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화. 내 먹이야, 짜식아 (4)
"너 따위는 내 왼손 하나면 충분하지."
그리고 유재하는 다빈치 유물을 발동했다.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사방에서 기둥이 떨어지고, 바닥이 요동을 치면서 타일이 전부 뒤집혔다.
그 범위는 원룸 정도 되는 좁은 크기.
다빈치 유물로 만든 새로운 공간이었다.
평소 다빈치 노트에 그려놓았던 것이 그대로 구현된 것이었다.
물론 평범한 방은 아니었다.
"뭐, 뭐야 이게!"
채찍과 쇠사슬, 하물며 천장과 바닥에서 쇠창살과 중세시대의 고문기구가 튀어나오는 둥, 명백한 고문실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바닥은 전부 불밭, 지뢰밭!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바로 저세상에 갈 것 같은 끔찍한 방이었다.
하물며 옆방에서는 근육질의 남자들이 어서 오라며 손을 뻗고 있고!
[병아리 보이, 우리가 예뻐해 줄게.]
[어서 이리온.]
덕분에 수갑에 양손이 묶인 괴벨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자식은 도대체 무슨 공간을 만든 거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 방을 만든 장본인은 툴툴거렸다.
"아, 일리야 새끼나 쳐 넣으려고 한 고문실인데 이게 이렇게 사용되다니."
"!"
그녀는 태연한 유재하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했다.
'역시 손이 붙어 있잖아!'
잘려나갔어야 할 손 중 왼손이 멀쩡하게 붙어있었던 것이다!
'분명 잘랐었는데...!'
하지만 충격을 받은 괴벨스를 향해 유재하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겨우 이걸로 놀라시면 안 되지."
"뭐?"
유재하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보였다.
그리고 그가 꺼낸 것에 괴벨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건 당연했다.
"오, 오른손도 멀쩡하다고?!"
그랬다.
유재하의 양손은 멀쩡했던 것이다.
그 광경에 괴벨스는 덜덜 떨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둘 다 잘려나간 걸 눈으로 확인했는데!
히틀러와 궁예가 저놈은 봐줬나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거역하는 복원사들의 손들을 모조리 잘라내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었나.
'그럼 그 사이에 유물로 손을 부활시켰나?'
아니, 그건 아니었다.
'이 안에서는 어떤 유물도 쓸 수 없을 텐데.'
히틀러의 능력이 이 미술관을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아군들 외엔 유물의 능력이 제거되고 있었다.
즉 치료 유물은 쓰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어떻게 양손이...!'
하지만 곧 괴벨스는 아차 싶었다.
유재하의 손에 들려 있는 나치문양의 씰 때문이었다.
'저건!'
유재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매개체지? 능력을 못 쓰게 하는."
"...!"
남들은 모르겠지만 이 건물에는 보이지 않는 씰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그건 바로 나치문양.
그게 붙어 있는 공간에선 그 누구도 유물은 쓸 수 없었다.
서주헌이, 그리고 그 일행조차도!
그런데 그걸 유재하가 들고 있다니!
"그걸 어떻게 네가...!"
그러자 유재하가 살벌하게 웃었다.
"어떻게? 지금 비보를 가진 왕급을 무시하는 거냐?"
"!"
그 오싹한 미소와 함께 흉흉한 낙뢰가 쏟아졌다.
콰르르릉!
엄청난 굉음에 괴벨스가 몸을 떨며 유재하를 보았다.
그가 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팔찌.
'인드라 유물!'
설마 다빈치 유물로 만들어 낸 건가!
'저 자식, 진짜로 지금 유물을 쓸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곧 괴벨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봐야 진짜 인드라 유물도 아닌 짝퉁..."
그러자 인드라의 유물은 사납게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콰르릉! 콰르릉!
"꺄아아악!"
그리고 번개를 맞은 고문기구들은 새까맣게 탄 채 가루로 변해버렸다.
이에 괴벨스는 공포에 질린 듯 털썩 주저앉아버렸고, 유재하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짝퉁? 그래도 너 하나 죽이는 데는 문제 없는데?"
괴벨스는 덜덜 떨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야.'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아니 약 먹은 바퀴벌레 하나 확인사살 하려고 왔더니 이게 도대체 뭔 꼴이야!
'내가 너무 호구왕을 얕봤어!'
양손을 잃고 적합력도 잃었겠다, 가볍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손이 생긴 건지 나온 건지.'
결국 혼란스러워진 그녀가 유재하와 다급하게 딜을 하려고 했다.
"알았어! 내가, 내가 좋은 유물 정보를 줄게! 아니면 내 유물이라도!"
그러나 유재하는 버럭 화를 냈다.
"꺼져! 내가 누구처럼 유물성애자인 줄 알아? 뭐, 소개팅이면 좀 생각해 봤을 테지만."
그 말에 괴벨스는 당황하다가 웃었다.
"아, 알았어! 그럼 내 친구들 중에 예쁜 애들 많으니까...!"
"아, 됐어. 번호는 이미 다 챙겼거든."
"?!"
유재하는 괴벨스의 핸드폰을 흔들어보였다.
"그럼 잘 가, 이쁜이."
"잠깐, 잠까아안!"
하지만 잠깐은 개뿔.
번쩍이는 번개가 인정사정없이 떨어졌다.
***
"아이고, 정말 기절해버렸네."
단은 기절한 괴벨스를 툭툭 쳐보며 신기해했다.
유재하가 미끼가 되겠다고 했을 땐 제법 놀랐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정말 해치우다니.
"그래봤자 허상 아니었나?"
그렇다.
번개에 맞고 숯 덩어리가 되었을 것 같았던 괴벨스는 기이하게도 상처하나 없었던 것이다.
뭐 당연한 거지만.
"그 인드라 유물도 D급 짝퉁이죠?"
"맞아, 위력도 정전기 수준."
유재하가 만들어낸 인드라 유물은 고작해야 최하급 복제품.
심지어 그가 만들어낸 고문 공간은 전부 허상이었다.
물론 평소라면 전부 진짜를 만들어 냈을 테지만...
"역시 손이 없으니 이게 한계야."
그랬다.
유재하의 양손이 부활한 건 페이크였다.
적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다빈치 유물로 손이 돋아난 척한 것뿐.
그래야 풀파워로 다빈치 유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게 할 수 있을테니까.
어디 그뿐인가.
'이 나치 씰을 발견했다는 것도 구라.'
유재하는 괴벨스에게 보여줬던 나치 씰을 휙 던졌다.
얼핏 진짜로 보이지만 이것도 자신이 만든 가짜였다.
사실 이 구역에 있는 나치 씰은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뭐, 그래도 잘 속여 넘겼다. 하하하."
그나마 와이파이 신호처럼 히틀러의 능력이 좀 약해지는 곳을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다빈치 유물을 써서 괴벨스를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뭐 양손을 잃고도 다빈치 유물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왜?
'한 손은 멀쩡하니까.'
그렇다.
사실 그는 오른손이 잘린 직후, 꼼수를 썼었다.
바로 가짜 팔을 만든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팔까지 잘리면 곤란하니까!
"어쨌든 단, 그거 찾았어?"
그 말에 단은 웃었다.
***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겠지?"
주헌은 매튜 장군과 마주치고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장군이라는 게 누군가 했더니 너냐."
주헌은 매튜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펜타곤에 갔을 때 마주한 기억이 있으니까.
그때 뭔가 꺼림칙한 유물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설마 나치 대장 놈의 유물일 줄은 몰랐는데."
그 말에 히틀러는 좀 놀라는 듯했다.
"말도 안 했는데 무슨 유물인지 알다니."
"닥쳐, 모르는 게 이상한거지."
그의 주변에서 느껴본 적 있는 나치 유물의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리고 그걸 총괄할 수 있는 사황급 유물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저놈의 유물.
[비보의 힘이 제거 됩니다.]
[비보의 힘이 제거 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옆에 있던 단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장님, 역시..."
단원들이 가진 비보 역시 힘을 잃고 있었다.
능력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처음 보는 능력.
곧 주헌에게 밟혀 있던 궁예가 웃었다.
"너희는 이제 유물을 못 써.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멍청이... 커헉!"
주헌은 궁예의 얼굴을 콰직 짓밟으면서 말했다.
"일리야는 나치하고 관련된 표식을 찾아라."
"!"
"모든 유물은 만능이 아냐. 분명 유물의 힘을 제거하게 하는 매개체가 있을 거야."
그리고 단번에 자신의 유물을 파악한 주헌의 모습에 매튜는 웃었다.
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주헌은 너무나도 탐이 나는 인재였다.
다른 녀석들은 아무도 모르던 걸 이놈은 알다니.
그래서 그가 말했다.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나?"
"...?"
"우리 미국은 판도라에서 독립했어. 이제 자네와 적이 될 이유는 없지."
그건 진심이었다.
"그리고 아직 나오지 않는 무덤들 중, 아주 위험한 대규모의 무덤이 있어."
그 말에 주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위험한 무덤들 중 까마귀의 무덤이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네의 도굴단은 뛰어나. 하지만 소규모로는 좀 힘든 무덤도 있을 거야. 그러니 손을 잡자는 거지."
곧 장군이 말했다.
"쓸 만한 유물사용자들도 판도라에서 빼왔어.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원한다면 빼온 놈들을 주헌에게 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어떤가. 성향을 봐도 우리는 제법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럴 때였다.
"궁합?"
쿵!
흉흉한 오라가 폭주하듯이 휘몰아쳤다.
"그런 놈이 내 부하 놈을 건드렸나?"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까마귀의 와라가 그를 엄습했다.
그 엄청난 기세가 미술관 전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쿵!
덕분에 미술관 내부에 있던 적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유물에 금이...!"
"아아악! 이거 뭐야!"
자신들이 가진 유물이 쩍쩍 갈라지며 파괴되고 있었다.
"장군님!"
"서주헌 좀!"
부하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히틀러를 찾았다.
주헌은 상당히 빡친 기색이었다.
하지만 잠시 난처해하던 매튜 장군이 곧 웃었다.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유물제거의 힘이 발동됩니다.]
[유물제거의 힘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그 힘과 함께 주헌의 까마귀오라를 없애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난 자네에게 어울리는 부하를 만들어주려고 한 것뿐이야."
"뭐?"
"내 부하 중에서 쓸 만한 놈들을 붙여주지."
히틀러는 더욱 자신의 유물을 발동시켰다.
그런데 이때였다.
'!'
히틀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놈의 유물이 안 없어진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히려 놈의 유물을 제거하려고 하면 할수록, 놈의 유물의 힘이 더욱 강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지?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해주듯, 주헌의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무덤의 유물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 무덤의 유물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걸 알 턱이 없는 히틀러가 더 강하게 유물을 발동했다.
이번엔 주헌 뿐만 아니라, 주헌의 동료들까지 그 유물의 힘을 없앨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콰직!
"!"
매튜는 깜짝 놀랐다.
제거 능력을 광범위하게 발동하는 매개체.
이 미술관에 붙여둔 자신의 나치씰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녀석이!
'도대체 누가.'
그럴 때였다.
"이제 그 능력제거 유물 여기서 안 통할 걸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 주헌 일행은 좀 놀랐다.
"단!"
"재하야!"
히틀러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이.'
보아하니 단이 데리고 있는 루이가 문제였던 것 같았다.
루이 놈이 미술관에 붙어 있는 나치 씰들의 위치를 전부 불어버린 것이리라.
곧 히틀러가 탄식하며 주헌에게 말했다.
"서주헌, 나도 이 이상 거친 수는 쓰고 싶지 않아. 나와 손을 잡는다면 화석 유물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화석 유물?"
주헌이 묘하게 흥미를 느끼자 유재하가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주헌에게 외쳤다.
저 망할 유물 성애자가 혹시라도 솔깃해서 넘어갈까 봐 걱정된 탓이다.
"아, 단장님. 그거 얻으려고 쟤랑 손잡을 필요 없음! 이미 내가 하나 빼앗아서 복원했거든!"
"!"
히틀러는 그제야 유재하의 손을 자세히 보았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서 가져간 화석 형태의 미확인 유물!
그게 복원 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