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저놈을 막아라 (1)
[문이 닫힙니다.]
[무덤에 갇혔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주헌은 까마귀를 보았다.
까마귀는 눈을 번쩍이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마치 어디에 가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유물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반응의 차이일 것이다.
다른 유물들은 고압적이면서도 인간을 얕보는 것이 있다.
그러나 저 까마귀 놈은 달랐다.
[다른 무덤보다 이 무덤이 가장 뛰어납니다.]
[이 무덤에서 가장 도움이 될 유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가면 훗날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놈이 길 막아두고 뭐하자는 짓인지.
하지만 메시지와 다르게 까마귀는 힐끔 주헌을 보고 있었다.
[왜 안 나가고 있느냐?]
뭐가 어쩌고 저째.
"야. 니가 길 막았잖아. 이거 안 열어?"
그러나 까마귀는 시큰둥하게 자리를 깔고 앉았다.
자기가 무슨 고양이라도 되는 건지 돌기둥 위에 편하게 배를 깔고.
그러더니.
[난 길을 막은 적이 없다. 알아서 나가거라.]
저놈이 진짜.
까마귀는 어디 한번 나가보라는 기세였다.
그렇다.
저 까마귀가 다른 유물들과 차이가 있다면, 인간을 얕보는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느 신급 유물답게 고압적이긴 하지만 유물 특유의 불쾌함을 자아내는 느낌은 없다.
그게 신기했다.
물론...
[뭐하고 있느냐, 어서 다른 비보를 만나러 가보라는데도.]
인간을 농락(?)하려는 점에서는 유물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주헌은 시치미를 뚝 떼는 까마귀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오냐,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알았어, 난 딴 놈 만나러 간다."
주헌은 막혀버린 샛길을 향해 다가갔다.
물론 까마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로 주헌이 이곳을 나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콰르르릉!
[?!]
정말로 나가려고 했다!
그 증거로 까마귀가 막아 두었던 샛길이 뻥 뚫리고 말았던 것이다.
잠시 후, 까마귀의 눈에서 절규하는 변강쇠의 모습이 보였다.
[나, 나리...! 제가 도움이 되었습니까아...!]
"그래. 네 숭고한 희생은 잊지 않으마."
누더기가 된 변강쇠는 정말 감동한 듯 했다.
[나, 나리... 그럼...!]
"특별히 50년 뒤에 복원해줄게."
[커헉!]
졸지에 폭탄으로 변한 변강쇠는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주헌은 태연하게 변강쇠를 뒤로한 채 샛길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까마귀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자신이 봐온 주헌이라면 저러고도 남긴 하겠지만, 그래도 설마 정말 저렇게 뚫고 나가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던 탓이었다.
그렇게까지 이 무덤에 있기 싫다는 것일까.
까마귀는 충격까지 받은 듯했다.
또다시 샛길을 막아버리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글쎄.
쾅! 콰과과광!
주헌은 태연하게 무덤파괴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지껄였다.
"어, 뭐야. 스킬 사용할 수 있잖아?"
자신의 모든 스킬은 까마귀 놈이 준 것.
당연히 이 무덤에서도 통용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했건만 이게 웬 걸.
쾅! 콰과광! 쾅!
무덤파괴 스킬은 잘만 써졌다.
그래서 주헌이 괜히 변강쇠를 파괴했다며 무덤을 나갔다.
그리고 황당해하는 까마귀에게 한마디 했다.
"스킬부터 봉인했어야지, 이 멍청한 놈."
콰르릉!
결국 주헌이 마지막 남은 벽까지 깨부수자 까마귀는 제법 다급해진 기미였다.
표정의 변화는 없고 여전히 침착한 기색이지만, 묘하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일까.
[아... 알았다. 기다려라, 인간. 과제는 내지 않겠다.]
과제는 개뿔이.
콰르르릉!
[기, 기다리라니까!]
까마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다. 다른 놈들의 특성에 대해서는 전부 알려주겠다.]
이번엔 주헌이 제법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흥미롭긴 한데 됐어. 그래봐야 운명왕한테서 대충 들어서 감이 오거든."
까마귀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좋다. 그럼 네게 유익한 스킬을 주겠다. 대가도 없이 그냥!]
"허. 이미 공짜로 여러 가지 스킬 줬잖아. 새삼 돈 받으려고 했냐? 이거 완전 도둑놈이네."
[?!]
주헌은 뻔뻔하게 혀를 찼다.
"탐나는 놈들이 꽤 많단 말이야. 그중에 하나밖에 못 얻는 마당에 네놈까지 고려할 여유는 없어."
그래봐야 저주 받은 까마귀 놈이.
결국 주헌이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뒤돌아서자 까마귀는 내심 다급해진 듯 했다.
그래서일까.
[15개의 비보를 다 가지고 싶은 거지?]
우뚝.
까마귀의 외침에 주헌이 멈췄다.
그걸 확인한 까마귀가 말을 이었다.
[날 가져가면 그 15개를 다 가질 수 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은 까마귀를 돌아보았다.
"오, 그거 정말이야?"
그는 이런 걸 기다렸다는 듯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
같은 시각.
까마귀의 기운에 당황하고 있던 비보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뭐라고? 서주헌이 까마귀와 접촉을 한 것 같다고?]
그들에겐 정말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까마귀의 능력이 무엇인지 모를 자신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안 된다. 그놈이 다시 인간과 계약을 맺으면...!'
또다시 파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도대체 그놈이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거지.'
확실한 건 이곳은 놈의 무덤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비보들은 자신들이 가둔 유물들 중, 7대 유물들을 불렀다.
살리에리와 달기는 이미 일리야와 아이린에게 가 있는 상황.
이곳에 남은 것은 네로와 파라오 유물, 나폴레옹, 항우 정도였다.
[네놈들이 까마귀 무덤의 설계를 맡지 않았느냐.]
까마귀 유물을 봉인한 건 108개의 신급 유물들.
하지만 그 무덤의 축을 맡고 있는 건 7대 무덤 유물인 터라 그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어찌 된 건지 설명을 해보시지. 설마 너희가 풀어준 거냐?]
[그런 것이 아니다.]
답한 건 네로였다.
[서주헌이 7대 유물의 절반 이상을 다 모았어.]
[설마 그 탓에 까마귀 무덤의 봉인이 풀렸다는 거냐.]
[서주헌한테 잡힌 유물들은 꽤 잡혀 살거든. 까마귀 무덤의 축까지 신경 쓸 힘도 남아 있지는 않을걸.]
그건 그렇다.
누구나 주헌의 손에 들어가면 신고식(?)처럼 응징을 받기 마련이니까.
그 말에 멍멍이 유물들이 몸을 떨었다.
실제로 그 교육(?)을 받아본 놈들은 다 안다.
정말 딱 죽기 직전까지의 빈사상태로 만들어 복원시키는 놈의 악랄함을.
결국 까마귀 무덤의 축을 맡던 7대 무덤 유물들이 빈사직전까지 갔을 때, 자연스럽게 축이 헐거워졌을 것이라는 거다.
[그러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무덤의 일부가 구멍이 났겠지.]
[그 구멍으로 빠져나왔을 거고.]
그래서 까마귀가 이 왕의 무덤에 숨어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본인도 왕을 선발하기 위해서?]
그 말에 유물들이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비보의 자격도 잃은 놈이 어디서.]
[그놈은 왕을 뽑을 자격도 없는 놈이다!]
유물들에게는 절대적인 인간 지도자가 필요하긴 했다.
자신들이 평범한 골동품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줄 특별한 인간을.
지금까지야 꼼수를 부려서 수치스러운 지배를 받지 않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왕의 존재는 필요했다.
그리고 그 왕의 후보들을 간택하기 위한 것들이 바로 자신들 같은 비보들.
유물 중에서도 특별한 상징물로서 왕급을 선발하는 게 허락된 특수한 유물들.
까마귀 역시 그 선발자 중 하나였지만 글쎄.
[동족들을 배신하고 유물들을 없애려고 한 놈.]
[배신자를 이번에야 말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서주헌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까마귀 유물은 다른 유물들도 두려워하는 흉악하고 강력한 유물.
거기에 서주헌은 유물의 꼬임에도 넘어가지 않는 골치 아픈 인간.
그 둘이 만나봐라.
'예전엔 까마귀의 주인 놈을 꼬시기라도 했지.'
전에는 까마귀의 주인 놈을 회유할 수 있었다.
인간은 다 똑같으니까.
인간인 이상 욕심 없는 인간은 없다.
결국 그 탓에 유물 앞에서 작아지는 것이 인간.
그들은 자신들이 깨질까 사라질까, 금이야 옥이야 돈처럼 아끼는 것이 본성이다.
그러나 아끼기는 개뿔.
서주헌은, 물건 주제에 말 안 들어?
그럼 꺼지라며 사정없이 박살내는 놈이었다.
욕심이 없는 놈이냐고 하면 그건 또 절대 아니었다.
놀부 중에서도 이런 놀부는 없는 주제에 그 모양으로 유물을 잡아대니 유물들은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그런 만큼 놈을 회유하려고 덤벼들었다가 깨부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니 안 됐다.
다른 인간들에 비해 서주헌은 지나치게 다루기가 힘들었다.
[서주헌이 그 까마귀와 계약하는 걸 막아라!]
[또 그 까마귀 놈이 난동을 부리는 건 볼 수 없다!]
[하지만 놈들을 어떻게 막아야...!]
그 말에 비보들이 결심했다.
[어차피 이렇게 후보자들을 기다릴 시간도 없다. 한가롭게 과제를 낼 시간이 없어.]
[그러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보들이 무덤을 탈출했다.
쿵! 쿵!
빛줄기로 변한 놈들은 하늘로 치솟아올랐다.
스스로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서주헌과 까마귀 놈을 막아라!]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주헌을 향해 날아갔다.
***
한편 그 무렵.
"교수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오피셜 복원사들은 기겁해서 진채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놈하고 손을 잡겠다고 하신 겁니까?"
"진짜 그 서주헌 19금... 아니, 사진 때문에?!"
입에 담기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채원은 대수롭지 않게 웃는 것이었다.
"그럼 안 돼?"
그럼 되겠냐?
저 여자가 미쳤나!
복원사들은 비명을 질렀고, 진채원의 부하들은 탄식했다.
그리고 그럴 때 유재하는 낄낄 웃었다.
"역시 저 여자, 단장님 스토커질을 괜히 하는 게 아니었다니까."
저 여자라면 분명 걸릴 줄 알았다.
안 그래도 단장님의 사진은 귀한데 무려 19금 사진이란다.
안 걸리고 배기겠는가.
하지만 계획대로라며 낄낄거리는 유재하를 향해 일리야가 한소리 했다.
"너 또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진짜 있는 거 맞아?"
일리야의 말에 유재하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일리야는 깜짝 놀랐다.
"야, 너 미쳤냐? 후환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사나이. 원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지. 하, 단장님 죄송합니다."
"......"
그럴 때였다.
진채원의 죽 끓듯 하는 변덕에 정작 그녀의 부하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단장님, 지금 뭘 하자는...!"
"쉿. 단장님도 생각이 있으실 거다."
진채원이 워낙 변덕이 심하긴 해도 중국의 이익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여자는 아니었다.
분명 계락이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건 맞았다.
'사진만 얻으면 볼 일 없다.'
그녀는 잔인했다.
비보를 얻게 해주는 척하면서 사진만 빼앗으면 호구왕에게 볼 일은 없었다.
그대로 죽여버리면 그만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자, 이리 와. 이게 네가 바라던 그 비보가 맞지?"
어느새 호수에 난 길을 건넌 진채원이 웃어보였다.
인드라 유물로 호수의 함정을 죄다 파괴하고 금방 비보를 손에 넣은 것이다.
호수 안에 숨겨져있던 비보가 진채원의 손 위에 있었다.
곧 유재하가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찬란하게 빛을 내는 그것은 틀림없는 비보!
'전에 내가 사용하던 녀석이다.'
"자, 어서 와서 계약을 해."
"교수니임!"
그러나 유재하에게 손을 내미는 진채원의 미소가 심상치 않았다.
'비보와 계약하는 몇 분의 타이밍이 있다.'
그 시간 동안은 완벽한 무방비 상태.
그때를 노려서...
'죽인다.'
그리고 그 살의 넘치는 낌새에 일리야가 황급히 외쳤다.
"야! 호구! 잠깐만!"
동시에 유재하가 비보에 손을 댔다.
그리고 진채원이 번개로 유재하를 죽이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릉!
무덤 전체가 흔들렸다.
전에 없던 격렬한 지진!
"아아악!"
"꺄아아악!"
그들은 기겁했다.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면서 바깥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왕의 무덤에 숨겨져 있던 비보들이 일제히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었다.
이 섬에 있는 모든 왕급들이 그걸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놈들은 창공에서 어떤 무덤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쿠웅!
엄청난 빛줄기들이 한 무덤을 박살을 내자 나타난 것은...
'서주헌!'
분명히 보였다.
굉장히 수상한 오라, 검고 흉흉한 오라를 띤 주헌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