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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52화 (252/409)

252화. 왕의 무덤 (2)

그 말에 단은 난처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이걸 어쩐다.

아무래도 대화를 나눠보니 주헌도 그렇고, 다들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기억을 완전히 되찾았다는 것을.

그렇다.

단 역시 다른 멤버들처럼 기억을 모두 되찾았다.

단지 다른 팀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까마귀의 눈물 없이도 기억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물론 자력으로 되찾은 건 아니었다.

계기가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

딸랑.

"네, 어서오십... 아! 주헌 씨!"

편안한 츄리닝 차림의 주헌은 정육점을 찾았다.

그런 주헌을 제일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수아였다.

"주헌 오빠, 안녕하세요!"

예쁘게 생긴 수아는 제일 먼저 주헌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처음엔 주헌을 무섭게 생각한 건지 아빠의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요 며칠 단에게 유물 강의를 하기 위해 몇 번 들렀더니 그새 낯이 익은 것이리라.

그럴 때였다.

"주헌 오빠만 온 거 아니다?"

장난감을 잔뜩 들고 유재하가 주헌을 뒤따라왔다.

장난감을 본 수아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 반응에 유재하가 히죽이면서 말했다.

"수아야, 감사합니다~하고 뽀뽀!"

유재하는 능청스럽게 제 볼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감사합니다!"

수아는 주헌의 볼에 뽀뽀를 했다.

그걸 보고 유재하는 좌절했다.

"도대체 왜!"

선물을 들고 온 건 난데!

결국 유재하가 끈질기게 볼을 내밀었지만 수아는 무서웠는지 울음을 터트리며 주헌에게 매달렸다.

주헌은 왜 애를 울리냐며 걷어찼다.

"넌 수아한테 접근 금지다. 선물이나 날라."

"아이씨!"

졸지에 짐꾼이 된 유재하는 몇 번이나 차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장난감을 배달했다.

심지어 똑같은 장난감들이 몇 개나 있었다.

왜 똑같은 걸 여러 개나 샀나 했더니, 유재하의 입이 말썽이었다고 한다.

'아오, 단장님 진짜 센스 없어. 지금 여자애 선물이라고 핑크만 고르는 거예요?'

'왜. 문제 있어?'

'파란색을 좋아할 수도 있죠! 수아가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떡해! 자, 어서 골라봐요!'

그는 나름대로 주헌이 고민하는 꼴을 보려고 심술을 부린 것이었지만, 글쎄.

'그럼 색깔별로 다 사라.'

'네, 네?!'

'참고로 드는 건 너다.'

'#$&*!'

결국 그런 식으로 제 무덤을 판 유재하가 모든 배달을 멈췄다.

그렇게 단을 찾아온 주헌은 저녁을 함께 먹은 후 운명왕의 카메라를 꺼냈다.

"앞으로 여유롭게 가르쳐주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테지."

주헌을 노리는 독식자들이 단을 그냥 둘 리가 없었다.

뭐, 나름대로 단의 보호는 계속해 줄 테고 독식자놈들도 조져버릴 거긴 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렇게 감을 익히기 위해 사용된 운명왕의 카메라 유물.

그리고 단은 사진에 빨려 들어가는 기묘한 체험을 했다.

낯선 무덤, 그리고 지금보다는 더 나이든 주헌과 낯익은 얼굴들.

[단장!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다들 그 틈에 빠져나가요!]

[단, 안 돼! 위험해! 적은 수천 명이라고!]

앞으로 경험할 일 없는 미래, 즉 전생의 경험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 경험이나 체험하게 하진 않았다.

주헌은 신중하게 사진을 골랐고, 그중 몇 장을 뺐지만 주헌은 그 사진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네가 지금부터 보게 되는 건 전부 가짜다. 유물이 만든 가상현실 같은 거야."

그렇게 단호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전생의 기억을 보면서 단은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그것도 정말 강한 기시감.

기억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주헌과 그 동료들에 대해서 자꾸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이상해서 혹시 과거에 한 팀인 적이 있었냐고 물었다.

"단장님, 그때 단원들이랑 단장님은...!"

그 반응에 주헌은 굉장히 고민하며 답했다.

"단장님 아니야."

"네?"

주헌은 단에게 단호히 말했다.

"네가 나에 대해서 뭘 봤는지 몰라도 뇌의 착각이야. 너무 몰입하고 봐서 그래. 우린 아무런 연관도 없는 남남이고."

마치 쐐기를 박는 듯한 말이었다.

그렇게 주헌은 유물사용법만 알려 주고 돌아갔다.

하지만 못내 주헌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단은 그가 놓고 간 사진을 다시 발동해봤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수아를 재우고 나서도 계속해서 발동했다.

그 횟수가 수십 번, 수백 번.

그래봤자 떠오르는 건 없었고 자신만 힘들었지만, 단은 어째서인지 자꾸만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 안의 자신은 필사적으로 주헌과 그 동료들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만들어낸 영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다시는 그것에 대해 떠올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한 수백 번 정도 그 사진들을 돌렸을 때였을까.

[그만해라, 인간.]

지금까지 본 것들과는 명백하게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원래 같으면 정글 속에서 계속 헤매는 광경이 나와야 하건만.

[그 이상 계속하면 네 정신이 붕괴된다.]

정글에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우뚝 선 나무 위에 앉은 까마귀는 붉은 눈을 번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흉흉한 오라.

고작 한 마리가 앉아있을 뿐이었는데 엄청난 위압감과 기백이 느껴졌다.

그간 적긴 해도 여러 유물들을 접했었는데 그것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심지어 왕급들이라고 불리는 유물 놈들의 기운보다도 훨씬 흉포하고 막강하다.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무서운 오라를 풍기는 주제에 살의는 없었다.

오히려 단을 걱정하듯 나무랐다.

[기껏 그 인간이 살려준 목숨을 헛되게 할 생각이냐.]

아무래도 주헌을 말하는 듯했다.

[그러니 그만둬라. 여기서 뭘 더 한다고 해도 네놈이 알아낼 수는 없다.]

계속 했다간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했다.

[자칫 네놈의 뇌가 망가져.]

하지만 단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잊고 있던 걸 알게 될 것 같아요."

[뇌의 착각이야.]

단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확실해요. 전 단장을 알고 있어요."

분명했다.

뇌의 착각이라고 지껄이지만, 자신은 주헌을 알고 있었다.

과거에.

그리고 그와 함께 있던 동료들도.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친했던 사람들인지, 또 왜 그 사람들을 보면 울음이 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답답했던 그가 외쳤다.

"주헌 씨는 저와 제 딸에게 생명의 은인입니다. 제가 모르는 게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그로 인해서 후회할지 모르는데도?]

"상관없습니다! 그것도 내 선택이에요. 어차피 주헌 씨가 아니었으면 저희 부녀 모두 죽었어요!"

뭔지는 몰라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됐다.

이 답답함을 풀고 싶었고, 동시에 주헌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다.

'이런다고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단이 막무가내로 다른 사진을 발동하려고 할 때였다.

[인간은 역시 어리석은 생물이군.]

까마귀는 탄식했다.

하지만 그 탄식 속에서 까마귀는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터지는 빛.

그 빛 속에서 단은 비명을 질렀다.

"아악!"

그때 단은 똑똑히 보았다.

사진 유물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전생의 모든 기억들을.

딸을 잃은 일도, 사형수로서 옥에 갇혀 있을 때 주헌을 만난 일도.

그런 그가 자신을 구해준 것도.

딸도 잃고 살아갈 이유가 없는 자신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줬던 것도.

동시에 사진 속에서 빠져나온 그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결국 자다가 놀란 딸이 아빠 왜 그러느냐며 잡아 흔들 정도였다.

"아빠, 아빠아?"

단은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놀란 수아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재빨리 911에 전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단은 그런 딸을 끌어안고 울었다.

모든 기억을 되찾은 단은 그저 울었다.

한 번 잃어본 슬픔에, 하지만 그럼에도 딸을 다시 잃지 않았다는 기쁨에.

동시에 또 잃을 뻔한 딸을 구해준 주헌에 대한 감사함에.

그래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잃지 않게 해준 고마움에.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래서 단은 딸을 끌어안으면서 까마귀에게, 그리고 주헌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던 것이다.

주헌에게 입었던 과거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

그리고 현재.

'흠, 어쩌지. 이미 기억은 되찾았는데.'

단은 고민에 빠졌다.

아니, 아닌 밤중에 혼란스러운 일을 겪긴 했지만 곧 이성을 찾은 그였다.

당연히 주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미치겠네, 단장님 또 핸드폰 박살 내셨나."

단은 계속 주헌에게 "자신이 기억을 되찾았노라! 다시 도굴단에 들여달라!"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계속 타이밍이 어긋나서는 원.

하다못해 옛 동료들에게라도 연락을 하려했지만...

"아, 저기... 재하야?"

[오, 그렇게 친근하게 불러주니까 좋네! 나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아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뚝.

"저기, 클로..."

[어머, 해진 씨. 수아 때문에 전화하셨나요? 걱정 마세요. 수아는 아주 좋아요.]

"아, 네네? 아니요. 오늘 전화드린 건..."

[수아한테 좋을 만한 건강차랑 음식 종류를 말씀드릴게요. 지금 받아 적으실 거 있으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네. 네네. 생강이랑..."

뚝.

"저기 부단장님."

[아, 마침 전화 잘하셨어요. 해진씨가 작성해주셔야 할 진술 서류들이...]

"아 저기, 문자로도 보냈지만 저 기억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입단 서류를..."

[세상에. 해진 씨. 마음은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거짓말은 하시면 안 돼요.]

뚝.

"......"

아, 왜 이놈의 단원들은.

물론 도굴단에 돌아가면 또 다시 독식자들과 맞서야 하는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안다.

과거엔 몰라도 지금은 굳이 유물 사용자들과 얽힐 이유가 없다.

뭐, 그래봐야 먼 훗날이면 유물이 남의 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헌의 발굴단에 들어갈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더 편한 길도 있다.

주헌도 기껏 딸과 행복하게 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현재 운명왕의 예언으로 세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서주헌의 농락인지, 아니면 정말 운명왕의 예언인지 진위가 논란인 가운데...]

[비보를 얻지 못하면 왕급이더라도 신급 유물이 따르지 않을 거라는 판도라의 발표에 충격이...]

[미국은 발굴단을 꾸려 중동에... 일본 자위대는... 중국은 진채원을 중심으로 이동을 시작.]

[서주헌이 왕의 무덤을 모두 갈취할지 모른다는 추측이 도는 가운데 세계 발굴단들이 급하게 이동 중...]

[서주헌을 수색, 미행하는 세력들도 늘고 있어...]

세상이 소란스러웠다.

독식자들이 모두 주헌을 노리고 있었다.

'단장님의 도굴단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

오히려 기억을 되찾고 나니 주헌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놔준 건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독식자들의 힘은 막강했다.

뭐, 그만큼 주헌도 압도적으로 성장했고, 주요멤버들도 다 모였으니 괜찮겠지만...

'사냥꾼도 없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보다.

[네 선택을 후회하지 않거든, 지켜줘라.]

그렇다.

까마귀가 마지막에 한 말이 떠올랐다.

[놈들이 또 그 인간을 탐낼 것이다.]

누가 주헌을 탐낸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헌이 위험하다는 증거이리라.

[그리고.]

까마귀는 이어 말했다.

[제발 한눈 좀 안 팔게 해라.]

그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단장님! 저 왔습니다!"

결국 단은 아예 주헌을 직접 만나러 왔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빠르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어, 여기 지내던 사람들이랑 알던 사람이에요?"

하우스 키퍼가 단에게 가방을 들려주며 말했다.

"짐을 놓고 간 게 있어서. 이것 좀 전해줘요."

"... 저, 여기에 계시던 분들은?"

"아, 새벽에 체크아웃 했어요. 급하게 무덤에 들어간다는 것 같은데... 한국으로 간댔나 뭐랬나."

이런 망할!

단은 이마를 짚었다.

왕의 무덤이 나오기까지 약 이틀.

부리나케 이동할 만은 하지만...!

"이 유물 성애자들 같으니!"

단은 분노의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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