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스카우트 전쟁 (2)
"오랜만에 보네? 내 반쪽."
안대를 쓰고 있는 짝퉁이었다.
조이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쪽에 안대를 하고 있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였다.
그 모습이 꽤나 멋있어서 남녀불문하고 가다가 멈춰 서서 구경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뭐야. 저 사람... 혹시...?"
"서주헌? 서주헌이야?"
"아니야. 저 사람 천신왕 아니야? 안대 쓰고 있잖아."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 알아보는 이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 남자는 안대를 벗었다.
"왜 그래? 나야. 벌써 날 잊었어?"
그가 안대를 벗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안대를 벗은 걸 보니 서주헌이랑 진짜 똑 닮았던 것이다.
"뭐야, 서주헌이야?"
"뭐? 포식왕?"
"세상에. 나 팬이야."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천신왕은 조이를 응시하며 웃었다.
'이 여자가 서주헌의 쌍둥이.'
사실 그녀를 찾아내는데 꽤나 고생하긴 고생했다.
왜?
'이 여자면 서주헌의 약점이 될 수 있을 거다.'
그의 눈에는 흉흉한 오라가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조이조차도.
이에 천신왕은 입꼬리를 올렸다.
"섭섭한데, 정말 못 알아보다니."
천신왕은 점점 조이와 가까워졌다.
조이는 떨리는 눈빛으로 남자를 보며 입을 벌렸다.
확실했다.
이 얼굴, 이 목소리.
"세상에, 너 설마..."
"그래, 나야. 너무 오랜만이라 얼굴도 잊은 거야?"
"...!"
조이는 환하게 웃으며 천신왕을 끌어안았다.
"오빠, 이게 몇 년 만이야."
"주원아."
감격적인 재회였다.
아니, 감격적인 재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
천신왕은 자신의 벨트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움찔했다.
그도 그럴게, 조이의 손이 벨트에 달린 유물을 노린 것이다!
'이 도둑이 어디서 내 유물을!'
천신왕은 재빨리 그녀의 가는 팔을 꺾었다.
하지만 그 순간, 팔이 잡힌 조이가 칫 혀를 차면서 사정없이 무릎을 날렸다.
그리고.
빠각!
"?!"
강의실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그와 함께 예민한 부위를 걷어차인 천신왕이 크윽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지배력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걸 알 턱이 없는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조이이이! 무슨 짓이야아아!"
"꺄아아악! 너 미쳤어?! 포식왕한테 지금 무슨!"
그들은 정말로 기겁했다.
저 남자가 천신왕인지 포식왕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확실한 건 어느 쪽이든 왕급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비보를 가진 그들은 이미 인간을 넘어선 초인!
"너 그러다가 죽어어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흰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조이는 환하게 웃었다.
"아하. 초인도 역시 거시기는 단련 못하나 보네."
"...!"
"그리고 뭐? 오랜만이야, 반쪽?"
"...!"
"돌았어? 그 인간은 그딴 소름 돋는 소리 안 하거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책이 날아왔다.
하필 모서리였다.
그걸로 정통으로 머리를 후려 맞은 천신왕은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건 뭐 머리에서 피가 솟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때였다.
'이 여자가.'
빡친 천신왕의 주변에서 흉흉한 오라가 맴돌기 시작했다.
경계를 살까 봐 일부러 힘을 억누르고 있던 거지만...
"이년이 머리에 마구니가 꼈구나."
곧 그의 흉흉한 악신 유물이 조이를 노리려는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팟!
'!'
조이를 노리던 유물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
사라졌다기보다는 유물들이 알아서 힘을 거둔 느낌.
'뭐지?'
이상했다.
조이는 아무런 유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하지만 뭔가 깨달은 천신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녀석 설마 그걸...!'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커녕, 무식한 쇳덩어리가 날아왔다.
뻐억!
소화기였다.
***
"아, 진짜 그 또라이. 결국 유물은 못 가져왔네."
"조, 조이!"
"왕급이라니까 분명 좋은 유물을 쓸 게 분명했는데."
"조이, 너 미쳤어?!"
하버드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학교에 왕급이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슈였는데, 그 왕급을 사정없이 까버린 여자라니.
심지어 그 여자는 왕급의 유물을 못 가져왔다며 성질을 내고 있다니!
"조이, 너 괜찮은 거야? 아까 그 사람, 전에 네가 말한 그 쌍둥이 오빠 아니야?!"
그러자 조이는 가볍게 비웃었다.
"누가 내 쌍둥이야, 그런 짝퉁."
"뭐? 짝퉁?"
주헌하고는 17년 전에 한국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주헌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은 거지만.
뭐 그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헤어졌으니.'
원래는 주헌도 함께 입양될 예정이었다.
자신과 같이.
하지만 주헌은 입양 당일, 양부모의 지갑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양부모가 될 사람들의 차에 불을 냈다.
그러더니 기름을 들고 적반하장으로 뭐라더라.
'안 꺼져? 다음엔 댁들이야.'
그 뒤로 양부모는 상종할 수 없는 아이라며 주헌은 놓고, 자신만 데려갔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주헌을 만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물론 중학생 때 한국으로 여행 갔을 때 주헌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지만 글쎄.
바람맞았다.
어쩌다가 전화가 연결되었지만...
'꺼져. 난 너 같은 형제 없어.'
메일도 편지도 전부 씹혔다.
대충 그렇게 남만도 못한 처지가 되어 지낸 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갔다.
얼굴은커녕, 목소리도 몰랐다.
그래서 오늘 자신의 앞에 나타난 짝퉁을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
정말 주헌인가 싶어서.
실제로 아서도 그렇게 물었다.
TV에서 본 주헌과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네 쌍둥이 오빠 아니야?"
"아니, 전혀 안 닮았어! 특히 코가! 콧구멍은 1cm 더 이상하게 쏠렸고, 귀의 모양도 달라. 확실해."
"..."
"니가 왜 남친이 없는 지 알겠... 크윽!"
친구는 사정없이 밟혔다.
"하여간, 그 인간 얼굴을 기억해서 다행이지."
뭐 말은 그렇게 해도, 얼마 전 연구자료를 위한 영상을 찾다가, 유튜브 영상을 본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유물이 나타난 이후에는 유물도, 사용자들도 싫어 매체의 접촉을 끊었지만...
'분명해.'
영상에 나오고 있는 건 주헌이었던 것이다.
결국 조이는 탄식했다.
아까 전에 그 짝퉁도 그렇고.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목소리에는 좀 걱정이 담겨 있었다.
***
한편 유재하는 일리야가 찍어온 사진을 보고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역시 주원이, 이쁘구나."
일리야는 주헌의 명령으로 악마를 활용해 하버드에 갔다 온 참이었다.
비보와 마법서 유물이 있으면 순간이동 따위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사진을 찍어왔더니 유재하 이놈이...
"단장님 저한테 쌍둥이 분을 주세... 커헉!"
유재하는 강철 머그잔에(?) 얻어맞고 말았다.
그리고 유재하가 괴로워하자 일리야가 속삭였다.
"허, 설아한테도 차이고 이젠 단장님 동생이냐."
"뭐, 뭐?"
유재하가 당황하자 일리야가 음흉하게 말했다.
"왜? 너 설아한테 고백했다가 차였잖아."
유재하는 이불킥 각이라며 일리야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 그거 전생... 언제 이야긴데! 지금!"
"뭐, 됐고. 단장님 동생은 포기해. 그 미륵불도 얻어터졌으니까."
그 말에 유재하는 입을 떡 벌렸다.
"뭐라고? 주원이한테 냅다 두들겨 맞았다고?! 그 미륵불이?!"
"심지어 유물까지 털려고 했어. 아들까지 당했고."
"뭐? 그놈한테 아들이 있었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 쪽이."
유재하는 일리야의 말에 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주헌의 명령에 따라 하버드에 다녀왔던 일리야 역시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비보의 힘과 마법서 유물이면 순간이동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세상에 누가 그 오빠에 그 동생 아니랄까봐..."
역시 핏줄은 못 속인다더니.
'저 성깔 보소.'
하지만 주헌은 태평했다.
아니, 오히려 딴지를 걸었다.
"허참, 걘 하려면 아예 잘라버릴 것이지."
"아니, 그걸로도 이미 충분히 지옥이거든? 미륵불 졸지에 아들 잃고 지옥 갈 뻔했거든? 천신왕이 내시왕 될 뻔했거든?"
"좋네. 미륵불한테 필요도 없잖아."
그들은 덜덜 떨었다.
'뭐, 솔직히 단장님 동생이 당할 것 같지도 않지만.'
왜?
천하의 서주헌의 반쪽이었다.
그 동생도 당연히 한성깔 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괜찮겠어요? 단장?"
"뭐?"
"단장님, 주원이 만나러 가면 단장도 후려맞는 거 아니에요?"
"..."
뭐 그럴지도.
17년간 방치플레이를 했으니.
"뭐, 날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걸."
굳이 찾아가 맞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때리면 때렸지, 맞아주지도 않겠지만.
"그런데 단장, 주원이한테 천신왕의 유물이 통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 유물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확실히 그건 좀 희한하네. 걔가 유물에 대한 능력이 있었나."
"아, 있긴 있어."
"네?"
"걔 친화력이 장난이 아니거든."
"...네?"
주헌은 귀를 후볐다.
"뭐라고 할까. 내 경우엔 지배력 100에 친화력 0 느낌이잖아? 걘 지배력 0에 친화력 100느낌이야."
"..."
"내 기준에선 지지리도 쓸모없긴 한데, 워낙 친화력이 높으니까 유물들이 아예 공격을 접더라고."
그 말에 일리야와 유재하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아니 그게 가능해?!
특히 유재하는 당황했다.
도굴단에서는 자신이 친화력이 꽤 높은 편인데, 그래도 자신에게는 공격을 접기는커녕 굴러다니는 호구 취급인데!
사실 과거엔 동생의 힘을 측정해볼 시간은 없었다.
왜?
애석하게도 전생에서 동생과 재회했던 건 율리안의 동생, 니나를 찾았을 무렵.
김 형사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쌍둥이 동생은 하필 심각한 유물증후군에 걸려있었다.
거의 시체 상태였으니, 모든 유물 관련 능력도 떨어져 있었다.
중환자실에 있어 만날 기회도 없었다.
단지 권 회장이 임무를 완료하면 치료 유물을 주겠다는 말을 했을 뿐.
그 전엔 같은 신세를 진 형사의 가족.
가족 보다 더 가족 같은 김 형사 일가의 유물증후군을 치료하기 위해 권 회장의 밑에서 노예로 굴려진 거였고.
어쨌든 회귀 후에는 에드워드에게 부탁해 동생을 감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달라고 했다.
자신이 직접 다가가봐야 권 회장에게 빌미를 주는 것밖에 안 되니까.
'어쨌든 비보를 가진 인간까지 그렇게 다뤘단 말이야?'
원래도 맥스를 찍은 친화력 때문에 방어능력이 뛰어난 건 잘 알았다.
하지만 비보를 가진 놈까지 그렇게...?
'일리야의 악마가 나설 틈도 없었다니...'
좀 이상했다.
'같은 비보를 가진 게 아닌 이상...'
동시에 주헌의 입꼬리가 탐욕스럽게 올라갔다.
'그 녀석 설마?'
***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실.
"조이, 큰일 났어! 또 널 닮은 사람이 왔어!"
"뭐?"
"널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조이는 또 그 미친놈이 온 거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좀 달랐다.
쾅!
학교 내에 울려 퍼지는 굉음.
그리고 묘하게 그 미륵불이 왔을 때와는 다른 게...
"이, 이보게! 거긴 외부자 출입금지 구역이야!"
"이봐!"
쾅!
보안은 개뿔, 장식이라는 듯 연구실을 향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경찰을 불러! 경찰!"
"뭐야! 저 무대포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조이는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다.
'서, 설마.'
그리고.
쾅!
들이닥쳤다.
"아 드디어 찾았다, 이 못생긴 멍멍이."
이번엔 오리지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