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네 개의 세력 (1)
히틀러의 발굴단들은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아니, 저 여자가 진짜 미쳤나!
"지금 뭐하는 거야! 전부 우리 아군이라고!"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진채원은 히틀러 휘하의 발굴단을 공격했다.
쾅! 쾅!
심지어 주헌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왕급들까지도 알아서 처리했다.
그래서일까.
결국 적들이 참다참다 못해 소리쳤다.
"야 이 미친년아! 장군님이 너한테 재물을 바친 것도 잊었냐?"
그러나 진채원은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었다.
"그런 걸 받은 적이 있던가, 없던가. 기억이 안 나는데."
"뭐라고?!"
"저 배신자를 처리해라!"
그들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진채원을 처리하기는 개뿔.
"아아악!"
"끄아아악!"
진채원에게 달려든 그들은 순식간에 당하고 말았다.
미군은 물론, 판도라에서 데리고 온 왕급 유물 사용자들조차도 전부 당해버린 것이다.
거기에 유물사용자들이 불러낸 군대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적어도 수천은 쉽게 넘어갈 것이었다.
그런데 손끝하나 대지 못하다니!
'고작 여자 한 명한테!'
하지만 괜히 사황은 아닌 듯, 진채원은 오만하게 웃었다.
"선택의 기회를 주지. 히틀러를 버리고 중국 밑에 오겠다면 목숨은 살려줄 수도 있어. 아니면 서주헌한테 갈래? 거긴 쪽수도 적어서 꿰찰 자리도 많을 텐데."
그 말에 적들은 분노했다.
"듣자듣자 하니까 이게!"
"개소리 하지 마라!"
"아. 싫다는 거네?"
웃고 있는 진채원의 눈이 번득였다.
동시에 튀어나오는 흉측한 거미.
무덤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아아악!"
참으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쓰러지자, 진채원은 발로 그들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먹지 말고, 전부 쓸어 담아."
[...]
그 말에 총수 유물은 매우 못마땅한 듯이 유물들을 보따리에 빨아들였다.
평소라면 먹어치웠을 텐데 도대체 이게 뭐람.
그러나 정작 그녀는 보자기에 가득 차기 시작하는 유물을 보며 웃었다.
'데이트 때 선물로 주면 좋아하겠지?'
그녀는 주헌과의 데이트를 정말 기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뭐라고요?! 진채원한테 히틀러 처리를 맡겼다고?!"
소식을 전해들은 유재하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아니,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그러니까 지금 진채원을 이용해먹었다는 거예요?"
"그래, 사황급을 처리하기엔 딱이니까."
아니, 뭐 그건 좋다 이거였다.
하지만 조건이 데이트라니?!
유재하는 뒷목을 잡았다.
아니, 자신도 주헌의 알몸 사진으로 사기 쳤다가 죽을 뻔했는데!
"단장님이 그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아니, 알긴 알겠구나."
아무튼 일단 그 여자의 무서움은 둘째였다.
왜?
'둘이 데이트라도 했다간 진짜 잠에서 깰 마왕님이 세 명이나 있는데!'
"진짜 데이트 할 거예요?!"
그러자 주헌이 흔쾌히 답했다.
"아니? 돌았냐?"
"그, 그렇죠?"
"뭐, 거래조건만 충분히 만족하게 해주면 못 해줄 것도 없지만."
"네?!"
"그래 봐야 영화 한 편 보고 밥 먹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유재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댁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일이 아니라니..."
"뭐, 걱정 마라. 애초에 데이트를 하게 될 일도 없어."
"네? 왜요?"
"그 여자가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잖아."
"아."
그건 그랬다.
그 여자도 정신 나간 또라이로 보이지만 중국의 이익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여자였다.
이런 장난스러운 거래에 그녀가 과연 응할까?
그래서 히틀러를 처리하긴 해야겠다, 주헌도 시험 삼아 던져본 것뿐.
그런데 그때였다.
[새로 들어온 뉴스 속보입니다. 중국의 탐식왕, 진채원 교수가 미국 히틀러의 발굴단을 괴멸시켰다는 소식입니다.]
[진채원은 서주헌과 손을 잡기로 했다면서, 히틀러를 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저항하면 미국을 송두리째 괴멸시키겠다는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
문득 킨 TV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유재하나 주헌이나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주헌에게 날아온 문자.
[뉴스 봤어? 우리 언제 만날까?]
그걸 본 유재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기, 진짜 데이트...?"
"..."
주헌이 침묵했다.
그리고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유재하의 어깨를 잡았다.
"니가 대신 데이트할래?"
"돌았냐?!"
'아오, 진짜 괜찮은 걸까 정말.'
하지만 괜찮기는 개뿔.
[중국의 탐식왕이 미국의 선포왕을 괴멸시킬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국제 정세가 급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판도라는 서주헌, 매튜, 진채원, 오스틴을 유물 4대 세력으로 지정하고...]
[왕급들을 비롯한 유물사용자들이 서주헌을 제외한 3대 세력에 속속히 모여들고 있어...]
[특히 4대 세력 중, 미국의 매튜와 진채원이 부딪치고 있어 큰 전쟁이 예상되며...]
유재하는 몸을 떨었다.
이거 어째 일이 커져가는 것 같은데.
결국 오싹해진 유재하는 TV를 끄고 말을 돌렸다.
"그, 주원이는요? 아까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던데."
"괜찮아."
아까야 뭐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함박스테이크 사줄게. 어릴 때 먹던 가게 거기로.'
주헌의 한마디에 조이는 의외로 고분고분해졌다.
'그, 그래도 고작 그거 가지고...'
'내 유물도 마음껏 물고 뜯고 다 고칠 수 있게 해줄게.'
'치킨은 안 필요하십니까, 오라버니.'
누가 그 오빠에 그 동생 아니랄까봐.
아무튼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까 그거 도대체 무슨 사진이었어요?"
"사진?"
유재하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조이를 보며 속삭였다.
"네, 아까 주원이 불러낸 사진."
무슨 사진이긴.
"알몸사진."
"아... 알몸... 네?!"
"너도 볼래?"
"뭐, 뭐?! 감사합니... 아니, 뭐라고?!"
***
유재하는 정말 기겁했다.
아니 이 단장님이 어쩐 일이래!
이래보여도 자기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이 양반이!
그건 사실이었다.
'주원이가 있던 NGO에 기부금을 부어주고 지원해준 건 댁이잖아!'
뭐 정작 주원이는 권 회장이 한 줄 아는 모양이지만.
어디 그뿐인가.
'어릴 때도 동생 입양 보내려고 일부러 나쁜 짓도 했었다며!'
조이가 자신을 만나러 한국에 왔을 때 매몰차게 거절한 것도 양부모 때문이었다며!
어쨌든 티는 안 내지만 내심 동생을 아끼는 양반인데.
뭐가 어쩌고 저째?!
"알몸사진을 보여준다고?! 미쳤어?"
하지만 주헌은 태연하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자."
"!"
유재하는 안 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지라 눈이 돌아갔다.
그랬는데...
"어?"
"서주원. 3살. 이불에 오줌 싸서 어머니한테 벌 받는 사진."
"..."
젠장. 낚였다.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쟤가 완벽주의자라서, 이런 사진도 보이는 거 싫어해. 뭐, 진짜 퍼트릴 생각도 없긴 했지만."
"..."
유재하는 순간 두근거렸던 자신을 저주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그래도 그렇지, 그걸 퍼트리겠다고 동생을 협박하냐!"
"!"
"그리고 17년 동안 나는 개무시했으면서, 여자는 잘만 꼬시고 다니고."
안에서 진채원의 이야기를 들은 건지, 조이가 서럽게 훌쩍거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꽤 놀라워했다.
"벌써 작업 끝났어?"
세상에서 제일 유능한 공학사라도 한 시간 만에 끝났을 리가 없는데.
그러나 조이는 더 서러운 듯 화석 유물을 내 던졌다.
"대충 다 했어! 바보야! 이걸로 무덤에 가든 말든 마음대로 해."
"오호."
대충 했다는 주제에 엄청 정성스럽게 작업했기는.
***
"오호."
권 회장은 눈앞에 놓인 물건을 보고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유물은 다름 아닌 멀린의 유물.
정확히는 그 멀린이 만들어낸 기억의 유물이다.
"이걸로 서주헌에 대한 기억을 찾았다는 의미지?"
"네, 회장님."
그리고 권 회장 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양 쳰이었다.
주헌의 도굴단을 배신한 바로 그.
감옥에 갇혀 있던 그는 탈옥한 상태였다.
그리고 권 회장을 찾아왔다.
기억을 찾으시고, 탈옥범인 자신도 도와달라고.
"난 분명히 자네에게 다시는 얼굴을 보이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회장님...!"
"네놈이 일처리를 똑바로 못한 덕분에 내 아들들은 감옥에 들어가고 회사에 손해가 막심해."
그 말에 양 쳰은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하지만... 한 번만! 한 번만 이것을 봐주십시오!"
그는 재빨리 멀린이 만들어낸 또 다른 기억 유물을 내밀었다.
"현자왕에게 부탁해 만들어온 겁니다. 제가 그랬듯이 회장님께도 분명 도움이...!"
양 쳰은 멀린이 만든 카메라 유물로 서주헌의 미래인지 전생인지 모를 기억을 찾았다고 했다.
권 회장으로서는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놈은 과거에 왕급이라고 했다.
"네가 태양왕이었다고?"
"네...!"
"아폴론 유물의?"
"네!"
권 회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태양왕이라니, 참 분수에 맞지도 않는 명칭을 달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폴론의 유물은 나온 적 없는 유물.
당연히 놈이 가졌다는 유물은 물론, 다른 유물들에 대해서도 흥미가 갈 수 밖에.
그래서 물었다.
"그 기억의 범위는 어디까지지?"
"네?"
"그러니까 기억을 되찾으면 무덤의 정보나 유물의 정보까지 알 수 있느냐는 소리야."
"그, 그건..."
양 쳰은 머뭇거렸다.
그건 당연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건 서주헌에 대한 막연한 기억 정도.
사실 주헌처럼 방대한 기억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그 많고 많은 무덤과 유물 정보를 전부 기억하는 건 무리였다.
'중요한 곳은 서주헌이 이미 다 마킹 해버렸고.'
그럴 때 권 회장이 쾅 책상을 쳤다.
"기억 하느냐고 묻잖아."
몸을 떤 양 쳰이 황급히 대답했다.
"그래도 회장님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무덤을 발굴하실 때도 분명...!"
확실히 조지 홀튼 놈이 7대 무덤의 유물 화석을 발견했다는 말은 들었다.
그리고 7대 무덤의 유물이 모두 모이면 특별한 무덤이 열린다는 것도 알았다.
게다가 히틀러 놈도 그렇고, 진채원도 그렇고, 왕급 보다 더 강한 놈들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주헌.
'그놈이 그렇게 크다니.'
엄청난 인지도와 능력, 재력까지 겸비. 이젠 그 놈을 쉽게 끌어내리기도 힘든 위치에까지 가버렸다.
그리고 그건 욕심 많은 그로서는 무척 배알이 꼴리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좋아. 일단 써보도록 하지."
그 말에 옆에 있던 권혁수가 진심이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뭐, 그래 봐야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다.
'서주헌에 대한 기억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자신하고는 큰 관련이 없는 이야기.
곧 권 회장이 손짓하자, 양 쳰이 급하게 유물을 내밀었다.
이번엔 카메라 유물이 아니었다.
얼핏 보기엔 앨범 같이 생겼다.
[멀린이 만들어낸 추억의 앨범 (S급-영웅전설급/ 소모성 유물)]
물론 기능은 카메라 유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앨범을 열자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검은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에 손을 대는 그 순간!
"!"
마치 퓨즈가 나가듯이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이상한 장면들.
권 회장은 양 쳰이 그랬던 것처럼 전생의 자신을 보았다.
'죽여라, 서주헌 그 같잖은 놈을.'
그리고 그 장면을 본 순간 권 회장이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동시에 당황한 권혁수와 양 쳰이 권 회장을 붙잡았다.
"회장님!"
"형님, 괜찮으십니까?"
부축을 받은 권 회장은 충혈된 눈으로 손을 떨었다.
전생의 기억.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주헌에게 당한 일이 교차된 그 순간.
"서주헌 이 개새끼!"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