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마제스티의 출현 (4)
"큰일입니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판도라 본부.
거긴 얼마 전 주헌이 던진 궁니르의 폭격을 맞아 초토화가 된 곳이었다.
정확히는 함무라비법전 폭탄(?)이 터지면서 융단폭격을 맞은 자리.
덕분에 판도라 소속 복원가들과 사후처리반이 눈물을 흘려가며 복구 중인 판도라 본부.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상처 하나 없이 꼿꼿한 건물이 있었다.
[드루이드의 시계탑]
그랬다.
그곳은 판도라 최고수장 이사회의 건물이었다.
안에는 아서왕의 원탁의 유물이 있다느니, 초대받지 않은 자가 들어가면 절대 살아서 못 나온다느니 뭐니.
각종 소문은 무성했지만 가장 확실한 건 그 건물이 난공불락의 탑이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고분화에도 재난에도, 하물며 유물의 재앙에도 끄덕 않는 무적의 탑이었지만 글쎄.
지금만큼은 내부에 있던 사람들도 큰 데미지를 받은 듯했다.
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프로메테우스가 잡혔다고요?!"
"네."
그들은 그 충격적인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프로메테우스가 대감옥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금 수장급의 유물이 잡혔단 말을 하신 겁니까?!"
"도대체 누구한테요!"
그러자 한 여자가 웃었다.
"누구긴요, 서주헌이죠."
"네?!"
사람들은 까무러치다 못해 경악했다.
아니 서주헌이라니!
"잠깐만요, 거기서 왜 그 이름이 나옵니까!"
"글쎄요. 또 당했나보지."
"이봐요, 멀린!"
사람들의 질책에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게 누가 내 충고도 무시하고 대감옥에 혼자 가래."
"이봐요, 멀린!"
그랬다.
그녀의 이름은 이브 록펠러.
그녀는 판도라 이사였다.
그리고 원탁의 기사라고 불리는 중요 인물 중 하나.
동시에 프로메테우스와 손을 잡고 인위적으로 마제스티를 만들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타 문화권의 유물이라고 무시할 때부터 알아봤어. 그대로 콱 죽어라."
"멀린!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서주헌이 마제스티 유물을 각성시키고, 제우스까지 풀어줬다면서요!"
그들은 미치고 환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미치겠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왜?
'아씨 이럴 때가 아니라고오오오! 빨리 감옥에 사람을 보내야 한다고! 이러다가 진짜 프로메테우스님도 중요한 곳을 뜯겨버린다고!'
그랬다.
이중에서 가장 미치고 환장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프로메테우스의 독수리였다.
'젠장! 서주헌 그 미친노오옴!'
놈은 원래 제우스가 부리던 독수리 중 하나.
하지만 제 주인이 갇히자 슬그머니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유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아이고, 서주헌 그 미친 새끼이이! 주신한테 무슨 짓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주신이 쓰러지는 광경을.
그걸 보며 낄낄낄 웃는 주헌을!
그쯤 되자 독수리는 이거 진짜 큰일 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놈은 미친놈이다!'
하지만 그 속타는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사회에서 술렁였다.
"주신급이 나오다니. 골치 아파졌어요."
"프로메테우스와 손을 잡고 있던 우리가 위험해질 겁니다."
"그럼 언노운으로 제우스의 천적 유물을 만들어 볼까요?"
"원탁의 기사들을 보내 제우스를 처리하라고 하죠."
"뭐, 서주헌도 제우스를 못 쓰면 큰 위협은 안 될겁니다."
그러자 독수리는 굉장히 답답해했다.
'야씨, 아니야! 제우스가 문제가 아니라고!'
서주헌 그 새끼가 최종보스라니까!
***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이제 헛소리 할 정신은 사라졌나."
유물들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눈 앞에는 정줄을 놓은 듯한 자신들의 주신이 있었다.
[커, 커허억.]
주신은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선 거의 영혼이 빠져나오기 직전.
그 모습에 다른 유물들은 덜덜 떨면서 다가갔다.
[저, 저기, 아버지.]
[괘, 괜찮으신...!]
하지만 대답한 것은 제우스가 아닌 주헌이었다.
"흠, 역시 주신은 주신이군."
주헌은 땅에 떨어진 수상한 유물을 보며 흡족해했다.
[주신의 몸에서 나온 XXX (SS급-신급)/ 소모성)]
"여기서 뭐가 태어날 지 기대하겠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물들은 울부짖었다.
[야, 이 잔인한 새끼야!]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아버지한테 돌려줘어어어!]
그러나 주헌은 히죽거렸다.
"그러게 주신 주제에 누가 쪼잔하게 한 입으로 두 말 하래?"
[야이씨! 그래도 그렇지! 그게 아버지한테 어떤 존잰데!]
[이런 짓을 하고도 네놈이 무사할 것 같으냐!]
[젠장, 유물권침해다! 신성모독이야!]
[네놈은 절대 천국에 못 갈 거다!]
그러자 주헌이 킬킬 웃었다.
"알아, 난 지옥에 떨어질 거야. 그리고 니들도 같이 끌고 가주지."
저 개새끼가!
결국 단원들도 질색하며 주헌을 보았다.
특히 남자단원들은 진심으로 슬퍼했다.
"아... 대박. 아프겠다."
유물을 동정해보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결국 유물들이 제우스를 급하게 살폈다.
[아버지! 살아계십니까?! 괜찮으세요?]
그러자 제우스 유물이 해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다.]
아니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결국 보다 못한 누군가가 칼을 세웠다.
[이 빌어먹을 놈아, 네놈도 똑같이 떼어주마! 자식아!]
한 사내가 주헌에게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꺼져라. 2등급짜리."
[커허억!]
잘생긴 전쟁의 신은 오히려 주헌에게 깨지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주헌은 유물파괴가 실린 발로 아레스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빠각!
비록 지금은 까마귀와의 연결이 약해져 스킬의 위력을 제대로 낼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빠각! 빠각!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감옥에 갇혀서 약골이 된 놈들에게는 충분했으니까.
아무리 유명하고 잘난 신급들이면 뭐하나.
다들 하나같이 만지기만 해도 바스라질 정도로 녹이 슬고 영양실조 상태인 것을!
[커헉, 그만, 그마안, 이 빌어먹을 인간이! 감히 신들에게 이 무슨 무례한!]
"하긴. 신급을 짐승마냥 패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주헌은 칼을 뽑아들었다.
"대신 니놈도 환관으로 삼아주마!"
[으악! 아니 잠깐! 야!]
그쯤 되자 유물들은 빼애애액 난리가 났다.
[야씨, 그만 그만하라고!]
[우리 그리스 문명을 몰살시킬 생각이냐! 씨를 말릴 생각이냐고!]
동시에 주헌이 눈을 번득였다.
"알았으면 전원, 얌전히 계약에 응한다. 콱 전원 뗴버리기 전에!"
아이씨, 뭐 저딴 인간이 다 있어!
'젠장, 저딴 놈이 마제스티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니!'
저딴 게 마제스티가 된다면 그건 세계 멸망의 징조이리라.
그렇게 유물들은 질색했지만 주헌은 무척 흡족해했다.
'아레스, 호라이, 디오니소스, 뮤즈, 판, 헤스티아, 헤르메스, 하데스, 포세이돈...'
최소 신급 유물들만 도대체 몇 개야! 게다가 그리스문화권이면 세상에 꽤 유명한 놈들.
'사업에 이용하기엔 딱 좋지.'
유명한 유물은 마케팅하기에도 아주 좋았다.
게다가 유물은 기본적으로 인지도만큼 추가버프가 붙으니 상당한 이득이리라.
곧 유물들이 술렁거리기만 할 뿐 눈치만 살피자 주헌이 눈을 번득였다.
"왜 대답이 없어! 계약하기 싫어?!"
[아이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노예 주제에 말이 짧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들은 그렇게 답하면서도 소근거렸다.
[그래 봐야 인간이다.]
[하긴, 이만한 신급 유물을 고작 인간 놈 혼자서 계약할 순 없어.]
[어디 해보라지.]
그러자 닥치라는 듯 주헌이 손을 뻗었다.
동시에 번쩍이기 시작한 마제스티의 열쇠.
쿠구궁!
곧이어 허공에서 수상한 황금문이 생기자 유물들은 기겁했다.
그게 뭔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젠장, 노예의 문이 열렸어!]
[저 문까지 열 수 있을 줄이야!]
그랬다.
마제스티의 키는 기본적으로 그 어떤 무덤도 열고 닫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가적으로 하나 더.
유물의 왕은 각 이름에 걸맞은 일곱 가지의 특수한 문을 열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탐욕의 열쇠는 재물의 문을, 분노의 열쇠는 멸망의 문을.
그리고 오만의 열쇠는 노예의 문을!
아니나 다를까.
쿵!
[자, 천하고 욕정만 넘치는 그리스 문물들이여. 전부 주인의 노예로 굴복해라!]
그리 외친 건 바로 람세스였다.
과거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며 자신의 업적을 남긴 오만의 왕.
곧 그가 주헌을 찬양하며 노예의 문을 열었다!
콰과광!
유물들은 마치 머리채를 휘어잡히듯 비명을 질렀다.
[젠장. 마제스티의 힘이다!]
[서주헌 이 자식이!]
노예의 문은 수많은 유물들을 거느릴 수 있게 특화된 문.
신들조차도 넘보는 오만의 힘은 모든 유물들을 제 휘하에 둘 수 있었다.
잠시 후, 황금색의 빛나는 문에서 튀어나온 노예들이 우르르 그리스 문물들을 납치해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람세스가 외쳤다.
[자, 너희 문화권은 이제 풀만 뜯어가며 서주헌 님에 대한 업적을 세워야 할 것이다! 처음은 그래! 피라미드부터 하자꾸나!]
그러자 주헌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야, 꺼져. 요즘 시대에도 그딴 돌 무덤을 만들게 하면 잡혀가. 노동착취라고. 쓸모도 없고."
[그, 그럼?!]
그러자 주헌은 씨익 웃었다.
"현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에너지다. 특히 청정하고 고갈 위험이 없는 에너지면 더더욱 좋지. 늘 부족해서 문제거든."
[...?!]
주헌의 시선이 슬그머니 제우스를 향하자 주신은 흠칫했다.
저, 저 자식이 설마.
아니나 다를까.
"일단 넌 발전소 당첨."
[#$*&$*!]
젠장, 다시 감옥에 들어갈래!
***
"이 독한 놈, 아무리 그래도 발전소라니!"
대충 유물들을 정리하던 율리안은 기가 막힌다는 듯 주헌을 보았다.
왜?
"너 혹시 나한테도 그런 일 시키려고 했던 거 아니야?!"
율리안 역시 번개의 신인 인드라 유물을 가지고 있었다.
충분히 에너지를 활용할 정도로 컨트롤 할 수도 있었다.
"나한테도 발전소 시키려고 했지!"
그러자 주헌이 코웃음을 쳤다.
"그걸 이제 알았냐?"
"뭐!"
"그래도 무덤 클리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물이니까 봐줬다. 발전소에 가둬야 하는데 그렇게 쓰긴 좀 아깝잖아."
"그럼 주신은 안 아깝고?!"
"뭐 어때? 힘도 남아돌 거 아니야. 사업 확장도 생각하고 있었고. 에너지 사업이 돈이 보통 되겠냐?"
아이고.
그들은 뒷목을 잡았지만 상관없겠다 싶었다.
"어쨌든 이걸로 까마귀한테 가는 것도 좀 수월해지겠지?"
"뭐 그것도 그렇긴 한데 아까 세보니까 그리스 애들 숫자가 좀 모자라더라고."
"에이 뭐.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든가 이 안에 있든가 하겠죠 뭐."
"그래? 그럼 걔네들도 마저 채워넣어야겠다."
"?!"
주헌은 눈을 번득이며 무덤 깊숙이 들어갔다.
"저, 저기. 까마귀는 잊은 거 아니죠?"
어쨌거나 그들은 좀 더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권혁수는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원탁의 기사들을 소집합니다.]
안 그래도 진채원에게 신나게 뜯기고, 겨우겨우 주헌의 섬을 빠져나와 망망대해에 있던 그였다.
그런데 판도라 이사회에서 날아온 메시지가 뜻밖이었다.
"어이쿠, 프로메테우스를 구하러 가자고?"
원탁의 기사들은 쉽게 말해 판도라이사회였고, 원탁의 유물의 힘을 받는 놈들이었다.
판도라 이사회에는 150명 가량이 앉을 수 있는 원탁의 유물이 있었는데, 그중 특별한 13개의 자리가 있었다.
아서왕을 포함해 그 13개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유물사용자들을 원탁의 기사라고 불렀다.
실력은 왕급이나, 마제스티의 자리를 일부러 포기하고 인위적 마제스티를 만들려는 이들.
과거 주헌을 죽이려고 했던 왕급의 독식자도 전부 그 원탁의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그 소집 명령을 본 권혁수는 뭔가 못마땅했다.
왜?
'음, 프로메테우스를 구하자고.'
프로메테우스를 구하고, 다함께 주헌을 죽이자는 의미겠지.
하지만 권혁수는 소집 메시지를 찢어버렸다.
왜?
'글쎄. 난 주헌이가 마제스티가 되는 게 더 이득이니까.'
그리고.
'프로메테우스 구출은 무슨. 그런 걸로 시간을 버릴 바에야 거기서 유물을 털어오는 게 더 이득이지.'
그는 낄낄 웃으며 다른 왕급들을 꼬시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비상이다아아! 마제스티가 부활하려고 한다!]
[야야! 그리스 문화권 애들 싸그리 잡혔댄다!]
[뭐야? 진짜야?!]
감옥 안의 이야기는 금방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마제스티의 키를 가진 자가 각 문화권 유물들을 모두 접수하러 한다는 소문이었다.
뭐, 사실 주신만 접수하면 하위 유물들은 자연스럽게 붙잡히게 되는 것이지만.
그래서일까.
[주, 주신들을 지켜야 한다!]
[떼여, 떼인다고오오!]
무엇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서주헌 그놈만큼은 안 된다!]
[그래! 다른 놈들은 다 돼도 그놈만큼은 안 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유물들은 주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