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탐욕의 강림 (2)
[나 불렀어?]
주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까마귀였다.
그것도 상당한 볼륨을 자랑하는 글래머 미인으로!
그 모습에 율리안은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순간 누군가 싶어 당황했지만, 곧 흉흉한 오라에 까마귀라는 걸 눈치챘다.
'뭘 불러내나 했더니!'
하지만 곧 그는 납득했다.
"역시 까마귀에게 맡길 생각이었구나! 하긴, 맡길 상대가 없긴 하지."
하물며 저런 모습이라니!
그러나 정작 주헌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왜?
"왜 니가 나왔냐."
"?!"
주헌의 말에 율리안은 깜짝 놀랐다.
"어? 까마귀를 부른 게 아니었어?"
불러내기는 개뿔.
주헌은 여자를 째려보았다.
"이 빌어먹을 까마귀야, 빨리 그놈 안 꺼내?!"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검은 물체가 튀어 올랐다.
'!'
그리고 그 검은 물체는 여유롭게 바위 위에 앉았다.
단원들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저건...!"
윤기가 흐르는 칠흑같은 몸통, 도도한 듯한 붉은색 눈. 뾰족하고 날카로운 새의 부리.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도도한 모습으로 주헌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에 의심하고 있던 몇몇 단원들이 입을 떡 벌렸다.
"뭐야, 진짜 까마귀였어?!"
"세상에, 그런 쭉쭉빵빵 누님이었다니!"
설아는 경악했고, 유재하는 흥분했다.
하지만 주헌은 가증스럽다는 듯 까마귀에게 말했다.
"가짜 모습으로 헛수작 부리지 말고 빨리 그놈이나 내놔. 애꿎은 놈 소화시키지 말고."
"소화?!"
그러자 까마귀의 주변에 스멀거리는 검은 안개가 나타났다.
그 검은 안개 속에서는 낑낑거리며 몸부림 치고 있는 지렁이가 있었다.
[사, 살려줘! 살려달라고!]
까마귀의 오라에 삼켜진 채 강제로 소화(?)당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율리안도 이제야 알 것 같다는 듯 입을 벌렸다.
"지렁이로 진짜 무덤을 가리려고 했었구나!"
놈은 귀신같이 진짜 가짜를 구별해서 유물을 뜯어가는 놈이니까!
하지만 정작 까마귀에서 잡아먹히고 있는 판국이라니?!
지렁이는 소화액(?)에 비명을 지르며 엉엉 울어댔다.
[인간! 어서 날 좀 구해다오! 이러다가 진짜 녹아아아!]
결국 보다 못한 주헌이 말했다.
"빨리 그놈 뱉어."
그러나 까마귀는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었다.
[난 뭘 먹은 기억이 없는데.]
"그럼 거기 소화당하고 있는 벌레 새끼는 뭔데."
[...]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탈나. 좋은 말로 할 때 그놈 뱉어."
[...]
그러자 까마귀는 시큰둥한 기색으로 지렁이를 뱉어(?)냈다.
정확히는 검은 오라가 사라지자 지렁이가 지면에 툭 떨어진 것뿐이지만.
지렁이는 훌쩍이면서 주헌에게 기어갔다.
놈의 소화액에 머리카락이 녹았다며 슬퍼했다.
[다 탔어. 정말 다 타버렸다고.]
지렁이는 까마귀가 무서운 듯, 주헌의 발 뒤에 숨었다.
이에 주헌이 까마귀를 살짝 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설마 지렁이 모습으로 나한테 무슨 사기를 치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
까마귀는 포식한 상대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
그러자 까마귀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본 주헌은 됐다는 듯 지렁이를 보았다.
"어서 진짜 무덤이나 찾아라."
[아, 알았어. 하지만 돈, MONEY...]
지렁이가 바닥에 뭔가 쓰기 시작하자 율리안이 깜짝 놀랐다.
"잠깐! 역시 그놈을 쓰는 건 위험해!"
지렁이 때문에 졸지에 약탈왕이 되었던 율리안이 주헌을 걱정했다.
"그만둬! 여기에 있는 전원 지렁이한테 뜯길 거야!"
저놈 때문에 옷도 바지도 시계도 지갑도 죄다 빼앗겼던 자신이 아닌가.
그러나 주헌은 율리안을 비웃었다.
"그건 당하는 쪽이 등신인 거고."
"?!"
주헌은 지렁이를 콱 밟으면서 말했다.
"다시 소화액에 녹고 싶지 않으면 진짜 무덤을 찾아내라."
[?!]
놀란 지렁이는 낑낑거리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저기! 저기라구! 저기서 돈 냄새가 나!]
지렁이가 가리킨 것은 수많은 무덤 사이에 힘겹게 낑겨 있는 녀석이었다.
주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들어가자."
하지만 기껏 지렁이가 찾아내면 뭐하나.
[틀린 것 같습니다.]
[그쪽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렁이 놈이 쓸모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먹어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까마귀의 오라가 흉흉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회장님, 진짜 무덤을 찾아냈습니다."
TKBM은 침을 꿀꺽 삼키며 권 회장을 보았다.
관짝 안의 시체가 되고, 람세스 유물에 치여 앓은 지 한 달.
권 회장은 모처럼 직접 무덤 발굴 현장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복제 무덤 앞에서 짜증냈던 그들이 진짜 무덤을 발견한 듯했다.
"아마도 저 무덤인 것 같습니다."
주헌 때문에 위상은 추락했어도 TKBM은 여전히 상위 발굴단이었다.
"서주헌의 움직임이 저 무덤을 향하고 있어요."
그들은 일부러 먼 곳에서 서주헌 일행의 위치를 감지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봐야 단한테 청소당할 걸 아니까.
무서워서 가려야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래봐야 진짜 무덤이 어딘지만 알면 됐다.'
권 회장은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유물이 보여준 전생.
자신이 빙의해서 봤던 그 모습을.
'그래서 그 무덤은 어떻게 공략했지?'
'그 무덤이요?'
'모두 자네에게 놀라고 있어.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당시 주헌이 공략한 탐욕 무덤은 여러 가지 의미로 특별했다.
왜?
[난공불락 탐욕의 무덤 공략. 독식자들 자존심 무너지나.]
당시는 이미 벽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독식자들이 좋은 유물을 이미 다 독점한 탓에 일발 발굴단은 도저히 대형 발굴단들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유물로 인한 산업체계의 변화, 투기꾼들의 폭주, 유물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들.
식수, 공기, 기본적인 생존의 수단에서도 빈부격차가 났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탐욕의 무덤은 일반 발굴꾼들의 희망이었다.
동시에 독식자들에겐 자신들의 영역이 침범당하면 안 된다는 자존심이 있었고.
그래서 스카우트할 때 물었다.
'어떻게 그 무덤을 공략했지?'
'그건...'
권 회장은 그 광경을 분명히 봤다.
주헌을 부하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묻는 장면을 체험했었다.
그리고 주헌이 답했지.
'그냥 몸을 맡기면 되는 곳입니다.'
'몸을 맡긴다고?'
'7개의 관문이 있는데... 정 뭣하면 어떤 함정인지 말씀드릴까요?'
권 회장은 웃었다.
"통로는 저쪽이다."
그들은 약간의 꼼수를 부리기로 했다.
주헌이 기억 속에서 알려주었던 샛길이었다.
'그 샛길을 이용하면 안전하게 무덤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땅을 파서 샛길로 이동했다.
위치는 주헌이 정확하게 말해준 걸 떠올렸기 때문에 찾기 어렵진 않았다.
TKBM의 단장들은 침을 삼키며 권 회장을 보았다.
"정말 안전한 길이 맞겠죠?"
"그래."
안전하다고 한 길.
놈은 이 통로를 향해 무덤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니 괜찮..."
그러나 이게 웬걸.
"아아아악!"
"끄아아악!"
여기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무슨 일이냐!"
"커헉! 크아아악!"
사방에서 발굴단원들이 죽어나갔다.
천장에서 튀어나온 검은 물체는 인간들의 머리통을 순식간에 잘라가고.
"수, 숨이...!"
숨통을 죄이는 독가스가 발굴단을 습격했다.
이에 권 회장은 당황했다.
그건 당연했다.
이게 무슨 안전한 샛길이란 말인가.
이정도면 굉장히 위험한 길에 속했다.
상중하로 나누었을 때, 상에 속할 정도로 위험한 길.
반드시 피해가야 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놈은 이런 길을 뚫고 내부로 들어갔다고?'
그때 기억 속 주헌은 유물도 뭣도 없지 않았었나?
아니면 역시 가짜 미래였던 건가?
하지만 가짜는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샛길에서 희미하지만 주헌 일행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즉 주헌 일행도 이 샛길을 이용했다는 의미.
그래서 그는 당황했다.
'분명 제일 안전한 길일 텐데.'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주헌은 뒤에 이렇게 말했었으니까.
'네. 거기가 제일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뭐, 다른 애들은 다 죽었지만.'
***
"끄아악!"
"아아악!"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계속되었다.
괜히 과거에 난공불락이라고 불린 게 아니었는지, 수백 명이 넘는 숫자는 순식간에 두 자리 단위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허, 허억...! 4부대 전멸입니다!"
"보급부대 전멸!"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주헌의 단원들은 혀를 찼다.
그들 역시 여기까지 함정 수십 개를 돌파하고 왔지만...
'미친 서주헌.'
'역시 단장님. 만만치 않아.'
그들은 질린다는 듯이 주헌을 보고 있었다.
그건 당연했다.
"너 진짜 이런 무덤을 유물도 없이 클리어했었던 거야?!"
"응. 그랬는데."
주헌의 태연한 답에 단원들은 뒷목을 잡았다.
'진짜 돌았어!'
그랬다.
베테랑 단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 무덤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았다.
괜히 전생에 왕급들도 손을 못 댄 무덤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당시 주헌은 유물도 없이 맨몸으로 이 무덤에서 탐욕의 유물을 얻었다는 건가.
그러나 주헌은 튀어나오는 벌레들을 콰직 밟으면서 말했다.
"뭐, 나도 그땐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텼던 거라서."
그때도 무덤과 유물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유물이 지배하는 사회.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했으니까.
심지어 독식자들이 독점한 상식 정보까지 훔치며 아득바득 공부했다.
당시엔 최소 A급 이상 유물이 없으면 도저히 인간다운 삶을 살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를 쓰고 들어갔던 무덤들은 번번이 대형발굴단에게 빼앗기고 실패.
남은 무덤은 탐욕의 무덤 뿐. 여기서도 유물을 얻지 못하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여기가... 아, 거기 머리 위 조심해라."
"네? 끄아아악!"
목이 잘릴 뻔한 유재하는 엉엉 울었다.
이 무덤 싫어, 진짜 싫어, 그렇게 욕을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말했다.
"이 무덤은 미로야. 7개의 관문을 통해서 7개의 증표를 얻어야 보스 놈을 손에 넣을 수 있지."
"보스 놈은 단장님이 예전에 얻었던 그 고고학자의 유물이겠죠?"
"아마도. 무덤의 구조도 똑같고, 유물의 기운도 똑같으니 뭐."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덤 내부로 들어갈수록 더욱 확실해졌다.
'그 유물이다.'
심지어 그때보다 더 강해서 비보로도 사용할 수 있을 급이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어? 그런데 그 유물이면 유물 기능이 약간 겹치지 않나?"
"뭐?"
운을 띄웠던 율리안이 말했다.
"넌 까마귀 유물로 그 고고학자 유물을 대체하고 있는 거잖아."
그 말에 뭔가를 눈치챈 유재하가 외쳤다.
"아! 그러면 탐욕의 유물은 저희들한테 주세요! 어차피 단장님은 발굴스킬 가지고 있잖아!"
그러자 단원들의 눈이 전부 초롱초롱해졌다.
"세상에, 단장님 급의 발굴꾼이라면...!"
그러나 주헌은 꿈 깨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꺼져, 내 거야. 여기 유물은 특별해. 차라리 까마귀 놈을 가져가라 이것들아."
단원들은 혀를 찼다.
"와, 까마귀를 버리고 옛 유물을 쓸 생각이네."
"칫, 하긴 첫사랑은 결코 못 잊는 다던데. 유물성애자의 첫 유물이라니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안 닥쳐?"
주헌은 첫 번째 관문 앞에 섰다.
"뭐, 공략법을 안다고 해도 쉬운 관문은 아니야."
그 말에 율리안은 납득했다.
"확실히 통과하기 어려운 과제네."
[첫 번째 과제 : 1분 안에 팔굽혀펴기 1,000개]
[ps. 즐겁게 노래하고 춤 추면서]
도대체 옛날엔 이딴 걸 어떻게 클리어했대.
"그래도 지금은 굳이 이걸 들어줄 이유도 없지."
율리안은 주헌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무덤 파괴!'
그렇게 주헌이 문짝을 박살내려는 때였다.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무덤은 매우매우 질이 낮은 무덤입니다.]
[이 무덤은 매우매우 질이 낮은 무덤입니다.]
[이 무덤은 매우매우 질이 낮은 무덤입니다.]
아니 요 너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