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못된 놀부 심보 (4)
[자, 우리 모두 서주헌 씨를 찬양합시다.]
[찬양합시다. 찬양합시다.]
[자 외치세요! 어서! 서주헌 만세! 만세! 포식왕을 따르면 복이 옵니다!]
[오오오!]
[그리고 또 비보를 차지하지 못한 멍청한 왕급들도 비웃어줍시다! 어서요! 더 크게에!]
"저 미친 또라이 새끼가."
지금 왕급들은 TV에 나오는 운명왕을 보고 파르르 손을 떨었다.
그것도 당연할지 몰랐다.
[조슈아 잭슨(25) - 전 운명왕. 현 서주헌을 섬기는 자]
아니, 저기 저 자식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말 그대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된 왕급들.
그들은 TV에 나와
'전 원래부터 서주헌님의 종이었습니다.'
'서스트라다무스가 그 증거입니다.'를 외치는 운명왕을 보며 뒷목을 잡았다.
아니, 포식왕을 섬기는 예언가?
심지어 교주라니?
"저 개새끼,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왜 갑자기 사이비 교주가 됐어?!"
하지만 다른 왕급들은 운명왕이 저러는 이유를 모를 것 같지도 않았다.
"쟤 설마 비보 얻으려고 지금 저 짓거리 하는 거야?!"
"저게 자기만 쏙 비보를 얻으려고!"
그렇다.
그간 일리야에게 신나게 기억 조작을 당했던 운명왕은 정신이 되돌아왔다.
'어때. 정신이 좀 들어?'
눈을 뜬 운명왕은 벌벌 떨었다.
어두운 창고.
바닥에 그려진 이상한 악마소환식과 촛불들.
가짜가 아닌 진짜 악마를 불러내고 자신을 위협하는 일리야는 가히 공포였기 때문이다.
'이 거지 같은 사후처리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이 세상에 아예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공작원.
하지만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게 있었다.
[서주헌, 모든 비보 차지]
[기존 왕급들, 왕급 무산]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은 이미 자신 때문에 왕급들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고, 서주헌이 비보를 모조리 포식하는 최악의 사태.
지금 상황에서 자신은 서주헌에게 납치되었고, 조종당했다고 말하는 건 무척 쉬웠다.
하지만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난 이미 죽은 목숨이다. 다른 왕급들한테 살해당할 거야.'
운명왕은 또르륵 눈알을 굴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보는 모두 서주헌이 가지고 있다!'
즉 지금 실질적인 실세는 서주헌이라는 의미였다!
그에 비해 다른 왕급들은 이제 비보도 없는 머저리들!
그렇다면 뭐가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이겠는가!
[포식왕을 찬양합시다아아아아!]
그는 열혈신도가 되었다.
뭐, 사실 율리안의 사악한 한마디가 결정타가 되었지만.
'줄 잘 타면 단장이 비보 하나쯤은 던져주지 않겠어?'
그리고 운명왕은 외쳤다.
[여러분! 서주헌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아아아!]
그는 탁월한 박쥐였다.
자신의 안위와 비보를 위해서라면 서주헌을 신으로 모실 수도 있었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운명왕이 그렇게 외쳐대자 세상은 술렁거렸다.
[서주헌 대세론?]
[미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나.]
[노스트라다무스 유물사용자, 운명왕 "지구의 종말은 시작됐다."]
그야말로 세상이 뒤흔들렸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언가의 위력은 그 정도였다.
게다가 운명왕은 수많은 권력가들의 비선실세.
그 믿음의 정도가 달랐다.
뭐 왕급들에게는 운명왕의 배신이라는 게 뻔히 보였지만.
그리고 교주의 등장에 주헌의 팬클럽은 못 마땅해했다.
"어머, 저희들이 고작 전직 왕급에게 질 수는 없죠."
주헌에게 오는 선물과 투자 지원도 폭발하기 시작했다.
***
[운명왕 "곧 세계에 멸망이 찾아옵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지구 멸망론. 유물로 다시 실현되나?]
[운명왕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한 분. 서주헌님이 우리의 메시아입니다."]
[지구종말론 진실 공방전. "유물의 힘, 진실 vs 노스트라다무스도 못 맞췄다. 거짓"]
서주헌의 빠돌이가 된 운명왕의 처절한 포교활동.
그리고 그 기사를 보며 율리안은 대단히 흡족해했다.
"좋아. 밥값은 하고 있네. 역시 독식자들한테는 비보를 준다는 떡밥이 최고군."
그 말에 도굴단의 고문담당 일리야가 혀를 찼다.
"그래봐야 단장이 진짜 비보를 줄까요?"
"당연히 안 주지. 저 유물성애자 놈이 줄 리가 있나."
"..."
도굴단의 부단장은 빙긋 웃었다.
그는 도굴단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갖은 수를 떠올리던 책략사였지만...
"운명왕이 튈 것 같으면 적당히 고문하고."
뭐라고 고문?
"...댁 인권 변호사 아님?"
이 인간이 약탈왕이 되더니 아예 정신줄을 놓았나.
뭐 어쨌거나 율리안 덕분에 주헌의 포교유물은 순조롭게 성장 중이었다.
[포교유물의 능력치가 강해집니다.]
[포교유물의 능력치가 강해집니다.]
[유물들이 더 쉽게 진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며칠째 단원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왜?
"그러니까 니들이 가진 비보 뭐냐고. 꺼내보라고. 꺼내야 내가 확인할 수 있다고."
"아니, 글쎄. 안된다니까요?"
"야. 누가 잡아먹어? 꺼내봐 좀!"
"아 뭐래. 잡아먹을 거잖아! 누가 또 속을 줄 알아?!"
이것들을 콱.
아무래도 단원들이 자신의 속셈(?)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칫, 봐서 좋은 거면 바꾸려고 했더니. 못된 것들."
"... 지금 본심 말하고 있는 거 알아요?"
주헌은 제 단원들을 훑어보았다.
일단 유재하... 새끼는 전생에서도 곧 죽어도 비보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던 새끼.
새삼 이제 와서 알려줄 리도 없으니까 패스.
그 다음, 땅이나 파고 있는 율리안은 정신줄이 나간 것 같으니 패스.
그리고 일리야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게 '알려줄 테니까 돈 내놔요.'라고 삥 뜯을 생각으로 가득하고.
단 놈은 지금도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게 또 부모 노릇할 것 같아서 짜증 나고.
그럼...
"클로..."
"어머, 단장님의 유물을 주시면 기꺼이 알려드리죠."
"..."
어떻게 이 도굴단에는 정상인 놈이 한 놈도 없냐...
절대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거군.
결국 주헌은 힐끔 아이린과 설아를 보았다.
다른 고얀 배신자들이라면 몰라도 저 둘만큼은 자신에게 비보에 대해서 말해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주헌의 시선에 아이린과 설아는 움찔했다.
지그시 바라보는 주헌의 시선에 두 명은 정말로 어쩔 줄 몰랐다.
'어, 어 안 되는데.'
주헌의 비보 리스크는 추측할 것도 없이 기정사실이지만, 아마도 유물에 대한 탐욕.
하지만 단원들의 비보에 대해 알려줘봐야 주헌은 가져갈 수 없다.
왜?
가져가려면 단원들을 죽여야 하니까!
뭐, 주헌이 그런 짓을 할 리도 없고.
그럼 아예 비보의 생김새도, 정체도 모르는 게 주헌의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는 게 클로에의 의견이었다.
아마 유물의 정체가 뭔지 알게 되면 더 소유욕이 돌 것이라나 뭐라나.
그래서일까.
'주헌 씨, 미안해요!'
'단장님! 죄송해요! 나중에 리스크가 수그러드시면 꼭 말씀드릴게요!'
그러나 주헌은 작업(?)에 들어갔다.
쿵.
"?!"
주헌이 일명 벽치기라는 것을 실행한 것이다.
심지어 두 명을 상대로!
뭐 그래봐야 한 손을 벽에 대고 가볍게 기댄 것뿐이지만.
"아이린, 설아야."
그 목소리에 그녀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얼굴이 홍당무로 변했다.
나른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가 그녀들에게는 너무 황홀했기 때문이다.
아, 언제였더라.
이런 목소리 분명 어디에서 들어봤는데.
'아마도 침대에서...'
'아마도 사무실에서...'
각자 다른 시간대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주헌과 뜨겁게 입을 맞추고, 맨살을 맞대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리라.
'주헌 씨, 그때 진짜 멋졌는데.'
'단장님, 그때 진짜 섹시했는데.'
뭐 둘 다 자신들이 주헌을 유혹했던 것이긴 하지만...
결국 그때를 떠올린 둘은 저리 비키라면서 엉덩이로 서로 은근히 밀어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주헌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이성을 잃은 듯 했다.
그쯤 되자 주헌은 자연스럽게 둘의 허리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자, 어서 비보를 꺼내주세요. 생김새 좀 보자."
"저, 저기 단장님 그게..."
"왜. 싫어?"
"으윽!"
결국 주헌의 반짝이는(?) 눈빛에 두 여자들이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아마 까마귀의 유물이 아니면 평생 이런 주헌은 못 보겠지.
'안 돼. 이 눈은 사기야!'
기어코 아이린과 설아가 모두와의 약속을 잊고(?) 비보를 꺼내려는 그 순간!
"와아악!"
유재하가 허겁지겁 유물을 허공에 던졌다.
"여기 유물이다. 유물! 유물!"
무슨 개 간식을 뿌리는 것 마냥 열심히 뿌려댔다.
그러자 주헌이 바로 눈을 번쩍이며 유물들을 캐치했다.
뭐 그 모습마저도 롱다리 모델 포스가 나는 게 굉장히 멋있어서 조금 부럽고, 조금 재수 없었지만 어쨌든.
"하여간, 저거 괜히 그 노친네가 여자들한테 접근시킨 게 아니라니까. 거참 도대체 나 아니면 누가 말리냐, 저 꼴을!"
"...그냥 부러워서 방해한 거 아냐?"
"젠장, 조루왕 넌 닥쳐!"
유재하는 울부짖으며 클로에를 보았다.
"클로에, 저거 어때? 단장님 유물 리스크, 더 골치 아파진 거 같은데!"
"글쎄, 나름 귀엽지 않아?"
"미친, 도대체 어디가!"
결국 유재하가 뒷목을 잡았다.
"나참, 이러다가 유물을 몸에 두르고 미녀가 찾아오면 완전 넘어갈 판국이구만!"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나참, 이러다가 유물을 몸에 두르고 미녀가 찾아오면 완전 넘어갈 판국이구만!]
"오호, 서주헌한테 그게 통한단 말이지."
이를 도청해서 듣고 있는 왕급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헐리웃의 톱 여배우로 유명한 엘레나.
유혹왕이라고 불리는 여자다.
그녀 역시 쟁쟁하던 독식자 중 하나.
'어떻게 서주헌하테 비보를 얻나 고민하던 참에 잘 됐군.'
뜻하지 않게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
그리고 그 무렵, 뉴욕의 카페.
"젠장. 우리가 왜 서주헌 그놈한테...!"
권 회장의 막냇사위이자 TKBM 발굴단의 단장 중 하나.
윤시우는 이를 아그작 갈면서 카페에서 주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이 새끼는 언제 오는 거야!"
유물을 좋아한다길래 특별히 유물 선물도 들고 주헌을 찾았다.
"도대체 우리가 왜 이놈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어?"
"벌써 삼 일 째 허탕이라고."
그러자 함께 온 다른 TKBM의 단장들도 탄식했다.
그들은 과거 주헌과 같은 직책의 단장들.
주헌을 질투하고, 그 탓에 유재하를 꼬셔서 도굴단을 저승으로 보내게 한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시계를 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오늘도 14시간째다... 이 개새끼. 회장님도 계시는데."
그들은 금방이라도 폭발하기 직전의 권 회장을 힐끗 보았다.
원래는 전화로 딜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헌이 뭐라고 하더라.
[꺼져. 그 노친네더러 직접 나오라고 해.]
그래서 할 수 없이 권 회장도 성치 않은 몸을 끌고 직접 나왔다.
그런데.
"그 개새끼가! 회장님이 우스워? TKBM의 총수가 우스워보이냐고?!"
"지금 며칠을 바람맞히는 거야!"
"비보 좀 가졌다고 이게 진짜!"
그런데 이때였다.
"어이쿠, 우리 회장님. 많이 기다리셨쪄요?"
"!"
그들은 뜻밖의 인물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타난 건 유재하와...
'파, 파산왕.'
그들은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내심 당황한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뭐, 뭐야. 서주헌이 온다며. 왜, 왜 니들이 와?"
"왜? 우리가 오면 곤란하기라도 하시나?"
유재하는 음흉하게 웃었다.
"우리들 이래보여도 도굴단 영업사원이야."
여, 영업사원?
호구왕과 파산왕이?
영업하다가 거래처 도산 시키겠는데?
하지만 둘은 생긋 웃었다.
"자, 그럼 우리 이야기를 시작해보지."
서주헌 대신에 골 때리는 놈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