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혼수는 준비했겠지? (1)
[신급 유물 1000개 줄게. 날 비보로 삼아.]
그 말에 주헌이 바로 답했다.
"꺼져."
[?!]
심지어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칼 같은 답에 마몬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건 당연했다.
비보가 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설마 날 비보로 삼기 싫다는 것이냐?]
마몬의 표정이 무너졌다.
주헌에게 거절당한 것도 거절당한 것이지만...
[너, 설마 날 싹 잊고 원수 까마귀한테 갈아탄...!]
그러자 주헌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니. 신급 유물 1,000개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지."
[?!]
"그건 내가 네 주인이 되는 1차 조건. 비보는 또 다른 문제 아냐?"
그러니까 비보가 되고 싶으면 보너스 알파로 더 유물을 바치란 의미다.
그쯤 되자 단원들은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와씨, 저 도둑놈 새끼!"
마몬의 말을 들을 수 없지만, 주헌의 말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추리가 가능했다.
그러니 황당할 수밖에.
"아니 신급 유물 1,000개만으로도 이미 미친 짓이거든요?"
"사황들도 150개 정도 계약한 게 최고기록이었거든?"
본래 왕급들이 계약할 수 있는 신급 유물은 10개미만. 신급 유물의 힘이 엄청나다보니 인간의 몸으로 버티기 힘든 탓이었다.
사용자의 용량이라고 해야 하나.
무게 제한이라고 해야 하나.
단순히 계약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할 테니까.
그런데 뭐?
1,000개?
"그거 감당할 수 있기는 해?!"
아니 뭐, 주헌이라면 굳이 계약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건물주 스킬을 발휘하면 되니까.'
자고로 건물주는 위대하다고, 특정 스킬을 쓰면 노예로 부릴 수는 있으니까.
실제로 지금도 오만의 탑에 처넣은 유물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지 않나.
어떻게?
'집세 올리기 전에 따라와!'
그렇게 오만의 탑에 있는 유물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종종 주헌을 무보수로 돕곤 했다.
볼일 끝나면 다시 짱박아 넣고.
아니면 경매에 내다 팔아버리든가.
말이 오만의 탑이지, 실제로는 노예 유물수용소.
근데 신급 유물한테도 그 짓을 하겠다고?
'오만의 탑에 신급 유물이 없다고 아쉬워하긴 했지.'
오만의 탑에는 A급(보물급)에서 S급(전설영웅)까지 있었다.
그래서 늘 신급 유물수용소를 만들 거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아니나 다를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주헌은 악마처럼 웃었다.
"그러니까 넌 내 유물이 된 시점에서 어차피 신급 유물 1,000개는 바쳤어야 했어. 그리고 비보가 되고 싶다면 당연히 추가로 더 바쳐야지. 그것도 모르다니. 바보냐?"
[...?!]
이, 이자식이?
마몬은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주헌은 유물을 얻어도 권 회장에게 바치기만 하던 멍텅구리.
본인의 욕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진 않지만, 어쨌든 호구 새끼였는데.
어느 사이에 탐욕의 악마를 등쳐먹을 마왕이 되어버렸담!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몬이 진지하게 물었다.
[좋아. 네 비보가 되려면 추가로 몇 개를 더 바쳐야 하지?]
"음, 추가 알파니까 100개만 더..."
[200!]
"!"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 들렸다.
그곳에는 흉흉한 오라를 뿜고 있는 까마귀가 있었다.
[200개 물어다주마 인간.]
"뭐?"
까마귀는 진지했다.
아니 뭐, 누구 마음대로 짝을 바꾸느니 마느니 따질 수도 있었지만 글쎄.
[나도 1,000개는 기본으로 주마. 그리고 추가분은 200개!]
졸지에 납치당하게 생긴 신급 유물들이었다.
하지만 까마귀는 정말 다급했다.
지금의 자신은 마몬에 비해서 불리한 점이 너무 많았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은 지금 분신체.
주헌에게 비보로서 기본적으로 서포트해줄 수 있는 것이 적었다.
그에 비하면 마몬은 옛 파트너 유물.
주헌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 1,200개! 날 택해라, 인간.]
마몬은 분노했다.
[야! 니가 뭔데 갑자기 끼어들...!]
"그래. 1,200개 콜."
[?!]
주헌은 방긋 웃었다.
아니, 더 준다는데 그걸 왜 사양해?
곧 주헌의 환한 미소를 본 마몬은 파르르 떨었다.
이 배은망덕한 것.
전생의 은혜도 모르고!
분노한 그녀는 주헌을 잡아먹을 듯이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주헌의 멱살을 잡고 빼액 분노를 터트렸다.
[300개 추가아아! 300개 더 준다 이놈아!]
"그래? 그럼 마몬을 비보로."
[350개!]
"까마귀..."
[400개!]
[500개!]
[600개!]
졸지에 그들은 주헌을 두고 경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합세하는 녀석이 있었으니.
1,000개! 1,000개!
동아줄이었다.
동아줄은 신이 나서 몸을 씰룩이며 종이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아무래도 동아줄도 비보가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심지어 경매가격까지 훅 올려버렸다.
유물들에게 있어 비보란 반려의 자리 같은 것일까.
그리고 그 난장판에 설아가 파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다, 단장님! 저도! 1,1100개!"
이를 갈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유재하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야야, 정신 차려. 인간은 비보가 못 돼!"
"시끄러워! 신급 유물만 있으면 단장님이랑 결혼할 수 있는 거잖아!"
"..."
아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설아는 눈에서 불꽃을 튀겼다.
졸지에 전 세계의 신급 유물들이 혼수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작 남자단원들은 주헌을 보며 질색했다.
그건 당연했다.
"하하, 좋아. 이걸로 신급 유물을 다 합치면 3,000개."
계획대로라는 듯 주헌은 몹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노예수용소를 그렇게나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럴 때였다.
[쿵쿵쿵!]
유재하는 클로에의 방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에 몸을 떨었다.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더니.'
클로에 녀석, 권 회장의 육신을 들고 들어가더니 도대체 무슨 개조를 하고 있는 거야.
위이이잉!
기이이이이이잉!
심지어 드릴 소리까지 났다.
그리고 호기심에 문짝을 여는 순간!
"아아악!"
문짝을 열었던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
한편 세상이 시끄러워져 있었다.
"저, 이사님. 진심이십니까?"
"그래, 진심이다."
"하, 하지만..."
그들은 눈앞의 서류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서주헌 일당의 수배서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손수 현상 수배서를 만들어 판도라 직원들에게 내민 것이다.
"이미 인터폴에도 연락을 넣어놨다. 전원에게 현상금을 걸었고, 슬슬 언론에 떠돌고 있겠지."
"네? 전원이요?"
"지금까지는 서주헌과 유재하한테만 걸려 있었는데...!"
"게다가 이 엄청난 금액... 이런 현상금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시끄럽고 전원 걸어. 아주 흉악한 놈들이다. 놈들은 열어서는 안 되는 재앙의 무덤을 열 악당들이다. 이제부터 전 세계의 적으로 지정하겠다."
심지어 생사무관.
연관된 자라면 그 누구라도 잡아 들이겠다고 했다.
여태까지 없던 무시무시한 처사였다.
하물며.
"홀튼가까지 건드시려고 하다니요!"
프로메테우스는 주헌을 돕는 사람들에게도 수배서를 내렸다.
"이러면 난리가 날... 꺄악!"
프로메테우스는 닥치라는 듯 테이블을 내리쳤다.
"홀튼가는 서주헌이 그 난리를 치게끔 후원해준 장본인이야. 당연히 제거대상이지. 그들만 아니었어도 진작 서주헌은 처리할 수 있었어."
"하지만...!"
"시급한 사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똥줄이 타들어갔다.
'7대 무덤은 이제 하나.'
그것까지 서주헌이 얻으면 그 감옥이 나타났다.
까마귀의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 자신들이 가둔 대죄인들의 감옥들이 모조리 나타날 것이었다.
그럼 끝장이었다.
그래서 좀 과격한 수를 쓴 것이다.
[서주헌 도굴단 전원 위험인물 지정.]
[연관되는 기업, 나라, 단체는 그 누구라도 전원 공범으로 처리.]
[열어서는 안 되는 무덤을 열려고 해.]
[세상에 재앙을 불러올 것.]
[서주헌 인류 멸망을 꾀하고 있어.]
"이쯤은 해야 놈들이 설치지 못하지."
"하긴, 이걸 보면 심각성을 깨닫겠죠. 전 세계가 자신을 노릴 테니까."
"인터폴에도 수배서를 배포했겠다, 지금쯤 낙담해하고 있겠네요."
하지만 낙담은 개뿔.
"이놈들 인터폴에 넘기면 진짜 현상금 받을 수 있는 거냐?"
정작 수배서를 본 주헌은 아주 즐거워했다.
왜?
현상금의 금액이 금액인 만큼, 주헌은 사기부터 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단장 서주헌 (10억 달러)] 불법 가택(무덤) 침입]
[아이린 홀튼 (9억 달러)] 유물 손괴
[유재하 (8억 달러)] 위조, 사기
[율리안 밀러 (5억 달러)] 약탈
[임해진 (3억 달러)] 살인
[이설아 (1억 달러)] 귀신들림
[클로에 로랑(4천만 달러)] 불법시술
[에드워드 (5천만 달러)] 불법노상
[일리야 볼코프 (10만 달러)] 중2병
특히 설아는 분노했다.
"단장님 사진, 너무 잘 나왔잖아! 이러면 팬만 늘어날 거 아니야아! 이거 사진 고른 놈, 분명 여자일 거야. 여자일 거라고!"
사진을 고른 건 정작 프로메테우스였지만 말이다.
그녀는 판도라 본부에 항의전화를 하고 있었다.
당장 사진을 갈아치우라는.
그리고 정작 수배서를 본 주헌은 아주 즐거워했다.
"어쨌든 이거 모두한테도 알려줘라. 아주 좋아할 거다. 특히 재하 놈은 사진이 잘 나왔네."
"그, 그게요?"
울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어쨌거나 홀튼가까지 건드린 건 의외였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위험인물 발표에도 그레이브 컴퍼니, 타격 없나?]
[홀튼가 현상수배 지정에 관련 업계 분노.]
[홀튼가와 연관된 모든 업계, 분노하며 모든 일 중단. 생산라인 마비.]
[홀튼가 출신 장관들 줄줄이 사퇴 표명. 때 아닌 국정위기.]
[조지 홀튼 판도라 의원 사퇴. 관련 유물사용자들 줄도산. 공포에 질려.]
졸지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느낌이었다.
빡친 아이린의 아버지가 대은인에게 무슨 짓이냐며 대노한 것이다.
그래서 의아했다.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그리고 그 생각을 읽은 듯, 마몬이 씩씩거렸다.
[7대 무덤의 유물을 모두 모으면 대감옥이 열려.]
"오, 대감옥?"
[그 안에 있는 죄인들을 네가 가져갈까 봐 싫어하는 거겠지.]
"거기에 까마귀도 있는 거야?"
[씨이, 없어! 없다고!]
있구나.
주헌은 음흉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남은 무덤은 하나뿐.
'탐식.'
탐식의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왜?
'아마도 진채원 그 여자가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뜻밖에도 에드워드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정보에 의하면 그 여자가 탐식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랬기에 주헌은 진채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3일 뒤, XXX 공동묘지 앞.]
파란이 예상되는 데이트(?)였다.
***
그리고 그 무렵.
"야! 너 때문에 내 인간이 현상수배에 걸려버렸잖아!"
한밤중의 공원.
밖으로 나온 마몬은 누군가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아무래도 진짜로 신급 유물 사냥에 나선 건지도 몰랐다.
그 증거로 까마귀는 나무에 붙은 벌레를 물어가려고 했지만...
"당장 내 인간한테서 떨어져."
쓸데없이 마몬이 나타나서는.
신급 벌레는 옳지, 기회다 싶었는지 슝 도망가고 말았다.
결국 좀 빡친 건지 까마귀가 나무에서 푸드득 내려왔다.
그런데 모습이 좀 달랐다.
흉흉하게 일렁이는 검은 오라.
그 오라 안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모습에 마몬이 같잖다는 듯 비웃었다.
"오? 오랜만에 네 진짜 모습을 보는 구나. 새대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