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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64화 (264/409)

264화. 저놈을 막아라 (3)

주헌이 눈을 떴다.

"유물들은 좋은 놈으로 가져왔겠지?"

그 눈이 몹시 붉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주헌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동굴 전체에 흉흉하게 맴돌던 검은 오라가 사라진 것 하며.

주헌의 저 모습 하며.

'유물들은 좋은 거로 가져왔냐고?'

저놈이 미쳤나.

"빼앗아! 비보를 저딴 놈한테 빼앗길 순 없다!"

운명왕의 말대로라면 여기에 있는 놈이 비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놈이었다.

"공격해! 그래봐야 놈은 한 명이다! 주력 유물도 없는 상태야!"

"비보는 공격기능이 없는 유물이다!"

예언에 의하면 비보는 거의 버프형 유물이었다.

제아무리 비보를 얻었다고 한들, 자신들과 비교하면 주헌은 빈손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모든 유물들은 적응기간이 필요한 법.

특히 신급 유물들은 왕급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다루지는 못했다.

'비보도 당장 다룰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생각에 미친 그들이 입꼬리를 올렸다.

"처리해라! 지금이 기회다!"

동시에 불덩어리들이 주헌에게 작렬했다.

쿠구구궁!

그러나 그 불덩어리를 보면서 주헌은 웃었다.

"오, 처음은 숯불구이라는 거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까무러칠 일이 벌어졌다.

쿵!

사라진 줄 알았던 흉악한 오라가 갑자기 뿜어져 나왔다.

마치 폭발하듯이!

독가스라도 뿜어내는 듯한 검은 오라는 강력한 재해를 불러왔다.

쿠구궁!

"끄아아악!"

잠시도 서 있기 힘든 강렬한 지진, 그리고 거친 돌풍이 적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흉흉한 포식의 힘이 발동됩니다.]

[포식의 힘이 적들을 빨아들입니다.]

마침내 주헌이 내뿜는 검은 오라는 불덩어리를 한순간에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원거리 공격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격들이 정체불명의 오라에 흡수되었다.

쿠구궁!

"아아악!"

태양의 코로나처럼 뿜어져 나오는 검은 오라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태양 주변에서 솟구쳐 오르는 홍염.

불덩어리는 주헌을 둘러싼 검은 오라에 삼켜졌고, 그걸 삼켜버린 오라는 점점 덩치를 불리며 커져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처럼 오라는 점점 더 사납게, 그리고 점점 더 커졌다.

이에 사람들이 겁을 먹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으아악!"

"젠장 빼, 빼앗아! 빼앗으라고!"

"저, 저게 있으면 왕급 중 최강이다. 최강이라고!"

적들은 고대 병사들을 소환하고, 엑소시즘 유물을 사용하고, 성수를 뿌리고, 경전을 읊고, 식인 거미며 쥐들까지 소환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등신들, 이것들이 알아서 퍼부어주네."

"뭐, 뭐라고?"

쿵!

"아아아악!"

적들이 사용한 유물들의 일격들은 죄다 검은 오라에 당해버렸다.

검은 오라에 닿자마자 공격들은 사라지고 오히려 검은 오라만 커졌다.

그 형상은 흡사 까마귀.

검은 오라의 형상이 날개처럼 변해 주헌이 흉악한 까마귀의 날개를 달은 것처럼 보였다.

곧 유물을 삼키던 주헌이 불만을 터트리며 놈들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입맛만 버렸다는 듯이.

"야야. 이딴 거 말고. 너희들 좀 더 좋은 거 가지고 있잖아? 어?"

이에 사람들은 덜덜 떨면서 기겁하고 말았다.

붉은 눈.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주헌의 눈 색깔이 변해 있었다.

평소의 검은색 눈이 악마 같은 붉은 색으로, 까마귀와 같은 그 붉은 눈으로.

결코 인간의 눈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서주헌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인간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틀림없었다.

'비보의 힘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버프형 유물인 비보에 이런 힘이 있다고?

'도대체 무슨 특성을 가진 비보길래!'

게다가 얻자마자 저걸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고?

다른 왕급들도 최소 몇 주는 숙련을 거쳐야 한다고 들었는데.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무서웠다.

그 공포감이 턱밑까지 닥쳐왔다.

'이건 못 빼앗는다.'

심지어 모든 유물은 인간이 사용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고, 아까의 오라가 인간과 만나 더 거칠고 더 강력해진 기분이었다.

결국 이건 아니다 싶었던 이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퇴... 퇴각, 일단 튀어!"

결국 그들은 도망치기 위해 공격 유물이 아닌, 특수한 순간이동 유물을 사용했다.

[안톤 차일링거의 순간이동 실험 논문 일부 (B급-희귀급 / 소모성 유물)]

하지만 퇴각은 개뿔.

"가긴 어딜 가. 어?"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고, 주헌은 뷔페 레스토랑에 온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주헌의 검은 오라가 살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몸에 지니고 있는 반짝이는 것들을 탐색하듯이.

사람들은 뱀처럼 다가오는 오라에 겁에 질렸다.

"아악!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오라는 사정없이 사람들을 덮쳤다.

습격을 당한 사람들은 유물을 빼앗기고, 육체와 정신을 유린당했다.

그렇게 유린당한 사람들은 거침없이 내던져졌다.

"헉, 허억!"

그리고 그 무렵, 사정없이 유물이 먹히는 광경을 보면서 비보들은 충격에 빠졌다.

비보들은 일방적인 포식에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다.'

[계약이 끝났어.]

[저 까마귀가 또 계약자를 얻어버렸어!]

비보들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또 우리들의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물며 있어서는 안 될 16번째 왕이라니.

긴급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갈아엎어야만 했다.

[이렇게 되면 할 수 없다. 빨리 인간과 계약을 해야 해!]

[과제를 보며 즐길 시간도 없다. 원래 판도라에서 정해뒀던 인간 놈이랑 계약해!]

모든 유물들은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70%밖에 힘을 낼 수가 없다.

까마귀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인간과 계약을 하고, 저 불온한 놈들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흩어져!]

하지만.

"야. 가긴 어딜 가."

[?!]

소리는 아래쪽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주헌이 자신들을 향해 소름끼치게 웃고 있었다.

"니들 다 내 꺼인 거 알지?"

그 소름끼치는 웃음에 비보들은 얼어붙었다.

***

비보들은 몸을 떨었다.

[저 미친놈!]

[어, 어서 무덤을 사수해!]

[무덤을 방어해라!]

정신체만 빠져나온 비보들은 급하게 본체가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다른 인간 놈이 저 말을 하면 애쓴다며 비웃었겠지만, 주헌의 미소에 비보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쩐지 저놈이라면 정말로 자신들을 독식하고도 남을 것 같아서.

그래서 무덤의 문을 꼭꼭 닫아버렸다.

주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실제로 주헌이 비보들의 무덤에 도착하자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출입을 거부하는 무덤입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이미 주인이 있는 무덤입니다.]

[선택받은 주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

[정복의 유물을 가진 자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습니다.]

뭐래, 이 가증스러운 것들이.

주헌의 붉은 눈이 번득였다.

동시에 무덤에서 큰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콰과광!

[무덤이 파괴당합니다.]

[무덤이 거칠게 파헤쳐집니다.]

[몸이 점령당했습니다.]

주헌은 거침없이 비보의 무덤을 점령했다.

문을 걸어 잠가도 소용없었다.

"일단 첫 번째."

주헌은 딱히 비보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단지 까마귀의 유물을 발동하자 흉흉한 오라가 비보를 감싸고, 집어 삼켜버렸다.

결국 블랙홀에 삼켜지듯 오라에 빨려들어가는 비보는 비명을 질렀다.

[젠, 젠장. 다들 도망...!]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비보들끼리 서로 돕자며 옹기종기 모여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주헌이 파죽지세로 다른 무덤에도 침입했다!

콰과광!

[놈이다! 이번엔 놈이 내 무덤에 나타났어!]

[침착해! 침착하고 죽여버려!]

아무리 까마귀 놈이 강하다고 해도 같은 급의 비보였다.

머릿수도 이쪽이 더 많았다.

하물며 아직 계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헌은 햇병아리 왕.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주헌은 귀신같이 사라졌다.

[은신 스킬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다른 무덤에 침입합니다.]

은신스킬로 순식간에 사라진 주헌은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나타났다.

그리고.

[성군을 뽑는 성스러운 비보를 도굴했습니다.]

[복을 부르는 비보를 도굴했습니다.]

[성스러운 비보를 도굴했습니다.]

...

[비보를 도굴했습니다.]

[비보를 도굴했습니다.]

[비보를 도굴했습니다.]

그리고 그쯤 되자 왕의 무덤을 탐색하고 있던 숱한 발굴단들은 혼란에 빠졌다.

각 무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그들은 순진하게 왕의 무덤에 들어왔지만...

"없어! 없다고! 무덤에 비보가 없어!"

"무덤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어디로 가긴.

한 놈이 모두 먹어치운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무렵.

해안가의 나무 위에서 주헌을 기다리고 있던 설아는 깜짝 놀랐다.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물체들 때문이었다.

"부단장님! 저기!"

해안선 곳곳에 함대들이 보였다.

오라를 탐지해보니, 각 나라의 군대들과 유명한 톱 발굴단들도 느껴졌다.

특히 주헌의 농락으로 엉뚱한 곳을 수색하던 TKBM과 대형 발굴단들도 기어이 섬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큰일이에요! 숫자가 너무 많아요!"

"괜찮아, 저들은 아직 우리가 비보를 얻은 걸 몰라."

적당히 단장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가, 섬에서 몰래 탈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야! 공명이이! 아이리이인! 설아야아!"

낯익은 목소리에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일리야와 유재하가 있었다.

그들은 둘을 반가워했다.

"잘했어! 너희들도 비보를 얻었구나!"

물론 머리는 다 타고, 화상을 입어 엉망진창인 유재하를 보고 아이린이 기겁했다.

"세상에, 재하 씨! 모습이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하지만 반가워하던 그들은 곧 말을 잇지 못했다.

왜?

"어머, 비보가 네 개나 더 있네?"

일리야와 유재하가 누굴 끌고 왔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체력 저질들이 왜 저렇게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나 싶었더니.

'진채원!'

하필이면 사황을!

그 미친 보스몰이(?)에 그들은 거품을 물었다.

아니 끌고 올 사람이 따로 있지!

"미쳤다고 저 여자를... 아니 잠깐, 저거 내 유물 아니야?!"

율리안은 인드라 유물을 다루는 진채원을 보며 기겁했다.

특히 총수의 유물과 인드라 유물을 함께 사용하는 진채원은 무시무시했다.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을 뿐인데, 무슨 마왕이 강림한 줄 알았다.

그쯤 되자 주헌 일행은 다급해졌다.

"젠장, 빨리 단장이랑 합류해야 하는데."

반면 진채원은 매우 기막혀했다.

유재하가 괘씸해서 쫓아온 것뿐인데, 전원 비보를 들고 있다니.

"역시 대단하긴 해. C급 유물들밖에 없어 보이는데 그걸로 비보를 얻다니."

실력만 보면 일당 천은 족히 하는 놈들.

서주헌이 대단한 놈들을 데리고 팀을 꾸린 건 확실했다.

하지만 놈들은 비보와 아직 계약을 안 했다.

'뭐, 그게 정상이지만.'

아직 무슨 유물인지도 모르는데 계약을 한다는 건 자살행위.

비보를 보자마자 계약한 유재하나 주헌이 몹시 대담하고 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비보를 빼앗길 수는 없다.'

주헌 일행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진채원은 날카롭게 비웃었다.

"어머, 지금 계약하려고?"

진채원의 눈이 그래봐야 늦었다는 듯 번득였다.

곧 인간의 속도로는 피할 수 없는 인드라의 번개가 작렬했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쿠구구궁!

주헌 일행을 노리던 번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야, 뒤질래? 누가 내 거 건들래."

모두 뒤에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진채원 역시도.

서슬 퍼런 살기에 주헌 일행마저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순간, 진채원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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