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스카우트 전쟁 (5)
"아, 저기, 거기는 좀..."
"조금만 참아봐."
"아, 잠깐... 앗!"
조이는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힘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가슴을 훑는 거친 손놀림.
그 손은 배끄러운 배를 지나서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리를 짓누르는 순간.
"앗! 아프다고! 이 바보야!"
거친 신음이 조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낀 탓이었다.
"미안해, 많이 아팠어?"
"아까부터 아프다니까!"
손을 얼른 뗀 건 설아였다.
그랬다.
조이는 졸지에 알몸이 되어 설아에게 몸수색을 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뭐, 에드워드가 뽑아내려고 했다던 비보 유물을 찾아야 한다나 뭐라나.
정확히는 주헌이 가진 비보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악신의 유물 쪽이지만.
그리고 이때였다.
"그래서 비보는 아직 못 찾았어?"
밖에서 들려오는 성화에 조이가 화들짝 놀랐고, 설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여간 단장님도 참.'
"딱히 발견된 건 없어요. 악신 유물도 없고요."
그러자 문 하나 너머로 주헌의 분노가 느껴지는 듯했다.
정말 없는 거야?
정말 없는 거냐고! 하는 듯한 흉흉한 오라.
뭐 설아가 못 찾은 걸 보면 정말 없는 거겠지만...
"설아는 잠깐 나와봐. 나도 확인해볼 테니까."
그 말에 설아와 알몸이 된 조이는 동시에 기겁했다.
"오빠 미쳤어?!"
"다, 단장님!"
애초에 주헌이 조이의 옷을 벗기려는 걸 비명을 지르며 막은 게 설아였다.
설아는 자신이 대신 보겠다며, 조이를 옆방으로 데리고 갔던 참이었다.
그런데 뭐?
"나와. 나도 직접 확인하게."
"단장님! 잠...!"
하지만 문은 와장창 부셔지고 일리야와 유재하는 슬쩍 보다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순간적으로 본 봉긋 솟은 가슴, 쏙 들어간 허리와 배... 까지.
이불로 금방 덮어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확실히 끝내주는 몸매의 실루엣은 봤다.
물론 봤다고 하면 단장한테 죽겠지.
그리고 문이 부셔진 방 너머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뭐하는 짓이야! 뭘 봐! 어딜 만져! 이 변태야!"
"닥쳐, 돼지야. 통짜 몸매 볼 게 뭐가 있다고!"
안에서는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소리, 아니 정확히는 조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헌은 조이의 몸을 꽤 꼼꼼하게 살폈다.
물론 단순히 유물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마치 미세한 병.
유물증후군의 흔적을 캐치하려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러길 한 몇 분.
"정말 없군."
주헌은 쯧 혀를 찼고, 조이는 설아의 가슴에 안겨 엉엉 울었다.
아니, 세상에 오빠란 놈이 17년 만에 나타나서 연구실을 부수지 않나, 핸드폰은 동강내지 않나, 남의 유물을 다 털어가지 않나.
심지어 다짜고짜 신체검사를 하지 않나.
그것도 한낱 유물 하나 때문에?
"진짜 콱 죽어라...! 이 바보야!"
저런 걸 그동안 걱정하며 살았던 자신이 바보지.
조이는 정말 서러워했다.
"17년 만에 봤으면 그동안 잘 지냈느냐는 말 한마디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흑."
그녀는 드물게 눈물을 살짝 보였다.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하지..."
조이는 주헌을 좋아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었으니까.
살가웠던 적은 그다지 없었지만, 그래도 어릴 땐 은근히 잘해주곤 했는데 왜 입양을 계기로 저렇게 된 건지.
'뭐 전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런 그녀를 설아가 토닥여주었다.
"걱정 말아요, 단장님이 저렇게 하시긴 해도 동생을 아끼는 분이시니까..."
도대체 저게 어딜 봐서!
"맞아, 아까도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뭔 연구실이 이렇게 낡았냐고 싹 다 수리하라고 툴툴거렸다니까. 지원 못 받는 곳이라니까 일부러 깨부수기나 하고."
"쯧쯧, 오빠가 되어가지고 과격한 츤데레일세. 동생이 쓰는 실험도구들 새삥으로 만들어주려고 일부러 깨부수... 커헉!"
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문이 또 박살 났다.
아까 주헌이 부수고 들어간 바로 그곳이었다.
"끄아악! 무슨 짓이에요!"
"기껏 고쳐놓은 걸!"
그러자 일리야와 유재하를 보며 태연하게 웃었다.
"똑바로 안 고쳐? 부서졌잖아. 다시 복원해."
"#$*$*!"
쓸데없는 말은 집어넣으라는 무언의 협박이리라.
결국 일리야와 유재하 수복 콤비는 뚱땅뚱땅 다시 복원 노가다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쓰게 웃던 설아가 주헌에게 속삭였다.
"단장님, 실은 주원이의 다리에..."
"알아, 봤어."
주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
설아는 걱정스럽게 조이의 다리를 보았다.
"악신 유물이 뭔가를 빼앗아간다더니, 진짜였던 모양이에요."
그 증거로 악신 유물이 기생한 흔적이 있는 다리, 아무래도 조이의 다리를 가져가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설아가 만지자 아파하던 것이 그 증거.
통증과 함께 하체마비 증세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그리고 주헌이 동생의 몸을 직접 보고자 한 건 그 악신 유물의 피해를 보려고 한 것이리라.
이미 과거에 동생을 잃은 경험이 있는 주헌에게는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을 테니까.
애초에 제 밑에 두고 부려먹으려는(?) 것도 그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에.
어쨌든 전생의 경험상, 조이는 친화력 때문에 유물증후군도 남들보다 배로 오는 타입이었다.
지금이야 에드워드에게 시켜 불로초 정제 예방약을 먹였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그래도 기특하게 꼬박꼬박 잘 챙겨먹긴 했나보군.'
그 친화력을 가지고도 별다른 증세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악신 유물까지 끌어들이다니.'
친화력도 이 정도면 병이다.
하지만 그 악신 유물도 지금은 보이지 않은 지 오래.
에드워드는 조이를 보며 희한하게 생각했다.
"이상하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물이 조이의 몸에 있는 걸 확인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어디에 가긴요. 보나마나 단장이 오는 걸 눈치채고 도망간 거죠."
일리야가 비웃었다.
"기생형 주제에 숙주의 몸에서 빠져나간 걸 보면, 당시 얼마나 급했는지 알 수 있죠."
뭘 챙겨먹지도 못하고 미친 듯이 도망쳤을 거란 의견이었다.
"뭐하는 악신인지는 모르지만 엄청 겁 많은 놈이네요."
그보단 주헌이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젠장, 이 빌어먹을 서주헌 놈.'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악신 유물은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 기껏 서주헌의 눈을 피해 숙주를 뜯어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서주헌이라니!
그 무시무시한 까마귀의 기운에 먹던 것도 뱉는 심정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여기 있는 건 모를 거다.'
하지만.
"이 주변에 있다. 멀리 못 갔어."
주헌의 말에 근방에 있던 악신 유물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서, 설마 눈치챘나?!'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들이 말했다.
"빨리 찾는 게 좋아요. 몸만 이동했을 뿐, 계약은 그대로일 테니까."
"괜찮을 것 같지만, 행여나 조이의 신체 일부분을 빼앗아갈지 모릅니다."
그 말에 악신 유물이 웃었다.
'인간 따위가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
한 번 열심히 찾아보시라지.
'지금 있는 이놈의 몸에도 뿌리를 내려주마.'
조이를 떠나 주헌 일행 중 하나에게 뿌리를 내린 녀석이 음흉하게 웃었다.
***
"세상에, 저 아가씨. 아름다워."
뉴욕의 미술관.
무릎까지 오는 푸른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설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밝게 빛나는 요정 같다며 칭찬했지만 그녀는 관심 없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재하야. 루이는 어디로 갔어? 네 조수잖아."
그러자 유재하가 크아아 비명을 질렀다.
"몰라! 알 게 뭐야! 안료 사러 간다고 하고 토꼈다고오오! 벌써 며칠 째야!"
뭐, 그래봐야 도망가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유재하는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었지만.
"그리고 그놈이 문제가 아니야아아!"
드물게 수트를 차려입고 있는 유재하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서, 설아야 성공할까? 아니 사람들이 역시 욕하려나? 아니 나 욕먹는 건 상관없는데 이걸로 단장님한테 누가 되면 어떡해!"
유재하는 설아를 붙잡고 멘붕에 빠졌다.
그렇다.
오늘은 드디어 주헌이 마련해준 개인전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오프닝까지 앞으로 1시간.
"이건 꿈이야. 그게 아니면 난 오늘 죽을 거야. 그래서 이런 날이 오는 거라고."
"...니가 그 말 하니까 진짜 신빙성 없다."
카피캣의 누명을 벗겨낸 기념으로 주헌이 마련해준 개인전.
원래는 소규모의 작은 전시회였지만, 하필이면 주헌이 잡아준 전시장이 권 회장과 얽혀있어서는...
'잠깐. 거기서 그 노친네가 작가들 미술전을 열어줬냐?'
'아, 네. 꽤 좋은 미술관이라고... 그림도 많이 팔렸대요. 역대 최고 매출이었다고...'
그 말에 주헌이 눈을 번득이며 말하지 않았었나.
'이놈이 전시할 때 큐레이터들, 미술품 상인들 죄다 불러. 그리고 뉴욕에 있는 모든 미술관의 문 닫고. 무조건 저 자식 그림은 다 팔리게 해. 매진되게 하라고."
'...네, 네?'
'유재하. 개인전 무조건 성공해라. 내가 열어준 건데 성공 못하면 죽는다!'
그 결과.
[호구왕 유재하. 뉴욕에서의 화려한 데뷔? 첫 개인전.]
[기업 광고를 웃도는 4개월간의 믿을 수 없는 홍보.]
[전문가들, 일반인들의 관심도 최고. 역대 최고 규모의 관람객들이 들이닥치나.]
[교수, 평론가, 큐레이터들 총출동, 서주헌이 후원자.]
[왕급의 개인전. 세계의 정부, 기업, 왕족들까지 방문 예정.]
[평가의 무대 "유물사용자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그의 진짜 실력은?"]
[세계 아티스트 거장 "장 리처드의 그림 원작자? 그래봐야 거품 아닌가."]
[유재하는 이름 없고 실력 없는 신인일 뿐.]
"아아악! 단장님도 진짜아아아!"
홍보를 해도 너무 했어어어!
유재하는 울부짖었다.
아니, 물론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입이 백 개여도 모자랄 만큼 감사했다.
정말 평생 은인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규모가 크잖아아아아!"
유재하는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던 사기왕이지만 예술가로서는 이름도 없던 카피캣.
하물며 그 누명 때문에 남들 앞에서 자신의 그림을 보이는 것도 두려워하는 녀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떨리는 첫 평가 자리.
그런데 규모가 엄청나도 너무 엄청났다.
하물며 문제가 또 있었다.
[권 회장 등 새 왕급들이 후원하는 미술가들 같은 날 전시 시작.]
[어느 쪽으로 관객 더 쏠리나.]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어느쪽?]
[서주헌과 권태준 회장 후원가 싸움. 사실상 서주헌파와 견제파의 격돌.]
"아 진짜 권 회장 그 노친네는 뭐하자는 거야!"
그렇다.
자신 혼자 평가받는 것으로 끝나면 상관없는데 이래서는 자칫 주헌까지 같이 욕을 먹게 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공주님들까지 후원해줄 줄은 몰랐다고!"
늘 주헌의 소식을 전해줘서 감사하다며 주헌의 팬클럽까지 발 뻗고 나섰다고 해야 하나.
[유재하, 그는 원석이다.]
물론 거기에 딸린 메시지도 있었지만.
[재하 씨. 개인전 기대할게요! ps. 오프닝식 주헌님 수트 입은 사진도 꼭 ♡]
그리고 현재.
세계 평론가들한테 '실력도 없으면서 유명인들에게 얹혀간다.'며 비난 받고 있는 판국이었다.
이제부터 그들이 검증하러 오기로 했고 말이다.
"평론가들이 폭탄 기사를 쓰면 후원가들의 얼굴에도 먹칠하는 거라고오오!"
그리고 그때였다.
"그럼 그 먹칠하지 않게 잘 그려 놨겠지, 어?"
"으아악!"
유재하는 제 뒤에서 서 있는 주헌을 보고 덜덜 떨었다.
"처, 청심환. 청심환."
설아는 청심환을 삼키는 유재하의 등짝을 두들겼다.
"괜찮아, 최선을 다했잖아. 그래도 몇몇은 조심해야겠지만."
"뭐?"
"왕급들이 몰려올 거야. 이 전시회에서 사황이 나온다는 말이 있으니까."
"사, 사황?!"
"적이 나타나는 건지, 사황이 탄생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일부러 흠을 내려는 하이에나, 그리고 빛을 보기도 전에 싹을 자르려는 늙은이들도 올 테니까."
"뭐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단장님. 돈 걸었다."
"뭐?!"
"저쪽 세력 유망주들이랑 네 그림이랑, 어느 쪽이 더 호응이 좋은지, 더 많이 팔리는지 내기했어. 10억달러 내기."
"뭐라고오오?! 10억 달러?! 1조? 지불 가능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객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그 안에 하이에나들도 섞여서.
그걸 보며 유재하는 휘청거렸고, 주헌은 환하게 웃었다.
"뭐 괜찮아. 저쪽 미술가들한테 져도 난 화내지 않을 거야."
그래! 화는 안 내겠지!
대신에 죽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