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이 녀석이 왜 이래? (2)
단원들은 더욱 깊숙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무덤 안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전기발전소 율리안이 번개를 만들어내 빛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것은 주헌이었다.
그는 이미 클리어했던 무덤인 만큼 어지간한 지리는 꿰뚫고 있었다.
이를 테면 천장에 함정이 있다 치면 주헌은 그곳에 가기도 전에 함정을 박살냈다.
갈림길에서도 고민 하나 없이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 들어온 율리안은 끙끙 앓았다.
'분명해. 서주헌 저 녀석, 단원들의 힘을 가져갈 셈이야.'
거의 확실했다.
왜?
'이제 저놈은 유물의 일부 힘을 훔쳐갈 수 있다.'
주헌이 히틀러와의 싸움에서 레벨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주헌은 까마귀 비보를 활용했지만, 그동안은 블랙홀처럼 유물을 빨아들이는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그게 레벨 1.
하지만 히틀러를 통해 성장한 주헌은 레벨 2를 쓰게 되었다.
'포식한 유물의 능력 사용.'
쉽게 말해 먹어치운 유물의 힘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주헌은 히틀러의 제거유물을 먹어치우면서 외려 그 능력의 일부를 얻었다.
그리고 그걸로 히틀러에게 역관광을 날리지 않았나.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
순간적인 일이라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율리안만큼은 공명의 눈으로 파악했다.
'그래봐야 배탈이 났지만.'
어쨌거나 주헌은 놀랍게도 제거 능력을 발휘했다.
비록 배탈의 여파와 먹어치운 양 만큼의 능력이나 활용 범위는 낮았지만...
'꽤 쓸 만했지.'
유물의 약한 능력 정도는 그냥 제거할 수준.
그러니 추측컨대, 주헌이 막강한 비보들의 힘을 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비보들의 힘이라면 아주 일부만 꿀꺽해도 그 능력치가 A,S급 수준은 될 테니까.
그리고 전체가 아닌 일부만 꿀꺽하는 거라면, 본래 주인들에게도 피해가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잡아먹히는 건 역시 무섭다고, 이놈아.'
비단 비보뿐만이 아니었다.
소모유물이 아닌 귀속성 유물은 계약자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되었다.
즉, 까마귀에게 먹히면 그 감각이 사용자한테도 고스란히 전해질지도 모른다는 의미!
'한순간이긴 하겠지만.'
아무튼 그런 마당이니 단원들도 벌벌 떨며 주헌 앞에서는 비보의 능력을 절대 보이지 않았다.
단원들끼리는 정보를 공유했지만 말이다.
거의 주헌을 따돌리는(?) 수준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래도 먹히는 건 싫었으니까!
어쩌면 능력을 꺼냈다가 주헌의 마음에 들면 꿀꺽 먹힐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2관문 주자는 저런, 율리안이구나."
"뭐?!"
주헌은 아무래도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주헌의 얼굴이 굉장히 신나 보였다.
"까짓 거 비보를 써서 팍팍 클리어해버려."
그 말에 율리안은 벽에 새겨진 문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게 어디서 사기를 쳐! 적어도 저게 내 이름이 아니란 건 알거든!"
"칫, 들켰나."
주헌은 이놈에게 괜히 툼글리프를 가르쳐줬다며 입을 삐죽였다.
뭐, 가르쳐줬다고 해봤자 이놈의 이름 정도지만.
"어쨌든 진짜 2차 주자는 재하다. 어서 가라."
그 말에 율리안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지금 우리들이 툼글리프를 읽을 수 없다고 사기치는 거 아니지?"
"실례되는 말하기는. 이번엔 진짜야."
물론 이번엔 정말 유재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만.
'또 까마귀 놈이 서둘러 이름을 바꾼 것 같지만.'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주헌이 활짝 웃었다.
"어차피 누군가가 시선을 끌고 있어야 내가 증표를 가져올 수 있어. 잘 부탁한다."
...이 자식, 진짜겠지?
"재하야! 주헌이 실패할 수도 있으니 꼭 클리어해!"
"실패하면 다들 잡아먹힐지 몰라!"
결국 유재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재단 쪽으로 향했다.
'아오, 이 무덤 싫은데, 진짜 싫은데.'
그리고 2관문의 과제는...
[3가지 물건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시오.]
단순한 물건 고르기였다.
그리고 재단 위에 하나씩 물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첫 번째는 금괴!
무한대로 금괴가 쏟아지는 마법의 상자였다.
이어서 두 번째로 올라온 것은 낡은 그릇.
그걸 본 단원들은 안도했다.
'나머지는 안 봐도 어떤 게 답인지 알겠네.'
유재하도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 야 저거 뭐야!"
이어서 올라온 나머지 하나가 문제였다.
"왜 하필...!"
***
단원들은 당황했다.
유재하 역시 점점 굳어갔다.
아니, 그건 당연했다.
올라온 나머지 하나는 다름 아닌 절세미녀!
심지어 알몸, 거기에 완벽한 유재하의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 유재하를 보았다.
[너무 아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
유재하는 굳었다.
이상형의 여자가 알몸으로, 심지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멈칫하지 않을 남자가 세상에 있을까.
머리로는 이게 답이 아니라는 걸 분명 아는데...
분명 아는데...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돼요.]
젠장, 이건 너무하잖아!
결국 그 모습에 단원들이 거품을 물었다.
"야! 정신 차려! 뭘 고르면 되는지 알지!"
"재하야! 소개팅 시켜줄게! 그건 아니야아아! 제바알!"
그 말에 움찔하던 유재하는 기가 막힌다는 헛웃음을 흘렸다.
"야, 나도 알아. 내가 바보냐?"
단원들은 그 말에 안도했다.
그리고 유재하도 사납게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인간을 무시하지 마라! 여기선 당연히 낡은 그릇 아니냐!"
유재하는 자신 있게 낡은 그릇을 집었다.
하지만.
[걸렸구나. 인간.]
"?!"
그는 당황했다.
아니 자신은 분명 낡은 그릇을 잡았다.
하지만 다른 손은 여자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본능이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가 웃었다.
[넌 실패다, 인간.]
"?!"
제, 젠장 이게 아닌데!
결국 동시에 두 개를 집은 유재하는 벌을 받았다.
"꾸에에엑!"
"재하야!"
그는 귀여운 핑크빛 돼지로 변하고 말았다.
[자, 다음 타자 나오세요. 아무나 나와도 됩니다.]
그 말에 일리야가 뛰쳐나갔다.
"저 등신새끼, 그러니까 낡은 그릇만 골랐어야지!"
한심하다는 듯, 일리야가 낡은 그릇을 짚었지만 글쎄.
"아아악!"
일리야도 똑같이 돼지로 변하고 말았다.
이번엔 흑돼지였다.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이에 어느새 나타난 주헌이 쯧쯧 혀를 찼다.
"바보들, 전부 틀렸어. 여기선 뭘 고르든 다 돼지가 되거든."
"?!"
"여기가 유물들의 관문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되지."
젠장, 그런 거였나.
"뭐, 됐어. 덕분에 2차 관문 증표도 얻었으니까 다음으로 가자."
도대체 저건 또 언제 가져온 건지.
결국 흑돼지와 핑크돼지는 슬퍼했다.
"꾸에에엑! 그 전에 우리 좀 원래대로 돌려줘요!"
"꾸에에엑!"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다시 3차 관문으로 향했다.
"시끄러워, 비상식량들."
"?!"
"안 그래도 식량도 별로 없었는데 잘 됐지. 그러니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다."
"쌈장을 챙겨오기 잘했네요."
"#$*$*!"
진짜 먹을 생각이냐!
***
3차 관문, 4차 관문도 그럽게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단원들이 시간을 끌면 주헌이 여유롭게 증표를 가져왔으니까.
결국 이쯤 되자 무덤의 문지기들은 정말 당황스러워했다.
[벌써 다섯 번째 관문으로 오고 있어!]
그리고 도착한 다섯 번째 관문.
곧 주헌이 다섯 번째 관문으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설아가 주헌을 붙잡았다.
"저기, 단장님."
그녀가 가리킨 것은 뒤에서 훌쩍이는 돼지들이었다.
흑돼지와 핑크빛 돼지가 비상식량처럼 동아줄에게 묶여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헌의 유물들은 신이 나 보였다.
특히 이집트 멍멍이들이.
돼지 구이! 돼지 구이!
가끔은 치킨 대신 돼지도 좋지!
결국 비상식량들은 빼애액 울었다.
"단장님, 진짜 이건 아니죠!"
"유물에 잡아먹히기는 싫거든요!"
결국 주헌이 클로에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클로에는 알겠다는 듯 나이팅게일을 사용했다.
번쩍!
초록색의 빛과 함께 나이팅게일의 유물은 둘의 몸에서 유물의 저주를 제거했다.
그러자 제일 먼저 일리야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유재하 역시 인간이 되나 싶었지만...
"?!"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세, 세상에!"
그의 모습은 200kg이 족히 넘는 미국형 고도비만 환자의 모습.
뭐, 원래부터 귀여운 상이라 뚱뚱한 상태로도 꽤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뭐야, 이거! 왜 나만 이래에에!"
그는 엉엉 울었다.
이에 클로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왜긴 왜야. 넌 유물을 두 개나 골라서 그런지, 일리야보다 저주가 더 심각해."
"?!"
"뭐, 단장님의 포식 능력이면 빼낼 수 있을지도."
지방만 냠냠 하라는 의미였다.
그 말에 유재하가 구조 요청을 날렸다.
"단자이니이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딱 잘라 거절했다.
"싫어. 니 지방을 먹으면 나도 살 찌잖아."
"?!"
아니, 뭐 그건 그런데.
"단장님은 잘생겼으니까 이 정도는 뚱뚱해도 괜찮잖아!"
그러자 깜짝 놀란 설아가 필사적으로 주헌을 붙잡았다.
"누, 누구 맘대로 괜찮아!"
아니, 주헌이라면 살찐 모습도 한 번 보고 싶긴 하지만...
그렇게 설아가 갈등을 때릴 때였다.
"그래봐야 피닉스 유물을 쓰면 금방 돌아오지 않아?"
"네, 네?"
주헌이 얄밉게 웃으면서 유재하를 보았다.
"왜? 피닉스 유물에 그런 기능도 있는 거 아니었어?"
"...네, 네?"
유재하는 땀을 삐질 흘렸다.
주헌의 미소가 심상치 않았다.
"난 니가 방구석 폐인 주제에 늘 날씬한 게 신기했거든."
"..."
유재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주헌의 속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피닉스의 불은 칼로리도 태울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그게."
이 인간, 설마 그걸 확인해보려고 방치한 건 아니겠지.
정말 그럴 리는 없었지만, 주헌은 눈을 번득였다.
매우매우 탐이 난다는 듯이.
"빨리 원상복귀 해라."
"에이씨!"
유재하는 엉엉 울면서 피닉스 유물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열기가 그를 감쌌다.
동시에 강렬한 불길이 그의 몸에서 일어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상에!"
유재하의 모습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보통 비보는 주인과 물아일체 수준.
피닉스의 에너지는 유재하의 에너지를 쓰는 건지 그의 몸이 점점 슬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
"헉, 허억."
유재하는 고된 운동을 한 사람 마냥 헥헥거렸다.
그리고 이때였다.
"역시 좋은 능력이야."
"?!"
주헌이 탐욕스럽게 눈을 번득였다.
"부활 능력도 탐나긴 하는데 열량 소비도 괜찮은 능력이지."
최근 안 그래도 포식의 능력을 얻게 된 이후로 소화불량에, 은근히 유물 칼로리(?)를 걱정하던 주헌이었다.
"네 비보, 조금만 나눠주면 안 돼?"
결국 유재하는 울었다.
아니, 뭐 주헌이 가져간다고 해봐야 피해를 입을 건 전혀 없지만...
'뭔가 억울해!'
그리고 그렇게 다섯 번째 관문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때였다.
[이 앞으로는 가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들어가면 안 됩니다.]
까마귀의 유물이 미친 듯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단장?"
이 녀석이 또 왜 이러나 싶을 그때였다.
"...!"
낯익은 기운.
자신이 전생에서 지겹게 사용했던 파트너 유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 네가 서주헌이구나.]
파죽지세로 주헌이 관문을 뚫고 오는 게 신경이 쓰인 건지, 무덤의 주인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