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249화 (249/409)

249화. 전 세계를 속여라 (4)

"당신들 말이야."

"?"

"혹시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봤나?"

도축업자의 눈빛이 무시무시했다.

분명 경고의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의 말에 가게 안의 갱들은 푸하하 비웃기 시작했다.

"저놈이 진지하게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이야,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그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신들은 이미 싸움에 이골이 난 싸움꾼들이었다.

그에 비해 저 동양 놈은 기껏해야 고기나 잘라서 파는 정육점 주인.

"평소에 살고 있는 환경이 달라요, 새끼야."

그러자 단은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은 듯, 피곤하다는 한숨을 쉬었다.

기껏 주헌이 마련해준 가게였다.

이놈들 때문에 가게 안의 진열대가 깨지고, 힘없는 직원은 놀라고, 진열된 고기들은 전부 땅에 버려져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열 받을 수밖에.

하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홀로 납치된 딸의 안전이었다.

"알았으니까 그 아이부터 풀어줘요. 그러면 이쪽도 다 없던 일로 할 테니."

하지만 놈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저게 지금 상황을 모르나?"

"되게 센 척 하는데, 그거 아니거든? 너,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지?"

"아 됐으니까 막내야 조져라! 가게 폐업시키고!"

"네!"

그렇게 한 사내가 단에게 칼을 찔러 넣었다.

푸욱! 동시에 단의 몸이 고꾸라지자 그들이 우스꽝스럽다며 웃어댔다.

"하하! 그러니까 누가 깝치래?"

"막내야! 마무리는 잘해라!"

"어디, 그놈이 말한 대로 돼지 멱 따는 소리 좀 내게 해봐!"

그리고 그 말에 응하듯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꾸에에엑!"

그러자 갱단들은 그걸 진짜 하느냐며 하하 웃었다.

"야야, 막내야 적당히 해라. 그렇다고 진짜 내게 하면 어쩌... 어?"

그러나 그들은 곧 기겁을 했다.

소리를 낸 건 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 막내야!"

실제로 뒤를 돌아본 곳엔 단이 아닌 갱단의 막내가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배를 움켜쥐면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오! 아파 죽겠네! 나 죽어!"

하지만 그 모습에 도리어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다. 지방덩어리라서 그렇게 아프진 않을 텐데?"

그러자 갱들은 기겁하고 말았다.

틀림없었다.

분명 단이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 새끼... 뭐야?!"

"얼굴 색 하나 안 변했어...!"

분명 막내한테 유물 칼로 찔렸는데!

"뭐야 너! 왜 멀쩡해!"

그러자 단은 피가 흐르는 배를 슥 닦으며 말했다.

"어... 왜 멀쩡하냐고 물으셔도, 유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뭐, 뭐야?!"

"차라리 일반 칼을 쓰셨으면 아파 했을지도요."

"저, 저게 미쳤나!"

곧 단이 어린 딸을 구하러 가기 위해 다가왔다.

"수아야, 조금만 기다려라."

말은 태연하게 하고 있지만 딸을 보는 단의 눈빛은 꽤나 초조했다.

하지만 이에 가만히 있을 적들도 아니었다.

'저게 봐주니까 진짜!'

그들은 어찌나 열 받았는지 고래고래 외쳐댔다.

"야! 그 딸내미도 찔러!"

"똑같이 당해봐라!"

그들은 말을 하기 무섭게 수아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아, 아빠아!"

"사, 사장님! 수아가!"

동시에 단의 눈에 불꽃이 튀겼다.

그리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꾸에엑!"

"쿠엑!"

정육점에서 정말 돼지가 멱따는 소리가 여럿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확실한 건 저 앞에 있던 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주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푸욱! 푹!

그리고 정육점에 들어왔던 다섯 남짓의 사내들이 모두 배를 잡고 쓰러졌다.

그들이 딸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순간 단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의 살점을 도려낸 것이다.

갱의 배에 쑤셔 박았던 유물 칼을 단숨에 뽑아서!

그들은 살점이 잘려나가는 고통에 데굴데굴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아오, 시팔!"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단이 말했다.

"주헌 씨한테는 오늘 안심 대신 삼겹살을 들고 간다고 해야 하나."

이 자식이!

하지만 정작 그들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분명했다.

'저놈, 우리 유물을 썼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상한 것이다.

왜?

"뭐야! 이 새끼 유물 못 쓴다며! 말이 완전히 다르잖아!"

"내 말이!"

그렇다.

그들은 분명 단이 일반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의기양양하게 이곳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

그리고 그 무렵, 정육점 내부를 감시하고 있던 권혁수의 부하들도 충격에 빠졌다.

'저 사내가 유물을 썼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저놈이 순간적으로 귀신같은 능력을 발휘한 건 그래봐야 빙의형 유물이니까 당연하다 이거였다.

대부분의 무기처럼 생긴 유물이나 장수들의 유물은 빙의형이 많으니까.

하지만.

'분명 평범한 도축업자라고 들었는데.'

이미 사전 조사는 끝난지 오래였다.

즉 단은 유물과는 거리가 먼 일반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유물을 썼지?

"설마 칼 유물에 대해서 적합력이 높은 케이스인가? 저 사내, 도축업자잖아."

"뭐? 설마 칼을 잘 쓰니까?"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비웃음을 흘렸다.

"야, 그런 걸로 적합력이 높으면 세상의 장인들은 죄다 엘리트 유물 사용자들이야."

"그래. 단순한 우연이야."

"하긴 방금 쓴 칼 유물은 기껏해야 C급이잖아."

그렇다.

사실 C급(일반급)까지는 매뉴얼만 숙지하면 일반인도 꽤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왜?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일반인이면 C급을 사용할 정도의 지배력(의지력)과 친화력(사회성)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으니까.

"젠장, 서주헌이 매뉴얼을 알려준 모양인데."

"칫, 그놈이라면 그럴 만하지."

"됐어, 그래봐야 C급 사용자야."

"그래도 유물이 통하지 않는 용가리 통뼈인가본데?"

"아, 그래서 서주헌이 저놈을 구해준 거구나. 이제 알겠네. 저런 인재니까 교도소에서 꺼내준 거야."

때문에 그들은 욕을 하며 직접 정육점으로 향했다.

"할 수 없지, 우리가 나서자."

"그래. 저놈을 이용해서 서주헌을 공략해야 한다. 겸사겸사 저놈도 챙겨가고."

"다른 왕급후보들도 우릴 지켜보고 계시고."

실제로 이번 일은 다른 독식자들도 주목하고 있었다.

왜?

사실 그들의 손에 자신들의 왕급이 되냐, 못 되느냐의 운명이 달려있었으니까.

게다가 주헌이 운명왕을 납치해간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그놈이 왕급이 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던 탓이라.

'서주헌, 시장을 망가트리는 놈.'

그렇다. 주헌은 사실 의료 유물과 방어 유물의 경우, 일반인들에게 저렴하게 배포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법인, 그레이브 컴퍼니가 유물을 가공해 상비약이나 호신용품으로 대량 배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물증후군의 피해자나 유물의 피해를 입는 사람도 줄고 있는 판이었다.

덕분에 독식자들은 치를 떨었다.

왜?

'우리 돈줄을!'

'미친 거 아니야? 그 필수유물들을 독차지해서 나중에 비싸게 팔 수 있는데!'

'그 귀한 의료 유물과 방어 유물들을 왜 멋대로 일반인들에게 배포해!'

'아오, 우리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을 좋은 기회를 그놈이...!'

대충 그런 식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할 수 없어서 주헌에게 그 물건들을 사재기하려고 했더니, 글쎄 안 팔겠단다.

게다가 독식자들은 어차피 자기들이 구할 수 있으니 알아서 구하시란다.

그러니 뒷목을 잡을 수밖에!

결국 그들은 주헌과 놈의 회사를 없애야 자신들이 중요한 유물들을 독식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마 그놈이 비보가 나올 무덤을 죄다 털어버리면?

그것만큼은 정말 끔찍했다!

결국 서주헌을 처리하기 위해서 선택한 게 일단 단과 그 딸인 것이다.

'저놈을 시작으로 놈의 주변인물들을 쳐낸다.'

그렇게 권혁수의 부하들이 이를 갈며 정육점에 향할 때였다.

"아빠!"

수아는 무사히 단에게 돌아갔다.

딸은 단에게 안겨들었고, 그는 딸이 다친 곳은 없나 헐레벌떡 살피고 있었다.

"다, 다친 곳은 없니?"

그는 행여나 작은 상처라도 났을까봐 안절부절못하는 눈치였다.

평소엔 상남자답게 고기를 퍽퍽 해체하는 그가 맞는지 싶을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러자 수아는 괜찮다면서 아빠에게 얼굴을 비볐다.

단은 그제야 안도하며 딸을 꽉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아빠, 나 괜찮으니까 걱정..."

"괜찮긴 뭐가 괜찮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빠를 안심시키던 딸이 돌연 정신을 잃었다.

그 모습에 단은 깜짝 놀랐다.

"수아야, 수아야!"

***

"수아야!"

그는 정신없이 딸을 흔들었다.

하지만 수아는 일어날 생각을 못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정육점 안으로 권혁수의 부하들이 들어왔다.

말쑥한 수트를 차려입은 그들은 사후처리반이었다.

그들은 디퓨저 같이 생긴 병을 흔들고 있었다.

"그 아이는 걱정 마. 그냥 잠깐 잠재운 거야."

"우리도 판도라한테 책잡힐 짓은 하기 싫거든?"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케이크를 먹고 싶다며 수아가 잠꼬대를 하는 게 그 증거였다.

'수아는 괜찮지만...'

그들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뜻밖에도 비행기 티켓이었다.

"충고하나 하지. 서주헌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새끼 좋은 놈 아니야. 인터폴에서 수배한 범죄자라고. 증거도 있어."

"그놈은 널 이용하려고 그러는 거야. 아마도 널 사냥꾼... 그러니까 총알받이 용도로 써먹으려고 하는 거라고. 유물공격이 안 먹히는 그 몸으로 말이야."

"..."

"그러니 떠나요. 떠나서 판도라의 보호를 받으세요. 그 능력은 판도라한테 더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더니 가방에서 돈을 꺼냈다.

"생활비는 걱정하지 마시고."

그러나 단은 갱들을 때려눕혔던 칼을 뽑아 들려고 했다.

물론 그걸 그냥 두고 볼 그들도 아니었다.

"어허."

그들은 재빨리 유물 칼을 빼앗으며 비웃었다.

"C급 사용자들을 떄려눕히고 자신감을 얻은 건 알겠는데, 우리한텐 소용없거든?"

"우린 전부 A급 방어유물을 다 입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입고 있는 수트가 방어 유물인 듯했다.

뭐, 그래봐야 원본품이 아닌 개량된 공업품이라 내구도가 낮지만.

'C급 유물에게 깨질 정도는 아니다.'

"알았으면 우리 제의를 받아들여요. 괜히 서주헌에게 속아서 이용되지 말고."

"그래요. 애초에 우린 A급 S급 유물 사용자야. 이 갱들하고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요. 고작 댁 같은 C급 사용자한테 당하지 않..."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하."

그들의 말에 갑자기 한숨을 쉬던 단이 작업실로 향한 것이다.

"이봐? 우리 말 무시하는 거야?"

그는 잠든 수아를 잠시 직원에게 맡기고 뭔가를 꺼내왔다.

"사, 사장님?"

그가 작업장에서 가지고 나온 건 정육점용 칼과 칼 가는 숫돌.

아침에 그가 고기를 다듬는데 쓰던 물건이었다.

그걸 다시 꺼내서는 샥샥 능숙하게 갈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본 그들은 황당했다.

"이봐? 지금 뭐하는 거야? 우리 고기 사러 온 거 아닌데..."

"그런 건 나중에 갈고..."

"빨리 우리 제의를..."

그러자 다른 사람이 다급하게 외쳤다.

"야. 아냐. 저거 자세히 봐!"

"뭐?"

샥, 샥, 샥, 샥.

그렇다. 칼을 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가 갈고 있는 칼의 정체였다.

"잠깐 저거...!"

그렇다.

그건 바로 유물!

심지어...!

"야, 잠깐만! 저거 기운이 A급 이상...!"

"설마 S급 유물 아니야?!"

틀림없었다.

권혁수의 부하로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그들은 단번에 유물의 정체를 알아냈다.

놈은 그걸 날카롭게 갈면서 엄청난 적합력을 실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그들은 다급해졌다.

"야, 어떻게 된 거야! S급 유물을 저놈이 어떻게 다뤄!"

C급은 일반인도 매뉴얼만 익히면 그냥 쓸 수 있으니까 그렇다 쳤다.

하지만 B급 이상은 지배력, 친화력과 별개로 일정 시간 숙달 기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A급(보물급)은 피를 깎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고 말이다.

그런데 훈련도 받지 않은 일반인이 S급 유물을?!

"젠장, 저 귀한 걸 어디서 얻었지?"

"미친, 지금 그게 중요하냐! 쟤 저거 발동하려고 하잖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이 분주해졌다.

"젠장, 빨리 기억 조작 유물 사용해."

"칫, 기억 조작까진 안 쓰려고 했는...!"

하지만 기억 조작 유물은 개뿔.

"허,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어, 어, 어어?!"

"단장을 배신하라니, 이거 미친놈들이구만."

살벌한 미소와 함께 주헌이 선물한 싸울아비 유물이 발동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