니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마몬 유물을 불러냈다.
"하하하! 아주 여기가 노다지야, 노다지."
아니, 대감옥에 들어오자마자 유명한 그리스문물부터 만나지 않나.
그 다음에는 멍멍이들이 기겁할 정도의 재보가 나오지 않나!
"그래. 여기에 있는 건 다 내거야."
주헌이 위험하게 눈을 번득이며 곡괭이에 강한 지배력을 실었다.
쿠웅!
단단한 방어벽을 두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마몬은 원래 채굴의 악마.
마몬의 땅파기 능력과 무덤파괴 스킬까지 합쳐지면 조금이라도 뚫릴 테니까.
'마몬 최대출력!'
덕분에 마몬은 끄앙 아파했다.
능력을 강제로 개방하는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옛날, 무라마사 때처럼 자해를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마몬은 주헌을 위해서 참고 있었다.
[으앙 빨리 해! 못 참겠다고! 빨리!]
주헌은 재빨리 틈새를 향해 곡괭이를 내려쳤다.
그리고.
쿠웅!
콰르릉!
주헌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듯,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멍멍이들은 패닉에 빠졌다.
[젠장!]
[이제 다 망했어!]
[이제 저 도깨비 가면 놈이 다시 세상에 나올 거야!]
하지만 이때였다.
"!"
망했다며 눈을 질끈 감았던 멍멍이들이 환호했다.
[만세! 개구멍이야!]
[하하하하! 크기보소! 저기로는 절대 못 들어간다!]
"..."
동시에 주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멍멍이들은 눈치도 없이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주이이인! 포기해! 또 하기엔 그 유물이 남아나지 않을걸?]
[하하하! 이미 누더기가 다 된 거 같은데!]
[그래그래! 그 호구 복원가도 여기 없잖아!]
멍멍이들은 작은 개구멍을 보면서 신께 감사드렸다.
[헤헤헤! 개구멍! 개구멍!]
[자! 주인! 이제 얌전히 다른 유물이나...]
하지만.
"아 그래. 네놈들이 들어가겠다고?"
퍼억!
놈들의 머리를 낚아챈 주헌이 개구멍에 멍멍이들을 쑤셔 박았다.
"자. 어서 들어가서 꺼내 와라."
[아니, 잠! 잠까아아안!]
[커허어억!]
구멍에 머리가 낀 멍멍이들은 게거품을 물었다.
[아니 주인, 이건 좀 으아아악! 내 머리!]
[야씨, 머리가 문제가 아니야! 도깨비, 도깨비들이 눈앞에!]
[아아악! 주이이이인! 잘못했다!]
하지만 주헌은 사정없이 멍멍이들의 엉덩이를 콱콱 밀어 넣었다.
"자! 어서 마저 들어가라니까!"
[주이이이인!]
결국 이집트 신들은 물건 채로 한랭감옥에 쑥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주헌도 따라서 들어가려고 했다.
넓은 어깨 때문에 들어가기 좀 빡셀 것 같았지만, 그건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문제는...
[으아아아악!]
[아이고오오오 내 몸!]
주헌은 다리를 넣다가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칫. 어딜 가나 저 함정이 문제로군."
그랬다.
정작 멍멍이들이 들어간 곳도 예의 그 안개로 자욱했던 것이다.
그리고 유물들도 피해를 입는 건지, 안개에 닿은 멍멍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부식되었다.
[커, 커허억!]
파괴되다 못해 재가 되려는 광경에 주헌이 황급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안 돼! 안 돼!
다급해진 동아줄이 주헌을 넘어트리며 먼저 쑥 들어갔다.
"!"
동아줄 역시 몸이 파괴되었지만, 재빨리 멍멍이들을 휘감아 구멍으로 쏙 빠져나왔다.
그나마 멀쩡한 건 아누비스였다.
주헌은 아쉽다는 듯 안을 보았다.
"치우가 바로 저기에 있는데."
그러자 람세스가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저놈의 안개는 간수들이 함정으로 이용해먹을 만하군.]
"!"
저놈의 안개라고?
가능성은 컸다.
치우는 큰 안개를 일으키며 세상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만큼.
'칫, 그럼 역시 나태의 열쇠부터 각성시키지 않으면.'
하지만 각성을 위해선 제물이 필수.
이 밀실엔 각성 재료로 갈아버릴만한(?) 유물들도 없고.
자신의 유물을 제물로 삼자니...
'갑자기 1,000개씩이나 소환할 수도 없는데.'
눈앞에 소환이 가능한 건 귀속성 유물 뿐.
하지만 주헌이 계약한 귀속성 유물의 숫자는 적었다.
무덤 밖으로 나가면 갈 유물은 많지만 당장 나갈 수가 없고.
아누비스의 군단을 불러내자니, 그 군단은 사념체라 유물로 취급할 수 없고.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그럴 때였다.
쾅!
"!"
주헌은 뜻밖의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쾅-쾅.
일정한 간격으로 쇠로 쇠를 치는 듯한 소리였다.
주변은 아니었다.
"밖?"
***
"어서 뚫어! 더 뚫어봐라!"
"네!"
그랬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로 대감옥의 밖이었다.
"어때! 들어갈 수 있겠나!"
"사람이 들어가기엔 무리입니다!"
그랬다.
주헌이 들은 소리는 바로 대감옥의 외벽을 치는 소리였다.
판도라가 끄집어내 전 세계에 조금씩 나타난 대감옥을.
그리고 판도라 발굴팀들이 기를 쓰고 거길 치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분명히 감옥이 흔들리면서 그 틈이 생긴 거랬지? 갑자기?"
"네! 그렇습니다!"
그랬다.
갑자기 지진과 함께 대감옥 외벽들에 틈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테면 도시를 뚫고 나온 부처의 팔에 좁은 입구가 생겼다든가.
그리고 발굴팀들은 기를 쓰고 그걸 더 벌리려고 한 것이다.
"이건 기회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기회야!"
"이 안에만 들어가면 보물이 가득하다고! 서주헌만 좋은 걸 얻게 할 순 없지!"
"안에는 마제스티의 재보가 있다고 한다! 반드시 얻어야해!"
"우연도 이런 우연은 없지. 다 하늘의 뜻이야!"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했다.
그 틈들은 그냥 생긴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감옥의 샛길 문들이 좀 열린 모양인데.]
람세스가 그렇게 말해왔다.
주헌은 의아했다.
"샛길 문이라니?"
[네가 아까 그리스놈들 구역의 문을 열어젖혔잖아.]
"그랬지."
[처음이라 조절을 잘 못해서 다른 곳까지 열려버린 거야. 아마 밖이랑 연결되는 문도 좀 열렸을걸?]
"그럼 저 소리는..."
확실했다.
저건 그때 열린 틈으로 인간들이 비집고 들어오려는 소리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생각해보니 제물을 굳이 귀찮게 찾을 것도 없었어."
주헌이 간악하게 웃었다.
곧 마몬이 끙끙대며 물었다.
[그럼 간수라도 유인하려고?]
"바보냐. 이미 함정에 빠진 우릴 굳이 잡으러 오겠어?"
[그럼?]
주헌은 대답 대신 마제스티의 반지를 발동시켰다.
최대한 아까와 똑같은 감각으로!
그러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콰과과과가광!
"으아아악!"
대감옥이 거칠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루르르르릉!
그리고 그 반동 탓인지, 전 세계에서도 역시 지진이 닥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관님! 저기를 보십시오!"
"무, 문이 열렸어!"
5cm 정도 벌어졌던 틈이 사람이 들어갈 크기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궁!
심지어 판도라 발굴단이 대기를 타고 있던 전 세계 곳곳에서!
마치 여기로 어서 들어오라는 듯이!
그 모습에 입구를 장악하고 있던 판도라 발굴단들은 흥분했다.
"들어가라!"
"이건 흔히 있는 기회가 아니다!"
"어서 안에 있는 재보를 가져와라!"
빨리 가지 않으면 닫힐 것 같은 문제 그들은 급해졌다.
물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잠시만요!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함부로 들어가는 건...!"
원탁의 기사 중 누군가가 그리 외쳤지만, 장관들이 거품을 물었다.
"그러다가 놓치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가라! 서주헌한테서 재보를 빼앗아 와!"
그 말에 발굴단들은 우르르르 대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마왕성에 들어가는 것과 맞먹는다는 것도 모른 채.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쿵쿵쿵.
주헌을 찾으러 절벽 밑으로 내려가던 설아가 화들짝 놀랐다.
탐지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
다급해진 그녀가 율리안을 보았다.
"부단장님! 사람들이 감옥 안으로...!"
"숫자는?"
"100... 500, 900... 1,200명!"
율리안은 황당해했다.
방금 전에 느낀 키의 힘도 그렇고, 분명 이 짓도 주헌이 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회전이 빠른 그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아오, 서주헌. 이자식이 키를 어떻게 각성하려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저 아래에서 주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마왕이 용사들을 환영하는 듯한 소리였다.
"좋아. 한 사람당 한 개만 잡아도 1,000마리는 넘겠지!"
주헌은 바로 아누비스 유물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쿠구구궁!
아누비스의 사자(死者)군단이 나타났다.
절벽 밑을 가득 메운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동시에 그가 미라 부대를 향해 외쳤다.
"자, 모두 내 노다지에 쳐들어온 놈들한테 가라! 목표는 유물 1,000마리다!"
두 번째 마제스티의 재보가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