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유물의 총수 (2)
"무슨 유물인데요?"
그 말에 주헌이 답했다.
"그건..."
주헌이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윽!"
그들을 묶고 있던 넝쿨이 밑으로 쑥 내려갔다.
그러자 걸신들은 난리가 났다.
마치 높은 나무에 매달려 있던 열매가 절로 내려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엄머, 엄머, 먹이가 제 발로 내려왔어.]
[어서 먹어버리자고.]
그렇게 이를 세우자 유재하가 기겁했다.
"저리 가, 저리 가라고오오!"
유독 인기가 많은 건 유재하였다.
"도대체 왜 다 나한테만 오는데! 단장님! 통역 좀!"
"왜긴 왜야. 니가 제일 기름기가 많으니까."
"?!"
그건 사실이었다.
[고기도 기름이 껴있어야 맛있지.]
그들은 유재하를 꽃등심 쯤으로 생각하는 지도 몰랐다.
그래서일까, 주헌이 비웃었다.
"피닉스 믿고 새벽에 치킨 두 마리씩 뜯을 때부터 알아봤다."
"$#**!"
유재하가 뚱뚱한 건 아니었지만.
주헌이나 설아는 인기가 없었다. 평소 격투기 운동을 빡세게 즐기는 그들은 질길 것 같다고.
율리안도 나름 자기관리가 철저해 헬스정도는 매일 규칙적으로 했고. 결국 인기가 많은 건 야들 야들 꽃등심 같은 유재하 뿐.
물론 그들이 가진 비보도 한몫했지만.
[계집 쪽은 독이 있어서 안 돼.]
인면호랑이들은 나가가 독뱀이라며 피했고.
[해태는... 그래도 같은 호랑이를 먹을 순 없지.]
심지어 해태를 동족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주헌은...
[저놈은 하도 더러운 걸 쳐먹어서 먹었다간 배탈 날 것 같아.]
[맞아 안 돼. 식중독 걸려.]
위생검사에서 탈락했다.
그에 비하면 피닉스는 유재하와 함께 아주 맛있어 보이는 유물.
[히히히, 꽃등심과 새고기다! 새고기!]
[하악, 하악 구워 먹자! 구워 먹자고!]
[다리는 다 내 꺼! 내 꺼!]
이쯤되자 유재하와 피닉스는 거품을 물었다.
그 주인에 그 유물이라고, 특히 피닉스는 억울해 죽으려고 했다.
아니 얼마 전에는 깃털이 뽑혀 대머리가 되더니, 이제는 고기 취급이라니!
이 천한 놈들아! 꺼져라! 이래 보여도 이 몸은 귀한 비보의 몸이시다!
그래봐야 배고픈 유물들에게는 새고기에 불과할 뿐.
결국 유재하가 SOS 요청을 했다.
"단장님! 제발, 저 사흉수놈만 처리해줘요! 한순간만이라도 좋아요! 유물만 쓸 수 있으면 돼!"
그러자 주헌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도 부하 놈인데 죽게할 순 없지."
주헌이 눈을 번득이자 율리안과 설아도 준비를 했다.
'유물파괴를 쓰시겠지.'
그리고 주헌이 묶여 있는 넝쿨을 파괴해주는 순간, 탈출을 한다.
그렇게 비장한 준비를 할 때였다.
"이봐 거미 여자. 내 말 들리지?"
"!"
주헌은 뜻밖에도 진채원을 불렀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의 목소리가 안 들릴 리가 없었다.
'그래도 왜 이 상황에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말을 이었다.
"아까 답해주려던 말 대신, 한 가지 제의를 하지."
"다, 단장님?"
단원들이 주헌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할 때, 그는 아주 충격적인 제의를 했다.
"이걸 풀어주면 사귀어줄게."
"?!"
그 말에 단원들은 기절할 뻔했다.
"단장님?!"
"야, 야! 서주헌! 너 무슨 말을!"
특히 설아는 기절하려고 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그러나 주헌은 진지했다.
"왜? 사귀어준다니까?"
계속되는 말에 율리안은 버럭 화를 냈다.
"너 진짜!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무슨 바보 같은 말을!"
그러자 주헌은 되려 율리안을 쏘아보았다.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건 너야. 이 무덤은 통상의 무덤과는 달라. 이미 주인이 있는 무덤이라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거미는 주인의 힘으로 계속해서 무덤의 함정을 만들어 낼 것이었다.
즉 함정을 탈출해도 계속 함정에 걸릴 것이라는 의미였다.
근데 그걸 하나하나 상대해?
"그건 체력낭비야."
율리안은 탄식했다.
그러니까 주헌은 차라리 원인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주인이 거미의 힘을 억눌러주면 무덤의 함정도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런 말에 천하의 그 악녀가 넘어갈 리가...!"
그런데 그럴 때였다.
"그거 진짜지?"
"?!"
단원들은 뜻밖의 목소리에 제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주헌의 눈앞에 진채원이 나타난 것이다.
'진짜 넘어갔냐!'
고지식한 율리안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무슨..."
그러나 진채원은 떨리는 눈으로 주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한 말 진짜냐고 물었어."
"그래. 사귀어준다니까."
그녀는 눈을 번득였다.
"말해두지만 유재하 말고. 너랑 사귀는 거야."
"..."
한 번 당한 게 있어서인지 정확하게 하는 그녀였다.
결국 주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니까 이것 좀 풀어봐. 그리고 하는 김에 저 사흉수 놈도."
그 말에 진채원이 슬쩍 흉수를 바라보았다.
놈은 거미가 먹어치운 사흉수 중 하나 도철.
저 신급 유물을 상대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주헌의 딜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서주헌의 속셈도 예측이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보나마나 유물이 목적이겠지.'
하지만 곧 진채원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봐야 뱉은 말은 주워 담지도 못한다.'
그녀의 눈이 위험천만하게 번득였다.
어차피 주헌의 조건은 유물을 달란 것도 아니고.
그냥 함정을 제거해달라고 한 것뿐.
'적이긴 하나 함정 하나 제거해주는 것쯤이야 어렵진 않지.'
함정이 이것 하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나 다를까.
진채원은 바로 걸신들을 노려보았다.
"풀어줘라."
[!]
그 말에 아귀들과 인면호랑이, 더 나아가 도철이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무슨!]
"풀어주라고 했다."
진채원의 명령에 유물들이 몸을 떨었다.
인간이라고 무시하기엔 그녀가 품은 총수의 힘이 너무 막강했다.
결국 아귀들과 호랑이들이 도망치고, 주헌 일행을 묶고 있던 넝쿨도 풀어졌다.
곧 바닥으로 떨어진 단원들은 한시름을 돌렸다.
"아오, 죽는 줄 알았네!"
그리고 함정이 풀리자 진채원이 환하게 웃으면서 주헌에게 다가갔다.
"난 약속 지켰어. 말 무르기 없기야?"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알았어. 오늘부터 니가 내 애인이야."
그 말에 설아는 울부짖었다.
어떻게 단장님이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진채원은 음흉한 눈빛으로 주헌에게 안겼다.
그녀는 주헌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거슬리는 단원들은 무덤에서 죄다 죽이고, 주헌만 중국에 데려가리라.
'넌 이제 내거야.'
진채원은 주헌의 얼굴을 붙잡으며 황홀해했다.
"주헌아, 그러면 우리..."
"헤어지자."
"?!"
주헌은 그 말만 내뱉고 냅다 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자유가 된 주헌은 바로 까마귀를 불러내 난동을 부렸다.
쿵!
[까마귀가 도망가는 유물들을 포식합니다.]
지배력을 쓰지 못해 발동되지 못했던 까마귀는 기다렸다는 듯 아귀 유물과 인면호랑이들을 잡아먹었다.
[배고픈 아귀를 잡아먹었습니다.]
[난폭한 인면호랑이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유물들을 소화합니다.]
[새로운 유물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심지어 주헌은 바로 사흉수까지 노렸다.
"누가 총수 유물의 무덤 아니랄까봐!"
하하하 웃는 주헌이 미친 듯이 까마귀 오라를 폭주 시켰다.
그러자 무덤을 뒤덮을 크기의 흉흉한 오라가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오라는 도철을 노렸다.
물론 단원들은 기겁했다.
"아악! 걘 안 돼요! 단장님!"
사흉수급 되는 유물이면 악 계열 유물.
히틀러의 유물을 먹고도 배탈이 난 그였다.
사흉수쯤 되면 거의 핵폐기물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거 지지! 지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흉수를 집어삼켰다.
쿠구구궁!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흉수가 욕을 하며 잡아먹힌 것이다.
[도철이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새로운 유물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아무래도 신급 유물을 바로 소화시키기는 어려운 듯, 주헌은 좀 괴로워했지만 상관없었다.
"옛날에 사흉수로 사신수를 불러냈다는 정보가 있었지!"
주헌은 곧 단원들에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따라와. 이쪽이야."
그 모습에 단원들은 황당해했다.
"아니, 진채원을 공략한다며?!"
"뭐? 그거 당연히 구라지."
"네?!"
애초에 진채원과 사귄다고 해도, 그녀는 제 주변인들을 거슬린다며 죽일 여자였다.
미쳤다고 마음을 주나.
"그리고..."
주헌은 무덤의 형상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총수의 정체는 고독(蠱毒)의 유물이야."
"네?!"
고독이란, 쉽게 말해 고대중국의 저주술법 중 하나였다.
독충과 독사를 한 항아리에 가둬놓고, 서로 잡아먹게 하여 하나만 남으면 고라고 불렀다.
그 고를 활용한 주살법.
독거미, 지네 등 독충이나 두꺼비, 독사 등 독을 지닌 생물들을 한 항아리에 가둬놓으면 신기하게도 서로 싸우고 잡아먹으며 한 마리만 남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최후에 살아남은 생물을 저주에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 활용법은 독극물 제조부터 바이러스, 기생충 감염 등 다양했지만 고독과 가장 유명한 설화는 이것이었다.
"막대한 재산을 얻게 해주는 대신, 대가로 사람을 줘야 하는 벌레에 대해 알지?"
"아."
그 생물을 키울 수 없게 될 땐 얻은 재물에 이자까지 붙여 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재물을 가져가게 되면 그 생물까지 가져가게 되는 셈.
보통은 아무것도 모르고 재물을 가져가게 될 테니, 잡아먹히게 되었다.
그걸 활용한 주살법인 것이다.
"중국은 판도라 없이도 막대한 유물과 부를 얻고 있었어. 고독 유물 덕분이겠지."
다만 진채원 역시 그 대가로 거미에게 사람을 먹게 했을 거란 것이다.
"어쨌든 총수 유물은 그 고독 유물이라는 거죠?"
아마도 거미 놈은 과거 그렇게 유물들을 포식하며 살아남은 최후의 독충일 터.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놈은 신급 유물과 함께 갇혀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신급 유물까지 먹어치우며 최후의 유물이 되었고, 결국 총수라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와, 무서운 유물이긴 하네요."
하지만 주헌은 비웃었다.
"더 무서운 거 알려줄까?"
"네?"
"저 거미 유물. 원래는 인간이었을 수도 있어."
"네?!"
***
주헌의 충격적인 말에 단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 지금 뭐라고...!"
"확실하진 않아. 단지 그럴 거 같다고 생각할 뿐이지."
"도대체 왜?!"
이번엔 율리안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러자 주헌이 말했다.
"말이 좀 달라."
"말?"
주헌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자신은 유물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물들의 말투나 어조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유물들은 안 그런데, 유독 거미만 좀 이상했다.
"어조라고 해야 하나, 사실 유물들의 말은 인간들하고 좀 느낌이 달라."
로봇처럼 부자연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냥 인간이 말하는 것하고는 좀 느낌이 달랐다.
마치 외계인이 굳이 인간 말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느낌.
하지만.
"총수는 유물인 척하지만, 말투가 인간하고 비슷해."
"...!"
실제로 다른 유물들은 제대로 유물의 정보가 뜨는 반면, 거미 유물은 정보가 뜨지 않았다.
"그럼 정말로...!"
주헌은 웃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놈은 탐식의 유물이야. 그동안 먹어치운 유물이 이 무덤에 가득하다는 의미지."
실제로 이 무덤은 총수의 뱃속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진채원을 거치지 않아도 총수를 굴복시킬 방법이 있다.'
그렇게 주헌이 무덤파괴로 지름길을 팔 때였다.
동아줄이 뭔가 감지를 한 듯, 황급히 주헌의 뺨을 다급하게 쳤다.
적을 감지한 것일까.
그럴 때 동아줄의 몸에서 미세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