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왕의 무덤 (4)
[저기 그 왕의 무덤에서요.]
"뭐."
[유배된 까마귀 놈의 무덤이 느껴지고 있다고...]
그의 얼굴이 좀 일그러졌다.
'이건 또 뭔소리야.'
그 무덤이 거기에 왜!
그들은 당황스러웠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과거에 유배시킨 까마귀 놈의 무덤이라니.
'거기에 왜 그놈이 있어.'
이번에 나올 왕의 무덤은 로스차일드, 아니 인간의 탈을 쓴 이 유물이 잘 아는 유물들이었다.
왕의 무덤에 나올 유물들은 자신의 아군들이니까.
그 녀석들은 특수 유물 계열로, 이번에 왕급들을 심사하기 위해 특별히 모습을 드러낸 엉덩이 무거운 놈들이었다.
까마귀를 유배한 놈들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놈들이 만들어낸 무덤에 까마귀 놈이 끼어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그런 곳에 있을 리가 없다.'
까마귀를 유배한 장소는 그곳이 아니다.
이에 제우스의 독수리,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기도 한 바로 그 독수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표류하는 무덤이라서 우연히 거기에 나타난 걸까요?]
우연히 그곳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는 고개를 저었다.
표류하는 무덤이라고 한들,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낼 무덤도 아니다.
'봉인이라도 풀리지 않는 이상.'
수백 개의 신급 유물들이 힘을 합쳐 봉인한 무덤이었다.
특별한 조건없이는 풀리지도 않는다.
'별거 아닐 거다.'
하지만 경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쪽으로 아군을 보내라.]
로스차일드는 독수리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독수리가 알겠다며 퍼드득 날아갔다.
"이렇게 총 34명. 이번에 왕급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입니다. 최종 15인에 확정될 후보들이기도 하죠."
[강탈왕]
[호구왕]
[책략왕]
[독박왕]
[선포왕]
[내기왕]
[잉여왕]
[풍요왕]
...
[탐식왕]
[판매왕]
[저질왕]
[유혹왕]
[게임왕]
아주 다양한 왕급들이 있었다.
PTT에는 그들의 이동 추측 경로가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눈에 걸리는 건 강탈왕.
그들은 분주하게 외쳤다.
"서둘러 왕급들과 휘하 발굴단을 보내세요. 절대로 서주헌에게 빼앗기면 안 됩니다!"
***
"아씨! 또 허탕이야!"
TKBM의 발굴단은 욕을 날렸다.
"개 같은 호구왕 새끼!"
그들은 눈앞에서 낄낄 거리고 있는 석고상을 걷어찼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박살 낸 것은 또 서주헌의 가짜인 모양이었다.
기껏 비보의 행방을 알고 있을 주헌을 미행하는 데 성공했나 싶었더니.
"안 되겠어, 유재하한테 암살자라도 붙이자. 잘 때라도 노리자고."
유재하는 졸지에 잠도 마음대로 못 자게 생기고 말았다.
"아 유재하도 그렇지만 운명왕 때문에 미치겠네."
"그러게. 이러다가 진짜 재수 없게 회장님이 왕급에서 탈락되는 거 아냐?"
TKBM 역시 운명왕과 긴밀하게 커넥션을 맺고 있던 발굴단 중 하나.
이번에 주헌의 농락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중 하나라는 의미였다.
그들은 신문기사를 보며 화를 냈다.
[판도라 시스템 유물 "비보가 있어야 최종적으로 왕급 인정."]
[발등에 불 떨어진 톱 발굴단들 "왕급 자리 놓칠 수 없어."]
[왕급이 될 수 있는 마지막 찬스가 될 수도.]
찬스는 뭐가 마지막 찬스야!
"판도라에 바친 돈이 얼만데!"
서주헌이 운명왕을 날치기 하지만 않았어도 쉽게 비보를 손에 얻어 왕급으로서 입지를 다잡았을 텐데 말이다.
"이러다가 믿었던 후보들이 죄다 왕급 못 되는 거 아냐?"
"단장이 왕급이 아니면 발굴단의 입지도 떨어질 텐데..."
"도대체 어떻게 판세가 변하려고 이러나..."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야. 그래도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니야?"
"뭐?"
"그 비보를 얻기만 하면 우리도 왕급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
"..."
동시에 도는 침묵.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생각해보니 또 그러네?"
"잘하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 기회 아니냐?"
사실 지금까지 왕급이란 돈 많은 놈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몇 명 빼곤 별것 아닌 놈들이 왕급이 되었지.'
적당히 돈 많고 권력 되고, 지배력 조건 되는 놈들이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솔직히 그놈들하고 비교해서 실력적으로 우리가 뭐가 부족한데?"
"그건 그래."
결국 엘리트 발굴단에 소속된 꾼급들은 반기를 일으켰다.
"야! 비보를 찾아!"
"왕급이 되면 5대가 먹고 살 수 있다고 했어!"
그렇게 수많은 발굴단에서 이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황이 이쯤 되자 정작 왕급들은 뒷목을 잡았다.
"뭐야? 부하직원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네, 아무래도 비보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발굴단의 단장으로 있는 왕급들은 미칠 것 같았다.
서주헌 때문에 너도나도 왕급이 될 수 있는 찬스라며 딴생각을 품으니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그쪽 팀도 반란을 일으켰어요?"
"죄다 지금 한눈을 팔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그 운명왕 때문에!"
운명왕과 결탁을 맺고 있는 왕급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아니, 주헌을 뺀 나머지는 얼마나 의지하냐 마냐의 차이지 전부 운명왕의 고객이었다.
그리고 왕급의 자리를 돈으로 매수한 자들은 분했다.
그러니 이런 말을 지껄일 수밖에.
'개 같은 서주헌.'
주헌은 오늘 참으로 여러 번 개가 되고 있었다.
***
그리고 그 무렵.
"왕의 비보는 태평양 쪽에서 나타난 것 같다."
중국 주석과 정치 간부들의 말에 총수 유물의 사용자.
탐식왕 진채원 교수는 방긋 웃어보였다.
"네, 저도 들었어요. 이설아 요원이 그렇게 전해줬거든요."
그 말에 중국 간부들이 밝아졌다.
"오, 이설아가?"
"서주헌이랑 있다가 놈한테 넘어간 줄 알았는데 제대로 일을 하고 있나 보군."
"그 여자애가 능력은 뛰어난데 너무 젊은 게 흠이라서..."
그들은 설아를 일단 스파이로서 주헌에 꽂아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젊은 남녀가 함께 있으면 서로 눈이 맞기 십상이니까.
"어쨌든 특별히 걸린 건 없지만, 영 찜찜해서 슬슬 제거하려고 했더니..."
"전 가족을 가지고 협박이라도 해보려고 했죠."
그 말에 진채원이 그러지 말라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 아이는 제대로 서주헌의 정보를 제게 넘겨주고 있어요."
"그럼 다행이고."
동시에 진채원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설아가 서주헌의 정보를 넘겨주기는 개뿔.
설아는 한 번도 진채원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채원은 설아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왜?
'이러면 서주헌한테 점수 좀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주헌이 단원들을 아끼는 건 사실 같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정보를 받고 있는 건 맞거든.'
진채원은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기뻐했다.
핸드폰에는 중국 간부의 핸드폰을 해킹한 문서로 가득했다.
정확히는 설아가 주헌에 대해 보고를 하는 그 상사의 핸드폰이다.
그걸 해킹한 진채원은 설아가 보낸 보고 내용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뭐 그래봐야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지만 주헌에 대한 건 중요한 정보는 조금이나마 건질 수 있었다.
'서주헌, 키는 183에 74 키로. 발사이즈는 275.'
정말 중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엔 옷이나 신발이라도 선물을 보낼까?'
아니면 활자 중독자라니까 책이라도? 권투를 즐겨 한다니까 글로브?'
진채원은 이제 아주 오기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토록 흥미가 생기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주헌의 관심을 끌기 위해 메일과 메시지를 날렸지만 무시당하고 또 무시당했다.
솔직히 어디에 가도 대시를 받는 그녀인지라 이런 경험은 처음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번에 왕의 무덤 건으로도 그녀는 들떠 있었다.
'비보를 찾으러 가면 서주헌이랑 또 만날 수 있겠지?'
또 씹힐 건 생각도 않는 모양이었다.
***
"슬슬 하이에나들이 몰려오나보다."
주헌의 말에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전파도 뭐도 안 잡히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뭐가 어째?
"놈들이 오는 건 어찌 알아요?"
주헌은 대답 대신 웃었다.
어찌 알긴.
[신급 유물들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미의 여신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흉포한 악마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눈앞에 시끄럽게 떠오르는 메시지 덕분이지.
아무래도 판도라가 관측하는 시스템 유물이 필요 없는 이유도 이 탓이었다.
놈들의 관측보다 자신의 염탐 스킬이 훨씬 질이 좋으니까.
'그래도 처음 보는 놈들이 다 보이는 군.'
아무래도 이번 무덤이 무덤인 만큼 세계에 있는 모든 왕급들이 닥치는 것이리라.
메시지에 떠오르는 유물들도 죄다 신급을 가진 놈들이겠지.
하지만.
[지독한 악취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저주가 빠르게 움직입니다.]
[변태가 다가옵니다.]
도대체 이것들은 또 뭐야?
난생 처음 보는 왕급들이었다.
'뭐 과거에도 15명의 후보가 정해지기 전엔 왕급이 33명이나 되었다고 하니까...'
절반가량이 탈락한다고 보면 되었다.
곧 짐을 싼 유재하가 바깥을 보며 탄식했다.
"진짜 내가 지도에도 없는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
그들은 남태평양의 이름 없는 섬에 도착했다.
괌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래라면 오랜 옛날에 가라앉았을 섬.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작은 섬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물에 의해 생겨난 임시 섬.'
그러니 지도에도 없고 탐지도 할 수 없는 미지의 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바다는 푸르고 백사장은 하얗지만 그래봐야 휴양지는 아니다.
그 증거로 안쪽으로는 우거진 숲과 절벽들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위험한 무인도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지도에도 없는 섬에 오기 위해 일리야는 선장들과 눈을 마주하며 긴밀한(?) 이야기도 나누어야 했고 말이다.
뭐, 괴상한 진로로 안 간다고 하는 걸 일리야가 선장을 조작해 항로를 잠시 틀어버렸다.
그 증거로 승객들은 잠들었고 항해사들도 쿨쿨 자고 있었다.
"뭐 깨어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나갈 땐 어쩌고요?"
"나중에 여기 오는 놈이 한둘이겠냐?"
적당히 하나 훔쳐서 도주하겠다는 거구만.
단원들은 탄식했다.
"어쨌든 조심해라, 섬 안에 흉흉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주헌은 입꼬리를 올리며 섬 중앙의 돌산을 가리켰다.
"서둘러. 일단 오라가 강한 쪽으로 향한다."
그렇게 배에서 내린 그들이 섬에 발을 들이댔을 때였다.
[너희들이 왕의 후보들이냐.]
낯선 목소리.
이와 함께 메시지창이 요동을 쳤다.
[주의, 강력한 오라가 닥칩니다]
[주의, 강력한 오라가 닥칩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생겼다.
"단장님!"
단원들이 모두 사라지고, 주헌 역시 다른 곳으로 순간이동 하고 말았다.
"단장니이임!"
"주헌 씨!"
아무래도 단원들 모두 섬 여기저기에 흩어진 모양이었다.
이때였다.
[소지한 유물이 모두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섬 전체에 들려오는 목소리.
[유물은 딱 한 개까지 소지 가능하다.]
[각자와 가장 어울리는 놈들로 붙여줬다.]
[그걸로 여기까지 잘 도착해보려무나.]
그리고 그 말에 상황을 파악한 단원들이 재빨리 제 유물을 뒤졌다.
정말로 가지고 있던 모든 유물들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게 이 무덤의 유물 과제인 듯하지만...
"젠장! 왜 하필 남은 게 이거야! 내 다빈치 유무우울! 이걸로 어떻게 살아남으라고!"
[오우 예, 역시 날 선택해줄 줄 알았어! 보이!]
유재하는 기쁜 듯이 춤을 추는 7대 무덤 중 질투의 유물, 살리에리의 유물을 보며 좌절했고.
"뭐야! 서주헌의 유물이 왜 나한테 온 건데!"
[뭐야, 너 돈 좀 있어?]
율리안은 제 앞에서 입을 터는 지렁이를 보며 쓰러졌다.
아무래도 서로의 유물이 뒤바뀌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허."
주헌 역시 유용한 멍멍이 유물들이 싹 사라진 걸 깨닫고 탄식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자신에게 남은 유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