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잔말 말고 따라와 (1)
"어? 이상하다. 주헌 씨, 무덤에 가신 거 아니었어요?"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친 건 한순간이었다.
아이린은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검은색셔츠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모습.
분명 그건 하우스키퍼였다.
그리고 그 하우스키퍼가 주헌의 방을 청소하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주헌의 침대를 정리하는 것도, 하물며 옷을 정리해주는 것도.
하지만 정작 그 하우스키퍼가 자신이 아는 얼굴이라면.
심지어 그 사람이 주헌의 물건에 손대는 것조차도 열 받을 상대라면.
아니나 다를까, 아이린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왜 당신이 여기에 있어요?"
옥구슬처럼 예쁘지만 날이 선 목소리.
그 사나운 영어 발음에 진채원은 당황했다.
아니 파산왕이 왜 여기에 있는데?!
여기 서주헌의 방 아니었어?
하지만 진채원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아이린이 고운 미간을 좁혔다.
"그 사이에 설마 직업을 바꾸셨을 리도 없고, 지금 남의 방에서 뭘 하는 거죠? 도둑질?"
"...!"
그러자 당황한 진채원이 까마귀 눈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동시에 아이린이 진채원에게 성큼 다가왔다.
"설마하니 아직까지 주헌 씨 스토킹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그녀는 내놓으라는 듯, 주헌의 베개를 도로 가져갔다.
그러자 진채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뭔가 오해를 하나 본데. 난 하우스키퍼로서 방을 청소하러 왔을 뿐..."
"어머 그래요?"
그러자 아이린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럼 제 방도 부탁드려요."
"?!"
다짜고짜 진채원을 끌고 옆방에 밀어 넣었다!
"팁은 안 드려도 되죠?"
그렇게 문이 닫히자 진채원은 황당해서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덜컥, 덜컥!
"?!"
아이린은 문 앞에 수십 킬로의 금덩어리 파라오 유물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문이 안 열릴 수밖에!
그러더니 아이린은 주헌의 방에서 로비에 연락을 했다.
"아, 여보세요? 여기 도둑이 들었는데요. 네, 네, 속옷을 훔치려는 변태고요. 유물사용자이니 판도라 특수부대를 불러서..."
그때였다.
"이씨!"
결국 빡친 진채원이 문을 박살 내며 밖으로 나왔다.
총수 유물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헌의 방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저 여자가.'
거미를 불러낸 진채원은 사납게 벽을 박살 냈다.
그리고.
"도둑 아니라고 했잖아!"
폭주한 진채원은 주헌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지배력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
진채원을 맞받아치는 아이린의 지배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남들은 그녀의 성품상 친화력이 더 높을 거라 생각했지만 글쎄.
"지금 해보자고요?"
'!'
드물게 빡친 아이린이 눈을 번득이자 비보가 발동했다.
'전호후랑!'
곧 호랑이와 이리가 나타나 진채원을 물어뜯었다.
콰직!
"크윽!"
짐승들은 진채원이 아닌, 총수의 오라를 물어뜯었다.
어찌나 그 힘이 강한지 총수의 다리가 뜯겨나갈 정도였다.
"윽!"
하물며 호조사의 능력 속성은 기본적으로 여우의 재앙.
경국지색, 천재지변, 복과화생.
대다수가 나라를 기울게 하거나, 재앙을 부르는 능력.
아파할 새도 없이 아이린의 재앙이 진채원에게 닥치기 시작했다!
쾅!
"꺄아악!"
진채원은 자꾸만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꺄악!"
그녀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걷는 족족 미끄러져 도저히 걸을 수도 없는 지경.
어디 그뿐인가.
부욱!
"내, 내 옷이!"
무슨 불운인지, 옷과 스타킹은 계속 뭔가에 걸려 북북 찢어졌다.
진채원의 평생치 행운이 마이너스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쯤 되자 빡친 진채원이 이를 갈았다.
"보자보자 하니까 감히 비보 주제에!"
진채원이 총수 유물을 불러냈다.
"잘 됐어. 네년을 죽이고 그 탈을 뒤집어써서 서주헌을 먹어치워주지!"
"뭐라고요?"
둘의 사나운 오라가 맞붙었다.
한편 그럴 때였다.
"으아아, 이게 무슨 상황이냐아아!"
정작 그 광경에 덜덜 떨고 있는 3인이 있었다.
"아이고, 형님. 자고 일어났더니 이게 뭔 상황입니까!"
"방이 무너져요, 무너진다고요! 아니다. 호텔이 다 박살 나요!"
그렇다.
아이린과 진채원은 모르고 있었지만, 주헌의 방. 그러니까 사실 욕실에 세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농부 오승우 일행.
"아이고,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람!"
그들은 수영장 크기의 스파에서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들은 스파에서 유물들의 목욕을 시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일을 끝낸 후, 놀아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은 상황이었건만!
"야씨 형수님이 저렇게 빡치신 거 처음 봐!"
덕분에 판도라에서는 긴급 피난 경보를 내릴 정도였다.
부르르. 부르르.
[고분화 현상으로 추측되는 위험성 오라 감지.]
[재난경보레벨 : 4단계 (최상급/재앙급)]
[XXX호텔 1km 반경 내 긴급 대피령 발동.]
[피난경보전파.]
어찌나 흉포했으면 판도라가 재앙급 고분화 현상이라고 착각할 지경일까.
결국 그들이 다급하게 유물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으아아아! 빨리 형님 유물들 데리고 나가자! 빨리!"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오예! 더 싸워라! 더 싸워!
콜라와 팝콘을 가져와라!
정작 철없는 유물들은 신이 나 있었다.
결국 오승우 일행들은 뒷목을 잡았다.
아이고, 이것들아.
그럴 때가 아니라고!
"아이고, 형니이임! 여기 큰일 났어요!"
그들은 울부짖었다.
***
하지만 비슷한 시각.
정작 주헌이 있는 곳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지금 뭐라고 했냐?"
[뭐라고 하긴. 너, 내 첩이 되라고.]
그 말에 까마귀와 동아줄이 폭주했다.
듣자듣자 하니까 지금 저 유물이 뭐라고 하는 건지.
주헌의 시선에 수그렸던 까마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튀어나왔고.
첩? 지금 첩이라고 했어?
동아줄도 역시 눈을 번득이며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몬은 의기양양했다.
[특별히 첩으로 삼아주마, 인간.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 말에 단원들은 제 귀를 의심했다.
"처, 첩이라니!"
평소라면 들리지 않을 유물의 말이었지만 이곳은 무덤.
특히 무덤의 주인인 마몬의 말이 안 들릴 리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 설아야!"
유재하는 기절하기 직전인 설아를 붙잡았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놈의 유물들이...!"
그러나 주헌은 하하 웃었다.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주헌의 시선에 눈을 동그랗게 뜬 마몬이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라. 네가 뭘 하든 전혀 네 사생활은 관여하지 않을 테니.]
아니 사생활뿐만인가.
[보아하니 널 좋아하는 유물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녀는 씰룩거리는 동아줄과 까마귀를 보았다.
[네가 누굴 만나든 전혀 상관하지 않으마. 열 명, 수백 명, 수천 명! 마음대로 만나서 놀... 커헉!]
신나게 나불거리던 마몬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둔탁한 것에 뺨을 맞은 마몬은 거품을 물며 날아가고 말았다.
"커, 커헉. 이게 무슨...!"
작은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가던 마몬이 눈을 부릅떴다.
마몬을 후려쳐 날린 것은 다름 아닌 동아줄이었다.
동아줄은 마치 권투를 하듯 쨉을 날리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어디 한 대 더 맞아볼래? 맞아볼래?
손이 없으니 몸을 비틀며 하는 행동이라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러자 마몬이 몸을 비틀며 하는 행동이라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러자 마몬이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눈을 부릅떴다.
[이게 한낱 천한 밧줄 놈이 감히 누구를... 꺄악!]
그러나 마몬은 또 얻어맞았다.
퍼억, 퍽, 퍽퍽!
동아줄은 사정없이 마몬을 후려쳤다.
평소처럼 찰싹 찰싹 몸통으로 후려치는 것도 아니었다.
퍽! 퍽!
마치 권투를 하듯, 끝부분을 돌돌 말아 날리는 응징의 스매쉬!
뻐억!
[꺄아아악!]
결국 동아줄에게 뺨과 엉덩이를 얻어맞은 마몬은 넝마가 되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저 무생몰 놈이!]
어찌나 아픈지 질끔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분노하는 것은 동아줄뿐만이 아니었다.
[천한 악마 놈. 비보가 되기 위해 그딴 수를 쓰려 하다니.]
모습을 드러낸 까마귀는 마몬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그러나 곧 까마귀는 됐다 싶었다.
왜?
주헌이 그딴 천박한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이때였다.
"좋아."
[?!]
주헌은 아주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다들 순간적으로 제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주헌은 확실하게 답했다.
"첩, 까짓것 못할 것도 없지."
그 말에 단원들까지도 기겁했다.
"미, 미쳤어요?!"
"단."
주헌이 악마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예물, 예단은 준비했겠지?"
[?!]
단원들은 입을 떡 벌렸다.
이 자식이 설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주헌이 활짝 웃었다.
"니들 유물들은 모르나본데, 자고로 인간들의 혼례에는 아주 비싼 선물이 오가는 법이다. 그게 인간의 전통이고 예의고말고."
[저, 전통?]
"하지만 자비로우니까. 예단은 검소하게 신급 유물 1,000개 정도로 해주지."
아이고 그럼 그렇지!
남자 단원들은 뒷목을 잡았다.
사황조차도 신급 유물은 두 자리 단위를 못 넘었던 법.
신급 유물 1,000개면 진작 세상을 지배하고도 남았다!
즉, 말도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설아의 동공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천, 천, 천개만 있으면 단장님이랑 결혼할 수 있는 거야?'
설아는 진지하게 무덤기행을 떠나 볼까 싶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조, 좋다.]
황당해하던 마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급 유물 1,000개쯤이야. 얻을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신급 유물 1,000개를 예단으로 챙겨주마.]
"오케이. 계약 성..."
그런데 그때였다.
쿠르르릉!
갑자기 무덤이 뒤흔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을 바로 그때.
[그까짓 신급 유물 1,000개, 충분히 구해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일단 이 무덤의 유물부터 싹쓸이합니다.]
폭주하는 흉흉한 오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몬이 거품을 물었다.
[야! 너 남의 무덤에서 무슨... 꺄아아악!]
마몬은 까마귀의 힘에 무덤의 최하층으로 던져지고 말았다.
마몬에게 방해하지 말라는 듯, 무덤의 제일 구석진 곳으로 처박아 넣은 것이다.
[탐욕 무덤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주인의 권한으로 이곳의 모든 유물을 포식합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
"주헌 씨에게 사사건건 이상한 문자나 보내고! 이 스토커야!"
"허, 넌 그 문자도 못 내고 있잖아!"
"?!"
부딪치는 아이린과 진채원의 호텔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듣자하니 넌 서주헌의 도굴단에서 겉돌기만 한다며?"
"!"
진채원은 작전을 바꾸었다.
'이런 도시 한복판에서 총수 유물을 개방할 수도 없고.'
바로 아이린의 약점을 건들자는 것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아이린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으니까.
"내 말이 틀려? 서주헌의 단원들은 뭔가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 같은데."
"..."
"그거에 비하면 서주헌을 서포트해 준 홀튼 씨는 주변만 맴돌고 불쌍하기도 하지."
그러나 그녀의 공격에도 아이린은 기죽지 않았다.
"...허, 그러는 너는 정작 그 주변에도 맴돌지 못하잖아!"
"뭐, 뭐?"
"주헌 씨가 널 상대는 할 것 같아?"
"...이!"
결국 그녀들의 힘에 반응한 탓일까.
책상 위에 있던 시약병, 까마귀의 눈물이 덜컥거리며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진짜 까마귀의 눈물은 아니었다.
그건 유재하가 만들어 놓은 눈물의 복제품.
주헌이 시험해보고 싶어 했지만, 정작 그 대상이 없어 묵혀놨던.
그리고.
쨍그랑!
싸우던 그녀들이 까마귀의 눈물을 밟는 그 순간.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