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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83화 (283/409)

283화. 전시회의 악마 (2)

"잠깐 저 사람...!"

신랄하게 까대던 평론가들이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왜 하필 저 사람이.'

유재하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경호원과 함께 나타난 그의 등장에 미술관 내부가 술렁거렸다.

그건 유재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이 인간이 왜.'

분명 단장님하고는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니었나.

그리고 그 단장님의 부하인 자신 역시 찍혀있을 게 분명한데.

주헌 역시 드물게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있었다.

물론 단원들 외엔 감지 못할 수준이지만.

이에 설아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서, 설마 보복하려고? 여기에?"

"뭐, 그러고도 남을지 모르지."

미국의 왕급 장군 키이라를 없애버렸고, 지난번 펜타곤 사건 때도 미국의 유물을 탈탈 털어가려고 했으니까.

권 회장 짓으로 속여넘기긴 했어도 그들의 의심이 거두어진 것은 아닐 것이리라.

게다가 단과 만났던 살인사건 재판 때도 그렇다.

소문에 의하면 단을 살인범으로 만들었던 진범.

윌 가의 아들 스티븐이 미국 대통령과 연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여러 가지로 자신들을 좋게 볼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후원한다는 이나바 타이치가 저쪽에 있다.'

즉 미국 그레이 대통령은 엄밀하게 말해 저쪽 편이라는 의미였다.

유재하의 그림을 비난하면 비난했지, 좋게 바라볼 리가 없는 사람.

도굴단원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평론가들도 웃었다.

'적지를 살펴보러 왔나보군.'

'유재하를 흠집 내러 왔나?'

'뭐, 자기가 아끼는 이나바가 지는 건 싫겠지.'

하지만 뜻밖에도 그레이 대통령이 그림을 살 의사를 비치며 이렇게 말했다.

"날 후원자로 받을 생각 없나?"

"네, 네?!"

"자네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드는데. 분명 후원가가 필요할 거야."

"아니 저, 저기..."

그런데 그럴 때였다.

"필요 없습니다."

주헌이 웃으며 나타났다.

웃고 있지만 어째 살의가 느껴졌다.

대통령만 아니었으면, 아니 여기에 사람들만 없었으면 그는 당장 꺼지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의 후원가는 접니다. 후원가는 더 필요 없어요."

그러자 그레이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그거야 포식왕이 정할 문제가 아니지."

"당신이 정할 문제도 아니지."

그레이 대통령은 주헌의 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상당한 압박이었다.

젠틀하게 대하고 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압력이 국가원수를 위협할 정도라니.

'키이라와 맞먹는... 아니, 좀 더 강하다.'

자신도 유물을 얻었겠다, 나름대로 자신 있게 싸움을 걸어본 것이었는데 어림도 없어보였다.

'확실히 만만한 놈이 아니군. 그새 더 성장했어.'

비보를 얻기 전에 봤을 때와는 또 달랐다.

권 회장이나 판도라에서 경계를 하고 드는 것도 당연했다.

결국 그는 상대를 바꾸었다.

"유재하, 아무래도 이 포식왕은 장래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후원가는 아닌 것 같은데. 갈아치우는 게 어떤가?"

그러자 유재하가 눈을 초롱초롱 밝혔다.

"저야 미국 대통령이 후원해주면 무지하게 좋은... 커흐읍!"

유재하는 주헌의 지배력에 질식할 뻔했다.

주헌의 까마귀가 유재하의 피닉스를 뜯어먹을 기세였다.

결국 유재하가 주르륵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저, 죄송하지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레이 대통령이 웃으면서 돌아섰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하게."

"바뀌긴 뭘 바뀌어. 꺼지라 해."

대통령이 사라지자 주헌이 성질을 내고 유재하가 훌쩍거렸다.

"아씨, 어떤 의미론 진정한 의미의 첫 후원가일 텐데. 왜 그걸 막아요... 큭!"

"이 바보야, 저 인간이 순수한 마음으로 후원하려는 줄 알아? 빼가기라고! 빼가기!"

"!"

유재하의 머리를 철썩 친 건 설아였다.

"얘가 붕붕 떠서 평소와 다르게 눈치를 잃었네."

율리안도 한마디 했다.

"그래. 저들은 미술가 유재하가 아니라 복원가이자 왕급 유재하가 필요한 거야."

미국은 지금 주헌 때문에 사황 키이라를 잃었다.

그리고 그 탓에 미국은 현재 제1의 유물국 타이틀을 잃지 않았나.

지금 유물 강대국은 중~러 연합이었다.

중국에 진채원과 총수가 있는 만큼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 외 EU연합이나 중동, 한국, 일본들도 빠르게 유물을 활용한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물사용자들은 국가에 귀속되었다.

'자국에서 왕급을 키워낼 수 없다면 빼내올 수밖에.'

그리고 주헌의 도굴단은 특이하게도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게릴라.

미국의 군대도 박살 낼 능력과 홀튼가의 정치적, 경제적 방어가 없었으면 진작 어딘가에 매장당하거나 먹히고도 남았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여러 가지로 탐스러운 먹잇감이라는 의미였다.

덕분에 접근금지 유물을 빵빵 깨부순 지금, 유재하에게 침을 흘리는 놈들이 몰려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인데요."

"안녕하세요!"

주헌은 무서워서 다가갈 엄두도 못 내겠고, 그 단원들이라도 빼가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림 멋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기업도 잘 부탁드립니다."

결국 그러기를 수십 번 반복.

유재하는 탄식했다.

"그림 보러 온 사람은 하나도 없네."

진심이었다.

그나마 그림을 훑어보고 오기라도 한 사람들은 양반이었다.

유재하가 좀 시무룩해지자 주헌이 한마디 했다.

"예상을 못했던 건 아니잖아?"

그러자 단원이 수군거렸다.

"그냥 단장님이 너무 일을 크게 벌여서 그런 거 같은데..."

"차라리 홍보도 않고 소규모 전시회였으면 나았을지도, 그럼 순수한 관람객들만 왔을지도..."

그러자 주헌은 드물게 땀을 삐질 흘렸다.

하지만 유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런 기회를 주신 것만 해도 엄청 감사한 거죠. 어디서 이런 개인전을 해보겠어요."

이것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유재하는 킬킬 웃었다.

"괜찮아요, 진짜 한 장도 안 팔려도 상관없어요.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고."

이렇게라도 봐주는 게 어디냐고 했다.

단원들은 측은해지고 말았다. 곧 주헌이 굳은 결심을 한 듯 흉흉하게 멍멍이들을 불러냈다.

"잡것들은 다 쫓아내고 오마."

이에 단원들도 돕겠다며 한마음으로 출동 했다.

"저도 귀신으로 쫓아낼게요."

"난 벼락이라도 쓰지."

"전 칼이라도."

"그럼 전 파산의 힘이라도!"

그 광경에 유재하는 기겁해서 울부짖었다.

"아이고오오! 됐어! 됐다고! 니들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오오! 사람들 다 도망가겠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며 평론가들이 하하하 배꼽을 잡고 비웃었다.

자신들도 권 회장 측에서 돈을 받고 온 거긴 하지만...

"역시 그림이 후지다니까."

"아무리 팔리는 그림이 중요하다지만 저래서야 점수따기용 그림이잖아."

"진짜 그림을 보고 사가는 사람이 없어."

예술업계에 보면 흔히 있다.

유명인의 자식이거나, 유명인이 전시회를 낸 경우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림을 사갔다.

'유재하도 딱 그 꼴이군.'

그래봐야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작가1 중에 하나였다.

물론 그 업계의 권위자나 후원가들의 마음에만 들면 작가 생활은 계속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도 왕급이라 다행이네. 그걸로 그림쟁이 홍보는 계속 할 수 있을 테니까."

"복원해주면서 그림도 떨이로 팔라고 하든가. 하하하."

"자자, 돈도 받았겠다. 어서 글이나 쓰러 가자고. 유재하의 전시전은 세계적으로 주목하고 있으니까."

"제목은 Terrible, Horrible로 채우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평론가들이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저, 그림 살 수 없나요?"

"네, 네?"

유재하의 앞에 관람객이 한 명 있었다.

***

나이가 있는 여자였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 둘러보는데 오래 걸렸어요."

여자는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 저희 학교에 걸고 싶은데, 어떻게 살 수 있죠? 아, 혹시 팔지 않는 건가요? 죄송해요, 그림 같은 건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어서..."

침묵이 흘렀다.

교사로 보이는 여자는 정말로 그림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곧 유재하가 멍하게 있자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어, 저기...?"

동시에 유재하가 벌떡 일어섰다.

"가, 감사합니다!"

"살 수 있나요?"

"네, 네, 네네! 사, 사가실 수 있어요! 저, 저기 원하시는 그림 옆에 구매의사 스티커를 붙여주시면 직원분이...!"

"네. 앞으로도 전시회가 있으면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재하는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인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팔렸다, 처음으로!'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이 팔린 것이다.

위조당한 작품이 아닌 본인의 그림이!

그는 그 사실이 너무 기뻤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유재하에게 우르르 다가왔다.

"작가님이시죠?"

"그림 너무 좋았어요."

이익과는 관계없는 순수한 관람객들이 다가와 그림에 관해 묻고, 더 나아가 다음 전시회 일정을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매 희망자가 늘어나면서 그림 여기저기에 입찰 스티커가 붙기 시작했다.

전시한 모든 그림들에!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단원들은 기뻐했다.

직원들도 놀랐다.

"세상에, 벌써 저만큼! 전시 첫날인데!"

"내놓은 도록도 다 팔렸어요! 인쇄소에 증쇄 요청했고요."

그리고 그 광경에 평론가들이 입을 떡 벌리기 시작했다.

확실했다.

관람을 왔던 사람들이 유재하의 그림이며, 그림과 설명이 실린 도록이며 전부 사가기 시작했다.

서쪽 전시장처럼 광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추세가 심상치 않았다.

확실한 대중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평론가들이 혹평을 한 그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야, 이거 이슈거리야!"

냄새를 맡고 온 기자 몇이 신이나서 평론가들에게 달려왔다.

"혹평하신 그림인데 사람들이 많이 사가네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보십니까?"

이에 평론가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봐야 그림이 싸니까 사가는 겁니다! 박리다매죠."

"네? 싸요? 아... 평소 보시던 거장들 그림들 하고 비교하시면 좀... 확인해보니까 신인 평균인데요. 박리다매로 보기엔..."

"그래봐야 부호들에게는 별 거 아닌 가격입니다."

"일반인들도 많이 사가고 있는데요."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평론가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대중의 인기와 작품성은 별개로 놉니다!"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것이 작품성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하며 그들이 저들끼리 이를 갈았다.

"저희는 안 틀렸어요. 그냥 뭣도 모르는 것들이 이런 거 사면 있어 보이는 줄 알고!"

"바보들이 너도나도 사가니까 좋은 건 줄 알고 사는 거지!"

그럴 때였다.

"야, 들었어? 유재하 쪽 분위기 좋다던데?"

"뭐?"

서쪽에서 작품을 팔고 있던 5인방이 동쪽의 소식을 접했다.

도망갔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되돌아오고, 순조롭게 그림을 팔고 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유재하 쪽, 구매자들 몰려서 벌써 경매로 구매방식이 바뀌었대!"

"다음 전시회 일정에 대해 물어서 답해주기도 곤란하다나."

"도대체 뭘 그렸길래."

동쪽으로 몰려가는 큐레이터들의 모습에 5인의 작가들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 자식, 진짜 다빈치 유물 안 쓴 거 맞아?"

하지만 그중 한 명, 이나바 타이치가 웃었다.

"그래봐야 왕급의 그림이라 흥미를 갖는 거지. 팔면 돈이 될 거라 보는 거야. 돼지 놈들."

"하지만 우리 스승님 앞에서는 그런 꼼수도 안 통해."

"뭐? 스승님이라면... 앤드류 화백?"

세계에서 유명한 거장이자, 현재는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그 분이 여기 왔다고?"

"어. 내 그림 보러 오셨지. 겸사겸사 유재하 것도 보고 오신대."

그러자 그들은 낄낄 웃었다.

"와, 망했네. 앤드류 화백 엄청 깐깐한데. 독설가잖아."

"입김도 세잖아. 그 사람 말 한마디면 이미지가 바로 낙인찍힌다고."

"심지어 장 리처드하고 꽤 친하지 않았어? 유재하가 장 리처드를 감옥에 넣었다고 불만을 품던데."

"아. 유재하 끝났네, 끝났어."

그리고 그 말대로 유재하의 전시장에 앤드류와 세계 거장들이 들이 닥쳤다.

평론가들과 큐레이터들, 기자들, 그리고 미술품 상인들의 이목이 쏠렸다.

"앤드류 화백!"

"와. 쟁쟁한 작가들 다 왔어!"

그들은 유재하의 그림을 관람했다.

일반인들도 술렁거렸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알 정도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재하에게 혹평을 날렸던 평론가들은 신이 나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선생님께서는 이 그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시 장 리처드의 짝퉁이죠?"

그러자 그림을 빤히 보던 앤드류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

"확실히 한심하군."

"그렇죠? 역시나."

"그래. 자네들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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