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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82화 (282/409)

282화. 전시회의 악마 (1)

"뭐 괜찮아. 권 회장의 미술가들한테 져도 난 화내지 않을 거야."

그래! 화는 안 내겠지!

대신에 죽이겠지!

유재하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림을 평가받기도 떨리고 무서운데, 거기에 단장님의 보복까지 생각을 해야 하다니.

'게다가 왕급들까지 온다고?'

뭐 오는 건 당연할 것이다.

지금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가진 정통 비보를 빼앗는 일.

그리고 다시 유물을 독점해 세계 경제와 나라를 장악하고, 그들만의 대체국을 건설하는 일일 테니까.

과거 나라의 연합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된 TKBM이 그러했듯이.

그 일에 방해가 되는 자신들을 없애려 하겠지.

"그런데 왜 하필 여기냐고오오!"

안 그래도 떨려서 미치겠는 자리에!

뭐 아무래야 좋았다.

"그건 그렇고 10억 달러 내기라니요!"

물론 평소라면 자신도 재밌어서 참가할 계획일 테지만...

"왜 하필이면 제 그림으로 멋대로 내기를 거는 건데요!"

유재하가 눈을 부릅뜨자 주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이런 걸 좋아할 녀석이라 오히려 투지를 불태울 거라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안줏거리가 된 거 같아 자존심을 건드렸던 걸까.

"기분이 나빴다면..."

"아니이이! 그게 아니라 왜 단장님이 지는 도박을 하려고 하냐고오오!"

유재하는 오열했다.

그는 벽에 붙은 아이돌 축전 포스터 같은 것을 탕탕 쳤다.

[빛나는 원석, 유재하.]

그건 거의 거대한 빌딩의 옥외광고에나 걸릴 법한 거대 포스터였다.

아니, 공주님들이 자신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붙여준 건 고마운데... 그래도!

"제가 무슨 전시회만 열면 대호평을 받는 거장도 아니고! 뭣도 없는 햇병아리 개인전에서 누가 그림을 막 사간다고 해요!"

아, 그쪽이었나.

"저기요, 단장님 모르시나 본데 저쪽 미술가들 엄청 쟁쟁하거든요? 총리한테 상 받은 놈도 있거든요! 이미 진다니까? 그리고 10억 달러는 어디서 구하게!"

"글쎄, 나라에 널 팔면 그 정도는 챙겨줄 것 같은데."

"#$&*#&*!"

진짜 팔 생각이냐! 이 자식아!

유재하의 표정에 주헌은 킥킥 웃었다.

"돈을 걸었다는 건 농담이고."

"아, 역시 그렇죠? 하긴 단장님이 그딴 내기를 할리 없지. 난 또 단장님 생돈 날릴 까봐...!"

"그 대신 비보를 걸었어."

"?!"

주헌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면 알지?"

"#*#*!"

진심이냐!

유재하가 오열하자 설아가 주헌에게 속삭였다.

"너무 세게 나간 거 아니에요? 본인 완전 넋이 나갔는데?"

"괜찮아. 기죽지 말라고 힘을 넣어준 거니까."

글쎄.

본인은 정신줄을 놓은 거 같은데.

곧 주헌은 밖을 보았다.

"자자, 유재하. 네 첫 손님이다. 준비해라."

그 말에 유재하는 얼어붙었지만 그래도 내심 밝아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꺄. 저쪽에 줄리앙이랑 이나바가 있어."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이쪽으로 올 줄 알았던 관객들이 전부 다른 전시장으로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가 이상하게도 유재하의 전시를 피해가기 시작했다.

***

역시 이상했다.

"주헌 씨, 역시 사람들이 이쪽으로 아무도 안 오고 있어요."

아이린은 서쪽으로만 몰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지금까지 일반 관람객들은 제로.

그에 비해 권 회장과 새 왕급들이 지원하는 서쪽 전시장은 만원.

그걸 보며 아이린이 물었다.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한 명도 안 온다니..."

그러자 단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듣자하니 저쪽에는 미국 대통령이 후원해주는 작가가 있다던데."

"다들 그림만 내놓으면 전부 매진일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그 말에 유재하는 점점 작아졌지만, 일리야가 결정타를 날렸다.

"뭐 저쪽하고 비교하면 솔직히 그림이 구리잖아. 내가 봐도 별로인데 뭐."

평소처럼 시비를 건 것뿐이었는데, 유재하는 세상이 무너진 듯 절망했다.

"10억 달러... 10억 달러..."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그는 벌써부터 팔려갈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이래서야 저쪽한테 이기기는커녕 그림 한 점도 못 파는 거 아닌가.

아니, 애초에 그림을 팔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했지만...

"하하하하. 자 어느 나라에 팔려갈지 후보부터 정하죠. 개인적으로 미녀가 많은 나라면 좋겠네요."

"야야, 정신 차려."

동아줄도 낑낑거리며 유재하를 위로했다.

하지만 확실히 이상하긴 좀 이상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죄다 저쪽으로만 몰려가다니.

그럴 때였다.

"꺄. 이나바의 작품은 진짜 최고야. 사람을 매료시키는 게 있다니까."

바로 앞을 지나가는 관람객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저쪽 전시회를 보고 나가려는 것이리라.

손에 들려 있는 도록이 그 증거였다.

물론 유재하의 전시회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거 잠깐 내놔봐."

"꺄악!"

저쪽의 매상을 올려주기 싫어서 일부러 구입하지 않긴 했지만, 적에 대해 알긴 알아야지.

'얼마나 대단한 걸 그렸길래.'

하지만 주헌은 도록에 실린 그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무리 예술이 주관적이라고 해도 이게?'

팔릴 그림은 아니었다.

딱히 예술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래도 보면 알았다.

'성의도 없고, 수준도 낮아.'

그런데도 서쪽 전시장에서는 서로 그림을 사겠다며 입찰 딱지가 붙었고, 모두가 신이 내린 작품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그들이 이상하게 여길 때였다.

"역시 저쪽은 파리만 날리네."

수석 복원사 줄리앙, 그리고 이번에 작가로서 참가한 멤버들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다빈치 유물을 썼어야지, 등신 유재하."

"손님이 아예 없으면 끝인 거 아니야?"

그렇다.

오늘 유재하와 대결하게 되는 5인의 작가들은 모두 유물 사용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램브란트 등 세계 거장들의 유물을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시대를 풍미한 천재들의 유물이라면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거장들의 아우라를 자신들의 그림에 담아낸다고 해야 하나.

상을 받은 것도, 기업과 정부의 후원도, 자신들이 천재라 칭송받는 것도 전부 그 덕이었다.

"하여간 저 개돼지들, 엄청 열광하는 것 봐라. 어쨌든 내 작품은 오늘 매진 확정이다 확정!"

"하하. 돈 벌기 이리 쉬운 줄 몰랐는데."

"대충 그려도 저렇게 내놓는 족족 사간다고 줄을 서니까."

하지만 그들은 유재하를 내심 견제했다.

그건 당연했다.

"야,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유재하도 다빈치 유물 가지고 있잖아."

"솔직히 다빈치 유물이면 게임 끝 아니냐? 못 이기면 우리 후원금 끊기는데. 서주헌만 좋은 거잖아."

예술가의 우위를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물들은 인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인간들에게 큰 힘을 발휘하는 법.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도면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그랬잖아. 걘 자기 작품 할 땐 유물 안 쓴다고."

말한 건 루이였다.

"넌... 분명 여기에 합류한 6번째 작가."

"진짜 네 말이 사실이겠지?"

그러자 루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맞다니까. 유물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건 치트키라나 뭐라나. 쓰레기 짓이라네?"

그 말에 다른 예술가들이 같잖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뭐래, 아주 대 작가님 납셨어."

"애초에 유재하 걔 새로운 화풍으로 새롭게 전시했다는데? 여기 온 평론가들한테 창피를 좀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걸."

"하긴 작정하고 있다지."

"그래도 설마 서주헌이 비보를 걸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자기 부하를 믿는 건가? 아니면 이길 묘수라도 있나?"

"그냥 생각이 없는 걸걸?"

"하긴. 접근 금지 유물을 쓰고 있는 이상 저쪽엔 손님들이 아무도 안 갈 테니까."

"그래봐야 파리만 날리지."

그런데 그때였다.

"그래. 그 파리 한 번 여기도 거하게 날려줄까?"

"?!"

전시장 대기실에 있던 작가들은 깜짝 놀랐다.

목소리는 천장에서 들렸다.

***

"너, 넌!"

"이상하다 싶었어. 우리 호구가 병신이더라도 그림까지 병신은 아닌데."

"악마왕!"

천장에 거꾸로 붙어 있는 건 다름 아닌 일리야였다.

그리고 그의 같잖다는 시선은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루이에게 향해 있었다.

"아, 너구나? 그 도망쳤다는 꼬마 사기왕."

"!"

그러나 루이를 보던 일리야는 곧 기분이 나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왜?

저놈에게서 질이 나쁜 악신 유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느낌이 나치 쪽인데.'

설마 히틀러?

일리야는 미간을 좁혔다.

"뭐 됐어. 네 정체는 내 알 바 아니지."

단지.

"경쟁은 공평해야지? 어?"

일리야가 눈을 번득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이게 뭐야!"

전시장 내부에 강력한 돌풍이 불면서 엄청난 숫자의 파리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아악!"

파리떼들은 흉측하게 그림에 달라붙는 둥, 서쪽 전시장 내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나가! 빨리 나가!"

전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꺄아아악! 피! 피!"

사람들에겐 피해가 없었지만, 역겨운 냄새와 흘러내리는 피는 사람들을 내쫓았다.

덕분에 전시장 안에 있던 작가들이 일리야를 쏘아보았다.

"저놈이!"

확실했다.

저 힘은 솔로몬의 악마도, 마법서 유물의 힘도 아니었다.

'비보의 힘!'

일리야가 먹은 비보는 악마왕의 유물.

성경의 악마 사탄(바알세불).

시험하는 자, 마귀의 왕, 속이는 자, 방해자, 대적하는 자, 악한 자, 역병을 옮기는 자, 타락한 자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그 악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작가들이 일리야와 대적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허 스톱."

"뭐?"

"부디 우리 단장이 힘을 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

일리야가 바라본 곳에는 주헌이 있었다.

팔짱을 낀 채 허튼짓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붉은 눈빛.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까마귀 오라가 말뿐인 협박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쪽도 오늘은 기껏 유물 안 쓰고 얌전히 있었으니, 니들도 얌전히 있으라는 의미일까.

곧 주헌의 입꼬리가 올라감과 동시에 뭔가 펑펑펑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

주헌이 접근금지 효력의 유물을 죄다 깨부순 것이다.

[사람들의 출입을 방해하던 유물이 박살 났습니다.]

곧 사람들이 움직이자 줄리앙이 악신 유물을 쓰려 했다.

"저것들을 콱!"

하지만 곧 다른 동료들이 말렸다.

"됐어. 곧 회장님들도 오실 텐데 난동 피우면 골치 아파져! 파리랑 피도 사라졌으니까 됐어!"

"열심히 발버둥 쳐보라 그래. 그래봐야 유재하는 유물도 안 썼으니까."

"그래. 그림이 한 장이라도 팔리긴 하겠어?"

그러자 유재하의 선배 줄리앙과 유재하의 여자 후배가 웃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그래봐야 우리 중에 실력도 제일 열등생이었는데."

한 편, 그때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동아줄이 눈을 반짝였다.

사람들이 왔어! 왔어!

모처럼 리본까지 달고 있는 동아줄이었다.

동아줄은 기쁜 듯이 시무룩해져 있는 유재하의 등짝을 찰싹 찰싹 때렸다.

어서 기운 내! 기운 내!

그리고 전시장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그림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어, 화풍이 다르네. 장 리처드의 원작자라고 들었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재하가 바짝 긴장했다.

"뭐야. 난 완전한 그 화풍을 기대했는데, 왜 바꿨지."

평론가들이었다.

"흠, 역시 곁다리인가. 별로네."

"장 리처드 거장의 원작자라길래 기대했는데."

"제가 그랬잖아요. 짝퉁이라고."

그 말에 유재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역시 자신으로는 안 되나.

사실 리처드가 빼앗아갔던 그 풍으로 다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다른 방법을 택했다.'

거기서 더 발전된 형태로.

그러나 꽤나 유명한 평론가들이 비웃음을 흘렸고, 사람들 역시 술렁거렸다.

"역시 그 그림도 거장이 가져가서 떴던 거 아냐? 정작 원작자가 형편 없는데?"

"더 볼 것도 없어. 저쪽 팀에나 가자고."

그 말에 도록을 판매하던 유재하가 고개를 떨궜다.

단원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유재하를 보았다.

주헌이야 늘 한결같은 무표정이었지만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 그림, 자네가 그린 건가?"

"네, 네?"

눈앞에 있는 건 나이든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등장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잠깐 저 사람...!"

신랄하게 까대던 평론가들이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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