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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00화 (300/409)

300화. 이 녀석이 왜 이래? (3)

[오, 네가 서주헌이구나.]

파죽지세로 주헌이 관문을 뚫고 오는 게 신경이 쓰인 건지, 무덤의 주인이 나타났다.

"!"

주헌은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그 녀석이다.'

자신의 파트너 유물.

물론 그땐 이렇게 선명하게 들리진 않았다.

좀 더 쫑알거리고 웅얼거려서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래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헌이 놀란 건 목소리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단원들 역시 같은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네가 그 유물의 사신이라지? 듣자하니 내 동료들도 네 이름이라면 치를 떨던데.]

나타난 것은 어린 여자아이의 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새하얀 피부에 보랏빛이 섞인 옅은 머리카락. 오똑한 코에 귀여운 입술.

아이는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예쁘고 사랑스러워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뭐야, 이번 문지기는 저렇게 귀여운 아이였어?"

유재하는 땡잡았다는 듯 다가가려고 했다.

그래봐야 상대는 문지기.

자신의 친화력 정도면 쉽게 꼬셔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

유재하가 발을 내딛는 그 순간.

"끄아아악!"

살벌한 오라가 바로 앞을 스쳐지나갔다.

살을 잘라낼만큼 포악하고 흉흉한 오라.

그리고 그럴 때 율리안이 외쳤다.

"저래 보여도 위험한 녀석이야. 조심해!"

그러자 하마터면 코가 잘려나갈 뻔했던 유재하는 엉엉 울었다.

"그런 건 빨리 말해달라고오오."

실제로 그들 앞에 나타난 아이는 무척 위험했다.

보기엔느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어도 엄청나게 흉흉한 오라를 뿜어대고 있었다.

특히 눈에서 위험한 살의까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비보를 가진 자신들도 꽤나 경계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난데없이 보스라니.'

율리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지간히도 우리 단장은 인기가 많구나."

보스가 나타난 이유는 뻔했다.

아직 자신들은 일종의 보스룸에 도착하기도 전.

그런데 그 전에 보스가 스스로 나타난다는 건...

'무덤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몰살시키려는 거다.'

안 그래도 유물 세계에서 악명 높은 주헌이었다.

죽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여자 아이가 살의를 풍기며 주헌에게 다가갔다.

이에 다급해진 율리안이 외쳤다.

"빨리 유물을 써! 널 노리고 온 거야!"

그러나 주헌은 방어하기는커녕, 여자아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빤히.

덕분에 단원들은 제 눈을 의심해야 했다.

"단장님?"

왜 저러지?

그리고 그 모습에 의아해하던 유재하가 뭔가를 깨달은 듯 헉, 기겁을 했다.

아니 설마 저 인간이 보자보자 하니까!

"단장님, 유물성애자로도 모자라서 이제 로리... 커헉!"

유재하는 설아에게 두들겨 맞았다.

단장님한테 이상한 누명 씌우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설아 역시 안심할 수는 없는 기색이었다.

왜?

'단장님은 동아줄도 귀여워라 하잖아!'

동아줄이 인간으로 변했을 때도 그답지 않게 찾아 나섰고.

어쩌면 여성형 유물이라면 나이 상관없이 좋아하는 건지도 몰랐다.

결국 서러워진 설아가 울부짖었다.

"단장님! 아무리 유물이라도 애들은 안 돼요!"

그러자 주헌이 탄식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녀석은 내가 쓰던 그 고고학자 유물이야."

그 말에 단원들은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뭐라고? 저게?

그리고 일리야와 유재하는 분노하기에 이르렀다.

"와씨, 나 이쯤 되니까 좀 화나려고 하네. 사람으로도 모자라서 이젠 유물까지 하렘이야? 저런 귀여운 유물이 단장님 유물이었다고?"

"빌어먹을, 유물도 빈익빈 부익부지! 난 개똥같은 악마들만 달고 다니는데!"

"난 예나 지금이나 죄다 수컷이라고! 젠장, 왜 단장님한테만..."

"그래, 이건 아주 이상해."

단호박 율리안도 끼어들자 유재하가 음흉하게 웃었다.

"오, 공명이, 안 그런 척하더니 너도 샘나는 구나?"

"그, 그게 아니라! 저건 악마형 유물이라고!"

"!"

그렇다.

주헌의 앞에 나타난 유물은 악마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헌은 지금껏 제 유물이 수많은 고고학자들의 현신한 유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악마라고?

'다른 유물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분명 내가 사용하던 그 유물이다.'

꽤나 낯익고 그리운 기운이었다.

뭐 거사를 치르려던 순간에 모나리자를 보러 가게 했던 망할 유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최고의 발굴꾼이 될 수 있게 해줬던 일등공신.

무덤에서 몇 번이고 자신을 살려주었던 생존 도우미였다.

덕분에 만나면 다시 계약이라도 할까 싶었던 참이었고.

그런데 악마라고?

물론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왜?

[시스템이 정지했습니다.]

[상대정보를 알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목 닦고 잠이나 자는 게 현명합니다.]

거참 그만 좀 재워라.

그러나 까마귀 유물은 아예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시스템 정보를 띄울 수 없습니다.]

[시스템 정보를 띄울 수 없습니다.]

[시스템 정보를 띄울 수 없습니다.]

[시스템 정보를 띄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공명아, 저거 정체가 뭐냐."

"마몬."

[...!]

까마귀의 필사적인 방해공작은 순식간에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율리안의 대답에 주헌은 웃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다루던 게 마몬이었다고?'

***

한편 그 무렵.

'도대체 형님은 어떻게 탐욕 무덤의 공략법을 안 거지.'

권혁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양 쳰의 유물로 다가왔어야 할 미래를 봤다더니, 정말인가.'

그래서 권혁수는 권 회장에게 무슨 미래를 봤느냐고 물었었다.

하지만 권 회장은 권혁수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었다.

'넌 몰라도 된다.'

그럼 하다못해 자신도 그 기억 유물을 써보자고 했더니, 뭐라더라.

'이건 네가 쓸 유물이 아니다.'

거절당했다.

그래서 솔직히 권혁수는 기분이 나빴다.

물론 권 회장이 그리 말한 이유는 있었다.

지금의 권혁수는 모르겠지만, 권혁수는 원래 사황이었을 정도로 강했던 최강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권 회장에게 양보해줬을 뿐.

그래서 그 미래를 말해주면, 권혁수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경계했던 것이리라.

혹시 배신할지도 몰라서.

사황의 자리를 탐낼지 몰라서.

하지만 권 회장은 제 동생에겐 사실대로 말해주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형님, 왜 내게 숨기는 거지.'

권혁수에게 의심과 불만의 씨앗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만큼.

그리고 같은 시각.

'내가 다루던 게 마몬이었다고?'

아니, 물론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다.

마몬은 성경 속 탐욕의 악마로 숨겨진 황금이나 보물을 찾아내는 채굴형 발굴꾼 악마.

인간이 광석이나 보물을 파내게 된 것도 마몬의 근성이 옮겨진 탓이라고 전해질 정도였다.

그러니 능력적으로 발굴 유물과 어울리기는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걸 좋아하는 주헌이 물었다.

"너 혹시 고고학자하고는 연관이 없냐?"

그 말에 악마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네 까마귀한테 말해줄래?]

"?"

마몬은 살짝 못마땅한 듯 툴툴거렸다.

[남의 무덤에서 그렇게 기분 나쁜 오라 풍기지 말라고.]

"!"

[너 때문에 권태준 그 인간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잖아. 다들 소중한 후보자들인데.]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점수를 따려고 먼 곳의 적을 처리하고 있었던 건가.

[그래 봐야 감옥에 갇혀서 제대로 된 계약도 못하는 머저리가.]

그 말에 주헌 몰래 빠져나와 자신을 과시하던 까마귀 오라가 주춤거렸다.

[그러게 왜 신의 비밀을 누설해서 공공의 적이 되었대.]

그러자 까마귀가 빡친 듯 마몬을 잡아먹으려고 했지만.

"야."

주헌의 시선에 주춤한 까마귀 오라가 슬금슬금 기어들어갔다.

답지 않게 좀 풀이 죽은 듯 했다.

결국 까마귀가 마지못해 기어들어가자 마몬이 흡족해하며 주헌을 보았다.

[네 질문에는 바로 답해주고 싶지만, 조건이 있어.]

"조건?"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보나마나 남은 과제를 클리어하라거나, 대충 그런 이야기겠지.

하지만 마몬이 환하게 웃었다.

[너, 내 첩이 되어줄래?]

"!"

동시에 기어들어갔던 까마귀가 튀어나왔고, 주헌의 어깨에서 자고 있던 동아줄도 스윽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첩?

없던 눈까지 번득이는 것 같았다.

***

"서주헌, 왜 연락이 없는 거지."

진채원은 핸드폰과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히틀러를 처리해주면 데이트 해준다며.'

진채원이 핸드폰만 오매불망 붙잡고 있은 지도 상당히 오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자신이 히틀러를 친 것에 대해서 서주헌이 모를 리도 없는데.

'뉴스를 못 봤나?'

더 화려하게 박살을 낼 걸 그랬나?

그녀는 미국과 히틀러가 들으면 부글부글 끓는 소리를 해댔다.

실제로 미국은 지금 발칵 뒤집혀 있었다.

기껏 히틀러 밑으로 왕급이며 그들을 따르는 상급 유물사용자 군단을 만들어놨건만.

그리고 그걸로 서주헌을 처리하려고 했던 참이었는데...

'왜 진채원이 방해를 해!'

대통령은 도발행위냐며 핵무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진정해요!'

'중국에는 총수 유물이 있다고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거품을 물고 대통령을 말렸다.

일단 그들은 참자는 반응이었다.

진채원이 마음먹으면 정말 미국 대륙을 쪼개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런 여자가 서주헌과 손을 잡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여자도 서주헌을 처리하려고 손을 잡는 척하려는 겁니다.'

'그 여자는 악독한 여자니까요.'

하지만 주헌의 처리는 무슨.

"...전화를 한다, 안 한다, 한다, 안 한다, 한다, 안 한다..."

정작 진채원은 세상에서 제일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물론 그녀는 대외적으로 이렇게 말하긴 했었다.

'서주헌과 가까워져서 죽이겠어요.'

반은 진심이었다.

주헌은 자신에게 수치를 준 유일한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정말 죽일 생각은 있는 건지, 그녀는 주헌의 연락을 보며 끙끙 거리기만 했다.

'바쁜 건가? 그런 거겠지? 지금도 탐욕의 무덤에 갔다고 했잖아.'

물론 먼저 연락을 해볼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차단당하면 어쩌지?'

지금까지 연락이란 연락은 다 씹혀온 그녀였다.

그래서 주헌이 먼저 걸어온 연락에 내심 그녀답지 않게 당황한 상황.

재촉하면 안 그래도 자신을 싫어하는 마당에 부담까지 된다며 없던 일로 하지는 않을까?

게다가 괜히 기대한 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그녀가 쓰다가 만 메시지만 수백 통을 넘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자니...

'못 참겠다.'

답지 않게 꽃잎이나 뜯고 있던 진채원은 결국 벌떡 일어섰다.

"서주헌의 스케줄 표를 얻어내자."

그리고 스케줄이 비는 날에, 우연이라는 듯 마주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주헌이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성질 같아선 그냥 침입했을 테지만 이번엔 특별히 주헌이 싫어할까봐 하우스키퍼로 잠입했다. 다만.

'서주헌의 방은 어디지.'

주헌의 이름으로 빌린 방이 여러 개라 찾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닥치는 대로 방에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서주헌의 냄새다.'

그녀는 유독 주헌의 냄새가 나는 방에서 멈췄다.

누가 탐식의 유물 소유자가 아니랄까 봐 유물의 냄새에 민감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곳이 주헌의 방이겠지.

혹시나 싶어서 유물 체취가 가장 많이 묻어 있는 주헌의 베개에 얼굴을 묻어도 봤지만...

'좋아 확실하군.'

그렇게 그녀가 주헌의 스케줄을 찾기 위해 방을 뒤지기 시작할 때였다.

"!'

그녀는 책상 위에서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작은 시약 유물을 발견했다.

'이건...'

생긴 건 까마귀의 눈물.

곧 베개를 끌어안은 진채원이 눈물을 자세히 보려고 할 때였다.

삐리리.

"!"

당연하게 카드키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

"어? 안에 누가 있나?"

그 목소리에 진채원은 방안에서 내심 당황했다.

왜?

이 목소리는 아이린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이상하다. 주헌 씨, 무덤에 가신 거 아니었어요?"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친 건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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