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273화 (273/409)

273화. 잭 더 리퍼 (2)

'젠장, 서주헌이 가져간 비보는 아직이냐.'

그 무렵 프로메테우스는 똥줄이 타들어갔다.

서주헌 일행이 비보를 독식해간지 벌써 일주일 째.

슬슬 결정의 때가 오고 있었다.

'왕급들이 신급 유물을 못 쓰게 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물론 이런 항의가 계속 오기는 했다.

[지금까지는 비보가 없어도 신급 유물을 잘만 썼잖아.]

그러니까 굳이 서주헌 그놈에게 빌빌거리지 않아도 신급 유물을 쓸 수 없느냐는 이야기였다.

사실 열 받으니까.

왕급에게 돌아오는 혜택도 혜택이지만, 무엇보다 서주헌에게 휘둘리는 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어떻게?

'자네는 유물들의 수장이잖아. 자네가 명령해서 우리도 그냥 신급 유물을 쓸 수 있게 하면 안 되나?'

젠장. 누구는 그렇게 안하고 싶나.

프로메테우스도 엄연히 거미와 비견되는 또 하나의 수장.

그 역시 유물들에게 얼마든지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맞춰주는 것도 이제 한계다.'

애초에 인간 따위의 몸으로 신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비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인간들의 몸에 무리가 안 가도록 유물들이 최대한 힘을 억누른 것뿐.

그야말로 자존심도 다 버리고!

'그래야 수많은 유물 사용자들을 양산해낼 수 있으니까.'

마치 마약과 같은 것이다.

유물이 효율성보다 부작용이 크다는 걸 알게 되면 인간들은 처음부터 유물의 존재를 없애려고 했었을 테니까.

그래서 먼저 길들이기 작업을 한 것 뿐.

시작하기 전에는 거부할 수 있지만, 한 번 중독되고 나면 몸에 해로운 걸 알아도 못 끊는다.

'신급 유물도 한 번 써보면 절대 포기 못하지.'

그래서 초기엔 모든 유물들이 한 수 접고 인간에게 맞춰주었지만...

'이젠 맞춰줄 수 없어.'

인간을 괴롭혀야 할 유물들이 인간을 위하게 되면, 그건 힘을 잃게 되는 지름길이니까.

'우리들도 한낱 골동품이 될 순 없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와 유물들은 비보를 기점으로 삼은 것뿐이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유물들이 본색을 드러내려 했었다고 해야 하나.

'본격적으로 인간들을 없애기 위한.'

실제로 과거에도 그랬다.

비보들이 나오고 나서부터 유물증후군이 전염병처럼 돌고 인간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었다.

'이건 거미 놈하고도 합의한 계획이다.'

그런데 그걸 빌어먹을 서주헌이 방해하고 있었다.

"거미 놈도 방안을 찾으려는 것 같은데."

중국의 총수 진채원.

그 여자도 비보를 대체할 것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 비보의 대체품을...

'할 수 없지.'

프로메테우스는 놈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설령 그것이 그 까마귀 놈이 원하는 결과일지라도.

***

그리고 그 무렵.

"가긴 어딜 가요."

주헌이 지나치던 유혹왕이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쪽. 그대로 진한 키스를 해버렸다.

"?!"

그야 말로 한 순간이었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설아와 아이린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그건 주헌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 당황할 정도로 능숙한 놀림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의 혀가 주현의 혀와 엉키고, 질척이는 타액이 입술을 적셨다.

쪽, 쪽.

상당히 야릇하고 진한 키스.

얼굴도 몸매도, 하물며 스킬도 뛰어난 엘레나를 거부할 남자가 몇이나 될까.

무엇보다 그녀가 유혹왕이기 때문에 더 확실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타액.

유물을 사용한 그녀의 타액은 마치 최음제처럼 상대의 욕망과 흥분을 끌어올렸다.

그 위력은 무려 득도한 승려마저도 단번에 헤롱헤롱 하게 만들 정도.

뭐, 유혹왕이라는 게 비단 남자를 꼬시는 능력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남자에겐 이게 가장 효과가 좋긴 하지.'

물론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둘도 아니었지만.

"야! 단장님한테 당장 안 떨어져?!"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줄 알았던 둘이 금방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었다.

"이거 놔! 이 치녀야!"

"주헌 씨! 당장 떨어져요!"

그들은 주헌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그걸 순순히 놓아줄 유혹왕도 아니다.

그녀는 주헌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래봐야 소용없어. 서주헌의 몸도 비보도 이제 내 거야."

"뭐가 어째?!"

"알았으면 이제... 커헉!"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혹왕은 또다시 얻어터지고 말았다.

바로 분노한 동아줄의 짓이었다.

동아줄은 재빨리 주헌을 묶어 뒤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누가 네 거야! 네 거야!

퍽! 퍽퍽퍽퍽!

사정없이 분노의 주먹질을 날렸다.

덕분에 얻어맞는 유혹왕은 정신이 없었다.

"꺄악, 그만, 그만! 커헉!"

그리고 낑낑거리며 주헌에게 달려간 동아줄이 주헌의 입술을 벅벅벅 닦아대기 시작했다.

물론 동아줄의 몸 재질 자체가 실크처럼 부드러우니 피부에 자극은 없었지만 글쎄.

"야... 읍읍!"

마치 더러운 거라도 묻은 것 마냥 벅벅벅 닦아내는 터라 보는 사람이 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뭐, 그 이전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이 건드려지고 말았지만.

[귀신들이 폭주합니다.]

[귀신들이 폭주합니다.]

[가게에 원념이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가게의 터가 묘지화 되려 합니다.]

[뱀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파산왕의 비보가 폭주하려 합니다.]

[파산왕의 비보가 폭주하려 합니다.]

마치 원한 깊은 처녀귀신들이 강림하는 모습.

가게안은 난리가 났다.

"이년이 감히 단장님한테 더러운 입을..."

하지만 유혹왕은 하하 웃었다.

"소용없어. 서주헌의 흥분도는 올렸고, 이제 나 없으면 못 살 걸?"

"뭐라고요?"

아이린은 화를 냈지만, 설아는 움찔했다.

왜?

설아는 과거 유혹왕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가 남자들을 노예로 만드는 방법도!

'지금까지 유혹왕의 마수에 빠져서 살아나온 남자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녀가 가졌던 수많은 스폰이 그 증거.

'젠장, 방심했어.'

유혹왕이 뻔뻔하게 웃어보였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같잖은 유물들 멈춰."

"뭐?"

"난 이제 서주헌을 조종할 수도 있다고. 너희들 단장이 다치는 게 싫으면 빨리."

"...?!"

"그리고 너희들 비보도 내놔."

"...큭."

평소라면 몰라도 하필이면 인질이 주헌이었다.

설아나 아이린이 꼼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단장님.'

그럴 때 주헌이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걸 본 설아와 아이린은 움찔했고, 유혹왕은 굉장히 반가워했다.

"이제 서주헌은 내 거..."

그런데 그때였다.

'!'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헌은 유혹왕이 아닌 동아줄을 꽉 끌어안은 것이다!

"?!"

그리고.

"너 오늘따라 엄청 예뻐 보인다."

"?!"

부드러운 동아줄에게 얼굴을 비비며 애정공세를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헌은 아이린이나 설아의 뒤로 다가와 그들의 목가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혹왕은 무슨 개뼈다귀를 본 양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 모습에 유혹왕은 거품을 물었다.

"저게 미쳤나!"

'분명 능력이 발동되었는데!'

자신을 탐내야 하는데 왜! 하지만 곧 유혹왕은 아차 싶었다.

'혹시 유물성애자라서?'

그래서 동아줄과 설아, 아이린을 노린 것인가.

그래도 이상한 법이었다.

왜?

"유물은 내가 더 많잖아!"

실제로 온몸에 유물을 떡칠을 해놨다.

화장품, 바디오일, 향수, 속옷, 타투, 악세서리, 옷, 심지어 네일아트까지!

저 유물성애자가 넘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도대체 왜, 유물은 내가 더 많은데...!"

그러자 둘의 목가에 울혈을 내던 주헌이 코웃음을 쳤다.

"꺼져. 비보급도 없으면서."

"?!"

유혹왕은 충격에 빠졌다.

이거 설마 유물 차별?

'지금 유물의 질을 따지는 거야?!'

아이고야, 그녀는 뒷목을 잡았다.

곧 주헌은 다시 동아줄을 쓰다듬었다.

가끔 잘근잘근 씹기도 해서 동아줄은 움찔거렸다.

그쯤 되자 아이린과 설아는 씨익 웃었다.

동아줄에게 빠져 있는 지금의 주헌도 문제긴 문제였지만, 유혹왕에게 빠져 있는 것보단 천만 배 나았다.

그래서일까.

"우리, 좋은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잭 더 리퍼 쪽은 재하가 맡고 있을 거고."

유혹왕은 몸을 움찔 떨었다.

"아, 아니 잠깐. 우리 대화로..."

하지만.

"시끄럽고, 따라 나와."

그녀는 사정없이 질질 끌려갔다.

***

그리고 그 무렵, 가게의 뒷골목.

"뭐라고? 가게 안에 잭 더 리퍼가 있다고?"

"그래, 그리고 보나마나 타겟은 비보를 가진 우리야."

율리안은 유재하한테 상황을 들었다.

그리고.

"그 면도날 잭이라니..."

유혹왕이 나타났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놈은 상당히 위험하다.'

과거 주헌도, 단도 뾰족한 공략법을 찾지 못했었다.

원 샷 원 킬.

워낙 순식간에 상대를 암살하는 상대였으니까.

공략하려고 하기도 전에 첫타로 죽어버렸다.

그럼에도 주헌과 자신들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자신들이 권 회장의 부하였기 때문이다.

잘은 몰라도 잭 더 리퍼는 당시 권 회장과 연관이 있었으니까.

단지 방해만 했을 뿐.

결국 율리안은 다급히 돌아섰다.

"알았어. 그럼 니나를 데리고 일단 다른 곳으로 가자."

그는 가게 안에 있는 니나에게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유재하가 급하게 붙잡았다.

"야야야! 미쳤어?! 지금 누구를 데려가?"

"왜?"

"지금 니 동생도 의심해야 하거든?"

율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지금 무슨 소리야 그게!"

그는 황당한 듯 외쳤다.

"도대체 니나가 왜 잭 더 리퍼야! 개미 하나 못 죽이는 애가 어떻게!"

율리안이 흥분하자 유재하가 워워, 손을 내밀었다.

"야야, 진정해. 네 동생이라고 감싸지 말고..."

"아니, 내 동생 이전의 문제야! 애초에 그 유물은 남성용 유물이야."

"유물이란 놈들이 외골수 인 거 봤냐? 퍽하면 취향 바꾸는 놈들인데."

그러자 답답해진 율리안은 그게 아니라는 듯, 따졌다.

"내가 괜히 공명 유물을 쓰고 있는 줄 알아?"

그런 걸 가졌으면 진작 알았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재하가 탄식했다.

"에이, 경계해서 나쁠 거 없다는 이야기..."

그때였다.

푸욱!

"?!"

누군가가 유재하의 목을 날렸다.

동시에 허공에 솟아오르는 분수 같은 핏줄기.

그 날렵하고도 날카로운 칼에 유재하의 목이 제일 먼저 따였다.

순식간에 유재하가 쓰러지자 율리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재하야!"

목의 동맥이 따인 유재하는 피투성이가 된 채 차가운 바닥에 버려졌다.

틀림없었다.

'잭 더 리퍼.'

율리안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재하야!"

분명 죽었다.

하물며 도플갱어도 아니었다.

그럴 때였다.

율리안은 날선 기척을 느꼈다.

'잭 더 리퍼!'

그는 황급히 사방으로 전력을 방출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인간.

번개보다 속도가 빠를 수는 없다.

그 예상대로 칼을 든 살인자는 율리안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율리안은 입술을 깨물면서 바로 유재하에게 치유 유물을 사용했다.

하지만 원체 귀한 치유 유물.

그래봐야 C급이라 이런 상처엔 통하지 않을 터.

그는 재빨리 클로에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로에, 빨리 받아라. 빨리...'

그런데 그때였다.

"흐어억! 진짜 죽을 뻔했네!"

"흐아악!"

유재하가 벌떡 일어났다.

그 좀비 같은 모습에 율리안은 기겁을 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 씨팔, 진짜 아오!"

유재하는 켁켁 거리면서 제 목을 붙잡았다.

심지어 아주 멀쩡했다.

덕분에 율리안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입이 벌어졌다.

"뭐, 뭐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뭐? 어떻게 된 거냐고?"

사실 유재하의 비보에 대해서는 단원들 그 누구도 몰랐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뭐 유재하가 죽어도 죽지 않는 건, 가짜 도플갱어로 교체했다고 판단했을 뿐.

그런데 지금은...

결국 눈치빠른 율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너, 너 설마 얻은 비보가 피닉... 읍!"

"조용히 해, 이 바보야!"

캬아악, 그의 입을 틀어막은 유재하가 주변을 살폈다.

"야씨, 그거 단장님이 알면 난 쉴드 확정이거든? 닥쳐.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에에!"

그러나 이때였다.

"오, 그래. 무슨 비보라고?"

유재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