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284화 (284/409)

284화. 전시회의 악마 (3)

"확실히 한심하군."

"그렇죠? 역시나."

"그래. 자네들이."

네?

평론가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자신들이 잘못 들었나?

"선생님, 지금 뭐라고..."

"눈이 삐었나?"

"네?"

"자네들은 장님이냐고 물었네."

"선생님!"

그들은 모두 놀랐다.

설마하니 앤드류 화백이 자신들에게 그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왜?

"장님이라니요. 지금 설마 유재하의 그림을 칭찬하시는 겁니까?"

"선생님께서요?"

앤드류 거장은 굉장히 깐깐한 사람이었다.

그가 칭찬한 작가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상당한 독설가.

동시에 제자를 아끼기로 유명한 사람.

서쪽에 있는 제자 이나바를 칭찬하러 갔으면 칭찬하러 갔지, 유재하를?

"선생님이 이러시면 안 되죠! 선생님도 제자분이 이겨야..."

앤드류의 명예도 올라가고, 지원도 짭잘하게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앤드류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평론가들을 보고 있었다.

이놈들이 돈을 받아먹든 말든 그걸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돈을 받아먹은 것과는 별개로 말해보게. 이 그림들에 대해서."

"네, 네?"

"정말 폄하할 작품이라고 생각하나?"

"그..."

앤드류는 유재하의 그림을 보면서 못마땅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 이 그림들."

"네?"

"거기에 유재하는 더더욱 싫고."

그도 그럴 법한 게, 그는 유재하의 스승이던 장 리처드와 절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솔직히 장 리처드가 의 그림을 표절했다고 밝혀졌지만 글쎄.

'진짜 그게 표절일까?'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스승이 다 발전시킨 그림을 가지고 본인 거라고 우기는 케이스라고 생각한 것이다.

숲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림 그릴 장소를 추천해줄 걸로 저작권을 주장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유재하를 아니꼽게 생각했다.

별 실력도 없는 놈이 유명해지려고 스승까지 감옥에 처넣고 별 난리를 쳤다고 여겼다.

거기에 자신의 제자하고 대결하게 된 구도도 마음에 안 들고.

덕분에 그는 유재하를 밟을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왜 그림을 훔치고 매장시키려고 한 줄 알겠어."

무서운 능력이었다.

아직 싹을 틔운 건 아니지만, 확실한 재능이었다.

아직 풋내기긴 해도 분명 거장의 아우라가 있었다.

과거 일세기를 풍미한 거장들의 아우라가.

'오히려 장 리처드가 표절해서 내민 그림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군.'

그것도 대단하다고 여겼었는데.

그래서 일까.

장 리처드의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나도 훔치고 싶을 지경이다.'

앤드류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면 볼수록 재능을 꺾고 싶을 정도군."

그 말을 하고 앤드류가 평론가들을 지나갔다.

"자네들도 눈이 달려 있으면 똑바로 평가하라고."

그 말에 평론가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그를 따라왔던 제자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앤드류 화백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그리고 그 소식이 서쪽에도 들어가자 전시장은 난리가 났다.

"뭐라고?! 앤드류 선생님이 그런 소리를 했다고?!"

"유재하의 그림을 칭찬했단 말이야? 그 깐깐한 독설가가?"

그의 제자인 이나바는 멍해졌고, 다른 미술가들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하 쪽의 분위기가 정말 심상치가 않았다.

"여기도 도록 주세요!"

"여기도 그림이요!"

그렇게 몇 시간 후, 밤이 되자 결과가 나왔다.

팔린 그림 수, 팔린 도록의 수, 사람들의 선호도 평가를 토대로 어느 쪽이 더 흥행했는지 그 결과가.

그리고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

[동쪽 전시장] - 유재하

-그림 47점 매진.

[서쪽 전시장] - 이나바 외 4인

-그림 52점 매진.

두쪽 다 그림은 전부 매진되었다.

하지만 굴욕적인 결과가 남아 있었다.

[동쪽 전시장] - 유재하

- 도록 총 판매수 10,000부 (매진)

[서쪽 전시장] - 이나바 외 4인

- 도록 총 판매수 3,970부

그림이 매진되면 뭘 하나.

그림이 실린 책, 도록을 사간 사람들의 숫자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을.

그뿐만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전시회장 밖에서 이루어졌던 전자투표가 있었다.

오늘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어느 쪽의 그림이 좋았느냐는 투표였다.

그리고 그 결과.

[유재하 : 41,580표 (83%)]

[이나바 외 4인 : 8,420표 (17%)]

실로 압도적인 결과였다.

그 결과에 후원자들은 충격에 빠졌고, 5인의 미술가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자신들은 거장의 유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압도적인 팬층이 있었고, 그림 스타일도 여러 조합이라 결과적으로 훨씬 더 유리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유리하니까.

"그런데 왜 유재하가 이겨!"

"유재하 그 새끼가 거장의 오라를 능가한단 말이야?!"

하물며 도록이나 그림을 사간 소비자층도 문제였다.

도록이나 그림의 가격은 공정하게 비슷하게 책정했지만 글쎄.

"유재하는 거의 90%가 일반인이 사갔어."

"우리는 90%가 후원가들인데."

일반 관람객들은 유재하를 택했다는 의미다.

물론 유재하는 1인 전시고, 자신들은 5인 전시라서 뭔가 결과가 이상해졌다고 항의했지만...

"글쎄요. 그런 거랑 관계없이 그냥 대부분이 유재하의 그림 쪽을 더 좋아했어요."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 자식, 진짜 다빈치 유물 안 쓴 거 맞아?"

그리고 한편, 결과를 보던 유재하는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또 봐도 결과는 자신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그래서일까,유재하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가 주헌에게 달려갔다.

"다안장니이임! 제가 이겼어요! 제가 이겼다고요! 단장님이 내기에서 이기셨다고요!"

비보를 지켰다며 유재하는 정말 기쁜 듯이 웃었다.

하지만 잘했다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잘했기는커녕...

"칫, 진짜 이길 줄은 몰랐는데."

"?!"

뭐, 뭐라고?!

주헌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네놈이 질 것 같아서 그 손해를 만회하려고 다른 도박도 들었단 말이야."

"도박?!"

주헌은 대답 대신 종이를 흔들어보였다.

마치 경마의 마권과 같은 종이였다.

그건 이번 전시회를 상대로 걸린 일종의 스포츠토토, 아니...

"도박?!"

그렇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라인에서는 도박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이길까 높은 배당금을 걸고!

그리고 주헌의 분노에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서, 설마 노친네들 미술가들이 이긴다에 베팅했어요?"

"어. 1억 달러나 베팅했다."

많이도 걸었다!

물론 주헌뿐이 아니었다.

"아, 틀렸군. 5백만 원은 날렸다."

"부단장, 5백가지고 뭘 그래요. 전 보증금 5천만 원 날렸어요. 하여간 호구새끼, 왜 이겨가지고."

"아... 나도 만 원 잃었다."

단원들이 하나둘씩 용지를 북북 찢는 것이었다. 결국 유재하는 뒷목을 잡았다.

"이것들아! 니들은 나한테 걸어야지 이이!"

"왜 너한테 걸어. 배당률만 보면 네 압도적인 패배였다고."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돈을 잃었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헌은 뭐 괜찮다는 듯 흔쾌히 돌아섰다.

"뭐 1억 달러 쯤이야 괜찮아."

"와, 역시 통 크시네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아니. 내 돈 아니거든. 재하 놈 주려고 했던 연봉."

그 말에 유재하는 주헌의 멱살을 잡았다.

"제정신이야?! 내 월급으로 무슨 짓이야아아! 왜 거기에 걸어?!"

"연봉 안 받겠다고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나 믿는다며! 어? 다들 너무한 거 아냐?!"

"시끄러워. 니가 질 게 뻔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만회하려고 했지."

"$#*$*!"

유재하는 씩씩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라도 나한테 거는 건데.

배당률 보니까 맞추기만 하면 최소 몇십 억은 꿀꺽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승자도 있었다.

"어, 저기... 전 맞췄는데요."

"?!"

단원들은 종이를 흔들어 보이는 아이린을 보며 식겁했다.

"유재하한테 걸었어요?!"

"...어, 저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요?"

안되기는.

"만세! 그 돈 저한테 기부... 커헉!"

주헌은 유재하를 밟으면서 아이린의 손을 잡았다.

"그 돈으로 우리 회식이나 가죠."

"흥, 됐거든! 어차피 오늘 돈 그럭저럭 많이 벌었거든? 날 안 찍다니, 아이린 빼고 다들 지옥에나 떨어져라. 나 혼자 스테이크 썰러 갈 테다."

그러자 주헌이 환하게 웃었다.

"아, 맞다. 네가 고친 계약서 내용은 잊지 마라."

"...네, 네?"

"수익 분배는 10:0이다. 참고로 내가 10."

"뭐, 뭐라고?"

주헌은 오늘 번 수익을 가져가며 웃었다.

"네가 직접 고친 거니 이견 없지?"

"끄아와악!"

***

한편 그 무렵이었다.

쾅!

유재하의 선배 줄리앙이 도록을 집어 던지며 씩씩거렸다.

"빌어먹을 유재하!"

유재하의 승리 소식에 줄리앙은 수치심에 손이 떨렸다.

유재하한테 진 것으로도 화가 나는데, 뭐가 어째?

"앤드류 선생님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앤드류 거장을 존경하는 그였다.

앤드류에게 교육을 받고 싶어서 학교를 바꿨을 정도로.

하지만 자신조차도 그 앤드류한테는 참혹하게 까였었는데!

"만년 열등생이...!"

그는 얻어온 유재하의 도록을 찢었다.

그러더니 미켈란젤로 유물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같은 미술인으로서 이 수까지는 안 쓰려고 했지만, 할 수 없지."

유재하는 다빈치 유물의 소유자.

하지만 그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유일하게 질투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당시 20대의 젊은 미켈란젤로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스타일도 성격도 세대도 전혀 달랐던 두 미술가.

어쨌거나 라이벌 유물은 무서운 것이었다.

"이걸로 네 그림 재능을 없애주마."

다빈치 유물은 기본적으로 미술적 재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재능을 없애버린다면?

'다빈치 유물도 못 쓰게 되고, 그림도 평생 못 그리게 되겠지.'

곧 그가 흉흉한 유물을 발동했다.

그리고 효과는 바로 나타나려고 했다.

"!"

그 무렵,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던 유재하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팬을 잡은 손에 심한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곧 유재하가 펜까지 놓치자 동아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왜 그래?

유재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긴장해서 밤을 샜더니 그런가.'

곧 통증이 사라지자 유재하가 다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줄리앙이 웃었다.

"방금 건 맛보기다."

마침 내 그가 본격적으로 유물을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푸욱!

혼자 있던 줄리앙의 가슴이 잔인하게 뚫렸다.

"커, 커헉."

날카로운 검이었다.

갑옷을 입은 성기사가 줄리앙의 심장을 정확하게 뚫은 것이다.

그냥 성기사가 아니었다.

'그림...!'

그건 그림이 실체화가 된 만들어진 성기사였다.

그리고 울컥 피를 토하던 줄리앙은 그걸 만들어낸 인간을 확인했다.

바로 맞은편에서.

'저, 저 자식...!'

줄리앙은 결국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미안하지만 넌 안 돼."

루이였다.

"유재하와 그 일당을 처리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거든."

루이는 태연하게 줄리앙한테서 유물을 가져갔다.

그중에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유물.

심지어 품속을 보아하니 다른 동료들의 유물이 있었다.

줄리앙은 피를 머금은 눈빛으로 루이를 쏘아보았다.

"너, 이 새끼!"

그러자 루이가 환하게 웃었다.

"뭐야, 심장을 뚫리고도 아직 안 죽었어? 짝퉁 비보더라도 역시 초인은 초인이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루이가 손짓을 했다.

"뭐, 초인도 불사는 아니니까. 언젠가는 죽겠지."

성기사가 검을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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