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잭 더 리퍼 (3)
"오, 그래. 무슨 비보라고?"
유재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굳이 누구인지 고개를 돌려볼 것도 없었다.
'제, 젠장.'
확실했다.
앳된 소년 끼가 남아있는 얼굴치고는 상당히 저음.
그 낯익은 목소리는...
"다시 한 번 말해봐. 무슨 비보?"
젠장, 엿 같은 서주허어언!
기겁한 유재하는 바로 땅을 박찼다.
"호랑이도 이렇게는 안 나타난다! 이 병신단장 놈아!"
아니 뭔 놈의 타이밍이 이렇게 거지 같은 건지!
유재하는 울부짖으면서 도주했다.
율리안이 다급하게 자신을 불러 세웠지만, 들을 것도 없었다.
'젠장, 저 인간, 분명 들었어!'
확실했다.
그러지 않으면 주헌이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었다.
'아오, 난 진짜 죽었다!'
그랬다.
주헌은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아주 좋은 걸 들었다는 얼굴이었으니까.
실로 기가 막힌 장난감을 얻었다는 표정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가긴 어딜 가."
"흐아악!"
유재하는 순식간에 주헌에게 붙잡혔다.
"방금 네 비보가 어쩌고 하지 않았냐? 뭐라고? 피닉스?"
"아, 몰라. 뭐래. 당신 잘못 들은 거임."
유재하는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유재하의 어깨를 잡은 주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전생에 가졌던 유물도 그거냐."
묘하게 목소리에 살의가 실려 있었다.
분명 가증스럽다는 눈빛이었다.
"재하야?"
결국 유재하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아 진짜 뭐래! 이 거지 같은 유물성애자야! 이젠 하다하다 환청도 유물로 듣... 캬아악!"
그러나 그는 곧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살벌한 칼날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쉬익!
심지어 좋지 않은 곳을 스쳤다.
하지만 빗맞힌 주헌은 도리어 짜증을 냈다.
"야씨, 너 가만히 안 있어?"
"뭘 가만히 있어, 이 인간아! 돌았냐?!"
"한 쪽만 잘라보려고 했는데, 자꾸 움직이면 두 개 모두 날아간다?"
그리고 또다시 반원을 그리는 단검!
그 살벌한 살의에 유재하는 정말로 울부짖었다.
"아 진짜 왜 이러는 거냐고, 이 인간아!"
왜 이러긴.
"실험. 피닉스 유물 아니라며. 진짜인지 아닌지 실험해야지."
"아아악! 틀렸을 땐 어쩌려고!"
"그럼 특별히 관짝에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박아주마."
뭐가 어째?!
"야씨, 진짜 죽을래?!"
유재하는 계속 되는 칼부림에 미친듯이 도망갔다.
그는 이러다가 죽겠다고 생각했는지 다급하게 사실을 고했다.
"알았어, 알았어! 피닉스 유물 맞아요! 맞다고! 이제 됐지? 알았으니까 이딴 짓 그만 해!"
하지만 그건 유재하의 치졸한 착각이었다.
"뭘 그만해. 피닉스가 맞으면 이제 내놔야지."
아까보다도 칼날이 더 난폭해지고 말았다.
"비보 내놔 자식아."
"아아악!"
"도망치지 말고!"
"으아와앙!"
유재하는 정말 살인의 위협을 느꼈다.
솔직히 그에게는 잭 더 리퍼보다도 더 무서웠다.
잭 더 리퍼는 원래 살인 유물을 쓰는 놈이니까 그렇다 치자, 저 인간은 유물에 미쳐서 동료를 죽이려고 해?
"으아앙, 나 산재 받을 거야, 고소할 거야! 아니 자꾸 이러면 나 콱 이직할 거야! 어? 알았냐고!"
"가족들한테는 좋은 직원이었다고 전해주마."
"흐와아앙!"
곧 보다 못한 율리안이 외쳤다.
"이봐! 너희들, 이럴 때가 아니..."
"으아악! 항우 유물은 집어넣어! 돌았냐! 아악! 오시리스는 더 아니지!"
쾅! 쾅!
"..."
물론 그 광경을 보는 율리안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을 노리고 있던 잭 더 리퍼도 어이가 없는 기색이었다.
'쟤들 지금 뭐하는 거야.'
건물의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살인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한 번도 이런 일은 겪어보지 못했던 탓이리라.
"좋아, 그럼 나랑 바꾸기나 해!"
"싫어어!"
"왜! 까마귀나 불사조나 똑같은 새대가리잖아! 도대체 뭐가 불만인데!"
불만이라면 아주 많지!
"내가 진짜 죽어도 댁 같은 유물성애자는 되기 싫다!"
잭 더 리퍼는 나가지도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이제 어쩌지?'
셋 다 처리할까?
아니면 서주헌이 비보를 빼앗는 걸 기다려서 서주헌만 처리할까?
그렇게 잭 더 리퍼가 드물게 당황할 때였다.
정작 주헌에게 살해당할 것 같은 유재하가 외쳤다.
"아 글쎄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지금 여기 잭 더 리퍼가 있는 거 몰라서 그래?!"
그 말에 율리안도 이때다 싶었는지 끼어들었다.
"그래, 바로 이 근처에 숨어 있어!"
율리안은 사방에 전기장을 흘려 경계를 하고 있었다.
가까워지면 바로 알 수 있으리라.
"면도날 잭은 너도 단도 곤란해 하던 놈이잖아."
뭐 그렇기는 했지.
일단 반격할 시간이라도 있어야 처리할 수 있는데, 놈은 원 샷 원 킬로 끝내버렸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귀신같이 숨어 다녀서는.'
유일하게 자신이 잭 더 리퍼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지만, 그거야 놈이 자신들을 방해하려고 할 뿐, 살의는 없어서였다.
'보나마나 권 회장의 명이었겠지만...'
당시엔 자신들이 허튼 짓을 하나 안하나, 감시 차원에서 잭 더 리퍼를 붙인 걸 수도 있었다.
뭐 어쨌거나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아서 크게 신경을 안 썼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지.'
주헌은 유재하의 목을 보았다.
목의 급소를 깊숙이 도려낸 흔적.
지금이야 잘린 부분이 재생되고 있지만, 아마 유재하가 아니었으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놈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아마도 목적은 비보.
방어 유물이 있다면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 아킬레우스 같은 신급 방어 유물이 아니면 생존하기도 힘들겠지.
애석하게도 치유 유물만큼이나 귀한 것이 방어 유물.
주헌의 도굴단에도 방어 유물이 없다.
대형 발굴단의 간부들이나 겨우 입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주헌의 팬들이 상급 방어 유물 츄리닝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없다.
유재하가 복원을 핑계로 훔쳐갔기 때문이다.
단원 전체에게 줄 방어 유물은 아직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있는 중이고.
그러니 꽤나 곤란한 상황이었다.
주헌도 공격으로 치면 잭 더 리퍼를 단숨에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잭 더 리퍼도 방어 유물이 없는 주헌은 한 방에 죽일 수 있다.
서로 한 대만 맞으면 죽는데 그 한 대를 잭 더 리퍼가 먼저 때린다면?
"공명아, 그놈 어디에 있어?"
"저쪽 방향에."
숨는 게 귀신인 만큼, 율리안이라도 구체적인 위치까지 지목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곧 공격해올 거다. 서포트 준비해."
어째 자세를 잡는 폼이 도망칠 기세는 아니라 율리안이 되물었다.
"너 설마 붙잡을 생각은 아니지?"
"잡아야지. 그래서 써먹어야지."
"뭐?!"
잭 더 리퍼를 써먹는다고?
주헌은 씨익 웃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잭 더 리퍼를 붙잡아서 부하로 써먹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골치 아픈 적은 아군으로 삼는 게 가장 편하지.'
하물며 놈은 단과 다른 타입이긴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엄청난 암살자.
아군으로 삼는다면 방해꾼들을 처리하기에는 더없이 좋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주헌의 생각에 유재하가 거품을 물었다.
"미쳤어요?! 단도 없는데 무슨 수로 그걸!"
아니, 단이 있어도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일에 그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럴 때였다.
"온다!"
율리안이 급하게 외쳤다.
"저쪽에서 300미터! 타겟은 주헌... 뒤!"
동시에 어둠속에서 불쑥 녀석이 나타났다.
율리안이 말한 그대로의 방향에서!
동시에 주헌이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어떻게 잭 더 리퍼를 포획할 거냐고?'
우비를 뒤집어 쓴 놈이 점점 가까워졌다.
200미터, 100미터, 50미터!
'어떻게긴 어떻게야.'
"이렇게!"
"엑, 에엑?!"
주헌은 최고의 타이밍에서 유재하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생긴 고기 방패!
동시에 유재하가 사정없이 썰렸다.
잭 더 리퍼의 칼에!
푸욱!
"아이고오오!"
유재하는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 사이 잭 더 리퍼의 움직임이 일순 둔해졌다.
아마 당황했던 탓이리라.
물론 그걸 놓친 주헌도 아니었다.
유재하를 방패삼았던 그는 초인 적인 몸놀림으로 잭 더 리퍼를 노렸다.
푸욱!
주헌의 단검은 잭 더 리퍼의 어깨를 찔렀다.
그마저도 귀신 같은 반응속도로 어깨를 겨우 맞춘 것이었다.
얼굴은 전신에 노란색 우비를 뒤집어쓰고 있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잡았다!'
주헌은 주춤거리는 잭 더 리퍼를 붙잡았다.
그런데 이때였다.
[상대가 텔레포트 유물을 사용합니다.]
"!"
순식간에 잭 더 리퍼가 사라졌다.
"칫."
주헌은 이를 갈았다.
다 잡았건만.
하지만 아쉬워할 것도 없었다.
'다시 온다.'
[암살 유물이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암살 유물을 가진 자가 다시 가까워집니다.]
아마 놈이 사용한 텔레포트 유물은 장거리용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봐야 단거리용.'
그리고 그럴 때 칭얼거리며 유재하가 몸을 일으켰다.
"아오, 진짜 내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지, 고통도 남들보다 덜하니까 다행이지."
그는 주헌을 쏘아보았다.
"아무튼 다시는 이러지 말... 꺄으아악!"
유재하는 또 멱살이 잡혀 끌려갔다.
그리고.
"캬아아악!"
푸욱!
또다시 고기 방패가 되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래서 말 안 한 거라니까. 이 인간이 날 이렇게 쓸 줄 알았다니까..."
고통도 상처도 몇 초만 참으면 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곧 괴물 같이 몸이 재생되어 일어난 유재하가 율리안에게 항의했다.
"야! 공명아! 이거 솔직히 고소감 아니냐? 나 이 인간 고소할 거야. 감방에 쳐넣을 거야! 정식으로 기소할 거니까 내 소송 대리 좀 해!"
하지만 변호는 개뿔.
"오, 이거 괜찮은데?"
"...?!"
자신의 상태를 뚫어져라 보던 율리안도 유재하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꺄으아악!"
졸지에 율리안의 쉴드까지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유재하가 위험할 거 같아 주헌을 나무라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멀쩡한 유재하를 보고 생각이 바뀐 것이리라.
그래서일까.
"좋아, 단장.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심지어 자신을 활용한 계략까지 생각했다.
"재하를 활용해서 잭 더 리퍼를 잡는 거야."
"그치? 굳이 단을 안 불러도 될 거 같지?"
"그래. 아주 확실한 방패가 될 거야."
곧 노란 우비의 잭 더 리퍼가 다시 나타났다.
100미터 정도의 거리.
주헌에게 몇 번 공격당한 탓인지, 아까보다는 속도가 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통화를 하던 주헌이 말했다.
"그래도 널 생각해서 클로에도 불러놨다. 이제 마음껏 찔려라, 유재하."
"뭐, 뭐라고요?"
그러자 율리안이 화를 냈다.
"이봐, 서주헌. 넌 단장 자격 없어. 세상에 부하를 몇 번이나 아프게 하려고 하다니..."
"고, 공명아!"
"자, 내 마취 유물을 줄게. 파이팅!"
"야!"
결국 질질 떠밀리는 유재하는 울부짖었다.
"니들 진짜 다 지옥 갈 거다! 어?!"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오, 궁금해서 나와봤는데 어째 새로운 쉴드가 생긴 것 같네요."
"?!"
자고로 사람은 뿌린 대로 걷는다고 했던가.
원조 프렌즈 쉴드가 눈을 번득이며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