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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03화 (303/409)

303화. 잔말 말고 따라와 (3)

[넌 네 유물이 기억을 되찾아도 좋겠느냐?]

까마귀는 무슨 생각인지 그리 말했다.

그리고 까마귀의 말에 주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놈이 지금 뭐라고?

"유물의 기억을 되살린다고?"

주헌은 황당해서 되물었다.

"설마 저 악마 놈을 말하는 거냐."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까마귀가 답했다.

[그래.]

"!"

솔직히 뜻밖이었다.

인간의 기억까지는 그렇다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물의 기억도 되살린다?

그럴 수 있는 거였어?

그러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도대체 무슨 놈의 원리야?"

딱히 답을 기대하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놈이 말했다.

[뭐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도서관?

[유물 중엔 우주와 인류의 기록을 담는 유물도 있거든.]

"!"

동시에 주헌은 아차 싶었다.

왜냐하면 까마귀 놈이 말하는 유물이 뭔지 대충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런 거였나.'

까마귀 놈이 사용하는 도서관이란 아마도 '아카식 레코드'.

각종 이야기에서도 가끔 나타나는 녀석이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하는 일종의 정보 집합체.

우주와 모든 생물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어 그걸 읽으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고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 대도서관의 이름이었다.

뭐, 설마하니 그런 개념까지 유물로 존재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이상할 것은 없긴 하지.'

신화, 위인, 전설, 민담, 대중소설.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는 법.

사람들의 입을 탄 것은 무엇이든 힘을 얻어 유물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럼 새대가리, 네가 준 눈물은?"

[그건 그 도서관 유물과 접촉하게 하는 매개체.]

결국 까마귀는 그 정보도서관을 이용해 단원들의 기억을 되찾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사라진 미래의 기억까지 보관하고 있을 그 저장고에서.

눈물을 사용하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어 있던 단편적 정보가 뇌에 스며들어왔던 것이리라.

[물론 그 도서관을 이용할 자격을 가진 유물은 몇 안 되지만.]

그러자 주헌이 비웃었다.

"그런데 네가 그걸 이용할 자격이 있다는 거냐?"

[그래.]

"설마 거기 관리자라도 잡아먹은 거냐."

[어찌 알았지.]

진짜였냐.

뭐 아무래야 좋았다.

어쨌든 그걸 이용할 수 있다면 유물의 기억을 되돌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자식 마몬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싫어하다 못해 거꾸로 패대기를 칠 정도일 텐데.

아니, 아주 거꾸로 매달아놓고 고문을 안 하면 다행 아니었나.

뭐 아무래야 좋았다.

"뭘 굳이 물어보냐. 지금 당장 되살려라, 새대가리야."

[할 수 없지. 네가 원한다면...]

내심 안 살려도 된다고 말하길 기대한 모양이었다.

[5분만 끌어라.]

5분?

아무래도 인간에게 쓰는 게 아닌 만큼 뭔가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헌이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아까부터 혼자서 뭘 중얼거리는 거냐?"

TKBM 발굴단 부하들이 주헌에게 다가왔다.

***

주헌에게 몰려든 TKBM 부하들은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팔의 근육이 탄탄하게 부풀어 오르고, 그와 함께 피부색은 붉게 물들었다.

심지어 뿔까지 솟아오른 그야말로 악마 같은 모습.

힘에 취해 시답지 않은 쾌감이라도 느끼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우리가 무섭냐."

"우리가 무서워서 떨기라도 하는 거냐!"

부작용으로 바보가 된 것 같았다.

"허참, 이것들이 단체로 멍청이가 됐네."

TKBM의 발굴단 정도면 그렇게 보여도 지능을 겸비한 놈들인데.

동시에 땅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쿵!

마치 미친 황소처럼 거칠게 땅을 내리쳤다.

마몬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들이 노린 건 비전투원들.

놈들이 당연하게 다가오자 유재하는 코웃음을 쳤다.

"거참 툭하면 비전투원이라고 첫빠로 달려드는데. 우리도 그렇게 등신 아니거든?"

그 말에 설아는 정말 감동했다.

"세상에. 네가 자진해서 싸우려고 하다니...!"

하지만.

"가라! 단 쉴드!"

"..."

유재하는 단의 뒤로 쏙 숨었다.

"자 어서 가! 연약한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와 함께 유재하는 내던져졌다.

"끄아아악!"

심지어 적들 한복판에 떨어졌다.

주헌이 그의 멱살을 잡아 던져버린 것이었다.

"새끼가 꾀나 부리기는."

그리고 그럴 때였다.

"같이 죽자, 서주헌!"

"같이 저 세상에 가는 거야!"

놈들은 분신자살을 할 듯 주헌에게 달려들었다.

마몬의 짓이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작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그들을 조종했다.

[자, 다 같이 자폭해라 인간들아!]

마몬은 채광의 악마.

깊숙한 광산에 길을 뚫고 귀한 것을 캐내는 악마인 만큼, 폭탄을 다루는데 아주 일가견이 있었다.

즉 사물이든 악마든 뭐든 폭발물로 만들어 터트리는 건 그녀의 특기!

쾅! 쾅!

괜히 주헌의 특기가 유물 폭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같이 죽자! 서주헌!"

흥분한 인간 폭탄들이 주헌에게 안겨들려고 했다.

하지만.

"커허어억!"

미친 듯이 달려들던 적이 순식간에 저편으로 날아갔다.

심지어 뼈와 이빨이 부서지고, 피가 튀겨나갔다.

그리고.

"볼일이 있는 건 네놈들이 아니다. 새끼들아."

주헌이 향한 곳은 바로 마몬.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들어 놓고 유유자적 관람하고 있던 마몬은 움찔거렸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주헌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자, 잔말 말고 따라와야지?"

주헌의 미소가 무서웠다.

물론 평소라면 인간 놈이 뭔 패기냐며 비웃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끌고 나갈 방법은 없으니까.

설령 서주헌이 유물들을 무덤에서 강제로 끌어내는 답 없는 도둑놈일 지라도.

자신은 저 도둑놈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뭐지, 이 느낌은?'

마몬은 주헌이 부리는 까마귀 오라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그건 당연했다.

'내가 모르는 힘이다.'

까마귀가 지금 쓰려고 하는 것은 평소의 포식의 힘이 아니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아카식 레코드의 힘.

유물에게 다른 이질적인 유물과 접촉시킨다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없었다.

덕분에 불길함을 느낀 마몬이 뒷걸음질을 치자 권 회장이 소리쳤다.

"뭘 하려는 거냐! 이 유물 놈아!"

[!]

권 회장은 본능적으로 마몬이 이 무덤을 뜨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빡친 듯했다.

"나와의 계약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망쳐도 상관은 없지만, 적어도 나와 계약은 하고 가야지."

권 회장은 마몬에게 사납게 다가갔다.

그의 지배력이 흉흉했다.

안 그래도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데, 얼굴에 핏대까지 서자 말 그대로 악마가 현신한 표정이었다.

"날 선택해라. 그럼 저놈을 죽여주지."

그 말에 마몬이 흔들린 듯했다.

솔직히 자신을 다룰 조건만 보면 권 회장도 주헌에 비해 딸리는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아주 이상적인 주인!

'이놈이라면...!'

그래도 자신을 승격시켜줄 힘이 될 것이었다.

[좋다, 인간. 특별히 과제를 통과하지 않아도 노예로 삼아주지.]

마몬이 권 회장에게 손을 뻗으려고 할 때였다.

"커헉!"

권 회장의 몸에 칼이 박혔다.

찌른 것은 단이었다.

단은 칼로 권 회장의 몸을 난도질 했다.

그리고 지배력 자체를 떨어트리려는 듯 권 회장의 등에 3개의 검을 쑤셔 박아넣었다.

결국 권 회장은 피를 토하면서 뻘겋게 변한 눈으로 단을 쏘아보았다.

"더러운 백정 놈이! 감히 누구의 몸을 건드는 거냐! 빨리 이 칼 안 뽑아?!"

그러자 주헌이 단을 보며 하하 웃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어차피 이곳의 유물은 내 건데 말이야."

"뭐야?!"

권 회장은 눈을 부라리며 주헌을 보았다.

그러나 주헌은 권 회장의 머리를 콱 짓밟았다.

"이곳의 유물이 매우 탐났겠지만, 여기 유물은 원래부터 내 거였어."

뭐라고?

이번엔 마몬도 놀랐다.

주헌은 웃으면서 마몬을 쏘아보았다.

[기억 유물의 사용 준비가 끝났습니다.]

[유물이 발동됩니다.]

동시에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솔직히 확률은 반반이었다.

마몬의 기억을 되찾아봤자 놈이 자신을 다시 택하리란 법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기억을 찾게 되면 더 싫다고 할지도 몰랐다.

왜?

마몬은 동아줄 같은 타입도 아니었고, 툭하면 자신을 괴롭혔던(?) 녀석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아이고, 젠장. 왜 이딴 답답한 놈한테 걸려서!]

[인간, 넌 뭐가 이리 가난하냐?]

[그냥 콱 죽어버려라. 다른 주인 찾아버리게!]

툭하면 그딴 말을 지껄이던 게 녀석이었다.

다른 말은 다 웅얼거려서 못 알아들어도, 그 말은 항상 잘 들렸다.

툭하면 늘 죽어라, 무덤에서 죽어버려라, 그렇게 저주의 말을 퍼붓던 놈.

그러니 자신의 유물이라고 해도 기억을 찾으면 오히려 권 회장을 택할 수도 있는 법이었다.

기억 속 권 회장은 마몬이 원하는 걸 다 해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실제로 지금도 권 회장을 주인 후보에 넣어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다시 자신의 유물이 될 거란 확증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헌이 까마귀 유물을 쓴 이유.

그건 간단했다.

그래도 자신의 첫 유물이니까.

이 세상 모든 유물은 자신의 것이어야만 하니까.

그리고 하얀 섬광과 함께 마몬이 비명을 질렀다.

기억속으로 뭔가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낯선 유물과 접촉하게 되다니, 마몬은 대단히 끔찍한 감각에 본능적으로 까마귀의 힘을 몰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흘러들어오는 기억에 마몬은 멈칫 했다.

[발랑 까진 인간이로구나. 관문도 제대로 통과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다니.]

[좋다, 널 하인으로 삼아주지.]

잘은 모르겠지만 주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낯선 기억과 함께 주헌의 얼굴이 떠올랐다.

[넌 왜 맨날 그 노친네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냐?]

[아 답답해 미치겠네!]

[답답해서 안 되겠다, 너 말고 다른 주인 찾아보련다!]

[그냥 새로운 주인 찾을 거다! 등신아!]

[그러니까 빨리 죽어라 어서!]

그때의 주헌은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좀 더 안색이 나쁘고, 더 아파보이는 모습.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기억이 있었다.

[인간. 이 무덤은 느낌이 썩 안 좋다. 여긴 자연적으로 나올 리가 없는 감옥인데...!]

[이 등신아, 결국 권 회장한테 속았잖아!]

죽어가는 주헌의 동료들, 그리고 몸통이 잘려 죽어가던 주헌.

그 까마귀의 무덤 안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헉.]

괴로워하던 마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앞에는 주헌이 있었다.

처음 자신과 만났을 때와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그리고 이때였다.

권 회장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듯이 몸부림을 쳤다.

"놔라, 이 백정 놈아!"

권 회장의 지배력이 폭발했다.

동시에 권 회장의 몸을 찌르고 있던 검들이 파괴되면서 권 회장이 벌떡 일어섰다.

서주헌 저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 지는 몰라도...!

"저 유물은 내 것이다!"

이렇게 된 거, 정복 유물로 강제로 놈을 가져가는 수밖에.

권 회장이 마몬에게 가까워졌다.

"자 어서 계약을!"

그런데 이때였다.

"!"

날아가버렸다.

권 회장의 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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