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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40화 (240/409)

240화. 기억을 돌릴까, 말까? (1)

"보자보자 하니까 그 노친네를 내 동료로 만들다 못해 내가 누구 부하라고? 야 이 러시아 놈아. 돌았냐?"

주헌의 분노에 단원들은 기겁했다.

아니, 분명 기억 조작이 발동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물론 그들보다도 놀란 건 바로 일리야 본인이지만.

"저 새끼..."

돌았나?

왜 안 통해?

저 자식은 무의식이라는 것도 없나?

그렇다.

일리야의 기억조작능력과 관련된 유물은 바로 프로이트의 유물.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한 심리학계의 거인.

즉, 일리야는 무의식을 조작해 사람의 기억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의식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왕급들조차도 쉽게 조작당한다.

그러니 그로서는 멀쩡한 주헌을 보고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쳤어? 1단계는 최면술 단계니까 그렇다 쳐도...!'

프로이트가 환자 치료를 위해 처음엔 최면술을 사용한 것처럼, 1단계는 고작해야 최면에 의한 기억 조작.

하지만 2단계는 완전히 다르다.

2단계는 아예 상대의 뇌에 남아 있는 무의식을 조작했다.

즉,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아도 머리에 내재된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다.

때문에 의지력으로 어떻게 방어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하지만 주헌은 사납게 웃었다.

"됐으니까 이 새끼, 한 대만 더 맞자."

원래는 귀여운 부하인 만큼, 얌전히 유괴... 아니,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글쎄.

'설마 했지만 하필이면 그 노친네의 부하로 있다니.'

오히려 얌전히 데려갔다가 뒤통수를 맞을 상대였다.

원래 게임에서도 마법사 같은 놈들은 근접전에 왔을 때 박살을 내야지, 도망가게 하면 굉장히 골치 아픈 법!

뻐억!

"크윽!"

결국 일리야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바로 도망가려고 했다.

이대로 있다간 기억 조작이고 자시고 자신이 누더기가 될 판이었다.

"나와라, 가프(GAPP)!"

일리야는 솔로몬의 유물을 발동했다.

솔로몬의 유물은 악마를 소환하는 유물.

텔레포트가 가능한 악마를 소환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일리야의 그림자에서 악마가 머리부터 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디서 기어 나와! 기어 나와!

동아줄이 기어 나오려는 악마의 뺨을 철썩 때렸다.

그리고 졸지에 뺨을 맞은 악마는 억울해했다.

[뭐야! 동족끼리 왜이래!]

하지만 악마는 또 맞았다.

철썩! 철썩! 철썩!

다시 들어가! 들어가라니까!

이젠 아예 악마의 머리를 두들기며 땅속으로 도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철썩 철썩 철썩 철썩!

이건 무슨 두더지게임의 두더지도 아니고.

[아야, 아파! 아파! 그만해!]

동아줄은 시끄럽다는 듯 철썩 철썩 때렸다.

안 들어가? 안 들어가?

그걸 본 일리야가 이를 갈며 동아줄의 몸통을 부여잡았다.

'이딴 밧줄 따위.'

조작 유물로 콱 주인을 바꿔버리리라.

그렇게 프로이트의 유물을 발동하려는 때였다.

뻐억!

일리야는 또 주헌에게 사정없이 걷어차였다.

"이게 내 유물에 뭔 짓을 하려고."

다른 유물은 상관없지만 동아줄을 건드는 건 좀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크으윽...!"

결국 일리야는 배를 잡고 고꾸라졌다.

아무래도 사후처리반은 머리만 굴리는 인텔리 직종.

사냥꾼들과 똑같이 유물사용자들을 노리는 직업군이라고 하나, 그들과 다르게 근접전에는 쥐똥만큼이나 재주가 없는 것이리라.

그래서 일까, 다시 한 번 날아오는 킥!

뻐어억!

"커, 커헉!"

그 세지 않은 킥에도 일리야는 그냥 죽으려고 했다.

그것이 피통 고자들의 슬픔일까.

'젠장, 차라리 유물을 쓰라고!'

차라리 유물 공격을 해오면 주변에 미리 만들어놓은 방어 마법이라도 발동하지!

결국 맞다, 맞다 참다 못한 일리야가 주헌을 쏘아보았다.

"이, 이 새끼가... 진짜 고소한다! 폭행죄로 고소할거야!"

쏟아져 나오는 러시아어에 주헌은 하하 웃었다.

평소엔 웃는 얼굴로 능구렁이처럼 굴던 주제에 역시 폭행 앞에선 장사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누가 그딴 기억으로 바꾸래?"

"뭐?"

"왜 하필 아이린의 기억이 그 노친네로 바뀌어. 토 나올 뻔했잖아. 죽고 싶어?"

퍽퍽퍽!

"커허억!"

일리야는 졸지에 조작을 서툴게 했다고 혼이 났다.

뭐 아이린과의 추억에 거지같은 권 회장이 끼어들고, 설아의 자리에 윤시우가 끼어들고.

정말 화나다 못해 빡쳐 있을 만도 했지만.

"뭐, 그래도 덕분에 권혁수의 정보는 얻었다. 그 점은 고마워?"

이자식이.

결국 정보만 빼앗긴 일리야는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다른 왕급들도 피해가지 못하는 걸 어떻게 이 녀석은...!'

그리고 그 이글거리는 회색 동공에 주헌은 하하하 웃었다.

"뭐 방법은 네 놈이 알 거 없고."

주먹을 우둑거리는 주헌의 눈빛이 무서웠다.

***

"아, 요놈. 골 때리네."

"으, 으으읍!"

인근 공원의 공사현장.

그 안에서는 괴로운 신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리야의 신음이었다.

시멘트에 목까지 담긴 그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으으읍! 으으으우웅! (거기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아직 굳지 않아서 당장이라도 빼낼 수는 있지만, 글쎄.

'이놈을 빼주면 마법서로 도망갈 거 아니야.'

귀찮으니까 시멘트에 담가놓긴 했지만...

"이걸 써 말아."

손에 들린 것은 까마귀의 눈물 유물.

기억을 되돌려도 과연 이놈이 자신을 따를까.

그럴 때였다.

"와씨, 완전 잔인해."

"서, 서주헌! 어떻게 사람을 시멘트에 쳐박냐!"

낯익은 얼굴들이 주헌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본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클로에나 설아는 그렇다 쳐도.

"니들은 왜 여기에 있냐? 이적하겠다고 문자를 보내놓지 않았어?"

주헌의 말에 율리안이 움찔했지만 곧 화를 냈다.

"와, 너무 한거 아냐? 그래도 우리는 널 걱정했는데 그런 말을..."

"사내놈들 걱정은 필요 없는데."

"뭐야?!"

그럴 때였다.

유재하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에이, 단장님 또 그러시기는. 설아한테 다 들었다고요! 일리야 때문에 일부러 도굴단을 해체한 척 한 거라면서요?"

유재하는 실실 웃었다.

"하, 역시 복직은 기정사실이었다니까. 에헴, 다른 놈들이랑 비교하면 당연히 우리가..."

"뭐래? 니들은 서류 통과부터 다시 해."

"..."

이 인간을 확.

심지어 면접부터 다시 보라더니, 이젠 아예 서류통과로 강등되었다.

그럴 때 설아가 물었다.

"참, 이제 일리야는 어쩌실 거예요?"

그녀는 주헌의 손에 들려 있는 까마귀 눈물을 보았다.

주헌은 고민했다.

"안 그래도 고민이라서."

"그, 배후로 있을 사황 때문인가요?"

그 말에 율리안이 미간을 좁혔다.

"권혁수, 그 사람 맞지?"

권 회장의 의형제.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는 주헌의 적일 수밖에 없는 남자.

하물며 사황급이니 방심할 수 없는 게 그 남자다.

"얼핏 전생에서 네 스승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

단원들은 놀랐다.

하지만 그 눈빛에 주헌은 작게 비웃었다.

"스승은 무슨. 그냥 연수 때 잠깐 기초만 배운 건데."

하지만 권혁수는 뛰어난 주헌에게 눈독을 들이며 굉장히 아꼈다.

형님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 아니 수제자가 되라며 졸졸 쫓아다녔을 정도로.

물론 지금이야 주헌을 별거 아닌 걸로 취급하고 있겠지만.

율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또 놀랐네. 스승이라고 해서 네가 싸울 수 있나 했지."

그러자 주헌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능력은 보장해. 하지만 그래봐야 권 회장이랑 다를 바 없는 놈이야."

오히려 TKBM을 제국으로 만들어 줄 눈엣가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

한편 그 무렵이었다.

"젠장, 아직도 운명왕의 위치는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판도라는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곧 나타날 왕의 비보.

그것이 나타날 위치를 알기 위해서라도 운명왕은 꼭 있어야 하건만.

"이제 예고된 날까지 나흘도 안 남았어요."

"나흘 내로 운명왕을 찾지 않으면 진짜 서주헌한테 비보를 다 빼앗길 겁니다!"

"개 같은 서주헌!"

그 말에 판도라에 있던 직원들과 숱한 유물사용자들이 탄식했다.

주헌은 분명 이걸 위해서 운명왕을 납치해간 것이 틀림없었다.

비보가 나타나는 장소를 독식하기 위해서.

"왜 하필이면 이럴 때 운명왕을...!"

"비보가 있어야 진짜 왕급이 될 수 있을 텐데."

예언에서는 곧 나타날 비보를 가진 자만이 진짜 왕급이 된다고 했다.

그들은 탄식했다.

"예언을 무시하려고 해도..."

곤란했다.

왜?

"왕급이 되어야 신급 유물들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렇다.

예언에선 분명 그렇게 말했다.

'왕의 비보를 가진 자만이 신급 유물을 사용할 자격이 있다.'

진짜로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예언이 사실이라면 곤란했다.

이미 신급 유물의 힘을 잘 알게 된 인간들이 아닌가.

'전설영웅급 유물로 만족하기에 신급 유물은 너무 급이 다르다.'

그리고 세상은 경제적으로도, 무력으로도 신급 유물을 가진 놈들에 의해 좌우될 게 뻔한 일.

그걸 아는데 비보를 놓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비보를 차지하지 못하면 웬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놈들이 잘난체하며 나타날 거라고요."

"우린 경쟁사가 위협을 하고 있다고요."

"중국의 유물사용자가 왕급이 되어 봐요. 국제사회를 장악할 겁니다."

쉽게 말해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은 그걸 빼앗기기 싫어서.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해서.

다양한 이유로 왕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주헌 그 얄미운 놈이 비보를 차지하게 둘 수는..."

그럴 때였다.

[괜찮아. 어차피 운명왕도 곧 구해올 거야.]

"!"

판도라에 연락을 해온 것은 다름 아닌 권혁수였다.

"당신은...!"

뜻밖의 인물에 독식자들은 놀랐다.

권혁수는 태연하게 웃어보였다.

[하하하, 우리 형님이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서, 내가 대신 움직이고 있지.]

그는 서주헌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 부하를 시켜서 서주헌을 저지하라고 했거든.]

그 말에 사람들은 기겁했다.

"괘, 괜찮겠습니까? 그 부하...?"

"사, 살아있대요?"

권혁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뭘 그리 당황해. 서주헌은 그래봐야 괜찮은 유물 좀 얻은 애송이야. 유물을 다루는 실력은 거품이라고."

[그럼...]

"그딴 놈이 설쳐도 내 제자한테는 안 될 거야."

일리야는 자신이 기른 인재다.

그는 유물 사용자들의 소질을 알아 보는데 천부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리야는 자신이 인정한 부하.

"그래봐야 지금쯤 일리야가 서주헌을 내 부하로 만들어놨을 거야."

그는 기분이 좋았다.

과거 권 회장은 정복왕의 능력 중 하나, 강제지배를 통해 인재들을 빼왔다.

하지만 권혁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좀 다르다.

기억 조작을 통해 인재를 등용한다.

그리고 서주헌을 만나면 일단 운명왕부터 찾아내리라.

'그 다음에 철저하게 길들여주지.'

유물을 다루는 실력은 모르겠지만 무덤을 도굴하는 능력만큼은 상당히 탐이 났으니까.

'놈을 이용해서 비보를 노린다.'

곧 일리야의 위치를 추적한 그가 공사장 쪽으로 향했다.

그럴 때였다.

"회장님, 저기 일리야가 있습니다! 서주헌도 함께 있습니다!"

실제로 주헌과 일리야의 모습이 보였다.

"서주헌!"

그를 부르자 일리야가 움찔했고 주헌이 고개를 돌렸다.

"잘했다. 일리야. 서주헌을 길들여놨... 엥?"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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