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298화 (298/409)

298화. 이 녀석이 왜 이래? (1)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무덤은 매우매우 질이 낮은 무덤입니다.]

아니 요 녀석이?

주헌은 황당한 듯 시스템 창을 보았다.

하지만 곧 그는 별거 아니겠거니 싶었다.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리라.

그렇게 그는 집중해서 다시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다.

'무덤 파괴!'

그리고 뻗은 손에 강한 힘을 집중시키려는 그 순간!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왠지 무덤 밖으로 나가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자식이 진짜.

주헌은 황당한 얼굴로 시스템 창을 보았다.

확실했다.

까마귀 놈이 스킬을 정지시킨 것이리라.

'이자식이.'

"단장님?"

주헌은 다른 스킬도 써보았다.

하지만 유물파괴, 손재주, 은신, 무덤복원 등등 대부분의 스킬들이 먹통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스킬은 내성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 와중에 무덤에서 주헌이 다치는 건 싫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무덤 공략에 유용한 스킬들은 전부 봉인.

메시지는 계속 되었다.

[빨리 무덤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 더 좋은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은 왠지 더럽고 치사하고 별 볼 일 없을 것 같습니다.]

더럽고 치사한 건 너다 이 자식아.

"뭐하는 거야, 지금?"

주헌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단원들이 깜짝 놀랐다.

"단장?"

시스템창이 보이는 건 주헌뿐.

그들의 입장에선 주헌이 갑자기 허공에 대고 소리를 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단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설아와 클로에도 걱정스러운 듯 주헌을 보았다.

율리안은 주헌을 보며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혹시 스킬을 못 쓰는 거야?"

"알겠냐?"

"뭐, 평소 스킬을 쓸 때마다 보이던 오라가 안 보이니까."

"까마귀 놈이 사라진 건 아니지?"

"그건 아냐. 평소처럼 잘 붙어 있어. 다만..."

"다만?"

"...아니야."

"?"

"..."

넘보지 마, 이놈은 내 거야. 내 거야.

마치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듯, 털을 세우고 염파를 보내는 것 같다면 착각일까.

결국 피곤한 듯 이마를 짚던 율리안이 슬쩍 단장을 보았다.

"어쨌든 스킬을 못 쓰게 되었으면 곤란한 거 아니야? 앞으로는..."

"크게 걱정할 건 아냐. 이 무덤에서 나가면 쓸 수 있는 것 같으니."

"뭐? 그럼 일단 무덤에서 나가는 게...!"

하지만 주헌은 쿨하게 됐다 싶었다.

뭐, 언제는 이런 스킬에 의존해서 무덤을 공략했었나.

게다가 이 탐욕의 무덤은 원래부터 유물 하나 없이 공략했던 무덤.

공략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무슨 심보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눈에 보이게 막으려고 하다니.

'억수로 좋은 유물인가보네.'

아마도 까마귀가 경계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그는 오히려 즐거웠다.

원래도 자신의 첫 유물인지라 가져갈 생각이긴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반드시 가져가야지.'

그리 결심한 주헌이 말했다.

"이 무덤의 유물은 반드시 가져간다."

[!]

덕분에 까마귀는 내심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 이 자식아, 그게 아니라고.

까마귀는 열심히 시스템 창을 띄웠다.

[별 볼일 없는 계집의 무덤입니다.]

[그 계집을 얻을 바에야 발 닦고 자는 게 훨씬 생산적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오, 여자 유물이라고? 더 잘됐네. 안 그래도 주력 유물들이 다 수컷이라 짜증났는데. 파트너 유물 삼아야지."

[?!]

까마귀는 자신의 무덤을 팠다.

그럴 때였다.

주헌이 힘을 쓸 수 없다는 걸 안 율리안이 탄식했다.

"할 수 없지. 우리들이 관문 과제를 풀어야겠네."

"하지만 1분 안에 팔굽혀펴기 1,000개라니. 가능해요, 그게?!"

그 말에 유재하가 하하 웃었다.

"괜찮아, 단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유재하가 단을 툭툭 쳤지만 글쎄.

쿠구구궁!

"!"

갑자기 일리야가 서 있던 지면이 솟아올랐다.

"일리야!"

그들은 깜짝 놀랐다.

마치 무대를 만들어주기라도 하듯, 일리야가 서 있던 곳만 솟아올랐다.

"뭐야 이건?!"

그러자 주헌은 오랜만에 본다는 듯 웃었다.

"각 관문의 공략자를 정하는 거야."

"네?!"

다들 놀랐다.

그러나 주헌은 태연하게 말했다.

"원래 랜덤으로 뽑히게 되어 있어. 추첨 같은 거지."

주헌은 울퉁불퉁한 오렌지색 벽을 쓸어 보았다.

돌벽에는 툼글리프로 새겨져 있는 일리야의 이름이 있었다.

무덤이 랜덤으로 공략자의 이름을 띄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형태가 굉장히 기묘했다.

뭔가 억지로 이름을 수정한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있던 이름조각을 고쳐 서둘러 일리야로 바꾼 듯한 느낌?

주헌은 잘려져나간 조각들을 만져보았다.

'원래는 내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주헌이 슬쩍 자신의 오라를 보았다.

"야. 새대가리."

그러자 벽 쪽으로 흉흉하게 뻗어있던 까마귀 오라가 슬금슬금 기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막 이름을 고치다가 걸린 듯한 느낌.

'이 녀석이.'

뭐 아무래야 상관없었다.

"축하한다, 일리야. 이 관문의 공략자는 너인 거 같다."

"?!"

주헌은 어찌나 웃긴지 하하하 배꼽을 잡아 웃었다.

그러나 정작 단원들은 천하태평한 주헌의 반응에 뒷목을 잡았다.

"서주헌! 지금 웃을 때야?!"

"1분 안에 팔굽혀펴기 1,000개를 해야 한다고요!"

"하필 뽑혀도 단원 제일의 체력 고자가!"

일리야는 마법서 유물로 온갖 사기적인 마법을 부렸지만, 동시에 병아리에 가까운 체력 리스크를 가진 몸.

심지어 그는 설아나 클로에와 팔씨름이나 달리기 시합을 해도 졌다.

그러나 주헌이 환하게 웃었다.

"내 단원 중에서 이딴 걸 공략 못할 놈은 없으리라 본다. 그치?"

못하면 콱 죽여버리겠다는 상큼한 미소.

결국 일리야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네, 네. 이 까짓것 당연히 껌이죠."

젠장. 망했다.

***

한편 그 무렵이었다.

[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정작 1차 관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 유물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주인님이 분명 서주헌을 고르라고 해서 뽑았었는데.]

그렇다.

사실 이 무덤의 주인, 탐욕의 유물은 이상하게도 주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주헌은 유물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간이니까.

'유물계의 사신.'

그렇게 불리는 인간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유물들이 그를 괴롭히고 죽이고 싶어 했다.

자신의 주인 역시 주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무척 보고 싶어 했고.

물론 자신의 주인의 경우엔 다른 의미로 주헌에게 관심을 두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를 위한 괴롭힘 서비스는 공을 들여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왜 공략자가 바뀐 건데?!]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공략자가 일리야로 선발되자 무덤의 주인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쿠르릉.

쿠르릉.

분노하듯 땅이 뒤흔들린 후에 들려오는 목소리.

[난 분명 서주헌을 괴롭히라고 했을 텐데.]

그 음성에 문지기 유물, 아니 악마는 당황했다.

[그, 그게 분명 서주헌을 골랐는데 어찌된 일인지...!]

악마는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서주헌과 함께 있는 까마귀 놈의 짓 같은...]

그 말에 무덤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까마귀? 그 대감옥에 갇혀 있는 머저리?]

나타난 건 작은 체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어린아이였다.

동시에 과거의 주헌의 파트너이기도 한 그 유물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일리야, 너 정말 괜찮겠어?"

1분 안에 팔굽혀펴기 1,000개라는 과제에 직면한 일리야는 삐질 땀을 흘렸다.

껌이라고는 했지만 솔직히 인간이 가능한 과제가 아니지 않나. 분명히 하다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해도 단장한테 죽는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든 결과는 똑같지 않을까.

그리고 낑낑대며 팔굽혀펴기를 하는 일리야를 보며 유재하가 낄낄 웃어댔다.

"야야 저거 역시 못해, 못해. 너 팔굽혀펴기 한 개는 가능하겠냐?"

저걸 콱!

그리고 그럴 때였다.

쿠구궁!

갑자기 바닥이 뒤흔들리면서 지면을 뚫고 뭔가가 나타났다.

"!"

거대한 벌레들이었다.

다리가 수백 개가 달린 지네 같았느데, 크기는 사람보다 훨씬 컸다.

지네는 쉭쉭 거리면서 일리야에게 다가왔다.

율리안이 외쳤다.

"과제를 실패하면 잡아먹을 생각인 거야!"

그는 번개를 불러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는 주헌을 급하게 보았다.

"어서 네 공략법을 알려줘! 애초에 인간이 가능한 과제가 아니야. 저러다가 일리야만 죽을... 야!"

그러나 주헌을 본 율리안은 거품을 물었다.

그냥 공략법을 알려주면 될 것을, 주헌은 한가하게 동아줄 의자에서 간식을 먹으며 관람 중이었던 것이다.

"얌마! 너, 니 부하가 잡아먹힐지도 모르는데!"

"공략법을 모르면 니놈이 공략법을 분석해보든가. 뭐하냐, 책략가."

"알아도 지금 맞는 유물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럼 그냥 저놈한테 맡겨."

"#*$#&*!"

아오, 이놈은 진짜 유물도 없이 이 무덤을 어떻게 클리어했대!

'쉽게 끝낼 일을 왜!'

곧 단원들이 각자 일리야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일리야, 서둘러! 안 그러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네들이 독을 뿜어댔다.

신경독이었다.

그만큼 상당히 아팠다.

동시에 지네들에게 물린 일리야가 빡친 듯이 눈을 번득였다.

"야씨, 난 S성향이지, M성향이 아니라고."

생각해보니 왜 자신이 무덤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 거지?

"지네들 꼬라지를 보니 이 새끼들, 분명 악마 계열 유물인데."

"!"

그 말과 함께 일리야가 자신의 비보를 개방했다.

번쩍!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지네 악마들은 일리야의 몸에서 나오는 흉흉한 오라에 몸을 떨었다.

뭐 그건 당연했다.

일리야가 부리는 유물은 악마 중의 악마, 악마의 왕.

평소엔 모습이 바뀌는 게 싫어서 오라를 꽉꽉 눌러두고 있다고 쳐도.

쿵!

[악마의 왕이 강림합니다.]

[악마의 왕이 강림합니다.]

일리야의 머리에서 악마의 뿔이 솟으며 눈과 피부색이 변했다.

그리고 흉흉한 불길이 1차 관문을 뒤덮고, 사정없이 파괴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병신들아 다 뒈져라!"

그 모습이 가히 악마.

어디 그뿐인가.

"이 거지새끼들, 애초에 누가 이딴 과제 가져오랬어! 어디 니들이 해봐!"

빡친 일리야가 도리어 악마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지네들은 당황하면서 눈치를 보다가 무덤을 부술 기세로 헛둘 헛둘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쿠르릉, 쿠르릉.

1차 관문장이 무너지자 율리안이 새하얗게 질려 외쳤다.

"일리야! 그렇게 부수기만 하면 안 돼! 여기서는 관문의 증표를 얻어야...!"

"아, 됐으니까 이제 다음으로 가면 돼."

주헌의 말에 율리안은 황당해했다.

"무슨 개소리야! 과제 통과를 못 했잖아! 관문의 증표가 있어야 한다고! 그것도 없이 이 무덤을 클리어한다고...!"

"바보야, 증표는 진작 얻었어."

"뭐?!"

주헌은 태연하게 뭔가를 흔들어보였다.

얼핏 보기엔 금덩어리로 보였다.

그리고 그건 각 관문을 통과하면 얻을 수 있는 증표였다.

율리안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그걸 언제!"

"언제긴. 이 관문에 도착했을 때."

어차피 이곳에서 중요한 건 과제가 아니라 증표를 얻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여긴 이미 자신이 클리어한 무덤이었다.

증표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았다.

과거의 자신도 그렇게 무덤을 클리어한 거고.

"그럼 일리야는 왜 생고생을 시킨 건데!"

"저놈의 비보가 구체적으로 뭔지 궁금했거든. 능력도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고."

"?!"

단원들이 하도 비보를 숨겨대니까 무덤을 이용해 알아보려 한 건가!

동시에 주헌이 율리안의 어깨를 짚었다.

"참고로 난 네 비보에도 엄청, 아주 관심이 많아."

"...!"

"뭔지 몰라도 분명 좋은 거겠지?"

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득였다.

"그러니까 다음 공략자는 너로 당첨."

이, 이 자식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