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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66화 (266/409)

266화. 못된 놀부 심보 (2)

주헌은 제 앞에 선 사내를 보고 정말 놀랐다.

평상시의 그답지 않은 표정으로.

남들이 보면 그냥 조금 놀란 토끼가 되었구나 싶을 수준이지만 글쎄.

단원들이라면 기겁을 하며 박제를 하려고 달려들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단?"

훤칠한 키와 체격, 말근육, 칼로 찔러 넣으면 도리어 칼이 부러질 것 같은 상남자.

틀림없는 그였다.

늘 도굴단의 철벽수비와 공격을 맡던 사냥꾼.

주헌과 함께 근거리 전투를 담당하던 주헌의 좋은 파트너.

하지만 그런 그가 왜 이곳에.

주헌은 드물게 당황한 낯빛을 지우지 못했다.

"너 설마..."

단은 주헌을 향해 정말 환하게 웃어보였다.

"예. 단장님."

그는 주헌을 본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쁜 기색이었다.

그러나 적들이 한가롭게 대화를 하도록 내버려둘 리도 없었다.

"뭐야. 너도 서주헌의 동료냐?"

"죽기 싫으면 저리 비켜!"

하지만 단의 귀에는 개소리였던 모양이었다.

"단장님.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리 비키라고! 새끼야... 커헉!"

"단장님, 실은 저..."

"서주헌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만 줄은 아냐? 비켜! 큭!"

"단장님, 사실은 제가..."

"죽여! 이놈도 그냥 같이 처리... 커헉!"

"그러니까 저..."

"죽어라!"

결국 단은 빡친 듯 돌아섰다.

"허 거참, 사람 말 좀 합시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적 하나의 얼굴이 날아갔다.

심지어 주먹 한 방에 이빨까지 다 날아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 험악해졌다.

"사람이 말하는데 자꾸 끼어들면 씁니까, 예?"

거참 주헌과 1초라도 더 이야기해도 모자를 판국에.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단이 눈을 부릅떴다.

"단장님, 잠깐만 지혈하고 계십시오."

곧 주헌 앞이라 거두었던 칼을 뽑아 들었다.

얼핏 보기엔 정육점용 칼.

그 외엔 달리 유물을 가진 것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다른 사냥꾼들과 다르게 방어유물 하나 걸치지 않았다.

입고 있는 건 고작해야 낡아 빠져서 빛이 바랜 청바지와 허름한 바람막이 점퍼 정도.

그런 판국이니 사냥꾼들은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갑자기 뭔 놈이 나타났다 싶었더니.

'이건 또 무슨 또라이야.'

민간인 같고 유물의 내구도가 아까우니 가만히 지켜보긴 했지만.

"너 뭐냐?"

단은 대수롭지 않게 칼을 세웠다.

"음? 사냥꾼."

"사냥꾼?"

그들은 실소를 흘렸다.

등신이 사냥꾼이라고 칭하면 다 사냥꾼이 되나?

"힘 좀 쓴다고 칼 한 자루 들고 폼 잡고 앉았네."

"아무래도 서주헌의 팀에 들어온 햇병아리 같은데. 우리는 충분히 경고했다, 새끼야!"

"죽여!"

곧 베테랑 사냥꾼들이 화려한 유물을 들고 단에게 덤벼들었다.

단은 그래봐야 햇병아리.

반면 자신들은 모두 대형발굴단들이 특별히 고용하거나 기른 사냥꾼들이었다.

'애초에 상대가...'

그런데 이때였다.

한순간에 단이 사라져버렸다.

'!'

그리고 그 직후 그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끄아아악!"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비명.

그 소리를 들었을 땐 일대가 초토화 되어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순간에 사라졌나 싶었던 단은 순식간에 뒤에 나타났고.

"이, 이 자식!"

그를 인지한 순간 시야가 바뀌었다.

"커헉!"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단은 들고 있던 칼로 머리와 어깨를 찍어 내렸다.

퍽! 퍼억!

마치 고기를 썰어내는 듯한 손놀림이었다.

박력 있지만 둔탁하지 않은 칼솜씨.

그 묵직한 칼이 순식간에 근육을 찢고, 육즙을 내듯 살을 후비고 들어왔다.

"커헉!"

심지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빨랐다.

마치 고기를 자를 때 필요 없는 부위를 순식간에 발라내는 것처럼 능숙하고 깔끔했다.

"잠깐, 이게 뭐야!"

비명은 이쪽저쪽에서 계속되었다.

뒤쪽에서 당했다 싶으면, 이번엔 앞쪽에 있는 놈이 당하고.

퍼억! 퍼억!

"막아, 막으라고!"

다급한 외침 속에서 들려오는 건 유물이 깨지는 소리와 아군의 고함과 비명뿐.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여러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단은 여유 있게 한 놈의 목을 꺾었고, 그걸 방패삼아 던지며 놈들의 다리 근육을 잘라냈다.

칼의 방향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끄아악!"

"으악!"

처참했다.

단에게 손조차 댈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단은 칼 한 자루로는 좀 부족하다 싶었는지 맨손으로도 놈들의 숨통을 끊는 묘기까지 부렸다.

콰직! 콰직!

물론 그 와중에 머리를 굴리는 놈은 있었다.

'그래, 병신. 열심히 처리하고 있어라.'

목표는 서주헌.

주헌의 목에 걸린 돈이 얼마라고 생각하는 건가.

중요한 것은 주헌의 목이었다.

오히려 다른 놈들의 시선이 저놈에게 쏠려 있을 때 주헌을 처리하면 그만.

'그리고 지금 서주헌은 유물을 못 쓴다.'

행동을 보면 척하면 척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이 절호의 기회!

얍삽한 일당이 주헌을 노렸다.

물론 그냥 노리진 않았다.

코끼리도 단숨에 죽일 독을 묻힌 칼.

그리고 투명화 유물로 기습한 그들은 단숨에 주헌의 급소를 노렸다.

'!'

그러나 그걸 눈치채지 못할 주헌도 아니다.

주헌이 재빨리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푸욱!

"!"

단이 훨씬 더 빨랐다.

주헌을 노리는 단검은 단의 두꺼운 팔뚝에 꽂혔다.

분명 반대쪽에서 학살을 하고 있던 단이 순식간에 주헌의 앞에 나타나 터프하게 자신의 팔을 내민 것이다.

"이, 이 자식!"

주헌을 노린 흉수는 당황했다.

심지어 팔뚝에 칼이 박혀 뽑히지가 않았다.

그러나 단은 험악하게 웃었다.

"감히 어디서 단장님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흉수는 정신을 잃었다.

두꺼운 손가락이 날아오나 싶었더니, 흉수의 머리통이 끔찍하게 박살이 났다.

그야말로 격이 달랐다.

전장에 난입한 괴물은 수백이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아군들을 죄다 골로 보내버렸다.

뒤이어 총탄도 날렸지만 단은 아파하지도 않았다.

원래도 유물이라면 통하지 않는 용가리 통뼈였지만, 이건 뭐.

그리고 그쯤 되자 사냥꾼들은 물론, 그들을 기르던 발굴단들도 공포에 떨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었다.

'저 미친 괴물 놈.'

서주헌 저놈은 도대체 뭐하는 놈을 거둔 거야?

***

같은 시각.

그 광경을 배에서 지켜보던 도굴단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건 무슨 최종병기냐?"

"저 괴물 같은 모습을 또 보게 될 줄이야..."

유재하와 일리야는 파르르 떨었지만, 설아와 아이린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왜 단이 여기에 있는 건데!"

"해진 씨는 도굴단에 넣지 않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클로에는 왠지 이렇게 될 걸 짐작한 기색이었다.

단이 계속해서 입단 희망을 밝혀왔으니까.

물론 그때마다 단장님의 명령도 있겠다, 다들 일부러 전화가 올 때마다 말을 돌리긴 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쫓아온 게 아닐까."

"뭐라고?!"

"하지만 단은 기억도 없을 텐데..."

반면 율리안은 망원경으로 칼부림을 하는 단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기억도 기억이지만.

"보아하니 비보까지 얻었네."

"네?!"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율리안은 단번에 알아봤다.

반면 단원들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기억도 없이요?"

"아무래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단하려는 것 같은데."

"그럴 수가... 단장님은 수아하고 평범하게 살라고 하셨는데."

그리고 그럴 때였다.

쿵!

기어이 이 일대의 사냥꾼을 모조리 쓰러트리고 나서야 단은 칼부림을 멈췄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대화를 좀 편히 할 수 있겠다며 주헌에게 다가왔다.

"단장님, 실은 저..."

그러나 주헌은 탄식하며 단을 보았다.

"일단 고맙다."

주헌은 단이 반가웠다.

하지만 단지 좀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단이 비보를 얻은 건 훤히 보였으니까.

그리고 왜 여기에 있는 지 알 것 같으니까.

"단, 너..."

"예. 단장님! 저...!"

"가게 보증금을 이렇게 갚을 필요는 없는데."

"?!"

다 안다는 표정의 주헌에게 어깨가 잡힌 단은 기겁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기억을 찾았다고, 이 인간아!

그럴 때였다.

"해진 씨!"

일리야를 제외한 단원들이 주헌과 단을 백업하러 왔다.

하지만 그들은 단을 보자마자 무모하다며 나무랐다.

그의 괴물 같은 스피드도, 능력도 비보와 S급 빙의형 싸울아비 유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기억을 되찾았다곤 생각하지 않는 것이리라.

"아니 글쎄 해진 씨는 무덤 일에 관련되면 안 된다니까요!"

"아 저기 그러니까..."

"아니 물론 난 좋긴 한데, 수아는 어쩌고!"

"아니 그러니까..."

"아무튼 다음부터는 이런 위험한 짓 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단원들이 한마디씩 하자 결국 단은 폭발했다.

"사람 말 좀 들으라고! 이미 기억을 전부 되찾았다고!"

그 말에 단원들은 충격에 빠진 듯했다.

아, 아니 지금 뭐라고?

단장님이 까마귀 유물도 안 썼는데 어떻게!

동시에 유재하가 뭔가 찔끔한 듯 살금살금 도망치려고 했고, 주헌이 눈을 번쩍였다.

"유재하 이 새끼."

주헌은 유재하를 응징하듯 대뜸 멱살부터 잡았다.

"너 또 나 몰래 복제품 만들었냐. 그걸로 단을 시험용 쥐 삼았냐."

"아악! 아니에요. 전 범인이 아니... 아니 실은 복제품 만들긴 했는데... 그래도 그거 지금은 다 폐기했거든요?! 에이, 단이 그걸 쓸 줄 누가 알았... 컥!"

동시에 주헌의 표정을 본 유재하는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만약 지금 주헌이 유물을 쓸 수 있으면 진짜로 죽을지도 몰랐다.

뭐, 아무래야 좋았다.

"단장! 빨리 안 오면 버리고 갑니다!"

배를 지키고 있던 일리야의 목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특히 적들은 이를 갈았다.

"잡아! 저놈들 모두 비보를 가졌다! 섬에서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율리안이 급하게 외쳤다.

"일단 탈출부터 하자!"

"하지만 우리 주력 유물들이 아직!"

그럴 때였다.

신이 돕기라도 하듯, 적들에게 주헌 일행의 유물이 떨어졌다.

"이건!"

다른 발굴단들은 몹시 좋아했다.

주헌의 멍멍이 유물하며, 7대 무덤의 유물하며, 설아의 귀신 유물, 다빈치 유물, 솔로몬의 유물에 나이팅게일 유물 등등.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귀한 유물들이 적들의 손에 들어갔다.

틀림없이 주헌에게 잡힌 비보들의 마지막 발악인 것이리라.

주헌은 적들에게 잡힌 멍멍이 유물들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야, 거기 멍멍이들. 날 배신하겠다는 거냐?"

그러자 이집트 신급 유물들은 정말 억울해했다.

[주인, 그게 아니라...큭!]

적들은 멍멍이 유물들을 붙잡고 주헌을 협박했다.

"주력유물을 돌려받고 싶으면 비보를 내놔라."

"오. 나한테 뭘 내놓으라고?"

주헌이 사납게 웃자 적들은 비웃었다.

"센 척해도 안 속아. 너 지금 유물 못 쓰는 상태 맞지?"

주헌의 움직임을 보면 알았다.

사냥꾼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유물은커녕 평범한 단검만 들고 있고.

"아무리 대단한 놈들도 가끔 삑사리 나면 그리되지. 보통 일주일은 고자가 되더라고."

"어쨌든 유물을 못 쓰는 놈은 하나도 안 무서워. 저놈도 이빨 빠진 호랑이... 어?"

그 말을 하던 이들은 순간 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주헌에게서 흉흉한 까마귀의 오라가 스멀스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저, 저놈 유물을 못 쓰는 게 아니었..."

그러나 주헌의 눈이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유물을 못 쓰긴 누가 뭘 못 써.

"이미 5분 지났다, 이 등신들아!"

콰와앙!

까마귀, 아니 주헌의 분노가 섬에 작렬했다.

"빨리 내 유물 다 안 내놔?"

마치 다 내거라는 듯, 무시무시한 리스크(?)가 발동했다.

결국 그 엄청난 힘은 아예 이 섬 전체를 두동강내고,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고 말았다.

터엉!

주변에 있던 작은 섬들도 졸지에 지도에서 사라지는 진풍경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기절시킬만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게 되었다.

[왕의 비보, 서주헌이 모조리 독식. 대부분 왕의 자리 공석.]

[사상초유. 서주헌 발굴단 멤버 전원 왕급에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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