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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43화 (243/409)

243화. 기억을 돌릴까, 말까? (4)

"허참, 노친네. 다 늙어서 그렇게 허세를 떨고 싶을까."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의 강력한 지배력이 태풍처럼 몰아쳤다.

사납고 맹렬했다.

원래 지배력이란 강한 의지, 뚜렷한 가치관, 높은 긍지에서 오는 인간만의 강한 정신력.

하지만 왕급 이상의 지배력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이미 유물들이 사용하는 오라화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 자체로도 굉장히 흉흉하고 생화학무기 같았다.

실제로 개방된 주헌의 지배력은 권혁수의 지배력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쿠구궁!

그 힘이 실로 엄청났다.

권혁수가 순간적으로 겁을 먹을 정도로.

비유하자면 산에서 맹수와 맞닥트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덕분에 권혁수는 일순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크윽!"

젠장,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권혁수는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지금은 다쳐서 지배력을 온전하게 못 쓴다고는 하지만...

'저놈이 이렇게 쉽게 누를 정도는 아닐 텐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면 진작 판도라 시스템 유물이 관측했겠지!

'아니, 이미 관측은 했었나.'

생각해보면 판도라는 숨겨진 1위를 랭크에 올리지 않았었나.

분명 그게 서주헌이었다.

'그때는 그냥 단순히 유물 개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뭐 사실 유물을 많이 가진 놈이 장땡인 건 사실이지만, 주헌의 경우엔 특히 직업이 도둑이니까.

왕급이 된 이유도 단순히 유물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주헌이 유물을 훔쳐내는 재주는 뛰어나도 그걸 다룰 능력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다르다.

아무래도 주헌은 평범한 도둑놈이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주헌의 지배력이 주변을 뒤흔들자 유물들은 난리가 났다.

쿠웅!

으아악! 재앙이다! 재앙이야!

으앙, 이거 서주헌이잖아!

도망가라! 도망가라! 잡히면 노예 각이다!

주변에 있던 유물들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도망을 갔다. 아마 생존본능이리라.

[유물들이 도망을 갑니다.]

[미친 듯이 도망을 갑니다.]

물론 그 메시지를 보며 주헌은 쯧 혀를 찼다.

'아나 저 겁쟁이 새끼들.'

이래서 평소에 개방을 안 하고 다니는 거였는데.

그러는 사이 한편, 일리야는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뭐야, 이런 말은 없었잖아!'

확실했다.

분명 사황급이었다.

사황급을 옆에서 모셔왔으니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전성기의 권혁수하고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하물며 과거 사황급들하고 비교를 해도.

'묘하게 기억 하고는 다르다고 여기긴 했건만.'

더 이상 꾼급이 아니라는 건가!

물론 정작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단원들은 탄식하고 있었다.

"저 괴물놈."

"아, 무섭다. 무서워. 저 인간 나중에 가면 진짜 마왕급 되는 거 아니냐?"

"단장님인데 당연히 마왕이지."

"아니, 그건 좀..."

"아무튼 유물들을 그렇게 때려 부순 보람이 있네."

특히 공명의 유물로 주헌을 살피던 율리안은 질색했다.

'권혁수한테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되다니.'

밀리기는커녕 권혁수를 제압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저런 놈이 자신의 단장이라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아니, 원래도 주헌은 환경적 요인이 문제였지 능력은 있었지만...

'과거엔 못 펼치던 능력을 펼치기 시작하니까 진짜 무섭구나.'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큭!"

쿵!

사나운 지배력이 기어이 권혁수의 오라를 완전히 찢어발겼다.

***

엄청난 격돌이었다.

그리고 기어이 권혁수의 지배력이 밀렸다.

주헌이 권혁수의 지배력을 밀어내는 게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짜로 없앴어. 전직 사황의 지배력을!'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야야, 좆됐어. 빨리 갈아타! 갈아타!

하씨, 이 자식 그걸 못 버티냐! 바꿔! 바꿔!

권혁수의 귀속성 유물들이 계약을 파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유물이란 놈들이 얌체 같은 족속이긴 하다만, 정말 빛보다 빨랐다.

버려라! 버려!

권혁수는 사라지는 몸의 문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물론 이탈하는 유물들을 가만히 두고 볼 주헌도 아니었다.

"뭐해!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다 잡아들여!"

그 외침에 동아줄이 눈을 반짝이며 불쑥 튀어나왔다.

어딜 도망가! 도망가!

동아줄은 신이 나서 튀려는 유물들을 붙잡았다.

물론 순순히 잡혀줄 권혁수의 유물들도 아니었다.

아이 씨, 저리 안 가?

저리가, 자식아!

아무래도 강한 유물들만 있기 때문인지 동아줄은 도리어 공격당했다.

상당히 아프고 위협적이었다.

흥, 이정도면 되겠지. 고작해야 밧줄 놈이.

야매로 S급이 된 천한 놈.

하지만 거기에 굴할 동아줄도 아니다.

동아줄은 눈을 번득였다.

이리 안 와?! 안 와?!

동아줄은 두두두두 무서운 얼굴로 유물들을 따라갔다.

잡아 오랬단 말이야! 오랬단 말이야!

[아악! 오지 마! 오지 마!]

[악! 쟤 왜 멀쩡해!]

비록 신급 유물들처럼 위압적인 힘은 아니었지만, 동아줄은 열심히 놈들을 붙잡기 위해 졸졸 뛰어다녔다.

그쯤 되자 권혁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게 무슨...!"

그러자 주헌이 비웃었다.

"유물 관리는 잘 하셔야지? 영감."

참으로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미소였다.

덕분에 권혁수는 드물게 빡쳐보였다.

"이 도둑놈이."

"왜. 도둑놈이라서 꼬와?"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주헌의 눈에는 빡친 게 훤했다.

하지만 권혁수는 화가 나면서도 주헌에게 굉장한 흥미가 생겼다.

왜?

주헌은 강했다.

'저러니까 일리야로는 안 됐지.'

인정해야만 했다.

동시에 정말로 그가 탐이 났다.

아마 현존하는 왕급 중에서는 최상급이리라.

정말로 자신의 수제자로 삼고 싶을 지경이었다.

'저놈은 어떻게든 데려가야겠다.'

그럴 때였다.

음산한 기운을 느낀 율리안이 급하게 외쳤다.

"서주헌! 조심해! 숨기고 있는 유물이 있어!"

아무래도 공명의 유물로 탐지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늦었다는 듯 권혁수의 웃음과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핏 유물을 숨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유물이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도 짐작이 가는 유물은 없었다.

그때 율리안이 외쳤다.

"아사신 유물이야!"

그 말에 유재하는 기겁했다.

"엥? 뭐? 그걸 왜 저놈이 가지고 있어!"

그건 과거 포교왕이 잘 썼던 과거 이슬람 니자르파의 유물.

[살라딘을 노린 시리아 암살자의 계보(A급 - 보물급 / 귀속성유물)]

쉽게 말해 약을 복용하고 암살을 자행하는 아랍 암살부대를 소환하는 유물이다.

암살을 통한 순교를 지향하는 교파라고 해야 하나.

훗날 어쌔신으로 불리게 되는 이들이었다.

이슬람교의 주요 인사들이 주요 암살 타겟으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개종도 서슴지 않던 이들이었다.

순식간에 나타난 중동의 암살자들이 주헌의 목숨을 노렸다.

동시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권혁수는 여유롭게 웃었다.

"일단 한 마리."

그는 살벌한 눈으로 일리야를 보았다.

"다음은 너다, 일리야."

***

권혁수의 눈빛에 일리야가 몸을 덜덜 떨었다.

그 오싹한 눈빛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불구로 만들어서라도 부하로 만들어 놓으려는 눈빛이다.

권 회장은 주로 갑의 위치로 상대의 약점을 잡았으나, 권혁수는 조금 달랐다.

놈은 상대의 정신이든 육신이든 성격이든, 어느 한곳을 망가트렸다.

얼핏 보면 아랫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애왕이라고 불렸으나, 실제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애왕.

자신을 치고 올라올 놈들의 싹을 꺾어 자신의 위치를 보호하려고 한다.

곧 권혁수의 위압적인 손길이 일리야를 불구로 만들려 할 때였다.

쿠웅!

"!"

주헌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커헉!]

[으아악!]

[으억!]

얻어 터졌다.

정말 사정없이 얻어 터지고 있었다.

항우의 유물이 발동된 것이다.

[젠장, 이 자식 뭐... 커헉!]

항우의 유물로 대인전에서는 무쌍을 찍는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놈들을 두들겨 팼다.

아무래도 아까 들려온 비명은 주헌의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걸 본 권혁수는 잠시 당황했지만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다.

'S급 유물을 쓰면서 다른 유물을 동시에 쓸 수는 없다.'

그렇게 권혁수는 고대 마법사들을 소환하는 암살부대를 불러냈다.

하지만.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고, 개인의 자유와 재산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누구나 신앙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주헌이 발동한 법전 유물!

[나폴레옹 법전이 발동됩니다.]

[반경 1km 지점이 법전의 영향권에 들기 시작합니다.]

주헌의 앞에 낯선 법전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나폴레옹의 법전.

법전은 무시무시한 오라를 뿜어댔다.

[반경 내에서는 모두 법 앞에서 평등해집니다.]

[사람도 유물도, 계급의 구분 없이 모두 같은 법을 적용받습니다.]

[상대에게 과실 책임을 부과합니다.]

[상대에게 형량을 매깁니다.]

[법전에 의거해 무죄가 증명이 될 때까지 행동에 제약이 생깁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에게 달려들었던 마법사 유물들이 비명을 질렀다.

결국 권혁수의 암살유물들은 꼼짝도 못하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들은 갖은 법적인 제재를 받으며 죽어나갔다.

그쯤 되자 권혁수는 놀랐다.

'유물을 발동하는 것도 못 느꼈는데.'

자신이 유물이 발동되는 걸 눈치채지도 못하다니.

심지어 속도도 빨랐다.

그야말로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순식간에.

또 그런 주제에 유물의 힘을 100%에 가깝게 끌어냈다.

즉 유물을 사용하는 기술, 테크닉이 굉장하다는 의미였다.

'보통 저렇게 하려면 힘을 다 못 끌어내는 게 정상인데.'

대충 이걸 하면 저게 안 되고, 이런저런 문제가 생긴다고 해야 하나.

그걸 잘 알기에 권혁수는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지금 주헌의 목에 목줄을 채우자니...

'몸 상태가 메롱인데.'

심지어 오늘은 가지고 온 유물도 전부 빼앗겼다.

그래서일까.

권혁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좋아, 알았어. 오늘은 포기하겠네."

"?"

"그 대신... 큭!"

주헌은 권혁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깝치지 말라는 듯이 눈을 번득였다.

"그 대신은 없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협상은 없다."

"!"

그럴 때 주헌이 이죽이며 오시리스 유물을 사용했다.

번쩍!

그러자 땅이 흔들리면서 바닥에서 블랙홀 같은 검은 홀이 생겨났다.

[명부에 상대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사후 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건물은 쉽게 삼켜버릴 만한 구덩이에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명부에 이름이 적힌 이들이 강제로 홀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누비스가 저승에서 병사들을 소환하는 능력이라면, 오시리스는 반대로 생물을 저승으로 끌고 가는 유물!

[하하하! 어서 와라, 내 종으로 삼아주마!]

막강한 저승의 신이 권혁수와 그의 부하들을 저승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권혁수는 이젠 정말 놀라기도 질린다며 입꼬리를 올렸다.

왜?

원래 유물의 능력이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유물을 다루기도 어려운 법이다.

죽음은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대표적인 능력.

왕급들 조차도 다루기 어려운 상급 계열군에 속한다.

'그런데 이걸 저놈이...!'

주헌은 날카롭게 웃었다.

"잘 가라. 그리고 염라대왕한테 안부 좀?"

엄청난 힘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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