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내 먹이야, 짜식아 (3)
사나운 오라가 놈들을 위협했다.
곧 주헌은 같잖다는 듯이 흉흉하게 웃었다.
"뭐? 다시 말해봐. 장군?"
주헌의 표정이 살벌해질수록, 적들은 점점 더 몸을 떨었다.
"서주헌, 서주헌이다."
"뭐야, 그 미륵불 아니었어?"
아무래도 그들은 주헌과 천신왕, 그러니까 궁예와 헷갈렸던 모양이었다.
쌍둥이처럼 얼굴이 같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놈들이 살아 있다니!
"저놈은 그 꼬맹이가 처리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 말과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쾅!
이어서 갈라진 지면을 뚫고 나오는 수많은 저승의 군단들.
그리고.
"누가 누구를 처리해?"
그 살벌한 미소와 함께 저승의 군대가 놈들을 습격했다.
쿠구구궁!
"으아아악!"
그들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파도가 치듯 밀려오는 괴물들을 막아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젠장! 두려워하지 마라! 방해꾼들을 죽여라!"
"장군님의 계획을 지켜!"
"놈들은 그래 봐야 6명밖에 안 돼!"
적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적의 숫자는 몇 천의 단위.
"물량으로 쓸어버려!"
라이플이 날아오고 불덩어리가 쏟아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물며 수면을 유도하거나 질병을 퍼트리는 유물들도 있었다.
왕급들도 섞여 있어서 그런지, 파워가 꽤 막강했다.
하지만 단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쓰기는커녕.
"허, 이것들이 누굴 물로 보나."
"단장님 급은 되어야 좀 무섭기라도 하지."
그 말과 함께 비보가 발동되었다.
선봉은 일리야였다.
성경 속의 악마는 병과 죽음을 옮기는 존재.
일리야가 가진 악마의 비보는 마치 파리처럼 주변 일대에 수두, 패혈증 등 각종 질병을 흩뿌렸다.
혹시라도, 그걸 무시하고 달려드는 적이 있으면...
"크아아악!"
"내 손, 내 손이!"
적들을 부패시켰다.
그 뒤를 이은 건 설아였다.
설아의 뱀의 비보는 재생력과 증식력이 상징.
그 회복능력은 뜻밖에도 단원이 아니라 적들에게 향했다.
물론 적들은 자신들에게 재생능력이 걸리자 낄낄거렸다.
"저 멍청한 년, 왜 우리한테 치유능력을..."
"그러게, 저 띨띨한 년... 아아악!"
재생은 재생이지만 보통의 재생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재생은 재생인데, 염라왕의 호칭에 걸맞게 죽음의 재생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암세포를 재생시키는 것처럼.
적들의 몸에 나있던 상처와 질병들의 재생을 도왔다.
"아악! 내 상처가, 상처가 번지고 있어!"
"치유 유물이 소용이 없잖아!"
"내, 내 손이! 누가 좀 도와줘!"
그러다가 혼절한 사람들이 생기면, 설아는 그 영혼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활용해 적들을 습격했다.
"저것들이 진짜!"
율리안 역시 용으로 보이는 뭔가를 타고 비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콰지지직!
"끄아아아악!"
물에 젖은 사람들을 향해 사정없이 번개를 내던졌다.
그러던 그가 주헌에게 외쳤다.
"단장! 빨리 저 고분의 입구를 뚫고... 단장?!"
하지만 율리안은 주헌을 보고 식겁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꺽, 너무 많이 먹었어."
율리안은 좀 괴로워하는 주헌을 보며 뒷목을 잡았다.
그 사이에 유물을 또!
"아오, 야! 너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랬지!"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고분화가 진행된 미술관 입구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당황한 적들이 외쳤다.
"안으로 들어간다!"
"장군님에게 연락해! 어서 능력 제거의 힘을!"
"괜찮아! 고분화 지대라서 어차피 못 들어가!"
하지만 못 들어가기는 개뿔.
쾅!
전시장의 벽은 사정없이 뚫려버렸다. 어차피 전시장은 무덤으로 변하기 시작한지 오래.
무덤파괴 스킬로 그냥 뚫어버린 것이었다.
주헌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뭐, 니들은 거기 있어라. 여기 유물은 내 거니까."
"저, 저게?!"
놈들이 뒤쫓아오려고 했지만 동아줄이 철썩철썩 놈들을 때려댔다.
안으로 들어온 주헌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유물의 냄새와 동시에 역겨운 냄새가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피 냄새?'
아무리 무덤화가 진행 중인 곳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의미였다.
'분명 사황급의 지배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묘하게 이상한 게 있었다.
'사황 중에서 장군이라고 불릴 사람은 전쟁왕 키이라밖에 없는데.'
하지만 키이라 장군은 일찌감치 자신이 제거한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역시 새로 나타난 놈인가.'
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이곳에 무덤을 만든 유물이었으니.그런데 그때였다.
"단장, 이거요."
따라오던 일리야가 눈살을 찌푸리며 뭔가를 가리켰다.
"!"
손이었다.
그것도 아주 낯익은.
***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 복원사들을 전부 죽이다니요!"
권 회장 측과 판도라 왕급들은 난리도 아니었다.
그건 당연했다.
미술관에 있던 자신의 미술가들 겸 오피셜 복원사들이 전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범인이 미군 장군이라니!
그것도 자신들한테 뒷돈을 받아먹은!
"같은 판도라 동료끼리 뭐하자는 겁니까!"
"히틀러 유물을 가졌다면서요. 누가 그딴 유물 가진 거 아니랄까봐... 미친 거 아닙니까?"
"미국 대통령은 뭐라는데요!"
그러자 판도라 이사회 수장,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아무래도 미국은 판도라를 배신한 모양입니다."
"?!"
"판도라에 소속되어 있던 상급 유물 사용자들 절반을 빼갔어요."
"...!"
그 말에 판도라에 소속된 왕급들은 충격을 받았다.
상급 유물 사용자들의 절반이라고?
그 정도면 나라 한두 개쯤은 가볍게 정복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물론 그동안은 판도라에서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런데 판도라를 배신하고 미국으로 갔다니...
'설마 미국이 그들을 이용해서 패권을 휘두르려는 건가?'
뭐 그 또라이 미국 대통령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지만.
"매튜 장군은 뭐하는 놈이지?"
"그, 그게..."
아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미국은 키이라가 사라지고 나서 쥐죽은 듯이 있다가 히틀러가 나타나자 본색을 드러낸 것이리라.
그럴 때였다.
"회장님, 미국이 TKBM 소속 멤버들도 빼갔..."
그 말에 권 회장이 빡친 듯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 새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누굴 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다 서주헌 때문이다."
그의 분노는 당연하다는 듯이 주헌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의 분노에 함께 있던 권혁수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도 더 이상 참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형님."
***
손이었다.
그것도 아주 낯익은.
"단장... 이거."
일리야가 잘린 양 손을 집어들자 따라온 단원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 손... 설마...!"
얼핏 보면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손가락에 끼어진 유물 반지가...
"이거 분명 재하의..."
"아냐, 그럴 리가 없잖..."
주헌의 표정이 좀 일그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주헌은 좀 기이하게 여겼다.
'그놈이 호구더라도 진짜 호구는 아닌데.'
이렇게 당할 리는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해주듯, 전시장 내부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삭제의 기운에 유물의 능력이 제거되기 시작합니다.]
[삭제의 기운에 유물의 능력이 제거되기 시작합니다.]
주헌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던 까마귀의 오라가 나오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그럴 때였다.
"그 손의 주인을 찾는 거라면 걱정 마."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주헌의 짝퉁, 미륵이 서 있었다.
그는 밉살맞게 웃었다.
"그놈의 손은 자르긴 했어도 목숨까지 없앤 건 아니... 커헉!"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와 함께 뭔가가 날아오르다 떨어졌다.
털썩.
땅에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한 짝의 손.
그것도 의기양양하게 지껄이고 있던 궁예의 손이었던 것이다.
그걸 본 궁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아악!"
순식간에 양손을 잃은 미륵이 괴로운 듯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의 손을 날려버린 주헌이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니가 저렇게 했냐?"
주헌의 손에 들려 있는 항우의 검이 살기를 풍겼다.
궁예는 충혈된 눈으로 욕을 지껄였다.
"이, 이놈이 감히 누구의 손을... 커헉!"
이번에는 발이 날아갔다.
뻐억!
졸지에 주헌의 발에 얻어맞은 궁예가 바닥에 뒹굴었다.
그리고 궁예의 머리를 짓밟은 주헌이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일단 그 짝퉁 얼굴부터 바꾸시지, 보는 사람 재수 없으니까."
"커허어억!"
주헌이 강하게 얼굴을 짓밟자 궁예의 얼굴이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뀌었다.
30대 초반 정도의 서양인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 자식이...!"
"잘 됐어. 내 단원을 건드린 대가는 톡톡히 치러주마."
"커허어억!"
주헌의 오라에 궁예가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일단 그쯤 하시지, 서주헌."
히틀러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둘이 마주하자 이곳의 무덤을 만들고 있던 유물이 강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주인을 찾았다는 것처럼.
***
"아씨 그러니까 밖에만 나가면 된다고! 밖에만 나가면 손이...!"
유재하는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팔이 잘린 주제에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 건가 싶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 좀 그만 좀 쫓아오라고!"
그것도 그럴 것이, 20대 중반의 여자에게 쫓기고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멈추면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상황.
"너 이리 안와?!"
게다가 그 여자가 다름 아닌 괴벨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기색에 유재하는 욕을 읊조렸다.
"아오! 진짜!"
아무래도 저 괴벨스는 판도라 소속의 풍문왕을 죽이고 그 유물을 갈취한 모양이었다.
그 결과 선동왕의 자리를 꿰찰 정도의 능력자.
그리고 그럴 때였다.
쾅!
"으아악!"
유재하의 눈앞으로 한 여자가 더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유재하는 미칠 것처럼 기겁해했다.
이번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잭 더 리퍼.
그녀 역시 유재하를 죽일 것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유재하는 거품을 물었다.
하여간 잭 더 리퍼에 이제는 괴벨스까지.
"아니 왜 난 여자가 쫓아와도 저런 애들만 쫓아 오냐, 진짜!"
그는 억울했다.
"착한 미녀들은 전부 단장한테 가고! 왜!"
결국 한참을 달리던 유재하가 갑자기 멈춰서 니나에게 외쳤다.
"알았어, 너 날 죽이고 싶은 거지. 죽어줄게!"
"!"
니나는 멈칫했다.
"근데 이대로면 나 저 여자한테 죽게 생겼거든? 그럼 너, 나 빼앗기는 거거든? 무슨 말인지 알지?"
유재하가 싱글벙글 웃자 니나의 칼날이 휙 돌아섰다.
"!"
그리고 두두두두 괴벨스를 쫓기 시작하는 잭 더 리퍼!
"꺄아아악!"
잭 더 리퍼에게 쫓기던 괴벨스는 유재하를 노려보았다.
안 그래도 저 생쥐 같은 놈이 진짜!
하지만 그녀는 괴벨스 유물로 니나를 따돌렸다.
쿵!
기본적으로 괴벨스 유물은 세뇌 계열.
니나가 뭔가에 홀린 듯이 사라지자 그녀는 웃었다.
니나 때문에 괴벨스 유물을 써서 쿨타임이 생기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래 봐야 다빈치 유물도 못 쓰는 놈이야.'
괴벨스 유물의 위험성을 알고 열심히 도망치는 기색이었지만, 그래 봤자였다.
어차피 놈이 양손을 잃은 순간, 미술적 재능에 영향을 받고 적합력이 떨어졌을 테니까.
'괴벨스 유물을 쓸 것도 없다.'
"그래 봐야 다빈치 유물을 쓰지 못하면 무섭지도... 어?!"
"딱 걸렸어."
괴벨스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 앞에 나타난 유재하의 손이 보란 듯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모두 잘려 있어야 할 유재하의 양손, 그 중 하나가!
"너 따위는 내 왼손 하나면 충분하지."
그리고 유재하는 다빈치 유물을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