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왕의 무덤 (3)
"아, 당장 방송 중지시켜요! 당장 중지시키라고!"
"젠장, 저 사기꾼!"
독식자들은 TV를 보면서 치를 떨고 있었다.
바로 주헌의 프로그램 <서스트라다무스> 며칠 전 방송분 때문이었다.
꼴보기 싫은 서주헌이 방송에 나와 이목을 끄는 것도 열 받지만, 무엇보다 함께 나온 게스트가 문제였다.
그렇다.
방송에는 그동안 행방불명되었던 운명왕이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왕의 무덤에 대한 예언.
[왕의 비보는 총 열다섯 군데에서 나타날 예정입니다.]
그렇다.
왕의 비보가 나온다는 무덤의 위치가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 무덤 위치는 자신들에게만 슬쩍 말해준다더니 저렇게 공개적으로 전 세계에 방송을 하면 어떡해!
"이래서는 그동안 운명왕한테 돈을 바친 보람이 없잖아!"
"다들 몰려가게 생겼어!"
"운명왕 저거 고소해버려!"
하지만 가짜 무덤의 정보라는 의견도 분명 있었다.
"애초에 서주헌이 운명왕을 조작하고 있는 거라니까?"
"그러다가 진짜면 어떡하려고?"
이러니 미치겠다는 것이다.
비보는 얻어야겠고.
정보는 긴가민가하고.
그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헌의 뻔뻔한 해명이 독식자들을 돌게 만들었다.
[그럼 운명왕은 지금까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있었다는 거네요?]
[네. 저희가 운명왕을 찾아냈을 땐 이미 범인들은 도주한 상태였지만...]
[세상에, 그럼 운명왕의 고객들이 조슈아 씨를 사막에 버리고 도주했다는 건가요? 서주헌 씨가 발견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무사해서 다행이었죠. 그리고 오늘에서야 이곳에 모실 수 있게 되었네요.]
[범인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 말에 운명왕은 기절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범인은 제 고객들인 것 같아요. 이게 의심되는 기업들과 배후자들입니다.]
곧 상단에 띄워진 명단에 방송을 지켜보던 독식자들은 뒷목을 붙잡았다.
"저게 우릴 범인으로 몰아?!"
운명왕이 기가 막히게도 팀킬을 해버린 것이다.
"당장 방송 중지시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방송은 계속 진행되었고, 주헌은 뻔뻔하게 운명왕을 납치한 유괴범에서 운명왕을 구한 의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니 속이 안 터지고 배기겠는가!
"서주헌 저놈이 어디서 사기를 쳐!"
"납치범은 너잖아, 너!"
"분명하다! 운명왕은 조작당한 거야! 아니면 가짜거나!"
실제로 일리야의 기억 조작이 큰 힘을 발휘했다.
물론, 기억 조작이 쉽게 이루어진 건 아니었지만.
"젠장, 이 자식이 제 딴엔 또 왕급이라고 더럽게 힘드네. 야, 내 눈 똑바로 안 봐?"
일리야가 악마들로 괴롭히고 또 괴롭힌 끝에 달성한 소중한 결과물이었다.
뭐, 운명왕의 얼굴에 있는 멍도 주헌이 만든 것이지만, 그는 태연하게 있지도 않은 납치범의 짓으로 돌려버렸다.
하지만 방송에 대고 항의를 하면 뭘 하나.
언론에 대고 서주헌이 납치범이라고 우기면 뭘 하나!
[서주헌 경계? 괴담과 음모론 판쳐.]
["서주헌을 해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악질적인 정치세력 개입.]
[그레이브 컴퍼니 주가 하락을 노린 의도적 공격.]
도리어 자신들이 서주헌을 끌어내려는 폭동 취급을 받았다.
"분명합니다. 이거 누가 뒤에서 서주헌을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도대체 누가! 또 홀튼가인가?"
"굵직한 건 홀튼가가 맞는데... 홀튼가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자잘한 곳까지... 홀튼가 외에도 서주헌을 보호하는 세력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뭐? 그게 도대체 누군데!"
누구긴 누구인가.
[공주님, 수고 많으셨어요♡]
[대가로 재하 씨가 주헌 님 사진 찍어 주신대요!]
[빨리 주헌 님의 츄리닝 복장 차림이 보고 싶네요.]
[맡긴 유니폼은 어떻게 되었대요?]
[이제 곧 완성이래요♡]
주헌도 모르는 팬들의 실력행사 덕분이었다.
하물며 주헌 소유의 그레이브 컴퍼니가 일반인들에게 치료 유물과 방어 유물을 배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들은 유물을 독식해 장사할 생각을 하고 있는 악독한 장사치로 몰렸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이미지메이킹을 노렸다면 기가 막히는군.'
하지만 새삼 서주헌이 거짓말을 하네 마네로 싸우고 있을 때도 아니었다.
왜?
"비보 쪽이 더 급해! 그걸 얻지 못하면 왕급도 물 건너 간 거야!"
"전력이 흩어지더라도 일단 열다섯 군데 다 보내 봐요!"
"아니야! 서주헌이 어디로 가는지 추격하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주헌이 자신들의 무덤을 다 먹는 건 막아야 했다.
***
[판도라 "7대 무덤급의 대전조. 왕의 무덤, 7대 무덤급 유물 없으면 공략 어려울 듯."]
["전 세계 곳곳에서 탐색전." 유례없는 발굴단들의 수색전.]
[열다섯 곳을 전부 찾아라.]
"지금쯤 아주 혼란스럽겠죠?"
유재하는 보도뉴스를 보며 낄낄 웃어댔다.
"사실 왕의 무덤은 열다섯 군데가 아니라 한 곳에 몰려있는데."
현재 그들은 배 위였다.
물론 이번만큼은 전세 배가 아니었다.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 한다고,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 이동하고 있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타는 둥, 신분 위조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들의 도플갱어들도 세상에 뿌려 적들의 추적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유재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능력이 제일 도움이 된다며 콧대를 세웠다.
"캬, 이게 다 제 능력 덕분이라니까요. 역시 난 끝내주는 거 같아."
"뭐래. 여기까지 오면서 의심을 몇 번이나 받았는 줄 아냐?"
"뭐?"
"내 기억 조작이 없었으면 다 들켰... 우욱."
"...그래그래, 구토쟁이. 멀미약은 또 안 필요하냐?"
"안 닥... 우웨엑!"
일리야는 배멀미로 죽으려고 했다.
클로에가 한숨을 쉬며 보살펴주고는 있었지만 쉽게는 안 가라앉으리라.
"하여간 저거, 저거 사후처리반 종특이라니까."
마법서 유물을 주로 쓰는 사후처리반은 공통적으로 체력과 정신력이 약했다.
마법서 유물들은 공통적으로 인간들의 육체를 허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귀한 마법을 부릴 수 있으면 뭘 하나. 악마들을 소환할 수 있으면 뭘 하나.
조금만 달려도 헉헉거릴 정도로 체력도 약하고, 툭 치면 뼈가 부려질 정도로 방어력도 똥이고, 감기도 제일 먼저 걸릴 정도로 면역력도 똥이고...
"하여간 물몸이야, 물몸."
초등학생만도 못한 체력이라며 유재하는 쯧쯧 혀를 찼다.
특히 일리야는 사후처리반의 엘리트였지만, 그만큼 최고 물몸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주헌 씨, 해진 씨를 두고 와도 괜찮으세요?"
아이린이 주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한 건 못 들었지만, 주헌이 얼핏 단을 섭외하고 싶어 한다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율리안 씨의 말만 들어봐도, 해진 씨는 주헌 씨의 발굴단에 들어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주헌이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 유물 때문에 일시적으로 가짜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동료였다는 착각을 하는 거죠."
유재하가 끼어들었다.
"하하 맞아요. 오히려 우리가 떠나서 안도하고 있을지 모르죠."
안도하기는커녕 전화 좀 받으라고 성질을 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럴 때, 주헌이 유재하를 불렀다.
"됐으니까 넌 왕의 무덤에 대해 다른 녀석들에게 설명해줘라."
"네? 그걸 왜 제가... 커헉!"
"이 중에 유일한 경험자가 너잖아? 난 대충 알지만 다른 녀석들은 몰라. 위험한 무덤인데 모두가 숙지하고 있어야지."
게다가.
"15개 모두 싹쓸이하려면 무덤에 대해 잘 알아야지?"
그 말에 단원들은 모두 놀랐다.
"지, 진짜 15개를 다 얻을 생각이세요?"
"한번 봐서?"
역시 단장님.
동시에 유재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으스댔다.
"기다려보세요. 총 15개의 방이 있는데 제가 들어간 길은 확실히 기억해요. 어떻게 생겼냐면..."
"아, 니가 들어간 방은 필요 없고."
"엥? 왜요?"
"왜긴? 거긴 너 혼자서 알아서 가면 되잖아?"
"네?! 저, 저, 저 혼자요?! 찢어지는 거예요?"
주헌이 비웃었다.
"당연하지? 경쟁자가 얼마나 많은데? 넌 경험자니까 혼자 가도 상관없지?"
유재하는 거품을 물었다.
"거기 7대 무덤 버금가는 무덤인데? 저 옛날에도 TKBM 발굴팀에 꼽사리 껴서 들어갔는데?"
"그럼 훤하겠네. 못 구해오면 뒤진다."
유재하는 좌절했다.
***
한편 그 무렵, 판도라 이사회실.
"서주헌, 이거 진짜 골 때리게 되었네요."
독식자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사회는 지금 주헌 때문에 시름을 앓고 있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이대로라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왕들을 뽑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서주헌이 왕급이 되는 건 막아야해요."
"이놈은 우리의 계획에 방해가 됩니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들은 이사회 중 한 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받은 로스차일드는 가볍게 웃었다.
"왕의 비보는 다른 유물하고는 좀 달라요. 지금까지의 수법으로 가져갈 수는 없고요."
그 말에 이사회는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로스차일드의 어깨에 앉아있는 독수리가 빼액 뭐라고 항의했다.
[뭘 그리 태연한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놈은 까마귀의 가호를 받는 놈이라고요!]
독수리 유물은 씩씩거렸다.
[수장님, 이대로라면 서주헌이 정말 왕급이 되고 맙니다!]
제우스가 부리는 독수리 유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입맛에 맞지도 않는 인간 따위에게 지배당할 생각입니까!]
"..."
로스차일드는 침묵했다.
그렇다.
자신들 같은 유물들은 원래 도구다.
사용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했고, 그만큼 반드시 주인을 필요로 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게 유물의 섭리였다.
인간에게 사용되지 않는 도구는 결국 힘을 잃고, 평범한 골동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유물들은 인간을 천시하고 죽도록 싫어하는 존재들.
미쳤다고 인간 주인을 따르겠는가.
그래서 유물들은 인간들을 능욕해 자신을 사용하게 하거나, 입맛에 맞는 인간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지금이야 총수 유물이 유물들을 총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인간 중 최고를 뽑긴 뽑아야 한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때가 왔다.
물론 하위 유물들이야 아무 인간들을 적당히 골라도 된다.
대부분이 사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신급들은 다르다.
신급들은 아무나 다룰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 인간에게나 지배당하기 싫은 유물들은 꼼수를 생각했다.
바로 입맛에 맞는 인간들을 주인으로 만드는 것.
그 결과 신급 유물은 파도라 이사회에 잠입했고, 소수의 인간들과 손을 잡았다.
그렇게 독식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엄청난 혜택을 주면서 왕급으로 성장시켜주었다.
최대한 인간들을 괴롭힐 수 있는 왕들로.
그 왕들이 성장해 모든 신급을 총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사황급이다.
그러니 뭐 서로가 나쁠 것이 없는 거래였다.
인간은 같은 인간을 착취하고 괴롭힐 수록 이득을 본다. 그리고 유물은 인간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인간을 좋아한다.
쌍방이 이득을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주헌은 눈엣가시였다.
자신들과 말이 안 통하는 존재니까.
'그런 놈이 사황급이 되면 더 곤란하고.'
그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은 사내였다.
과거 그 까마귀의 주인처럼.
그때였다.
"또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서주헌은 정말 괜찮겠냐고요. 우리가 뽑은 후보자들이 최종적으로 왕급이 될 수 있겠죠?"
문득 들려온 말에 로스차일드가 태연함을 가장하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왕의 무덤들은 이미 주인이 있는 무덤들입니다. 절대로 못 훔쳐가요."
"정말요?"
"네, 이미 판도라가 올리기로 한 왕급들이 아니면 비보는 반응하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그때였다.
"이사님! 태평양에서 7대 무덤보다 강력한 고분을 감지했습니다! 운명왕의 예언과는 다른 곳입니다!"
"!"
틀림없다. 왕의 무덤이다.
'그놈들, 그런 곳에 무덤을 만들었나.'
"이사님, 예상보다 빨리 나온 걸 보면 서주헌이 선수를 친 걸까요?"
하지만 곧 로스차일드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주인이 정해진 무덤이야. 그 인간이 가져갈 수 있는 비보는 없어.'
그들은 차분하게 지시했다.
"이 사실을 전하고, 그쪽으로 빨리 우리 왕급 사용자들을 보내세요."
그런데.
[잠깐만요.]
"왜?"
곧 제우스의 독수리가 당황하며 말했다.
[저기 그 왕의 무덤에서요.]
"뭐."
[유배된 까마귀 놈의 무덤이 느껴지고 있다고...]
그의 얼굴이 좀 일그러졌다.
'이건 또 뭔소리야.'
자신들이 꼭꼭 숨겨둔 무덤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