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왕의 무덤 (1)
"그럼 혹시 단의 기억이 돌아온 거예요?!"
그 말에 주헌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니."
그의 말에 단원들은 혼란스러웠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기억도 안 돌아왔는데 S급 유물을 다뤘다는 거야?'
자세히 들은 건 아니었지만, 얼핏 전화상으로 그러지 않았나.
단이 S급 유물로 놈들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C급 유물도 아니고, 아무리 주헌이 족집게 강의를 해줬다고 해도 보름 만에 S급을 쓰는 건 말도 안 됐다.
왕급인 아이린이나 유재하도 한 달이나 걸려서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으니까.
즉, 단이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 계백 장군의 유물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정말 되살린 거 아니세요?"
"무슨 소리야. 안 살렸어."
"하지만 그럼 어떻게 S급 유물을...!"
그 말에 주헌은 대답 대신 카메라를 꺼냈다.
그건 양 쳰이 있던 교도소에서 빼앗아온 카메라 유물이었다.
"이걸로 좀 쉽게 교육을 시켰지."
"!"
운명왕의 미래 카메라.
이걸로 상대를 찍으면 미래, 그러니까 자신들에겐 전생에 해당하는 일이 찍혔다.
그리고 찍힌 사진을 발동하면 사용자는 사진 속에 들어가 그 내용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빙의된 것처럼.
거기서 주헌은 착안한 것이다.
이거라면 기억을 찾진 못해도 그때의 감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럼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습득이 빠르겠지.'
유물은 감각의 영역이라 감만 익히면 습득이 빨라지니까.
물론 딿을 잃은 부분은 빼고서 보게 해주었다.
'그래도 고작 그것만으로 정말 S급 유물을 다루게 되다니.'
카메라를 활용해도 최소 한 달은 있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주헌은 조금 의아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흡족해했다.
'원래는 내 A급짜리 화랑검을 주려고 했지만 잘됐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쓰던 화랑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사실 계백 장군의 검은 이 화랑검으로 찾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며칠 전. 오만의 탑에 방세 독촉을 하러 갈 때였나.
갑자기 이 화랑검이 빛을 내며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그 빛이 의미하는 건 하나.
'주변에 연관된 유물이 있다는 것이다.'
연관이 있는 유물끼리는 반응을 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주헌은 깨달았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한 숨겨진 무덤이 있었다는 것을.
뭐, 척 봐도 S급 무덤이라서 나중에 단원들도 끌고 올까 했지만 글쎄.
[직업이 바뀌기까지 4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4일이 지나면 강제로 직업이 바뀝니다.]
젠장.
망할 놈의 까마귀.
나중에 같이 왔다가는 스킬을 강제로 반납하게 생겼다.
할 수 없이 주헌은 혼자서 S급 무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뭐,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았지만 유물은 정말 좋은 게 나왔다.
[계백의 검 (S급-영웅전설급 / 귀속성 유물)]
백제 장군의 귀한 유물이 나와버린 것이다.
황산벌 전투로 유명하고 김유신과 라이벌로 그려지는 바로 그 장수.
동시에 주헌은 이곳을 찾아주었던 화랑검을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엔 그냥 '화랑검'이라고만 메시지가 떠서 몰랐는데.
'이 놈은 혹시 관창의 유물이었나.'
화랑 관창은 황산벌 전투에서 단신으로 적군에 돌입해 백제의 포로가 된 어린 화랑.
계백 장군이 죽이지 않고 돌려보낸 그 화랑이기도 했다.
뭐 CIA한테서 빼앗은 이 화랑검도 나름 A급이었으니까 화랑 중에서도 비교적 유명세가 있는 놈일 거라곤 생각하긴 했지만.
'재미있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를 들은 설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어, 근데 잠깐만요!"
문득 설아가 뭔가를 깨달은 건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것이다.
"계백 장군이면 분명...!"
다른 걸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처자식을 죽인 뒤 전쟁터로 떠난 장군으로도 알려져 있다.
망국이 될 운명에서 붙잡힌 포로가 어떤 농락을 당할지 잘 알기에 그랬다고 했던가.
어쨌든 그런 설화로 유명한 유물이다.
유물이란 놈들이 그런 좋은 건수를 내버려둘 리도 없고.
"설마 계백 장군의 리스크는...!"
***
설아가 다급하게 주헌을 붙잡았다.
"단장님, 안 돼요! 그 유물을 들고 있다간 단이 수아를!"
그런데 이때였다.
주헌은 가볍게 웃었고, 어쩐 일인지 조용하던 유재하도 낄낄낄 배를 잡고 웃어댔다.
"야야야, 걱정 마. 너 바보야?"
"뭐?"
"단장님이 단한테 그딴 걸 줬겠어? 당연히 다 감안하시고 주셨겠지."
설아는 안도했다.
"그래, 하긴 단장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설아는 묘하게 으스대는 유재하를 보았다.
"잠깐만. 너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뭐, 뭐?"
눈치를 보던 유재하가 슬금슬금 도망가려고 하자 설아가 눈에서 불을 튀겼다.
"유재하! 너 알고 있었지! 그 유물에 대해서!"
"커, 커헉!"
"그럼 단장님이 S급 무덤에 혼자 가셨다는 사실도 먼저 다 알았다는 거잖아! 언제야, 언제 알았어!"
"커헉, 커어억! 잘못했어, 잘못했...!"
설아는 유재하의 멱살을 잡았다.
"너 그럼 설마 단장님이 S급 무덤에 들어가는 것도 안 막은 건 아니겠지!"
"아오, 아냐! 그것까진 아냐! 나도 그랬으면 말렸지! 난 애프터밖에 몰라요. 단장님이 다짜고짜 계백 짝퉁을 만들라고 해서 안 거라니까!"
"!"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설아가 주헌을 보았다.
"짝퉁? 단장님, 그럼 설마...!"
그렇다.
주헌은 단에게 계백 장군 유물의 카피, 즉 짝퉁을 던져준 것이다.
왜?
'단은 지금 기억이 없다.'
즉 다른 단원들과 다르게 유물 리스크에 대한 위기관리 노하우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귀속성 유물은 편리하지만 리스크 탓에 상당히 위험한 유물.
계백장군의 유물의 리스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짝퉁을 줄 수밖에 없네요. 리스크가 그 모양이면..."
그래도 짝퉁의 한계를 알기에 설아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리스크가 무슨 그 모양이긴 그 모양이야."
"뭐?"
"어유, 난 진짜 이해가 안 가다니까. 기껏 단을 위해 리스크까지 바꿨으면서!"
"!"
그렇다.
사실 주헌은 단에게 좋은 유물을 주기 위해 무려 유물과 리스크 협상까지 해줬다.
어떻게?
"이봐, 장군님. 좋은 말로 할 때 리스크 바꿔. 안 그럼 부순다."
[이 못된 후손 놈이...! 니놈이 내 무덤을 박살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시끄러워 장군님. 말 잘 들으면 김유신이나 의자왕 유물도 찾아줄게. 특별히 네 편의도 봐주지. 백제의 후손도 찾아주마. 그리고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들어주지."
뭐, 대충 이렇게.
어쨌든 주헌이 그랬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파격적으로 유물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물론 비위를 맞추는 건 주헌이 아니었지만.
"하하, 장군님. 저도 나름 먼 후손이니 잘 봐주세요! 네? 제가 매일 안마도 해드릴게요! 제발! 리스크 그까짓것 단어 하나만 바꾸면 되잖아.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아. 응?"
[크흠...]
"하, 제가 백제를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했는데... 신라 그 망할 것들이 말이야! 콱! 운 좋게 삼국통일한 주제에 잘난 척이나 하고 말이야! 어?! 그리고 망하고 말이야!"
친화력이 높은 유재하는 졸지에 주헌에게 끌려와 며칠 내내 손이 닳도록 유물에게 아부를 해야 했다.
그 결과 '처자식을 죽인다.' 라는 리스크가 '처자식을 노리는 적을 죽인다.' 라고 단어만 슬쩍 추가한 리스크로 겨우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리스크를 버프로 만들어놨더니 뭐가 어째?
"결국 짝퉁이나 만들어서 주다니! 그럼 난 왜 손이 닳도록 아부한 거야? 어?!"
유재하는 억울한 듯 훌쩍였다.
"아무튼 기껏 리스크도 바꿔놨는데, 아깝잖아요. 썩힐 거예요?"
"그럼 나 줘."
일리야가 끼어들자 유재하가 걷어찼다.
"병아리 체력은 꺼져!"
"..."
이 새끼가.
***
한편 그 무렵, 방송국을 옮긴 그들은 운명왕을 놓고 신나게 TV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까워요."
유재하는 주헌을 슬쩍 보았다.
스태프들의 시선을 독차지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 간지난다 싶었지만...
"우리 중에 장수 유물을 잘 쓸 수 있는 게 단장님하고 단 정도밖에 없는데... 단이 최고지. 짝퉁하고 비교가 안 된다니까요?"
그 말에 주헌은 또 그 소리냐는 듯 비웃었다.
"안 돼. 확실하게 교육을 시킨 다음에 줄 거야. 위험해서 안 돼."
일리야가 끼어들었다.
"그럼 그냥 기억을 찾게 하시죠? 솔직히 단 정도 되는 인재를 어디서 구해요? 막말로 교육을 한다고 하셔도 최소 5년은 걸릴걸요?"
그가 말을 이었다.
"딸이 죽은 기억은 어차피 단이 괴로워할 문제예요. 도굴단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 말에 유재하가 일리야를 뻥 걷어찼다.
"그래. 도굴단의 이득을 위해서 네놈을 제일 먼저 해고해야 할 것 같다."
"뭐가 어째?!"
결국 주헌은 하하 웃었다.
"확실히 단의 기억을 찾게 하면 모든 게 해결돼."
그의 성격상 도굴단의 사냥꾼으로 다시 흔쾌히 일해줄 것이고, 귀속성 유물도 잘 다룰 테고, 전성기 때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무엇보다 녀석의 실력은 내가 잘 안다.'
탐이 나도 너무 탐이 났다.
주헌이 드물게 욕심을 느낄 정도로.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딸을 잃는 슬픔을 또 겪게 할 수는 없다.'
"기억은 안 살려."
"하지만 단의 포지션은 발굴단에서 가장 위험해요. 기억도 없이 독식자들을 상대하게 할 순...!"
"상대하게 한다고 한 적 없는데? 그런 위험한 일을 왜 시켜."
그 말에 유재하와 일리야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왜?
말도 안 돼! 단장이 이런 친절이라니!
이런 배려라니!
부러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이건 편애야! 우리들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거면서!"
"당연하지."
주헌의 태연한 태도에 일리야와 유재하는 땅을 쳤다.
"와씨, 우리는 만나자마자 멱살이 잡혀서 끌려왔는데! 그리고 강제로 노예계약서에 도장 찍게 해놓고는!"
"만나자마자 두들겨 패놓고..."
"니들은 그렇게 안 하면 도망갈 거였잖아."
"아, 그건 그런데. 우리도 좀 단처럼 생각해주시면 덧나요?!"
주헌은 이것들이 뭔 개소리냐는 듯 보았다.
"니들하고 단하고 똑같아?"
결국 그들은 울부짖었다.
"차별이야! 직장내 따돌림으로 신고할 거야!"
실제로 여단원들 외엔 이런 배려도 안 하는 주헌일테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주헌은 단을 여단원들만큼 아꼈다.
왜?
주헌에게 있어 단은 생명의 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그리고 유일하게 말 잘 듣는 이쁜 녀석이고.'
게다가 다른 놈들이야 다치든 말든(?) 죽지만 않으면 막 굴려도 상관없지만 단은 다치게 하기 싫었다.
원래도 늘 도굴단을 위해 상처를 자처하던 녀석이니 전투가 아닐 때라도 챙겨주고 싶다고 해야 하나.
"다른 애들은 이쁜 짓을 했지만, 니들은 아니잖아."
그 말에 유재하와 일리야는 하필 이놈하고 싸잡힌 게 기분이 나쁜지 눈살을 찌푸렸다.
"단장님. 너무하신다. 그래도 제가 얘보단..."
"뭐래. 너보단 내가 낫지."
"닥쳐. 둘 다 똑같아."
그들은 꽁해졌다.
어쨌거나 주헌은 까마귀의 눈물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도 계속 욕심이 생겨 까마귀의 유물을 쓰고 싶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 이상은 욕심부리지 말자.'
단은 포기하자.
"아무튼 밖에 있는 기자들이나 잘 구슬려봐."
주헌은 쉬는 시간을 틈타 도망치려는 운명왕을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세상에 가짜 예언이 퍼지기 시작했다.
주헌이 왕의 무덤을 스틸하기 위한.
***
그리고 한편 그 무렵.
졸지에 차단당한 율리안은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수신이 차단되어...' 라는 소리에 주먹이 떨렸다.
"...서주헌. 이걸... 콱!"
그리고 그때였다.
'허참, 단장님... 또 부단장님을 차단하셨구만.'
씩씩거리는 율리안을 보며 단은 쓰게 웃었다.
안 봐도 뻔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때 수아가 아빠에게 안겼다.
"아빠, 아빠. 주헌 오빠야 전화야?"
"응, 주헌 오빠 전화야."
동시에 수아는 주헌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모양인지 눈을 초롱초롱 밝혔다.
단은 소중하게 딸을 끌어안으며 핸드폰을 보았다.
'단장한테 꼭 할 말이 있는데...'
그럴 때였다.
"해진 씨. 핸드폰 좀요. 해진 씨 핸드폰이라면 수신거부 안 하겠지!"
율리안의 눈빛이 무섭게 번득였다.
그런 율리안에게 핸드폰을 빌려주며 쓰게 웃던 단이 물었다.
"저기. 그 발굴단에 저도 합류하고 싶은데 입사지원서 좀 얻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율리안은 분노의 타자를 치면서 답했다.
"아, 얼마든지 드릴 수는 있는데 아마 저희 단장이 안 받을 겁니다. 해진 씨는 기억... 아니, 위험한 일에 휘말릴 수 없다고 해서요."
그 말에 단은 난처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이걸 어쩐다.
아무래도 대화를 나눠보니 주헌도 그렇고, 다들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기억을 완전히 되찾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