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기묘한 동거인 (3)
"어쩌긴, 가라! 삐약이! 제이슨이 되어버리는 거야!"
저거 콱 죽여버릴까보다!
일리야는 욕이 나오는 것을 삼켰다.
하필이면 만나도 저딴 거지 같은 놈을 만나가지고!
차라리 단장이나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필 단원 중에서도 제일 쓸모 없는 놈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일리야 뿐이겠지만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아, 됐고! 너는 무슨 유물을 가졌는데 그 지랄을..."
떠는 거냐고 물을 것도 없어보였다.
유재하의 뒤로 낯익은 유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오, 보이. 날 두고 가지 말아줘.]
곧 그게 7대 무덤의 유물이라는 걸 깨달은 일리야는 쌍욕을 했다.
'저놈이 저런 좋은 걸 가지고도!'
7대 무덤의 유물은 그 자체로도 왕급의 전력이 될 만큼 강력한 유물.
하물며 저 유물은 매우 강력한 예술계 유물이었다.
예술계열은 기본적으로 창조기능 외에도 인간의 마음을 현혹하는 유물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예술은 인간을 반하게 만든다고 하니까.
즉, 자신이 다루는 악마 유물과도 아주 상성이 좋다는 의미.
일리야가 다루기엔 충분했다.
그걸 잘 알기에 일리야는 눈에 불꽃을 튀겼다.
아니, 누구는 이딴 무식한 날붙이나 배정 되었는데 저놈은!
"야! 그 좋은 걸 못 쓰고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쓸 거면 차라리 날 줘!"
그 말에 유재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
이걸 달라고?
꺼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유재하는 어째서인지 히죽거렸다.
"오냐, 그럼 이거 너 줄게!"
심지어 낼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유재하가 작은 수첩 형태의 유물을 내던졌다.
"받아라! 자식아!"
그걸 본 일리야는 기뻐하며 손을 뻗었다.
'역시 저 호구놈!'
"등신! 게이 유물이라고 다루기 싫어하나 본데, 그딴 유물의 성향은 지배력으로 누르면 그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잡아! 잡으라고!]
"엥?"
일리야가 살리에리를 잡은 그 순간.
유재하를 쫓던 식인종들이 죄다 일리야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놈을 찢어 죽여!]
"아아악! 뭐야 이건 또!"
백 명이 넘는 식인종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일리야를 죽이려고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악!"
일리야가 멀어졌다.
그리고 그걸 보며 유재하는 그제야 살았다며 숨을 돌렸다.
"등신, 내가 단순히 게이 유물이라고 싫어하는 줄 아냐?"
그렇다.
유재하가 살리에리의 유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어그로.'
살리에리의 특성 중 하나는 '질투' 였다.
그리고 질투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그것이 폭발하여 오는 증오와 적의를 의미하는 것.
한마디로 말해 적의 공격성을 엄청 키워준다는 의미였다.
"게임으로 치면 어그로지 어그로."
그래서 살리에리의 유물을 던지자마자 식인종들이 옮겨간 것이었고.
"아무튼 자식, 고맙다. 드디어 저놈을 떼어냈네."
방금 전에야 '유물 줘' '오케이' 같은 소유권 이동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원래 같으면 자신은 살리에리 유물을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가 없었다.
왜?
친화력이 엄청 높으니까.
친화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유물들이 들러붙는 체질이 되었고, 어지간해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이 호구새끼야, 가긴 어딜 가. 넌 영원히 내 따까리야.'
'친구야, 어딜 가. 우리 영원히 함께 하자.'
'자기, 우리 같이 죽자.'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젠장, 지배력이라도 높으면 휘어잡을 수라도 있지.'
자신은 적합력과 친화력만 극도로 높지, 지배력은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헌이라면 살리에리 유물을 잘 교육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주헌에게 제발 가져가달라고 사정했지만...
'꺼져. 친화력을 필요로 하는 유물은 전부 쓰레기야. 이 세상에 존재가치가 없어.'
단칼에 거절당했다.
주헌은 친화력을 필요로 하는 유물이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뭐래. 그냥 지가 못 쓰니까 그런 주제에... 커헉!'
유재하는 맞았다.
하지만 유재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천하의 주헌도 친화력을 베이스로 하는 유물 앞에선 고자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삐약이 일리야는 뭐...
"아아악! 호구왕, 이 개새끼이이! 끄아악!"
죽든지 말든지.
유재하는 일리야가 떨어트리고 간 은도끼 놈을 주웠다.
"하하하! 일리야 등신놈. 살리에리보단 이게 천만 배 낫구만."
그 말에 은도끼도 신나했다.
키야 좋아! 동지! 공범! 여자를 벗기자! 같이 벗겨버리자고!
... 정말 이쪽이 나은 거 맞겠지?
***
한편 그 무렵.
"어유! 얘! 도망치지 말라니까!"
설아는 도망가는 유물을 보며 탄식했다.
"얘! 안 해치니까 제발 이리 좀 와!"
설아 역시 믿었던 귀신 유물 대신, 이상한 유물이 걸렸다.
그래도 이거라도 잘 써서 비보가 있는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건만, 이게 무슨...
[흐아아앙!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9살난 아이의 모습을 한 유물은 울부짖으면서 설아를 피해 다녔다.
그래서 억지로 붙잡았더니...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어어! 귀신을 다루다니 무서우어어! 그리고 예쁜 여자는 구미호랬어! 으아아앙!]
그런 개소리를 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설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자신이 악마나 구미호쯤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 여우는 따로 있는데.'
설아는 달기를 떠올리며 파르르 떨었다.
누가 색욕의 유물 아니랄까 봐, 달기는 평소에도 남자단원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평소에도 가슴이 드러나거나, 엉덩이가 드러나는 아찔한 옷으로 단원들을 농락하는 건 기본.
게다가.
[인간, 너무나도 춥구나.]
'컥!'
계단을 올라가던 순진한 청년 율리안은 위층에서 아슬아슬하게 앉아있는 달기를 보고 계단에서 굴러버렸고.
[인간, 나도 예술에 대해 알고 싶구나.]
"커, 커허억!"
조각을 하던 유재하는 바지를 슬쩍 내리는 달기 때문에 손을 다치기 일쑤.
룩덕 일리야는 달기에게 옷을 사입히다가 재산을 탕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인간, 내가 싫은 것이냐?]
"저리 안 꺼져?"
뻔뻔하게 주헌과 잠자리를 같이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뭐, 그럴 때마다 어째서인지 달기는 아침에 밧줄에 꽁꽁 묶인 채로 발견되긴 했지만, 열 받지 않을 리가!
"망할 놈의 달기!"
그리고 그럴 때였다.
[누가 망할 놈이라고?]
쿵!
"위험해!"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설아가 밀쳐졌다.
그리고 뒤이어 살벌한 괴수가 나타났다.
설아는 낯익은 목소리에 얼굴이 밝아져 고개를 돌렸다.
"클로에!"
거기엔 클로에가 있었다.
"다행이다, 무사했... 어?"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뒤를 보고 기겁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오호라, 이거 아주 좋은 기회로구나.]
클로에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달기였던 것이다.
가슴이 드러나는 중국 복식.
쏙 들어간 허리에 큰 가슴, 하얀 피부.
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세미인.
달기는 아주 우아하게, 그러면서도 섹시한 손놀림으로 얼굴을 톡톡 치고 있었다.
[서주헌에게 달라붙는 요망한 인간 여자들에게 진짜 안주인이 누군지 알려줄 기회로구나.]
설아는 기가 막혔다.
뭐가 어쩌고 저째?
"안주인?"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뭐야, 왜 달기가 있는 건데! 클로에, 설마 너한테 배정된 유물이야?"
"아니. 나는 아닌데...!"
"그럼 누구한테 배정된 건데?!"
"나도 모르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은 또다시 습격을 받았다.
콰앙!
"꺄악!"
자신도 클로에도 아니라면 누구한테 배정된 거지?
'주인도 무시하고 혼자 폭주하고 있다는 건가?'
그런데 이때였다.
[!]
갑자기 달기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굉장히 난처하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
[그 인간, 벌써 여기까지 왔나!]
달기는 황급히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어허. 누구 마음대로 도망가도 좋다고 했어?"
나타난 것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빡쳐 있는 듯한 아이린이었다.
***
"강탈왕이다! 강탈왕을 발견했다!"
"젠장."
한편 그 무렵.
제일 먼저 무덤의 중심부에 도착한 주헌은 추적자들 탓에 눈살을 찌푸렸다.
기껏 무덤의 중심부까지 몰래 들어온 건 좋은데, 방해꾼들이 있었다.
자신이 운명왕을 이용한 덕분에 주력 발굴단들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놓았지만...
'마이너 발굴단들이 문제로군.'
유명한 발굴단들은 아니다.
몸집이 큰 발굴단도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별 것 아닌 발굴단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다만 신경쓰이는 것은...
'물.'
주헌은 정글에 흐르고 있는 강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강에 둥둥 뜬 물고기들의 시체.
그리고 점점 시들어가는 주변의 나무들.
확실했다.
과거 환경을 오염시키던 왕급의 짓이다.
덕분에 치명적인 물부족 사태를 초래했던.
'그 왕급들이 근처에 왔다.'
메이저는 아니라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예사롭지 않은 놈들이 비보를 얻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이 무덤은 왕급들이 총집결하는 자리일 만큼.
그뿐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유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주헌이 알지 못하는 흉흉한 오라들이 느껴졌다.
[2차 세계대전의 악마들이 몰려옵니다.]
[중세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이 몰려옵니다.]
[세계를 풍미한 희대의 악마들이 다가옵니다.]
그건 진채원이 세상에 뿌린 악질적인 신급 유물을 가진 놈들이었다.
어쨌거나 놈들보다 먼저 비보를 찾아야 했다.
왜?
비보는 특별한 유물이라 한번 사용하면 사용자에게 영구적으로 귀속된다고 했으니까.
즉, 먼저 빼앗기면 결코 되찾을 수 없단 의미.
'그 전에 찾아야 한다.'
분명 유재하의 말에 의하면 비보를 얻으면 신의 힘 나부랭이를 얻게 된다고 하던가.
그 증거로 SS급 (신급 유물 사용자)에서 SS급 (신의 현신)으로 바뀐다고.
주헌은 한눈에도 흉흉한 오라가 도는 돌산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어쨌거나 이 안에 들어가려면 더 강한 유물이 필요하다.'
물론 동아줄이 열심히 적들을 때리며 싸워주고는 있다.
저리 안 가? 안 가?
하지만 확실히 한계가 있다.
'다른 공격형 유물이 더 필요해.'
어디 유물을 수급할 만한 곳이 없을까.
그리고 그 순간.
"!"
주헌은 제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바로 칼을 뽑았다.
그리고 사정없이 적의 목에 칼을 쑤셔 박았다.
푸욱!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할 생각도 없었다.
무덤에서는 그 누구든지 제 뒤에 오는 놈은 적이었다.
그리고 주헌의 일격에 사내가 피를 머금고 쓰러졌다.
"커, 커헉. 강탈왕...!"
털썩.
예상대로 자신을 노리는 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주헌을 노리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하지만 주헌은 그걸 보면서 입꼬리를 씰룩였다.
"좋아, 내놔라, 유물!"
빠각! 빠각!
놈들의 목을 비틀고, 관절을 꺾고, 칼로 놈들의 근육을 도려내고.
주헌은 신나게 놈들을 털어냈다.
"커헉, 커허억!"
"대, 대장 역시 강탈왕은 무리였..."
그들은 손도 쓰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하지만 주헌은 무척 좋아했다.
[강력한 A급 유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격력이 높은 B급 유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을 소환하는 S급 유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역시 괜히 왕급들의 부하들이 아닌지 제법 쓸 만한 유물들이 많았다.
"좋았어. 이것만 있으면..."
하지만 주헌은 곧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친화력이 필요합니다.]
[높은 친화력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쓸 수 없습니다.]
[친화력을 높이세요.]
이런 엿 같은.
하필이면 왜 가지고 있는 게 죄다 친화력 유물인데!
그리고 그럴 때였다.
[그럴 땐 내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인간.]
주헌은 낯익은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