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유물의 눈물 (4)
그리고 주헌의 말에 단원들은 기절할 뻔했다.
아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권혁수와 손을 잡겠다는 거야?!'
기절하다 못해 멘붕 수준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권혁수는 TKBM을 지탱하고 보조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자 권 회장의 완벽한 아군.
즉, 지금의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적.
특히 권혁수를 배신하고 나왔던 일리야는 이미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지금 자신더러 죽으라는 건가.
그런 것인가.
"아니,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요. 단장!"
실제로 권혁수는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지금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알고말고. 형제애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허, 자네 지금 미쳤나? 날 속여서 아끼는 제자까지 빼앗아간 주제에."
주헌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랑 손잡으면 그 아끼는 제자놈,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지도?"
그 말에 일리야는 싹싹 빌었다.
"다, 단장! 제,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뭘 할까요! 청소? 빨래? 아니 신급 유물이라도 구해올까요?!"
건방지고 싹수없는 일리야가 드물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이야기를 진행했다.
"나쁜 이야기는 아닐 텐데? 댁도 그 미래의 정보라는 게 궁금할 거고."
주헌이 까마귀의 눈물을 흔들자 단원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주헌은 지금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까마귀의 눈물이라니.
"단장, 설마 정말로 권혁수의 기억을...?!"
권혁수는 과거 사황 중 하나.
만약 기억을 되찾게 되면 막강한 적이 탄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기를 치려는 건가?
하지만 권혁수가 그런 사기에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인물도 아닌데.
"단장, 무슨 생각이에요!"
그러나 그들 중 유일하게 율리안만큼은 주헌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좋은 선택일 수도 있어."
"네?!"
단원들이 까무러쳤지만, 율리안은 진심이었다.
왜?
'권혁수는 분명 적이었지만 주헌에겐 호의적이었다.'
그렇다.
권혁수는 정말 강했다.
동시에 그는 과거, 주헌을 굉장히 좋게 생각했었다.
권혁수는 주헌을 수제자로 삼고 싶어 했으니까.
가르친 기간은 짧지만 남다른 재능을 가진 주헌을 굉장히 탐내고 아꼈다.
심지어 수제자로 삼으려는 걸 권 회장이 빼앗아가서 앙심을 품었었지.
그렇다고 좋은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최소한 주헌을 죽일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꼬시면 도와줄 수도 있는 인물.
'뭐, 전생에서나 그랬다는 게 문제지만.'
현생에 와서는 일리야를 빼앗아가, 지옥으로 쳐 박아, 온갖 패륜 짓을 저지르지 않았나.
그러니 까마귀의 눈물은 도박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주헌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인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그리고.
'저 노친네의 기억이 필요하다.'
누구보다도 권혁수의 기억을 원하고 있는 게 주헌이었다.
왜?
'너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침에 걸려왔던 조지의 전화 때문이었다.
조지는 하염없이 울고 있다는 아이린의 소식을 전해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족을 붙잡고 울었고, 그리고 주헌이 울었다며 울었다고.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짜맞춰 봤을 때 주헌은 깨달은 것이다.
'전생의 기억을 약간 되찾았구나.'
뭐, 제 호텔에서 진채원과 부딪친 사건은 오승우를 통해서 전달받긴 했었으니까.
방에 놓고 왔던 복제품이 효력을 발휘했던 것이겠지.
그래서 복제품의 효력 범위도 어느정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식자들 모두가 주헌 씨를 죽였어요.'
'주헌 씨가 마제스티가 되는 걸 막으려고.'
그렇게 아이린은 주헌을 볼 낯이 없다며 안쓰럽게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헌은 추측할 수 있었다.
'뭔가가 있다.'
자신들이 죽어야 했던 내막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성은 적지만 어쩌면 그녀 역시도...
아무튼 그것에 대해서 권혁수가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놈은 비유하자면 룩이나 나이트 정도는 된다고 해야 할까.
아주 유능한 패가 될 것이었다.
'그러니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여라.'
"미래 정보를 준다니까. 싫어?"
그 모습에 권혁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싫기는 무슨.
고작 양 쳰이 가져온 유물로 탐욕의 유물에 대해 좔좔 꿰기 시작한 권 회장이 아니었나!
하지만 권 회장은 무덤 발굴에 실패했다.
적어도 자신이 그걸 알았으면 그런 바보 같은 실수는 안했을 텐데!
'차라리 내가 그 정보를 얻었더라면!'
권 회장보다 자신이 더 적임자인데!
그런데 그 정보를 형님이 혼자서 독식하려고 하다니!
그러나 권혁수는 곧 한 올 같은 인내심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형님이라고 정한 이상, 내가 먼저 배신할 순 없지.'
하지만 주헌은 쐐기를 박아버렸다.
"당신 딸. 권 회장하고 몹시 친한 것 같아서."
"뭐?"
"아무리 치팅이라도 아킬레스건을 아무한테나 옮길 수 있었을까?"
그러자 권혁수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 잠..."
이에 유재하가 슬쩍 끼어들었다.
"나 봤는데. 권 회장하고 권세연하고 모텔에서 나오는 거."
"?!"
***
권혁수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리고 놀란 건 그만이 아니었다.
율리안도 기겁을 했다!
"야! 무슨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 딸이 돈이 없어서 접근한 건 아닐 테고, 유물 같은 걸로 권 회장이 꼬신 게 아닐까?"
"?!"
설아도 끼어들었다.
"권 회장 내연녀 설이 하루 이틀 돌았어야죠. 소문도 떡밥 없이 괜히 나나."
아주 죽이 척척 맞았다.
율리안은 무슨 아침드라마냐며, 그딴 걸 믿겠느냐며 화를 냈지만 효과는 아주 훌륭했다.
권혁수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세연이, 우리 세연이가 형님이랑..."
동시에 권혁수의 눈빛에 살의가 돌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주헌이 내미는 유물을 잡았다.
'!'
그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까마귀의 눈물은 단숨에 박살 나며 효력을 발휘했다.
권 회장에게 가져갔어야 할 정보를 자신이 먹어치운 것이다!
[까마귀 눈물 복제품(S급)이 발동합니다.]
[상대에게 얕은 기억이 덧씌워지기 시작합니다.]
주헌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럴 때였다.
"회장님의 몸을 되찾아라!"
호텔을 부수고 적들이 나타났다.
권 회장의 몸을 되찾기 위해 TKBM과 판도라가 보낸 탈환부대였다.
"회장님의 몸은 어디에 있냐!"
곧 그들이 주헌 일행에게 총을 겨누었다.
절대 명중,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전장의 무기들이 총의 형태로 변한 것이었다.
"쏴라!"
일격들이 주헌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직!
"!"
그들이 들고 있던 총이 박살 났다.
"!!"
아주 깔끔하게 사선이 그어지며 바닥에 툭툭 떨어진 것이다.
상당한 강도를 자랑하는 무기들이었지만, 플라스틱처럼 떨어졌다.
무기를 자른 건 권혁수였다.
"저놈들을 건들면 너희부터 작살날 줄 알아라."
"회, 회장님?!"
그들은 권혁수의 행동에 기겁하고 말았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하물며 탈환부대는 권회장의 부하뿐만 아니라 권혁수의 부하들도 많았다.
저희들의 상관이 자신들에게 칼을 휘두르니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권혁수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됐으니까 집에나 가자."
"네?! 하지만 권태준 회장님의 몸이 아직..."
"아 그거 됐어. 우리가 왔을 땐 이미 서주헌 일행은 없었던 거야."
그러자 탈환부대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서주헌 일행은 저기에 있지 않습니까!"
"아니, 우리는 아무것도 못 본거다. 알겠지?"
그리고 낄낄낄 웃던 권혁수는 돌연 웃음을 지웠다.
"알았으면 처리해."
"!"
냉소와 함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탈환대에 섞여 있던 권혁수의 부하들이 탈환대를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푹! 푸우욱!
"컥, 커헉!"
죽은 것은 전부 권 회장의 부하들.
주헌 일행을 죽이고, 권 회장을 찾으러 왔던 탈환대는 도리어 몰살당하고 말았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죽어가던 탈환대 대장이 권혁수를 쏘아보았다.
'도, 도대체 왜...!'
하지만 권혁수는 뻔뻔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헌을 보았다.
"형님의 육신엔 이걸 쓰게."
"!"
그가 던진 건 텔레포트 유물이었다.
"내가 가봐서 아는데, 지옥은 찾아갈 길이 있어서 위험해. 보내려거든 확 우주에라도 던져버려야지."
"?!"
탈환대의 대장은 기절할 뻔했다.
그는 그제야 권혁수의 생각을 깨달은 듯했다.
'젠장, 배신이다!'
알려야만 했다.
'어서 회장님에게...!'
하지만.
푸욱!
바닥에서 솟아오른 기둥이 탈환대의 몸통을 찔렀다.
권혁수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
그리고 그럴 때였다.
"회장님! 권혁수 회장님의 탈환대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 그래! 돌아왔다고?"
권 혁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 몸, 내 몸은 가져왔겠지!"
그런데 전화를 받고 있는 윤시우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어... 그런데 회장님의 육신은 가져오지 못했다고... 그리고 생존자도 거의 없다고..."
"뭐?!"
그는 바꿔보라는 듯 언성을 질렀다.
그리고 부하들을 경질해 그는 권혁수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권혁수와 연결이 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 몸은!"
[아, 형님 미안해요.]
"뭐야! 네가 갔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내 몸은!"
[아니 그게 형님 몸이 우주로 날아가버렸대! 어쩌지? 하하.]
"뭐?!"
[아무리 나라도 우주까진 가지러 갈 수 없잖아. 이해해줘요.]
그 말에 권 회장은 이를 갈았다.
우주는 무슨.
"너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아킬레스건은..."
[아이고, 형님.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써요. 동생을 그렇게 못 믿으오? 내가 얼마나 형님을 위하는지 알면서. 고작 그런 걸로 의가 상하겠어.]
"..."
[뭐 걱정 마시오, 우리 형님. 돌아가시지 않도록 내 힘써 보낼 테니.]
그리고 전화를 끊은 권혁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빌어먹을 노친네.'
뭐 권혁수도 이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권혁수의 기억에서는 결정적인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암살시도.
'내 딸을 이용하다니.'
권혁수의 딸이 내연녀 관계인 건 맞았다.
물론 권혁수의 유물을 빼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접근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감히 내 딸을 건드려?'
동시에 배신감이 치밀어올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생에서의 권혁수는 사황.
그 자리를 형제의 우애로 조건 없이 그냥 넘겨줬었다.
차라리 형님을 배신했으면 모를까, 그런 내역이 전혀 없음에도 현재의 권 회장은 아우를 경계했다.
행여나 사황의 자리에 오를까, 지금도 미래 정보도 혼자 독식하려고 했다.
먼저 배신한 건 그쪽이었다.
열 받지 않을 리가 있나.
"오늘부터 TKBM의 총수는 나다."
안 그래도 주헌에게는 권 회장을 아직 죽이지 말라고 해놓았다.
왜?
"지금 죽으면 곤란하지. 유서는 고쳐줘야 하니까. 아 이왕 이리 된 거 주헌의 이름이라도 넣어줄까."
그는 즐거운 듯이 어디론가 연락을 보냈다.
한편 LA의 공항.
뉴욕행 비행기에 향하던 단원들은 아직도 얼떨떨한 듯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났긴.
"배신자의 탄생이지."
"?!"
율리안, 그리고 일리야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뭐, 서로 충격을 받는 부분이 좀 다른 것 같았지만.
"저 노친네가 진짜로 배신했다고?!"
"설마 내연녀 이야기를 진짜 믿은 거야?"
그 말에 주헌은 하하 웃었다.
권혁수라면 이런 선택을 하게 될 줄 알았던 것이다.
주헌이 아는 권혁수라면 그런 의리를 짓밟는 것에 몹시 분노할 테니까.
실제로 권 회장보다 권혁수 쪽이 좀 더 그런 의리를 생각하는 타입이고.
뭐, 딱 좋은 기억만 얻게 한 것 같으니 이득이긴 하지만...
띠링.
[주헌아. 내 수제자 해. 수제자 해. 수제자 하라고!]
[내 수제자 하면 TKBM의 재산 상속권은 네게도 넘겨줄게!]
[내 제자하라고오오오오!]
'칫. 쓸모없는 기억도 되살아난 것 같군.'
주헌은 수신차단을 하면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아무튼 아킬레우스의 갑옷도 얻었겠다, 물건은 죄다 공학팀에 보내. 그거 방어복으로 개량하라고 하고."
그 말에 유재하가 탄식했다.
'팬클럽에 알려줄 내용이 늘었군.'
보나마나 디자인은 자신들이 맡겠다며 아주 난리가 날 것 같지만.
곧 비행기가 뉴욕으로 향했다.
탐식의 무덤도 그렇지만, 아이린에게 확인해 볼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