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잭 더 리퍼 (5)
"네? 무슨 소리에요! 그럼 단장님이 왜 여자라는 걸 눈치를 못 채!"
그러자 한참을 고민하던 주헌이 진지하게 답했다.
"음, 가슴이 없어서...?"
결국 율리안이 폭발했다.
"너! 니나의 가슴이 뭐가 어때서! 고소할 거야!"
율리안이 주현의 멱살을 잡자, 유재하가 그를 진정시키며 한마디 했다.
"뭐 그래도, 가슴이 없는 건 사실..."
"커! 니나의 가슴은 충분히 크다고! 알았냐?!"
"...너 진심이야?"
율리안은 울부짖었다.
결국 보다못한 주헌이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네 동생 가슴 커. 됐지. 아주 훌륭해."
그러자 율리안이 또 주헌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자식. 이게 크긴 뭐가 커! 지금 니나 놀리는 거냐? 어?!"
이 자식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달라는 거야.
율리안은 니나를 보며 슬퍼했다.
"...내 동생은 까도 내가 까."
"..."
아무래야 좋았다.
일단 중요한 건 니나의 배후조사였다.
"일리야."
"예, 단장."
"끌고 가. 내일까지 모든 정보 캐내."
"알았습니다."
곧 율리안은 당황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일리야는 도굴단의 모든 정보담당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고문 담당이었다.
붙잡은 적들에게서 정보를 뜯어내는 일 역시 그의 역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리야의 성향을 알기에 율리안은 다급해졌다.
물론 일리야가 폭력을 쓴다는 건 아니지만, 악마와 마법서를 활용한 정신공격 및 고문 기술은 그의 특기.
"잠깐만 일리야...!"
그러자 주헌은 눈을 번득였다.
"일리야. 율리안은 절대 접촉시키지 마."
"?!"
율리안이 당황해서 주헌을 보았다.
"잠깐만!"
하지만 주헌은 단호했다.
"가족은 안 돼. 알잖아?"
"..."
율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해는 한다.
니나는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적.
하물며 단순히 유혹왕의 하수인이었다고 하기엔 뭔가 걸리는 구석이 많다.
'주헌이 만난 잭 더 리퍼랑 같은 상처를 가진 것도 그렇고.'
곧 주헌이 니나의 목 뒤에 있는 상처를 가리켰다.
흔히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상처였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던 거고.
"특히 이 상처에 대해서 확실하게 조사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 말에 율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잠깐만, 단장! 그럼 하다못해...!"
가만히 있을 테니 그저 지켜보게만 해달라며 주헌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일리야가 가볍게 웃으며 검은색 가죽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단장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오히려 적당히 해달라는 의미니까."
뭐, 그래도 자신은 적당히 할 생각 없지만.
***
"읍, 읍."
일리야에게 심문을 받고 있던 니나는 씩씩거렸다.
"으읍, 으으읍!"
그리고 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고 아주 치를 떨고 있었다.
물론 니나의 앞에 있는 것은 일리야가 아닌 호구왕이었다.
"니나야, 배 안고파?"
그리고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물어와서 니나는 열이 뻗쳤다.
'젠장!'
이 고기방패 놈만 아니었어도 비보를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상처 하나 없는 거지?'
결국 빡친 니나가 거칠게 몸부림을 치며 유재하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으으읍! 읍읍읍!(죽어! 콱 죽으라고! 이 자식아!)"
유재하는 억울해했다.
"아오! 내가 왜!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잘못이라면 많이 했지.
"으으읍!(죽어어어!)"
기어이 얻어맞은 유재하가 징징거리자 일리야가 쌍욕을 했다.
"야, 방해되잖아. 안 나가?"
"아 왜, 어차피 조사도 끝났잖아?"
"지랄, 또 여자애라고, 아주 먹을 것까지 들고 온 것 봐라."
"야야, 물 한모금도 주지 않는 니가 너무한...아악! 왜 니가 다 먹어!"
일리야는 햄스터처럼 빵을 입에 쑤셔 넣으며 신경질을 냈다.
"닥쳐, 호구. 넌 내 질문에나 답해."
"뭐!"
"피닉스 유물을 가졌다면서 전생엔 어떻게 죽었냐?"
"...그건 왜 묻냐?"
"니 새끼 죽이는 방법 알아두게."
유재하는 기가 막혔다.
"어유! 다 방법이 있거든! 됐으니까 나가봐! 단장님이 이제 알아낸 거 보고하라신다!"
"칫."
곧 그가 악마까지 거두고 나가자, 니나가 눈을 번득였다.
'기회다.'
고문관도 사라졌겠다,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하물며 이런 약골만 남겨놓고 가다니.'
이놈은 그래봐야 전투능력도 없는 그림쟁이... 아니 고기방패!
'일단 이 감옥부터 나간다!'
그녀는 한눈을 팔고 있는 유재하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쿵!
뭔가에 부딪친 니나는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끄, 끄으으."
마치 시멘트벽에 머리를 박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유재하가 낄낄 웃어보였다.
"야야, 내가 이 도굴단에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쟤가 아무 생각도 없이 날 여기 혼자 두고 나가겠냐?"
"...!"
사방에는 다빈치 유물로 만들어낸 방탄유리로 가득했다.
"이거 유물로 특수 제작한 방탄유리야 새꺄!"
"크윽."
"얌전히 있으면 오빠랑 언니들이 케이크라도 사다 줄게. 알았지?"
결국 니나는 분한 듯 벽만 퍽퍽 쳤다.
'저 웬수!'
***
한편 그 무렵.
"역시 권 회장의 짓이라고?"
"네, 18시간 동안 기억을 뒤진 결과 저 여자애는 유혹왕의 부하라기보다는, TKBM쪽의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일리야의 말에 율리안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니나, 진짜 니나가 맞는 거야?"
"네, 맞아요. 부단장이랑 살던 기억도 봤으니까."
율리안은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니나가 잭 더 리퍼였다니.
"그런데 왜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제가 본 건 심층부의 기억입니다. 본인이 기억하는 기억은 아니에요."
율리안은 이를 갈았다.
그 말은 즉 TKBM이 니나의 기억을 지웠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 말에 주헌이 답했다.
"뻔하지, 잭 더 리퍼로 활용하기 위해서."
"!"
주헌은 클로에가 분석해온 서류를 내밀었다.
"목 뒤의 상처. 골 때리는 거더라."
"골 때려? 도대체 뭔데?"
"뭐긴. 인간병기로 만드는 개조 유물."
다들 놀랐다.
"인간 병기?!"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여자아이가 살인 유물을 아무 망설임 없이 쓸 수 있을 리도 없잖아."
"...!"
니나를 잭 더 리퍼로 활용하기 위해 그런 짓까지 했단 말인가!
일리야는 종이에 뭔가를 슥슥 그려서 내밀었다.
"대충 이렇게 생긴 유물이었어요. 이 유물로 니나는 큰 아픔도, 죄의식도 못 느끼는 인간병기로 개조된 거죠."
"아, 그림 겁나 못그려."
"..."
일리야는 그새 나와 깐죽거리는 유재하를 쏘아보았다.
곧 주헌이 말했다.
"하지만 나도 본 적 없는 유물인데..."
용케도 이딴 그림으로 알아본다 싶었지만, 주헌에게 특징만 나타난 정보면 충분했다.
"역시 아무리 봐도 내가 본 적 없는 유물이야."
"허. 천하의 단장님도 모른다고요?"
그러자 일리야가 그 원인을 말해주듯 답했다.
"언노운으로 만든 새로운 유물이라던데..."
"!"
그러자 주헌이 눈을 번득였다.
언노운.
자신들이 유일하게 모르는 판도라와 이사회의 수상한 물건.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유물이었던 건가?
그리고 그럴 때였다.
결국 율리안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 노친네들, 감히 니나를...!"
"워워, 공명아. 일단 앉아봐라."
"앉긴 뭘 앉아! 날 진정시킬 이야기나 하려는 거면...!"
"아니. 널 분노하게 만들 이야기야."
율리안은 뒷목을 잡았다.
"설마 뭐가 또 있어?!"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공명이 넌, 전생에서 여동생을 찾아준다고 해서 권 회장의 노예가 된 거였지?"
"그래. 계속 못 찾다가 결국 네가 10년 뒤에나 찾아줬고..."
"아니. TKBM은 그때 찾지도 않았어."
"뭐?!"
"TKBM, 이 거지같은 것들이 수사기록 보니까 8년이나 이상한 곳을 뒤지고 있어서 내가 직접 찾기 시작한 거거든."
"뭐?!"
"지금 생각해보니까 알겠다. 권 회장 이 새끼, 이미 네 동생을 데리고 있으면서 너한테 못 찾았다고 구라친 거야."
"?!"
"보나마나 그 사이에 뻔뻔하게 잭 더 리퍼로 활용하고 있던 거지. 10년 동안 잭 더 리퍼를 이용한 건 TKBM이었으니까."
율리안은 거품을 물었다.
"그럼...!"
"실제로 네 동생을 찾아주고 난 뒤엔 잭 더 리퍼의 활약수가 줄었고, 네게 들킬까 봐 잭 더 리퍼의 이용 수를 줄인 거야."
율리안은 기절하려고 했다.
결국 분노한 번개가 방안에 번쩍였다.
쾅! 콰지직!
엄청난 번개가 호텔 방 내부를 쓸어갔다.
"꺄아악!"
이에 화들짝 놀란 설아와 아이린, 심지어 동아줄까지 주헌을 꽉 끌어안았다.
율리안은 단단히 빡친 기색이었다.
"이것들이 과거에도 그렇고, 심지어 지금도 똑같아...!"
그리고 씩씩거리는 율리안에게 주헌이 한마디 했다.
"망가트린 물건은 전부 월급에서 깐다."
"?!"
***
한편 그 무렵이었다.
"결국 서주헌이 독식한 비보를 빼앗는 데는 모두 실패한 것 같습니다."
부하의 말에 프로메테우스는 이마를 짚었다.
"끝까지 이리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아마존.
그 무덤 주변은 독사와 독충들이 득실득실한 그야말로 대 정글.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지금 그 정글에 숨겨진 무덤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비보를 독식한 서주헌과 대항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올 수 밖에 없었다.
곧 프로메테우스와 함께 온 유물들이 술렁거렸다.
[기어이 이놈들의 봉인을 푸시는 겁니까!]
"그래. 이 방법밖에는 없다."
비보가 필요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놈들을 왕급으로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놈들이 신급 유물을 쓸 수 있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서주헌이 독식한 비보를 빼앗을 수 없다면...!
'그 대체품!'
자신들에겐 제어하기 힘들어서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지만, 할 수 없는 일!
'까다롭지만 그래도 능력 하나는 인정한다.'
그 능력은 비보급!
쿵!
프로메테우스는 기어이 이 무덤의 봉인을 풀어버렸다.
과거, 자신들이 가두어놓았던 그놈들의 봉인을!
동시에 일어난 격렬한 지진.
곧 무덤이 무너지면서, 안에 갇혀있던 녀석들이 캬악 캬악 웃으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쿠구구궁!
[캬하하하! 자유다! 자유!]
[누구냐, 결국 누가 우리를 풀었냐!]
[응? 넌 프로메테우스?]
[뭐야, 너냐? 그렇게 우릴 눈엣가시로 여기고 가두더니! 캬하하하!]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프로메테우스가 웃었다.
"날 따라와라, 이 천한 놈들아. 너희들이 섬겨야 할 인간들이 있다!"
[캬하, 캬하하하! 그거 좋지!]
"자! 가라! 너희들 중에 사황을 만들어내는 놈한테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주겠다!"
곧 무덤의 봉인이 완전히 풀렸다.
서주헌과 대적할 새로운 왕급들을 위해서!
***
[새로운 비보의 출현?]
[돌연 판도라 시스템 유물에 출현한 왕급들]
[판도라 "서주헌이 왕급을 독식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에 따른 대처를 했을 뿐."]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잠깐! 저거! 저거! 뭐야, 왜 왕급이 또 생긴 건데! 그것도 15명이나 새로!"
그러나 주헌은 태평했다.
"우리가 왕의 자리를 독식하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거지."
"그래도 비보 대체품이라니요! 이거 완전 우리 좆된 거 아님? 권태준이랑 권혁수도 왕급에 올랐는데!"
그러자 주헌은 킥킥 웃었다.
"우리도 비보를 가졌는데 좆 되긴 무슨. 저건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야."
"그래요?"
"그 비보 대체품이라는 게 그렇게 좋은 거였으면 진작 사용했겠지. 그렇게 우리의 비보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이제와 쓴다고?"
보나 마나 놈들은 시간을 끌고 끌다가, 결국 하기 싫은 선택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양날의 검이라거나, 리스크가 크다거나, 뭔가 진짜 비보에 비해 안 좋은 게 있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비보 대체품은 비보 대체품.
'최소 신급 유물. 강한 유물이란 거겠지.'
"꽤 흥미롭긴 해."
주헌의 몸에서 까마귀의 흉흉한 오라가 솟아올랐다.
긜고 이때였다.
TV에서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이번에 왕급으로 오르셨죠. 한 말씀 해주시죠!]
[지금 세상은 서주헌이 메시아다 뭐다 떠들고 있는데, 전부 아닙니다.]
TV에 나온 건 왼쪽 눈에 안대를 쓴 남자였다.
[제 관심법으로 볼 때 서주헌은 메시아가 아닌 혼란 그 자체입니다. 이 세상을 망하게 할 사악한 존재죠.]
[그게 사실인가요?]
[전 미륵입니다. 신통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묘하게 주헌을 복제한 듯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