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전 세계를 속여라 (1)
운명왕은 주헌을 보자마자 질색을 했다.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너, 언제까지 사람을 여기에...! 너 내가 부하들하고 연결되기만 해 봐! 가만 안 두... 커헉!"
"그 전에 나한테 먼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젠장, 이 자식!
주헌에게 짓밟힌 운명왕은 치를 떨었다.
그의 나이 20대 초반.
그럼에도 세계의 정상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온갖 것을 이룬 남자.
그 누구도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했고, 갑부라는 사람들이 미래만 봐달라며 고개를 숙여왔다.
그런데 이놈은!
"얘 털 거 더 안 남았냐?"
"어? 그럼 팬티까지 털어요? 이 새끼, 팬티도 명품이던데."
이것들은 무덤을 터는 걸로는 성이 안 차는 거냐!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운명왕에게 다가왔다.
"뭐, 생각보다 착하게 있었네."
착하게 있기는!
젠장, 수상한 짓을 하고 싶어도 단 때문에 뭘 할 수 있어야지!
그렇게 운명왕이 뭐라고 따지려 할 때였다.
"이제 그거 제가 처리하면 되는 겁니까?"
"!"
운명왕은 화장실로 들어오는 일리야를 보고 기겁했다.
'미친, 쟤 그 노친네의 사후처리반 놈 아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자 운명왕은 당황스러웠다.
왜?
아니 권혁수의 부하 놈이 왜 서주헌이랑 있는데!
그러나 주헌은 그런 그를 향해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조작해. 아, 그 전에 이놈이 봤을 미래들을 머릿속에서 쫙 뽑아 내고."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 사실 주헌은 운명왕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다른 독식자들과 달리 미래에 벌어질 일을 구체적으로 꿰고 있으니까.
있다면 그냥 좀 더 좋은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운명왕의 예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 하나.
'비보가 나타날 때 그 까마귀 무덤이 나타난다고?'
그건 과거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그리고 그럴 때 일리야가 물었다.
"그럼 그 전에 이자식 기억만 조질까요? 아님 인격까지 조질까요?"
그 말에 운명왕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저게 지금 뭐라고?!
"야! 너 지금 너 미쳤어? 어?"
"안 미쳤는데?"
일리야는 운명왕의 머리통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단장, 말만 해봐요, 이자식 아예 우리 따까리로 만들어버릴까?"
일리야의 얄상한 웃음에 운명왕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진짜 이놈이 왜 이러는 건데!
'이자식 그 노친네의 부하잖아!'
하지만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웃음을 흘렸다.
'아! 그래! 서주헌을 처리하러 온 거구나!'
분명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이리라.
상대가 상대이니, 신중하게 접근해 계획을 진행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게 웬걸.
번쩍!
일리야가 프로이트 유물을 발동하고, 그의 회색 눈동자가 금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운명왕은 거품을 물었다.
"아씨, 너 진짜 왜이래! 너 나 구하러 온 거 아냐?! 연기도 작작해! 진짜 속겠다고!"
그러자 일리야는 이게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 샤워기를 들며 사납게 비웃었다.
"이 새끼 기절시키는데 이거면 충분하죠?"
어차피 지금부터 기억을 조작하려면 재워야(?)하니까.
그렇게 일리야가 명색의 흉기(?)를 휘두르려고 하자 주헌이 쯧쯧 혀를 찼다.
"안 돼. 흠집나면 몸값 떨어져. 꽃으로도 절대 때리지 마."
"칫."
대신에 주헌은 클로에를 불렀다.
"클로에, 재워."
그 말에 클로에는 곧바로 수술 장비 유물을 발동 시켰다.
얼핏 보기엔 산소호흡이 형태의 물건.
수술대에서 사용하는 마취도구 같았다.
하지만 그 정체는 수면마취를 유도하는 유물!
곧 클로에가 운명왕에게 산소호흡기를 씌우자 그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동시에 일리야의 프로이트 유물이 발동 되었다.
그리고 주헌에게 프로이트 유물을 썼을 때보다도 더 강한 오라가 욕실에 작렬했다.
번쩍!
그건 주헌에게 썼던 2단계 상태의 기억조작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도 훨씬 강한 기억조작!
3단계, 꿈으로의 침입.
프로이트는 꿈이 인간의 잠재된 욕망 표출이라고 했던가.
즉 일리야는 상대의 무의식 층에 완전히 침투해 그 사람의 무의식을 바꿔버린다.
그 결과 인격, 기억, 성향, 욕망, 모든 걸 바꿀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인격을 조작, 운명왕을 말 잘 듣는 멍멍이로 만들 기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젠장, 이대로는 안 돼!'
운명왕은 한 올 남은 정신을 부여 잡았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서주헌의 하수인은 안 된다!'
그렇게 강한 의지를 품는 순간이었다.
쨍그랑!
"꺄악!"
"클로에!"
강렬한 힘에 클로에가 사용하던 수면마취 유물이 박살이 났다.
주인의 위기 상황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의지가 유물에 닿은 것인가.
그가 가지고 있는 귀속성 유물, 노스트라다무스의 유물이 번쩍 힘을 발휘했다.
정확히는 단순한 오라의 힘으로 클로에의 유물을 박살을 낸 것이다.
괜히 왕급은 아니었다.
그리고 수면유물에서 벗어난 운명왕이 꼴 좋다는 듯 웃었다.
"야! 알았냐? 내가 이대로 니들의 하수인이 될 것 같다고 여기면 오산..."
그런데 이때였다.
뻐억!
"커, 커허어억!"
운명왕은 거품을 토하면서 고꾸라졌다.
주헌의 주먹이 명치에 작렬한 것이다.
마치 망치로 뼈를 부수는 듯한 끔찍한 감각!
어디 그뿐인가.
뻐억! 뻑! 빠각! 빠가악!
운명왕은 주헌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아주 오징어포로 만들 생각인지 뼈까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심지어 때린 데 또 때리고, 아주 작살을 냈다.
"커헉!"
그 모습에 단원들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상대는 왕급의 유물을 가졌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 기절할 것 같기는 하다만.
"아, 아니 방금 몸값 떨어진다고..."
언제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며!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주헌은 오징어채가 된 운명왕을 쿨하게 던져주었다.
"작업해라. 이제 푹 자겠지."
주헌은 배고프다며 대수롭지 않게 욕실에서 나갔다.
그 광경에 아연실색한 일리야는 주저앉았다.
'이건 뭐 차라리 샤워기로 때리는 게 신사적이지.'
그리고 빼꼼 욕실을 훔쳐보고 있는 유재하가 몸을 떨었다.
"아, 난 단장님이랑 적이 아니라 다행이야."
진심이었다.
***
"허참."
한편 운명왕을 검사하고 있던 율리안은 주헌을 보며 탄식했다.
아니, 뭐 운명왕의 기억을 신나게 조작하고 기절시킨 건 좋다 이거였다.
제갈공명의 유물로 살펴봐도 위험한 낌새는 안 보이고.
하지만.
이쯤 되면 딱히 기억조작을 안했어도 알아서 기억찬란 증세가 오지 않을까.
그래서 그가 말했다.
"넌 진짜 인간 말세야 말세."
물론 비인도적이라는 의미 뿐만은 아니었다.
"...너 손하고 발은 멀쩡하냐?"
그렇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유물은 상급 유물.
강한 오라를 뿜어대는 바람에 평범한 인간의 신체가 닿으면 작살이 나는 게 당연했다.
비유하자면 염산덩어리에 주먹을 휘둘렀다는 것과 흡사하다는 건데.
'지금이야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어 안 보인다지만...'
"그 오라덩어리에 주먹을 날렸으니 손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란 건 클로에였다.
"단장님, 당장 팔 꺼내보세요!"
"?"
주헌이 대수롭지 않게 손을 빼자 클로에와 설아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왜?
"손이...!!"
아무래도 오라에 직접 손을 댄 탓인지, 주헌의 피부가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그래봐야 주헌은 아파하지도 않았지만.
'내성이 있으니까.'
어차피 오라 덩어리에 닿아도 지장은 없었다.
피부가 문드러지긴 했지만 이 정도는 금방 나았다.
'오히려 유물을 썼으면 단원들도 피해를 입었을 테고.'
그 상황에선 주먹이 가장 효과적이었고.
'무엇보다 귀찮고.'
어차피 금방 나을 것이기에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글쎄.
"제발 한 번쯤은 몸 좀 생각해주세요!"
클로에는 꽤 속상해보였다.
그러자 주헌은 대충 알겠다면서 에드워드와 전화를 했다.
운명왕이 깨어나는 대로 촬영팀을 보내라는 지시를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비보가 나타날 장소를 예언하기 위해서!
그래봐야 비보가 나타날 장소를 이미 알아낸 주헌이었지만, 가짜 정보를 퍼트려줘야 하이에나들이 안 따라붙었다.
'이걸로 비보 유물을 전부 차지한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왕급을 지정할 수 있게 되면 판세는 어떻게 바뀔까?
그리고 그 무렵.
그런 클로에를 유심히 보던 설아가 슬그머니 그녀를 붙잡았다.
"크, 클로에 너 말이야."
"?"
그녀는 단과 이야기하는 주헌을 힐끔 보면서 속삭였다.
"호, 혹시 연하한테 관심 있지는 않지?"
"어. 관심 없는데. 너도 알잖아."
그 말에 설아는 내심 안도했다.
아니, 클로에가 연하인 주헌한테 관심을 안가진다는 건 잘 안다.
전생에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같이 무덤에서 죽은 경험 탓인가.
클로에가 전생 때보다 내심 주헌을 더 신경쓰는 기분이 들었다.
설아는 끙끙 거렸다.
동료에게도 이런 생각을 품는 자신이 약간 싫기도 했다.
그녀는 주헌을 보면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왜 옛날의 난 그런 바보짓을 했지!'
사실 설아는 전생에 주헌과 잠자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연인 관계로 이어지진 못했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땐 그걸로 만족했지만 현재는 라이벌이 생겨버렸다.
그러니 설아는 이제 와서 후회가 좀 드는 것이다.
주헌이야 여전히 자신에게 잘해주고 있긴 하지만...
'난 바보야. 왜 그때 그걸로 만족해 버렸지...!'
하지만 곧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 단장님 옆에 다시 있게 된 게 어디야.'
"알았어, 미안해. 신경 쓰지 마."
그러자 클로에는 설아를 빤히 보았다.
그러더니 놀리듯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었다.
"뭐, 근데 사실 단장님은 연하 같지가 않지?"
그 말에 설아가 기겁했다.
"자, 잠깐 클로에 너! 너 진짜야?!"
그녀의 울 것 같은 표정에 클로에는 설아를 비웃었다.
"농담이야, 멍청아."
"이씨. 저게 진짜!"
그리고 꽃다운 여단원 둘의 실랑이를 보며 부러워하는 사람이 둘.
"아, 단장 놈 개 부럽네."
"그러게."
바로 유재하와 일리야다.
유재하는 진지하게 일리야를 보았다.
"야. 우리 하렘의 유물이나 몰래 훔칠까?"
"꺼져. 넌 그거 써도 인기 없어. 등신아."
그 말에 유재하는 일리야의 멱살을 잡았다.
"야! 나도 나가면 인기 많아! 왜 이래! 어?!"
"지랄도 풍년이네."
결국 둘은 또 주먹질을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야이씨, 너 죽어! 새끼야!"
"뭐라고?!"
그리고 결국 그 소리가 고성방가 수준이 되자 주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야, 니들 좀 조용히..."
그럴 때였다.
둘 다 싸우지 마! 싸우지 마!
동아줄이 둘을 말리려고 다가갔지만, 싸움이 격해진 둘은 친화력과 적합력을 뿜어대며 쾅 부딪쳤다.
"야! 너 이런 식이면 진짜 해고당한다?"
"허, 해고되는 건 너거든?!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지랄, 해고되는 건 너야!"
쿠구구궁!
결국 그 바람에 동아줄이 낑낑 거리며 날아가 벽에 부딪치고 주헌의 핸드폰도 부서졌다.
그뿐인가. 복원실에 있던 유물도 죄다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새끼들이."
처절한 비명이 호텔에 울려 퍼졌다.
결국 비글 두 마리는 호텔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떨어진 한마디.
"니들 둘 다 해고야."
그러자 유재하와 일리야는 억울해진 모양이었다.
아니 자신들이 좀 잘못하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해고라니.
"아이씨,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그럴 때였다.
"밖에서까지 싸우면 진짜 집에 못 들어갈 걸요."
딸을 데리러 가는 단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아직 기억을 되찾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뭐 주헌 씨가 좀 너무하긴 하셨네요. 이런 일로 해고라니."
그러나 일리야와 유재하가 씩씩거렸다.
"그치? 단장님 완전 인성 쓰레기라니까?"
"우리가 얼마나 귀한 인재인데. 우리가 얼마나 잘했는데! 그깟 유물 좀 박살 냈다고 이래?"
"하여간 단한테도 노예계약 시전했으니까 할 말 다했지. 고생이 많네. 단."
그러자 단이 웃었다.
"네? 노예계약? 그런 거 안 했는데요."
"엥? 너도 근로계약서 썼잖아."
"그거 근로계약서 아닌데요. 집 계약서입니다. 주헌 씨가 이제 일도 끝났으니 딸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라고 마련해주셔서."
그 말에 그들은 기겁했다.
"잠깐, 그럼 너 우리 팀에 안 들어 오는 거야?"
"아니, 그 전에 저 망할 단장이 단을 안 끌어들였다고?!"
"어... 전 돕겠다고 했는데... 주헌 씨가 그냥 딸하고 이쪽하고 관련 되지 말고 그냥 행복하게 살라고."
"허..."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당장 달려오겠습니다. 은인이시니까요."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가는 단을 말없이 배웅했다.
세상에 단장님이 그럴 줄이야.
"뭐, 차라리 이게 더 좋은 걸지도 모르지."
"아, 그러면 우리 사냥꾼 구인광고 내야 하나?"
"아, 난 단 말고는 싫은데."
그런데 그때였다.
[일리야.]
"!"
낯익은 목소리에 일리야가 당황했다.
얼핏 텔레파시 같은 목소리가 자신의 머리에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목소리...
'권혁수!'
이 자식, 저승에 떨어진 것 같더니 아직 살아 있었나?
[일리야. 널 용서하마. 그러니 지금부터 내 말에 따르거라.]
그리고 그가 말했다.
[단이라는 남자랑 그 딸을 처리해라.]
이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