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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15화 (315/409)

315화. 꿈같은 데이트 (1)

진채원과 마주한 유재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안 들키겠지? 안 들킬 거야.'

진짜 하다하다 단장님으로 변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뭐 주헌으로 변해보니 좋은 점도 있긴 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세상에! 천장에 머리를 부딪혀보는 느낌이라니!

다리가 앞좌석에 걸려보는 느낌이라니!

사람들이 제 아래로 걷는 느낌이라니!

'깔창하고는 느낌이 달라. 젠장!'

평소 겪어보지 못한 일에 유재하는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어머."

바로 여자들의 시선이 끊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쭉쭉빵빵 누님들에게도!

아니, 정확히는 자신을 본 게 아니지만 어쨌든 여자들이 자신을 보며 좋아했다!

걸어다닐 때마다 여자들에게 시선을 받는 기분이 이런 건가!

하물며 번호도 따여봤다!

'와, 내가 길거리 캐스팅 이라는 것도 당해봤다고!'

뭐 정확히는 자신이 당한 게 아니지만, 어쨌든 받아봤다.

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난 이제 길거리 캐스팅도 받아본 사나이라고!'

특히 가격 깎기 기술(?)을 발휘할 때 최고였다.

사기 성공률도 한없이 올라가고!

'이거 단장님 얼굴 좀 종종 애용해야겠는데.'

물론 주헌이 알게 되면 박살날 것 같은 기분이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주헌의 모습으로 신세계를 경험해 본 건 좋은데...

"기, 기다렸어?"

하필 마지막 신세계가 진채원이라니.

유재하는 진짜 죽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망할 가시나... 아, 아니지. 이게 다 단장님을 위해서야.'

***

그랬다.

사실 자신들은 주헌을 미친 듯이 깨우려고 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유물을 써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 유물인지, 주헌은 별짓을 해도 안 일어났다.

"젠장, 단장이 안 일어나! 약속시간까지 10분도 안 남았는데!"

"왜지? 이 인간 신급한테도 멀쩡한 괴물 내성 아니었어?"

물론 주헌의 기본 내성이라면 A급 유물정도야 잘 안 통하겠지만, 그는 아주 꿀잠을 잤다.

"이 자식 그냥 본인이 일어날 생각이 없는 거 아니야?"

평소 리스크 때문에 잠이 부족하니까.

결국 주헌을 깨우는 걸 포기한 율리안이 말했다.

"할 수 없지. 진채원한테는 연락을 해서 취소하는 수밖에..."

그런데 그때였다.

"잠깐!"

주헌을 잠재운 설아가 비장한 얼굴로 나타났다.

"없던 일로 하는 건 안 돼요!"

그랬다.

진채원은 7대 무덤 중 하나, 탐식의 유물 화석을 가지고 있었다.

주헌이 미리 이야기해놨으니, 데이트에도 가지고 올 것이었고.

진채원도 흥미로웠는지 흔쾌히 응했고 말이다.

뭐 보여주기만 할 뿐, 절대로 주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오늘이 아니면 그걸 얻을 기회는 없어요."

그게 있어야지만 마지막 7대 무덤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7대 무덤의 유물을 모두 얻으면 주헌이 바라는 무덤이 나왔다.

그러니 진채원을 만나는 건 필수지만...

"단장님을 그런 사지로 보낼 순 없어요."

총수 유물이 뻔히 주헌을 노리는 걸 아는데 위험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한 몸 바치리라.

설아는 비장했지만 유재하는 비웃었다.

"...그냥 단장님이 진채원이랑 데이트하는 게 싫었던 거 아니... 컥!"

결국 배를 붙잡은 유재하가 말했다.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단장님인 척, 그 화석 유물을 빼돌리라는 거지?"

구경하는 척하고 복제를 하면 진채원도 빼앗긴 걸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

"그럼 방해도 받지 않고 탐식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율리안은 괜찮은 작전이라고 하면서도 의아해했다.

"그래도 주헌한테 유물까지 써가며 재울 필요가 있었어?"

그러자 설아는 굉장히 괴로워했다.

"아니 저도 유물까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적당히 침대에서 주헌의 힘을 쭉 빼놓고 재울 생각이었는데...

"그게, 단장님이 지치지를 않아서!"

그 폭탄 같은 말에 율리안은 사레에 걸리고 말았다.

"뭣...콜록 콜록!"

유재하는 존경스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설아는 울었다.

과거의 주헌을 생각하다보니 좀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때의 주헌은 환자.

병에 걸렸을 때의 체력과 지금의 체력은 비교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헌을 뻗게 하려던 건 대실패.

오히려 자신이 먼저 뻗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유물을 쓰게 되었다.

신급 유물 수집에 나서면서 여러 잡동사니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뭐, 그렇게 유재하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겁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뒷일을 생각하면 이 작전이 좋긴 했고, 무엇보다.

'그 인간, 신급 유물 2,000개를 주겠다고 하면 진짜 기둥서방도 콜 할지 몰라.'

단장에 대한 신뢰성이 제로인 도굴단이었다.

그리고 아주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진채원도 꾸미니까 이쁘긴 이쁘네.'

눈은 호강하고 있었으니까.

평소 커리어우먼 스타일의 옷만 보다가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보자 입이 벌어졌다.

'어쨌든 최대한 단장님인 척하면서 화석 유물을 빼앗아보자.'

복제품으로 바꿔치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우,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요? 저 영화 어때요?"

저래가지곤 바꿔치기를 하기도 전에 들통나겠다!

물론 유재하의 변장은 완벽했다.

그건 율리안이 보장했다.

겉모습은 완벽한 도플갱어였으나 내용물이 좀 후져서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너 서주헌 맞아?"

진채원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

결국 진채원의 말에 단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아우, 저 바보! 어떻게 만난 지 10분도 안 돼서 벌써 들키냐!"

"역시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는 게...!"

율리안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그때였다.

"!"

그들은 깜짝 놀랐다.

주헌, 아니 유재하가 돌연 벽치기라는 걸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이린과 설아에게도 써먹던, 예의 거친 벽치기.

"뭐야. 지금 날 의심하는 거예요?"

그는 최대한 주헌답게 썩소를 지었지만, 설아는 죽으려고 했다.

"아니야아아! 단장님은 안 그래! 안 그런다고오오!"

아니 왜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인데 전혀 딴 사람일까!

아니나 다를까.

"너..."

진채원의 시선이 더욱 이상해지자 유재하는 뻘뻘 땀을 흘렸다.

'뭐, 뭐야. 이거 아닌가? 분명 단장님이랑 똑같이 했는데?'

도대체 어디가 똑같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수상하게 여긴 건지 진채원이 공격 유물을 불러내려고 했다.

이에 당황한 유재하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렀다.

아, 어쩌지. 어쩌지.

진채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됐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계속 수상한 점만 보일 테니까.

'아 젠장, 모르겠다!'

결국 그가 깜짝 놀랄만한 일을 했다.

"!"

율리안도 설아도 깜짝 놀랐다.

유재하가 다짜고짜 진채원을 콱 끌어안았던 것이다.

그리고.

"미안. 사실 널 보니까 너무 떨려서!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어!"

정말 혼신의 연기를 했다.

그 모습에 설아가 뒷목을 잡았다.

"...야! 그런 걸로 저 여자가 속을 것 같...!"

"아니, 잠깐만!"

율리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진채원의 행동이 달라졌다.

"...아, 알았어. 믿을 테니까! 이것 좀!"

진채원은 드물게 당황하며 주헌에게서 떨어지려고 했다.

약간의 의심은 주헌의 살갗이 닿는 순간, 확 날아가버린 것이 분명하리라.

***

"아무래도 믿는 거 같지?"

율리안이 뒷좌석을 힐끔 보았다.

지금 그들은 영화관에 있었다.

영화관에서 어둠을 틈타 화석 유물을 복제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뭐, 그래서 진채원이 푹 빠질 만한 영화를 고르게 한 건 좋은데...

"꺄아, 무서워!"

진채원은 주헌의 팔을 꽉 끌어안은 채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렇다.

진채원은 같잖게도(?) 주헌과 함께 볼 영화를 공포영화로 고른 것이다.

뭐, 데이트에서 공포영화를 고르는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저 여자를 콱 그냥...!"

그 뻔한 속셈이 보여 설아는 이를 으득 갈았다.

진짜 주헌이 나갔으면 살인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물론 공포영화가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

진채원은 인간들을 잔인하게 씹어먹는 거미 유물의 소유자.

공포스릴러 영화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관람했지만...

'젠자아앙, 왜 하필 공포영화야아아아!'

정작 유재하는 죽어가고 있었다.

유재하는 공포영화는 딱 질색하는 콩알만 한 간의 소유자였다.

'망했어어! 단장님이야 이딴 영화, 배를 긁으면서 보겠지만!'

왜 하필!

결국 겁에 질린 유재하가 진채원의 팔을 콱 잡았다.

그걸 보며 진채원은 웃었다.

'의외로 겁이 많았구나.'

물론 보는 사람의 심장은 좋지 않았다.

왜?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주인의 정신상태 때문일까, 유재하의 변신이 위험했던 것이다.

겨우 주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깜짝깜짝 놀랄 때마다 모습이 풀리려고 했다.

"지금이라도 주헌을 데려와야...!"

하지만 설아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저, 저게 단장님한테 얼굴을 비벼? 얼굴을?!"

"잠깐, 설아야. 진정해. 저건 주헌이 아니라구!"

그렇게 율리안이 설아를 진정시킬 때였다.

"!"

둘은 깜짝 놀랐다.

아슬아슬하게 변신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 완전히 풀려버린 것이다.

그들은 기겁했다.

"잠깐, 재하야! 변신 풀렸어, 풀렸다고!"

기절한 건지도 몰랐다.

"재하야! 영화 곧 끝난다고!"

"복제! 복제해!"

그리고 그때였다.

"응?"

진채원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주헌과는 엄연하게 다른 팔의 감촉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하야아아!"

그 순간, 영화관의 불이 켜졌다.

***

영화가 끝났다.

불도 켜졌다.

다들 무서웠다며 우르르 밖으로 나가고 있었지만 누구는 달랐다.

진채원은 굳어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제 옆에는 거품을 물고 기절한 유재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그제야 영화가 끝난 걸 눈치챈 유재하가 퍼뜩 눈치를 차렸다.

"아씨, 끝났어...? 엥?"

"..."

유재하는 그제야 진채원의 시선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보았다.

'아차!'

변신이 풀린 걸 깨달은 유재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젠자아앙! 풀렸어어어!'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네, 네?"

"왜 서주헌이 아니라 네가 있냐고 묻잖아."

젠장! 죽었다!

"아, 아니 그게... 으아아악!"

그 순간, 쿵! 영화관이 크게 뒤흔들렸다.

"꺄아아악!"

"지진이야 지진!"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분주하게 밖으로 나갔다.

곧 이어 영화관 내부에 돌기 시작하는 흉흉한 오라.

"이게 날 속였어?"

진채원의 표정이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뭐 그것도 당연하지만.

'이런!'

곧 당황한 율리안과 설아가 유재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로 진채원에게 살해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하야!"

진채원의 눈에 살의가 돌았다.

특히 상대가 유재하라는 것에 더 열받았을 것이다.

유재하에게 당한 일이 어디 이번 한 번 뿐이랴.

하물며 주헌도 아닌 사람에게 온갖 애정공세를 하며 안겨들었으니!

'이런 수치는 없다!'

그녀는 거미의 유물을 불러냈다.

"진짜 서주헌은 어디에 있지?"

"아, 아니 그게에에에!"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어딨긴."

"!"

"여기 있잖아."

그 낯익은 목소리에 다들 기겁했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제일 뒷자리.

엔딩 크레딧을 전부 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자고 있었던 것일까.

진채원의 난리에 다들 비명을 지르고 나갔음에도 유일하게 남아있던 한 명.

"다, 단장...!"

진짜 주헌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단장님이 어떻게!"

모자 때문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유히 다리를 꼬고 있는 주헌은 흡족해했다.

단원들의 행동이 몹시 기특했던 것이리라.

그 증거로 그가 진채원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 데이트 끝. 약속은 지킨 거다?"

그는 이걸 노린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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