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살아있었구나! (1)
날아가버렸다.
권 회장의 목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다들 깜짝 놀랐다.
"어, 어?"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날아간 건 권 회장의 목이었다.
그 증거로 마몬에게 향하려던 권 회장의 몸에서 목이 사라져 있었다.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아올랐고, 그 안으로 목뼈와 잘린 혈관, 얇은 근육덩어리들이 보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해부학의 한 장면.
동시에 권 회장의 몸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쿵!
단원들은 모두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
단순히 원수의 목이 날아갔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저 녀석이... 왜!"
"도대체 어째서!"
그랬다.
권 회장의 목을 날려버린 것은 다름 아닌 마몬이었다.
그 증거로 마몬은 살벌하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흉흉한 오라가 맴돌고 있었다.
그 오라로 권 회장의 목을 날려버린 것이리라.
유재하는 황당해했다.
"뭐야 저놈. 방금 전까지 노친네랑 계약하려고 했잖아!"
아주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 것 마냥 좋아했으면서!
그러나 정작 마몬은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개 같은 늙은이가...!]
분노에 찬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고, 파란 눈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울분을 삼키는 듯 했다.
[이 개새끼. 어디서 나와 계약하려고 하느냐. 네놈은 내 노예의 자격도 없다.]
마몬은 정말로 권 회장을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사실 주헌도 뜻밖이었다.
'저런 반응일 줄은 몰랐는걸.'
기억을 되찾자마자 권 회장의 목을 날려버릴 줄이야. 그래서 그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나 어리고 탱탱한 게 좋았던 건가?'
기억 속의 권 회장은 70대.
즉 지금보다 훨씬 늙었을 테니까.
마몬이 소름끼쳐 할 수도 있으리라.
주헌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왜?
저놈은 유물이니까.
유물은 인간의 괴로움과 죽음을 즐기는 놈들.
새삼 권 회장이 자신을 죽였다고 화낼 리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자신이 죽고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 있게 되어서 해방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마몬은 좀 다른 듯 했다.
[이 개 같은 인간.]
그녀는 기억이 스며들어오면 올수록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감히 내가 아끼던 인간을 죽이다니.'
***
사실 마몬은 주헌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것도 상당히.
물론 주헌은 마몬에게 절대로 마음에 찰 리가 없는 계약자였다.
왜?
마몬은 탐욕의 악마.
부자와 손쓸 수 없는 탐욕쟁이한테 끌리는 게 당연한 법.
그에 반해 당시 주헌은 집도 돈도 없는 비렁뱅이.
게다가 기껏 힘들게 발굴한 유물은 죄다 노친네한테나 퍼다 바치고.
오죽하면 이런 소리를 했을까.
[아악! 결혼 전이랑 결혼 후가 다르다더니, 이건 명백한 사기야!]
첫 만남 때의 주헌은 몹시 멋졌다.
유물 하나 없이 자신을 얻겠다는 일념 하나로 제 앞까지 나타났으니까.
그 탐욕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하물며 어찌나 더럽고 치사한지, 유물 하나 얻자고 룰도 깨고 문지기들을 속여 제 앞까지 왔다.
그래서 오랜만에 보는 미친놈이구나 싶어 계약했는데 이게 웬걸.
[이딴 호구 놈인 줄 알았으면 계약하는 게 아니었어!]
재물은 맨날 빠져나가.
기껏 얻은 유물은 죄다 호구처럼 바쳐!
탐욕의 유물로서는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
[그러니까 그냥 빨리 죽어어! 새 하인 찾으러 갈 테야!]
하지만 그럼에도 마몬은 주헌을 지켜주었다.
무덤의 함정도 알려주었고, 무덤에서 쉽게 안 죽게 생존 기술도 알려줬다.
최강의 발굴꾼으로도 만들어주었다.
왜?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이 택한 계약자였으니까.
그래도 개미 같은 인간 놈이 치유유물 하나 얻자고 기를 쓰는 게 기특했다고 해야 하나.
특히 그가 한 말이 신경쓰였다.
'치유 유물로 가족이랑 단원들을 전부 치료해주고 나면, 반드시 하고 싶은 게 있어.'
주헌에게는 한 가지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탐욕의 유물.
주헌이 가진 그 욕심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하다못해 그때까지만이라도 지켜보자 싶었다.
유물의 수명은 기니까.
인간들의 구전이 계속 되는 한, 그 입담 속에서 자신들이 계속 거론되는 한, 자신들의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생명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젠장, 그 노친네는 처음부터 치유유물을 줄 생각이 없었던 거야.'
권 회장 새끼가 이 인간의 노력을 배신했다.
심지어 개새끼처럼 죽여버렸다!
그리고 차가워지는 주헌을 앞에 두고 마몬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저주스러웠던가.
유물주제에 이깟 하등한 인간 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다니.
그래서 분노하는 것이었다.
그 무력감과 수치심을 준 건 권 회장이었으니까.
자신이 아끼는 걸 죽여버렸으니까!
그리고 현재.
마몬은 주헌을 보며 말문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오, 아주 멋있게 날렸는데. 홈런이야 아주."
주헌의 박수에 마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아있다.'
저 인간이 분명 살아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 목소리로, 분명 살아서 말을 하고 있었다.
결국 마몬은 울먹이며 주헌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이 망할 인간놈아아아! 살아있었구나!]
하지만.
뻐억!
마몬은 주헌에게 걷어차였다.
[커, 커헉!]
작은 체구의 마몬은 축구공처럼 뻐엉 날아갔다.
뭐 유물이니 이깟 건 아픈 축에도 못 끼긴 하지만...
[인간! 이게 무슨 짓...!]
"꺼져. 꼬맹이한테는 관심 없어."
[?!]
"그리고 누가 멋대로 이 새끼 모가지 날리래. 죽을래?"
[...?!]
"아 됐고. 너 토낄 생각 말고 얌전히 있어."
동시에 동아줄에게 묶인 마몬은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
도망가긴 뭘 도망가!
'안 도망간다 이놈아! 내가 왜 널 두고 도망가냐!'
그리고 기껏 다시 만났는데, 인사는커녕 엉덩이나 까다니!
[이 천벌 받을 놈아! 으아앙!]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콱 권 회장의 몸을 짓밟았다.
"야. 죽었냐? 진짜 그런 거냐?"
머리가 잘려나간 권 회장은 미동도 없었다.
그러자 단원들도 궁금해서 슬쩍 다가왔다.
"이건 말도 안 돼. 권 회장의 목이 잘리다니?"
그도 그럴 법한 게, 아킬레우스는 절대방어의 유물.
급소를 1cm 이상 파고 드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쉽게 말해 목을 동강 잘라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아마 집중한다면 몸에 화살조차 박히지 않을 정도의 방어구 최강 라인 중 하나.
'뭐, 회귀 직후엔 놈도 미숙해서 경동맥까지 뚫었지만.'
그래봐야 불사 유물이 가진 괴물 같은 생명력에 막혔다.
하지만 그것도 마몬의 앞에서는 무너진 듯했다.
괜히 7대 무덤의 유물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때였다.
"아, 얘 벌써 죽으면 안되는데."
나뭇가지로 권 회장의 엉덩이를 콕콕 찌르던 유재하가 눈을 번득였다.
"자, 어디 이래도 안 일어나자 보자, 이 치질환자야!"
그리고 그가 취한 자세는 똥침자세! 그가 엉덩이에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는 때였다.
"으아아악!"
유재하는 거품을 물고 넘어졌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악, 뭐야, 뭐야 이거!"
권 회장의 손이 그의 발을 붙들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찌르면 죽는다는 듯 유재하의 발을 붙잡고 늘어졌다.
"야, 이거 안 놔? 놔!"
유재하는 거품을 물었지만, 뭔가 깨달은 주헌이 입꼬리를 올렸다.
"주변에서 머리부터 찾아봐라."
"머, 머리요?"
그럴 때였다.
"찾았어요, 머리."
"걔 살아있어?"
그러자 클로에가 뻐억 권 회장의 머리를 쳤다.
"커, 커헉!"
권 회장이 피를 뿜어대자 설아는 끔찍한 듯 새하얗게 질렸다.
말하는 목대가리라니, 실로 끔찍했다.
그러나 클로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태연하게 주헌에게 말했다.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아서 일단 조치는 취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뇌부터 뽑아낼까요?"
실로 끔찍한 소리를 태연하게 한다며 단원들이 기겁할 때였다.
"아니아니 말은 통해야지. 대충 혀만 잘라."
주헌은 아주 한술 더 떴다.
그리고 클로에한테 권 회장의 머리를 받은 주헌이 살벌하게 웃었다.
"아이고, 우리 회장님. 죽지 못해서 어째?"
"...!"
권 회장은 눈을 부라리며 주헌을 쏘아보았다.
그건 당연했다!
말은 그렇게 하는 주제에 히죽 히죽 즐거워 미치려는 게 눈에 선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거 일단 보관해놔라."
동시에 율리안은 혐오스럽다는 듯 질책했다.
"그 쓸모없는 대가리로 뭘 하려고?"
쓸모없는 대가리라고?!
결국 권 회장이 거품을 물 때였다.
쿵!
[무덤이 무너집니다.]
무덤이 거칠게 뒤흔들렸다.
'날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해라!'
권 회장이 가진 악신 유물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서 마몬의 무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였다.
쿠구구궁!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날아옵니다.]
[외부의 강렬한 힘이 무덤을 부수기 시작합니다.]
마몬의 무덤이 강제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마몬은 그 충격으로 커헉, 피를 토하고 말았다.
"커헉!"
그리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
무너져 내리는 벽 너머로 군대들이 보였다.
'판도라.'
그리고 권혁수였다.
그런데 판도라 군대 중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생긴 건 잘생긴 귀공자.
"저, 저 사람은!"
유재하는 입을 떡 벌렸다.
단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오래 살아남아 놈을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 인간, 분명 판도라 이사회의...!"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이사회의 인물.
그 말에 설아는 놀랐다.
"엥? 저 사람이? 저 사람 로스차일드가의 장남인데...?"
그러나 주헌은 하하 웃었다.
로스차일드가의 장남은 무슨.
'저거 유물새끼잖아.'
척하면 척이었다.
가증스럽게 인간인 척해도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흉흉한 오라를 띄고 있는 게 아마도 마몬의 무덤을 강제로 철거 시킨 건 저놈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마몬이 이를 갈면서 놈을 보았다.
[프로메테우스. 저 새끼가...!]
곧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안됐지만 이 무덤과 유물은 세상에 나오면 안 되는 위험한 무덤이다. 고로 처분한다."
위험한 무덤은 개뿔.
주헌은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역시. 내가 7대 무덤의 유물을 다 모으는 게 곤란한 거지?"
"!"
"그럼 남은 건 탐식 하나뿐이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의 까마귀 오라가 폭발했다.
쿵!
"으아아악!"
"저놈들을 붙잡아라!"
프로메테우스가 판도라 병사들을 내보냈지만.
"끄아아아악!"
"새끼들이 뭘 흥분하고 있어. 발정기냐?"
외려 주헌에게 얻어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 권혁수가 주헌의 앞에 떨어졌다.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형님 머리 가지고 장난 치는 건 그만하시지? 빨리 내놔!"
"아 이거?"
그러자 주헌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가져가봐."
동시에 따악, 소리와 함께 권 회장의 머리가 야구공처럼 멀리 날아갔다.
그랜드 캐니언 협곡 어디론가!
주헌이 항우의 검집으로 권 회장의 머리를 날려버린 것이다!
권 혁수는 입을 떡 벌렸다.
"형님! 저, 저놈이!"
주헌은 활짝 웃었다.
"대신 몸통은 우리 거."
"뭐?!"
이놈이 몸통으로 도대체 뭘 하려고!
"잡아, 형님의 몸통을 구해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쿨럭이는 마몬을 어깨에 쌀자루처럼 멨다.
그리고 그들은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아, 좀 꺼져라. 집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게. 응?"
그 백만 불짜리 미소와 함께 섬광이 터져 나왔다.
비보가 발동된 것이었다.
[물고기 비보가 발동됩니다.]
[보살이 강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