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혼수는 준비했겠지? (2)
"오? 오랜만에 네 진짜 모습을 보는 구나. 새대가리."
마몬의 앞에는 검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있었다.
색이 밝은 마몬하고는 아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마몬이야 하얀색 계열의 모습.
그에 비해 까마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맸다.
고요하게 번득이는 눈만 붉은 색이라고 해야 할까.
새하얀 얼굴에 웃음기 없는 얼굴은 마치 저승사자 같기도 했다.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얼굴은 갸름했고, 전체적으로 뼈가 가늘다는 인상이었다.
복장만 봐도 마몬과 차이가 있었다.
마몬의 복장은 채굴의 악마답게 활동성 있는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옷.
그에 반해 까마귀는 단정한 정장이었다.
좀 타이트한 핏이라 몸매의 곡선이 잘 드러나는.
마몬이 그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그래도 상당히 빡친 모양이군.'
지금 굳이 그 모습을 보이다니.
물론 평소엔 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저 모습일 때 풀파워를 낼 수 있다고 해도.
평소에 나타나는 모습은 전부 까마귀가 먹어치운 유물들.
왜?
본인이 굉장히 싫어하니까.
'기껏 최고신에게 받은 그 전령꾼 모습을 싫어하다니.'
마몬이 물었다.
[듣자하니 서주헌 앞에서는 웬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던데.]
아마도 유재하가 흥분했던 거유쭉빵 미녀를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 지금도 미녀가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쭉빵미녀 때보다 더 아름답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절세미녀.
다만 셔츠가 뜯어져 나갈 것 같은 위험천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몬이 비웃었다.
[지금의 그 모습으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으니까, 쭉쭉빵빵으로 서주헌을 꼬시려고 한 거야?]
아무래도 유물들은 인간들이 쭉쭉빵빵을 좋아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리라.
까마귀는 마몬을 슬쩍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몬은 푸른 눈을 부릅떴다.
[유배된 새대가리 주제에 누굴 꼬시려고! 너 때문에 프로메테우스가 내 인간한테 현상수배를 건 거잖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래?]
빡쳐하던 마몬이 외쳤다.
[아 됐으니까 너 비보 자격 반납하고 사라져! 나타날 거면 남자 모습으로 나타나라고! 그리고 서주헌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나야!]
그러자 까마귀 역시 눈을 번득였다.
[할 말은 그것뿐이야?]
까마귀가 흉흉한 포식의 오라를 뿜자 마몬은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고작 분신체 주제에 날 삼키려고 하다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유물의 오라가 충돌했다.
쿵!
"꺄아악! 뭐야!"
땅이 거세게 뒤흔들렸다.
마치 운석이 떨어지듯 폭음이 이어지고,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드드득, 드드득!
근처의 땅이 치솟고, 공원에 둥근 돌무덤이 나타났다.
덕분에 호텔에 있던 주헌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악마가 황금광산을 소환했습니다.]
[까마귀가 미남미녀를 소환했습니다.]
[악마가 이에 질세라 다이아몬드를 뿌립니다.]
[까마귀가 냠냠 포식합니다!]
아니 이것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뿐이 아니었다.
놈들 탓인지, 판도라 경보도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심각한 고분화 현상 감지.]
[인근 지역 긴급 대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그리고 멀리서 번개까지 쏟아지는 모습에 설아가 안절부절 못했다.
"단장님, 저, 저거 내버려 둬도 돼요?"
"냅둬."
"네? 지, 진짜로요?"
"그래. 저 일대는 판도라 놈들밖에 없잖아. 더 부수라 해."
"...!"
주헌은 악랄하게 웃고 있었다.
게다가.
'둘이 저래서 나쁠 건 없지.'
주헌은 제 침대에 놓인 유물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아무래도 마몬인지, 까마귀인지 둘 중 하나가 놓고 간 것이리라.
물론 신급 유물이라고 해봤자...
[아이돌 히나 카자리의 인생사진 (SS급-신급) (소모성유물)]
-횟수 : 10/10
-기능 : 굴지의 미모 천년돌 히나 카자리를 소환할 수 있다. 카자리가 소원 1개를 들어준다.
대충 이딴 거긴 하지만.
아무래도 유물이란 유명할수록 힘이 생기는 만큼, 이런 유물도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돌 역시 팬들에겐 신격화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얼마든지 신급 유물이 될 수 있는 법.
어쨌든 마몬과 까마귀가 경쟁하는 건 주헌에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고분화로 타격을 받고 있는 판도라 구역을 보며 설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저래서는 판도라가 더 이를 갈겠는데요."
"그래서."
"네?"
"새끼들이, 누구 맘대로 남의 초상권들을 도용하래?"
주헌은 으르렁거렸다.
"이것들 싹다 고소야. 장당 10억 달러씩."
어째 배보다 배꼽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됐고. 수배서는 놈들에게 보여줬냐?"
"아 네. 아마 지금 방에서 검색하고 있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에서 절규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어어! 이게 뭐야아아!]
가장 먼저 들려오는 건 한 유물이 처절하게 절규하는 소리.
그건 지렁이였다.
***
[지렁이 (100만 달러)] 불법대출
[동아줄 (1천만 달러)] 가학, 폭력
[아이고오오오 내가 현상수배가 되다니이이이!]
지렁이는 제 앞에 걸린 현상금에 절규했다.
뒤이어 단원들도 대 폭발했다.
"으아아아! 누가 이렇게 오징어 사진을 올리래에에! 내가 그래도 이거보단 잘생겼거드으은!"
"약탈, 약타아아알?! 내가?!"
"세상에, 살인광이라니 수아가 들으면 큰일날 소리를."
"불법시술...? 돌팔이 의사?"
그들은 아주 판도라를 때려죽일 기세였다.
"이런 사진으로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비웃을 거라고오오오!"
그중에서도 특히 분노하는 건...
"죄명이 이게 뭐야아아아!"
일리야였다.
그는 죄명을 보고도 뒷목을 잡았지만, 무엇보다.
[서주헌 현상금 10억 달러, 역대 현상금 최고가.]
[호구왕 8억 달러 현상금? 전 세계 현상금사냥꾼들의 먹잇감 1위]
[율리안 밀러 5억 달러 현상금, "약탈만으로 5억이라니."]
[임해진 (3억 달러) "3억으로도 모자라다. 더 올려야."]
[이설아, 아이린. 현상금사냥꾼이 아니라 구혼자가 더 늘어]
[중2병 일리야 볼코프. 고작 10만 달러 현상금 붙나.]
[지렁이에게 현상금 100만 달러? "때 아닌 지렁이 멸종위기"]
"왜 내 현상금이 제일 꼴찌인데!"
그는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벌레 새끼보다도 현상금이 낮다니 말이 돼?!"
[왜! 왜! 내가 어때서! 망할 인간 놈아!]
지렁이는 입에서 불꽃을 뿜어댔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리야의 현상금이 낮은 이유는 분명 있었다.
일리야의 능력만 놓고 보면 다른 단원들처럼 억 단위는 그냥 찍고도 남을 터.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를 조작한다는 점에선 유재하와 맞먹는 초고액 현상금이 걸릴지도 몰랐다.
다만...
'사후처리라는 건 흔적이 안 남아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다.
일리야가 뼈 빠지게 일하면 뭘 하나.
사후처리반의 능력은 죄다 숨기는 게 그들의 모토.
그의 능력은 기억 조작을 해 흔적도 안 남기는 것이다.
그랬기에 세상에 드러난 능력은 악마 능력정도였다.
하지만 그 악마 능력도 중요한 순간은 다 증거를 인멸하기에 사람들에게 남은 일리야의 모습은...
'하하하! 다 죽어라, 어리석은 인간들아! 전부 지옥의 불길에 휩싸여라!'
라는 사이비 교주 같은 모습뿐.
결국 분노한 단원들은 죄다 판도라에 튀어갔다.
이번엔 율리안도 분노하며 팔을 걸어붙였다.
"단장, 말리지마. 사람한테 이상한 누명이나 씌우고 말이야."
"응, 안 말려. 그리고 걱정 마. 이미 자진 희망한 선발대가 갔으니까."
"어? 누구?"
누구긴 누구야.
주헌은 대답 대신 웃었다.
***
"아아악!"
"사, 살려줘!"
푸욱! 푸욱!
판도라는 아주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특히 지금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는 곳은 판도라 본부.
주헌 일행의 현상수배를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그리고 주헌 일행을 잡으러 가려고 출동하려던 판도라 군인들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판도라를 갑자기 습격해온 정체불명의 선발대 때문이었다.
"제, 젠장, 적은 하나 입... 커헉!"
어둠을 틈타 움직이는 건 날렵한 암살자.
판도라의 훈련된 군인들마저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잭 더 리퍼였다.
물론 그 소식에 정작 호텔에 있던 율리안은 거품을 물었다.
"뭐라고?! 니나가 판도라에 갔다고?!"
그는 쓰러지다 못해 아주 기절 하려고 했다.
니나는 사실 그동안 주헌의 회사, 그레이브 컴퍼니의 공학팀에 가 있었다.
살인마로 인격을 개조하는 유물을 떼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걸 동생인 조이가 맡아주고 있었고.
"그리고 어제 돌아왔더라고."
"아니, 그래. 거기까진 좋아. 그런데 왜 판도라로 보내!"
"음? 내가 보낸 거 아닌데?"
주헌은 현상수배서를 보여주었다.
[니나 밀러 (2억 달러)] 불법이탈, 살인]
"...!"
아무래도 니나에게도 현상수배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잭 더 리퍼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리라.
하물며 지금 그녀의 소속은 유혹왕이 아니라 주헌의 소속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율리안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그럼 설마 니나가 자기한테 걸린 현상금을 보고?"
"아니, 다른 사람거 보고."
"다른 사람? 서, 설마 나?"
율리안은 그래도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주헌이 비웃었다.
"아니 너 말고, 재하 놈."
"?!"
뭐 누구?
"아니, 왜 어째서 도대체, 왜! 왜 하필 재하인데!"
그러자 주헌이 흥미로운 듯 답해주었다.
"재하 놈한테 그런 현상금이 걸리면 자기 말고도 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진다고. 그래서 콱 수배서 없애러 간다네?"
아이고, 니나야!
'오빠를 두고 뭐하는 거야!'
율리안은 그렇게 엉엉 울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니나는 아직 기억을 되찾은 게 아니었다.
유물로 개조된 인간병기로서의 본능을 억제하고, 천천히 감정을 찾게할 유물을 주입하고 있을 뿐.
"어쨌거나 잭 더 리퍼가 갔으니 판도라도 쑥대밭이 되어 있겠지."
***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지금 뭐라고?"
"판도라 본부에 적이 난입한 것 같습니다!"
한편 뉴욕 판도라 본부.
갑작스러운 적의 침입에 프로메테우스는 뒷목을 잡고 있었다.
이것들이 작정을 했나.
하지만 뭐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그런 현상수배를 내렸으니 꿈틀거릴 만도 했다.
하지만.
"적당히 처리해라. 그래봐야 쓸데 없는 발악이다."
어차피 놈들에게 수배를 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범죄자의 무덤에 가둬주마.'
세계적 범죄자들을 끌고 가는 일명 포돌이 유물들이 있었다.
그야말로 지옥 끝까지 따라가는.
그리고 그들은 과거 대죄인들을 잡아 감옥에 처넣을 때도 유용했던 유물들.
그들이 움직이는 조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질적 범죄자가 대상이 될 것.
그래서 이런 터무니없는 수배를 건 것이다.
최근에 그들을 다시 부르는데 성공한 그는 미소를 지었다.
'서주헌 놈이 탐식의 무덤을 찾기 전에, 모조리 처박아주지.'
그런데 그때였다.
"큰일 났습니다! 이사님, 이사님도 현상수배범이 되셨습니다!"
"뭐?"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직원은 다급하게 TV를 켰다.
거기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판도라 이사회와 그 부하들, 거액 소송.]
[홀튼가 거액 현상금까지 걸어.]
[판도라 양심 고발 "이사회의 실태"]
["서주헌 발굴단에게 뇌물을 요구, 거절하자 누명을 씌워."]
[FBI 조사 들어가나?]
"...!"
프로메테우스를 공격한 건 주헌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범죄자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분노한 일리야.
"하하하하 이 몸에게 감히 중2병과 고작 10만 달러를 건 벌이다!"
그는 기억조작으로 가짜 증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덕분에 양심고발이라는 이름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유명해지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같잖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내 계획을 눈치챈 윰물이 있군.'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을 이렇게 역으로 공격할 리가 없었다.
같잖다고 여긴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아무래도 그 유물과 주인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고작 인간 따위가.'
열 받은 그가 자신의 오라를 불러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독수리가 기겁했다.
[수장님! 설마...!]
곧 프로메테우스가 흉흉한 오라와 함께 꺼낸 건 유물.
쿵!
그 형태는 사람의 키보다 큰 창!
번개를 뿜는 강렬한 무기였다.
기어코 프로메테우스가 그걸 꺼내들자 독수리는 안절부절 못했다.
[수장님, 그 유물은 아직...!]
"아니. 실험 대상으로 딱 좋은 상대다."
만족스럽게 창을 만지던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쉬익!
무서운 속도로 창을 밖으로 내던졌다.
동시에 창은 마치 레이저처럼 창공을 꿰뚫고 날아갔다.
그는 살벌하게 웃었다.
'모두 죽어라.'
까마귀도 이건 절대 포식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 봐야 지금 까마귀는 분신체니까.
그리고 그 시간.
"!"
뭔가를 느낀 마몬이 화들짝 놀랐다.
'저건!'
하얗게 질린 그녀는 다급하게 주헌을 불렀다.
[인간! 위험하다!]
"음?"
주헌은 하늘을 보았다.
그건 상대가 어디에 있든, 상대가 누구이든, 반드시 상대의 목숨을 끊는다고 하는 번개의 창이었다.
[저건 피닉스조차도 죽일 수 있는 창이야!]
그것이 주헌과 동료, 그들의 유물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걸 본 주헌이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