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저놈을 막아라 (2)
'서주헌!'
분명히 보였다.
굉장히 수상한 오라, 검고 흉흉한 오라를 띤 주헌의 모습이!
그리고 공격부터 날린 비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 모습은 설마!'
확실했다.
저 검고 흉흉한 오라는 틀림없는 까마귀 놈의 오라!
[젠장, 벌써 계약을 끝낸 거냐!]
그들은 충격에 빠진 듯했다.
기껏 만들어둔 무덤도 안 지키고 날아왔거늘, 소용이 없었다는 건가.
하지만 몰려왔던 비보들이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서주헌의 상태를 봐라.]
[!]
주헌을 본 비보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계약 중이구나.'
그렇다.
비보와 인간이 계약을 할 때는 약간의 텀이 있었다.
그 시간은 약 몇 분 정도.
아무래도 비보와의 계약은 보통의 유물과는 좀 다르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보통의 귀속성 유물들이야 이름만 박고 땡이지만, 비보 유물은 인간의 신체를 직접 개조해주는 것.
비보마다 능력은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왕급에 걸맞도록 신체 자체를 초인으로 개조하다보니 그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아직 계약을 완벽하게 끝내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직 기회가 있었다.
비보와 계약이 끝나는 건 신체의 개조가 끝난 다음.
그 전에 서주헌을 죽이거나 훼방을 놓으면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 판단한 비보들이 재빨리 일격을 가했다.
[저깟 무방비한 상태의 인간,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보들의 맹렬한 일격이 닥쳤다.
하지만 강력한 까마귀 오라에 막혀 비보들의 힘이 듣지를 않았다.
[비보들의 일격이 사라집니다.]
[비보들의 일격이 사라집니다.]
[젠장!]
아무래도 까마귀 놈이 계약자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효과는 있었다.
[주의. 계약이 중지되려 합니다.]
[이 이상 공격을 받으면 위험합니다.]
주변의 소음에도 인형처럼 꼼짝도 안 하는 주헌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주르륵.
그리고 비보들은 생각대로 되어간다며 기뻐했다.
[좋다. 끝내버리자.]
[죽어라, 서주헌.]
비보들은 각자의 힘을 모아 선제타격을 날렸다.
쿵!
하지만 비보들의 일격에도 아직 까마귀의 오라가 유효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화력 문제라는 걸 깨달은 그들은 굉장히 의아해했다.
아니, 물론 본체를 무덤에 두고, 정신체만 급하게 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화력이 제한된다고는 해도...
[야, 아무리 그래도 화력이 너무 약... 어?]
주위를 둘러보던 그들은 깜짝 놀랐다.
그건 당연했다.
[여기에 있던 놈들 다 어디 갔어?!]
[어, 어?!]
그랬다.
분명 이곳에 다 모였을 15개의 비보들 중, 몇몇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강력한 놈들이!
그러니 갑자기 화력이 줄어들 수밖에!
[뭐야, 나머지 놈들은 어떻게 된 거야!]
[아, 이놈들. 급하다고 덜렁거렸구만.]
[됐어. 조금만 기다려봐. 본체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면 다시 나타날 테니...]
다시 나타날 거라고 말을 하려던 그때였다.
번쩍!
다른 방향에서 눈부신 빛기둥이 높이 솟아올랐다.
그걸 본 비보들은 당황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저 빛들이 나오는 위치는 방금 사라진 비보들의 본체가 있는 곳.
그리고 저 빛의 반응은...
[설마.]
아니나 다를까.
[큰일 났습니다!]
비보들을 따르는 부하들이 급한 전갈을 보내왔다.
[비보들 중 몇 분이 벌써 서주헌 일행의 손에 들어갔어요!]
뭐라고?
[잠깐, 안 돼. 그러면!]
그들은 다급하게 주헌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같은 시간.
"뭐, 뭐야! 저 자식!"
진채원의 발굴단과 수석 복원사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저, 저 자식이 어떻게 살아있어...?"
다들 놀랐다.
특히 진채원은 제 손을 바라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번개를 머금은 손은 유재하의 심장에 닿아 있었는데, 유재하는 번개를 맞고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몸 전체에 극심한 화상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몇 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진채원이나 그의 부하들은 이미 비보와 계약을 할 때, 몇 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중간에 계약자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된다는 것도.
그때 죽여버리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는 것도.
그래서 눈치가 빠른 놈들은 진채원이 호구왕에게 비보를 넘기는 척하면서 죽여버릴 것임을 알았다.
중국의 이익을 고작 사진 한 장에 내던져버릴 위인도 아니었다.
아니 물론, 설령 진짜로 사진을 탐냈다고 하더라도 유재하를 죽이고 얻으면 그만이니까.
'애초에 우리 교수님은 협상을 할 타입이 아니야.'
원하는 게 있으면 힘으로 빼앗아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이게 웬걸.
"...너!"
진채원이 드물게 당황한 표정으로 유재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유재하는 흉측하게도 가슴과 몸이 타들어가고, 머리까지 꼬불꼬불 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어이쿠, 교수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시나 보죠?"
"...!"
진채원은 정말 드물게 살짝 겁에 질렸다.
무서운 게 아니라 인간은 원래 정체 모를 것에 두려워한다고, 딱 그런 심정이었다.
그럴 때 유재하는 콱 진채원의 팔을 붙잡았다.
진채원은 깜짝 놀랐다.
"아우씨, 됐으니까 빨리 손 떼! 아파 뒤지겠다!"
"..."
이 미친놈.
이건 말도 안 됐다.
유재하가 비보에 손을 대자 진채원은 바로 놈의 왼쪽 가슴을 뚫었다.
인드라의 번개유물로.
하지만 이상했다.
자고로 번개는 초속 100,000km.
빛의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인간이 반응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율리안이야 살상용으로 안 써서 그렇지, 자신은 살인을 목적으로 번개를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건...
'비보와 계약했다는 증거다.'
비보는 인간을 초인으로 만들어준다.
평범한 인간에서 초인으로.
그래서 왕급이 꾼급들과는 신체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어쨌든 이런 일격에도 멀쩡하다는 건 계약했다는 건데.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분은 걸리는 계약을 어떻게 단숨에!'
손에 닿자마자 계약을 끝낸 게 아닌 이상, 이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다들 믿지 못할 때 유일하게 한 명.
일리야만이 납득하고 있었다.
'저 자식, 역시 괜히 왕급 노릇을 한 건 아니네.'
썩어도 준치라고, 유재하는 단원들 중 유일한 왕급 경험자.
즉 비보와 계약하는 것도 이미 경험해봤다는 의미.
한 번 겪은 건데 새삼스럽게 몇 분이나 걸릴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놀라셨어, 교수님? 뭘 놀라. 뻔한 걸."
유재하는 알았다.
진채원이 어떤 꿍꿍이로 나올지.
그래서 도박을 한 것이다.
그리고 간 큰 도박은 성공했다.
그래서일까, 유재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자, 그럼 약속대로 사진은 줄게."
유재하는 진채원에게 사진을 쥐어 주었다.
"물론 내 사진이지만! 캬캬캬!"
그 말과 함께 유재하가 재빨리 튀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진채원은 사진을 보고 분노했다.
분명 19금... 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남자의 전신 알몸이 찍혀 있었다.
유재하의 뒷모습.
주헌에 비하면 상당히 평범한 뒷모습이.
"캬캬캬, 그림 작업에 참고한다고 찍은 게 이리 도움이 되네, 아무튼 단장님 죄송합니다! 평생 단장님 따르겠다고 했는데 저 진짜 죽을 뻔했어요!"
아니, 이제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일리야의 생각과 동시에 벼락이 내리쳤다.
쿠궁, 쿠르르릉!
분노한 진채원이 벼락을 마구 날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진채원은 마치 눈이라도 버렸다는 듯이 굉장히 화난 모양이었다.
아니, 눈도 버리고 비보도 빼앗기고 호구왕에게 속기까지 하고.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한거지만.
"이리와라, 호구왕."
"싫은데?! 너라면 가겠냐, 이 서주헌 스토커야!"
유재하는 일리야를 불러내면서 외쳤다.
"야야 삐약아! 네 비보도 얻으러 가야지!"
그 말에 일리야는 입꼬리를 올렸다.
"뭐래 등신아. 너랑 똑같이 취급하지 마. 난 이미 얻었거든?"
"뭐라고?! 언제!"
"등신아 몰랐냐? 식인종한테 쫓길 때. 그리고 아마 다른 녀석들도 이미 하나둘씩 얻은 것 같은데."
유재하는 충격을 받았다.
***
같은 시각.
"제, 젠장! 책략왕한테 비보를 빼앗겼다!"
"파산왕도 비보를 얻었... 컥!"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식들.
주헌을 노리는 비보들은 똥줄이 타들어갔다.
[젠장, 이러다가 정말 서주헌이 계약을 끝내겠어!]
[칫, 지금 우리 힘으로는 화력이 부족하고!]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였다.
[이 무덤에 있는 인간들을 이용해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비보들이 강탈해갔던 유물 사용자들의 유물들이 모조리 해방이 된 것이다.
물론 주헌 일행의 유물만 쏙 빼고.
그리고 그 유물들은 각자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비보들은 주헌의 라이벌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서주헌만 까마귀의 계약자가 아니면 된다.'
다른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유물을 돌려받은 적들은 놀랐다.
"뭐야 이거! 내 유물?!"
"섬에 오자마자 사라졌던 유물들이 왜!"
"야 됐어! 이게 있으면 비보를 찾는 건 일도 아니야!"
동시에 그들은 무덤의 중심부를 보며 눈을 번득였다.
왜?
"운명왕이 말한 비보는 분명 저거다!"
"까마귀 놈을 노려!"
그곳에 주헌이 있는 건 아직 모르지만, 까마귀의 흉흉한 오라는 무덤 중심부에서 보란 듯이 퍼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좋은 타겟.
"저 유물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
유물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흡족해했다.
[좋다, 아주 좋아.]
실제로 유물을 돌려받은 라이벌들은 순간이동을 하거나, 공간이동을 하는 둥 순식간에 움직였다.
바로 까마귀가 있는 곳으로.
놈들은 무척이나 빨랐다.
그때였다.
쿠르릉!
마침내 비보들에 의해 무너진 무덤의 틈으로 적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너무 강한 유물인 만큼 까마귀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찾았다, 서주헌이다."
동굴 안에서 제일 먼저 주헌의 등이 보였다.
주헌은 눈을 감은 채 무덤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천장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결국 그를 포위한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자, 어서 공격해라!"
"저 비보를 빼앗아!"
"별다른 유물도 없다! 지금이 없앨 기회야!"
"오라가 강렬하긴 하지만, 두려워 마라!"
그들은 까마귀 유물을 빼앗기 위해 접근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쿵!
흉흉하게 깔려 있던 검은 오라가 일순 사라졌다.
소름 돋을 정도로 아주 깨끗하게.
마치 폭풍전야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그래. 어서와. 첫 먹이는 너희들이냐?"
주헌이 눈을 떴다.
"유물들은 좋은 놈으로 가져왔겠지?"
그 눈이 몹시 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