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전 세계를 속여라(2)
[단이라는 남자랑 그 딸을 처리해라.]
이놈이?
일리야는 황당했다.
그래서 그는 순간적으로 제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자신이 지금 잘못들은 건 아닌지.
하지만 분명했다.
다시 듣고 다시 들어도 이 목소리는 권혁수, 그 노친네였다.
[일리야. 내 말을 듣고 있는 거냐?]
그 말에 일리야는 칫 혀를 찼다.
[네. 들립니다.]
텔레파시에 대한 건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권혁수는 자신이 기르는 부하들의 머리에 유물 하나씩을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목줄 대신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 칩 형태였는데, 주로 상층부에서 하층부로 명령을 전달할 때 사용했다.
일종의 텔레파시 무전기라고 봐도 좋았다.
'젠장, 뽑아달라고 하는 걸 잊었어.'
이건 주인인 권혁수가 회수하거나 수술 유물을 써야 뽑아낼 수 있는 물건.
권혁수 노친네가 죽은 줄 알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건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머리에서 자꾸 노친네의 목소리가 들려서 짜증난다 할 뿐이지, 다른 위해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왜?
[지금 어디십니까? 살아계신 겁니까?]
그렇다.
권혁수는 분명 주헌에 의해 저승으로 끌려갔을 텐데.
그러자 권혁수가 하하 웃었다.
[일단 살아있어. 살아남은 건 나뿐이지만.]
아무래도 함께 끌려간 암살자들, 그리고 그가 부리던 유물들은 전부 죽은 모양이었다.
'하긴. 신급 유물이 데리고 간 저승이 만만한 곳도 아닐 테니.'
하지만 이 노친네는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그러자 뭘 깨달은 건지, 권혁수가 말했다.
[내 걱정은 너무 말거라 일리야.]
아니 걱정 안 해!
'궁금하지도 않아!'
일리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괜히 사황급이 아닌 모양이었다.
'저승에 날려 보내도 쉽게는 안 죽는다는 건가.'
하지만 아주 비관할 일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왜?
[일리야. 지금 내가 그쪽으로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네가 내 수족이 되어 바깥 일 좀 해야겠어.]
결정적으로 그는 저승에서도 살아는 있지만 꼼짝도 못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당장 저승에서 빠져 나왔지, 자신에게 일처리를 맡기진 않을 테니까.
그 증거로 그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서주헌과 함께 있을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분명 놈 옆에 단이라는 놈이 있을 테지.]
있다 말다.
자신들 도굴단에서도 귀신의 재래라고 불리는 아수라인 걸.
하지만 단은 갑자기 왜?
그 의문에 답하듯 권혁수가 말을 이었다.
[얼핏 운명왕한테 들었단 말이지. 서주헌의 동료가 될 사내라고. 하지만 그 단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아직 유물을 못 쓰는 사내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말에 일리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장 약한 토끼부터 잡으라는 건가.'
그렇다.
서주헌을 공략하기 위해 주변 동료부터 쳐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유물을 못 쓰는 놈을 잡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으니 단을 노리라는 의미.
하지만.
'이 노친네가 미쳤나.'
지금 누구한테 누굴 잡으라고?
미친 거 아니야?
'왜 하필이면 단인데?'
이건 이 노친네가 단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단은 사냥꾼들 중에서도 이름을 떨친 전설적인 사냥꾼.
동시에 그는 도굴단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무덤에서도 원래도 유물을 뺏기 위한 암투가 벌어지지만, 특히 주헌의 도굴단은 여러 가지로 많이 노려졌기 때문이다.
'단장의 목에 걸린 현상금에 현상금 사냥꾼들이 미쳐 날뛰었지.'
독식자들에게도 눈엣가시였던 터라 암살자들도 많았고.
물론 그래봐야 적들은 일단 단이라는 철벽의 아성부터 뚫어야 했지만.
그리고 대다수가 도굴단에게 닿기도 전에 찢어발겨졌다.
'그야말로 귀신, 투신.'
근데 지금 그 놈을 자신더러 처리하라고?
'찢겨서 죽을 거야.'
물론 지금의 단은 그때와 다르다.
유물을 쓰지 못하니까.
'아니, 사용해본 적도 없을 걸.'
아예 자신이 유물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 아수라 시절 때와는 확연히 다를 테지만
'내가 왜 이 노친네의 말을 따라.'
그렇다.
신을 용서하니 어쩌니 하는 걸 봐선 꽤나 급한 상황인 것 같지만.
'꺼지라고 해.'
이 노친네가 상대를 잘못 골라도 단단히 잘못 고른 것이었다.
기억을 찾기 전이었다면 당연히 따랐겠지만.
일리야는 웃었다.
[회장님, 말씀 드리지만...]
저 거기로 안 돌아갑니다.
그렇게 말하려고 할 때였다.
[네 트라우마를 고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거 잘 알지? 그리고 네 부하들도.]
"..."
이 새끼가.
일리야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그리고 한편, 유재하는 그런 일리야를 수상하게 보았다.
왜?
그가 문득 이런 말을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따르죠."
"...?"
뭘 따른다는 거지?
그리고 그가 단을 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단... 아니 임해진 씨."
"네?"
"정말 유물 다뤄본 적 없죠?"
"네, 사장님이 C급짜리를 사용하시는 건 봤지만... 만져보지도 못했는데요."
"오케이."
일리야는 알겠다며 돌아섰다.
유재하가 어디에 가느냐고 묻자 일리야가 답했다.
"밥 먹으러."
그렇게 멀어지는 그를 보며 유재하는 수상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저 자식이..."
눈빛이 꽤나 날카로웠다.
***
"단장님, 단장님. 일리야 그 새끼요. 그러니까 진짜 수상하다니까요?"
한편 방송국으로 향하던 주헌은 유재하의 고자질에 헛웃음을 흘렸다.
도대체 아까부터 계속 그 이야기만 해서는.
"아주 해고사유를 만드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그 말에 유재하는 인절미 가루를 퍼먹듯 가슴을 쳤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어디가냐고 물으니까 나한테 밥먹으러 간다고 답변을 했다니까요? 진짜 수상하죠!"
그 말에 아이린은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었고, 설아 역시 비웃었다.
"유재하. 일리야는 밥 먹으러 가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냐? 그쵸? 단장님."
"그러게."
"봐, 단장님도 헛소리 말라고..."
"일리야 녀석 엄청 수상하네."
"네, 네?!"
"어째서요?!"
주헌이 정말 진지하게 답했다.
"일리야는 저 놈의 모든 질문엔 꺼져, 닥쳐, 등신, 병신, 이게 나와야 하거든."
"...!"
그러자 그녀들은 충격에 빠졌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사이가 나쁘면 그런 말이 기본인 건지.
곧 주헌이 알아주자 얼굴이 피던 유재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자식, 단을 보는 눈빛이 이상했다니까요?"
유재하는 미간을 좁혔다.
사실 일리야는 아직 독식자들과 끈이 끊긴 게 아니지 않나.
"어쩌면 그 자식. 동료가 된 척 연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니까요."
그 말에 설아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때였다.
쾅!
그들이 있던 방송국 건물이 크게 뒤흔들렸다.
순식간에 건물에 불길이 타오르고, 방송에 있던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테러야! 테러!"
"수상한 남자가 괴물을 불러내고 있어!"
"악마가 나타났다!"
그들의 반응에 단원들은 당황스러웠다.
테러라고?
그리고 괴물을 불러낸다니...
악마를 소환하는 사람 중에서 이 정도의 테러를 일으킬 수 있는 건 일리야 정도다.
그리고 오늘, 이 방송국.
여기서 주헌이 운명왕을 활용한 대사기극을 펼칠 걸 그가 모를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단장님! 설마 일리야가...!"
그 말에 유재하가 외쳤다.
"그래! 역시 그 자식이 우리를 배신한 거라니까! 수상하다니까!"
바로 그럴 때였다.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등신아!"
"커헉!"
유재하가 누군가에게 걷어차이며 날아갔다.
"?!"
그를 걷어찬 건 다름 아닌 일리야였다.
"너 진짜 헛소리하면 죽는다!"
그리고 일리야에게 그대로 얻어맞고 날아간 유재하가 쌍욕을 날렸다.
유재하는 억울한 듯 제 볼을 만지면서 상대를 보았다.
"야, 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하지만 억울한 건 자신이라는 듯, 발차기부터 날린 일리야가 씩씩 거렸다.
"야, 너 진짜... 아오!"
주헌 일행 앞에 나타난 일리야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여간 이 쓸모없는 자식이..."
일리야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며 유재하를 짓밟았다.
그리고 단원들은 혼란스러운 듯 그를 보았고, 마찬가지로 그를 보던 주헌이 물었다.
"일리야."
"네?"
"재하 놈이 네가 수상하다던데. 설마 독식자들하고 내통한 거냐?"
그 말에 일리야는 평소와 다르게 정말 당황하는 눈치였다.
늘 한결 같은 포커페이스가 드물게 무너졌다고 해야 하나.
큰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분명히 당황하고 있었다.
"오해입니다! 단장!"
행여나 주헌이 정말 해고, 아니 처분하겠다는 말을 꺼낼까 두려웠던 걸까.
"저 이상한 마음 품은 적 없습니다. 정말로요."
그러자 짓밟히던 유재하가 외쳤다.
"그럼 지금 이 난리난 건 뭔데! 괴물을 소환하는 게 너밖에 더 있냐! 그리고 아까 분명히 다 들었거든? 뭘 따르니 마니 그딴 소리를 했잖아! 독식자들이랑 텔레파시라도 주고받은 거 아냐?"
"안 닥쳐? 나 말고도 사후처리 멤버는 더 있거든! 그리고 그 말은...!"
"단장님, 속지 말아요. 누가 그 말을 믿... 컥!"
유재하는 주헌에게 짓밟혔다.
"쉿. 알았으니까 좀 닥쳐봐."
주헌은 냉정하게 일리야를 보았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일리야는 급하게 외쳤다.
"연락 해왔어요, 권혁수 그 노친네가!"
"!"
그 말에 단원들은 모두 놀랐다.
"그 영감 살아있었어?!"
"분명 저승으로 끌려갔잖아! 어떻게!"
그러나 주헌은 태연하게 답하는 것이었다.
"그건 알고 있어. 오시리스가 징징거렸거든. 부하들이 죄다 끔살 당하고 있다고. 그러니 빨리 그냥 내보내달라고."
힘자랑하는 노친네 때문에 오시리스가 항의해왔던 것이다.
"뭐, 그래봐야 좀 더 가둘 생각이지만."
그렇게 주헌이 웃자 율리안은 답답해졌다.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웃을 때야?! 일리야에게 연락을 해왔다는 건, 아직 일리야를 부하로 생각하고 있단 거잖아."
"...!"
"일리야를 이용해서 저승에서 나올 방법을 꾀하려고 한다면..."
그 말에 주헌이 어깨를 들썩였다.
"이제 일리야는 못 이용할걸?"
"뭐?"
***
그리고 그 무렵.
"후, 이거 미치겠군."
저승에 있는 권혁수는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을 살피고 또 살펴봐도 미라들 밖에 안 보였고, 괴물들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봐야 오시리스의 휘하에 있는 저승에 간수들은 죄다 권혁수에게 살해당했지만.
아무래도 그가 가진 유물 덕인지도 몰랐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일단 왕급, 그리고 더 나아가 사황급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뭘 한담.
"허참, 여기서 어떻게 나가라는 거야?"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일리야가 서주헌의 옆에 있을 거다.'
여기서 나가려면 주헌이 오시리스 유물을 써서 다시 내보내거나, 오시리스 유물을 파괴하는 것 정도.
즉, 일리야가 주헌을 공략하면 출구가 생긴다는 의미였다.
어째 일리야가 서주헌을 돕는 꼴이 이상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놈은 그래봐야 겁쟁이야.'
절대로 자신을 배신할 생각도 못 품는 놈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그 유물 리스크, 트라우마를 어떻게 고칠 건데?
'결국 나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저승에 있어도 바깥에는 자신의 수족들이 아주 많았다.
'곧 일리야가 여기서 탈출할 방법을 모색해올 거다.'
그리고 이때였다.
[찾았다, 인간.]
슈욱!
권혁수의 앞으로 악마가 나타났다.
그걸 본 권혁수는 굉장히 반가워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그건 일리야의 심부름꾼 악마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오시리스의 눈을 피해 이곳에 들어온 것이리라.
악마는 편지봉투를 물고 있었다.
봉투의 수신인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일리야의 필체가 아닌데?'
하지만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어보였다.
'서주헌의 시선을 피해서 보내느라 대리를 시켰겠지.'
틀림없이 자신이 말한 대로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강구한 것이리라.
'역시 일리야. 빨리 알아냈구나.'
그렇게 그가 기대를 하며 편지를 꺼냈다.
"그럼 어디 뭐라고..."
그러나 편지를 펼친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좆까.]
보낸 건 주헌이었다.
***
같은 시각.
권혁수에게 친절하게 편지를 보내줬다는 주헌의 말에 율리안은 탄식했다.
하여간 이 자식은 또 언제 그런 짓을!
일리야는 망했다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주헌은 하하 웃었다.
"어디서 감히 내 단원을 넘봐? 내 단원들은 나 외엔 못 굴려."
율리안은 피곤해졌다.
"아 됐고. 일리야. 그래서 그 회장이 뭐라고 했는데?"
일리야는 아차 싶었다.
"그... 저한테 단하고 그 딸을 없애라고."
"뭐, 뭐?"
동시에 정적이 흐르고, 잠시 후 다들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특히 유재하가 죽으려고 했다.
"야 미친. 니가? 니가?"
"..."
"잘해봐라, 피통 고자 법사한테 뭘 시키는 거냐. 진짜 잔인하다. 너 끔살일걸? 근접전으로 한번 근거리 딜러 사냥해봐라, 한번."
일리야는 고양이처럼 파르르 떨었다.
이 자식, 나중에 반드시 단장 몰래 죽여버릴 테다.
"어쨌든 단은요? 집에 가도 없길래 여기에 있나 했는데."
"아. 단은 지금쯤 자기 직장에 있을 걸? 오늘 특상 고기가 들어온다고, 그거 가지러 간다고 했거든."
일리야는 재빨리 방향을 돌렸다.
"그 노친네의 다른 부하들이 노리고 있을 겁니다. 단하고 딸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는 빨리 가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주헌은 어째서인지 웃을 뿐이었다.
"위험하다고?"
과연 어느 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