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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39화 (239/409)

239화. 우리도 귀한 몸인데 (4)

"일리야한테 전해. 그놈의 기억을 조작해놓으라고. 곧 내가 찾아갈 테니까."

권혁수.

영국 귀족 출신 홀튼가가 유럽 상업계를 쥐고 있다면, 그는 미국 상업계를 장악한 제왕.

과거 사황이었던 그는 주헌을 꽤나 얕보고 있었다.

아니, 그의 눈에는 모든 왕급들이 귀여워 보이는 것이리라.

그 정도로 유물을 다루는데 천재적인 남자였다.

'확실히 형님을 물 먹인 건 칭찬할 만하다만.'

다른 독식자들이야 미친놈이네, 도저히 못 당해내겠네, 주헌 때문에 뒷목을 잡고 있지만, 글쎄.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의미에선 서주헌이 탐나는 인재였다.

그래서 일리야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자신이 기르고 있던 일리야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을 테니까.

비유하자면 콜렉션 수집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는 주헌의 도굴단 정보를 보며 굉장히 흡족해했다.

여자단원들도 각자 뛰어난 것 같지만 무엇보다...

'서주헌의 팀에는 무려 왕급이 두 마리나 있다.'

그는 왕 중의 왕, 사황이 되기 위해선 뛰어난 유물 사용자들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왜?

개인의 능력이 딸려서가 아니다.

한 명이 섭렵할 수 있는 유물의 종류나 숫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유물 대신 유물사용자 자체를 수집하는 것이다.

게다가 뛰어난 부하를 거두면 지배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이를테면 같은 대장이더라도 닭들을 거느리는 놈과 범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놈.

두 대장의 격은 확연하게 구별되는 법.

범들을 거느릴수록 그 위상은 높아진다.

설령 숫자가 적더라도 병아리 백 마리보단 호랑이 한 마리가 나은 법이었다.

왕의 왕은 황제라고, 호랑이들이 무릎을 꿇으면 대장의 지배력과 그릇도 점점 올라간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계약할 수 있는 유물의 한도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왕 중의 왕만 쓸 수 있는 특별한 유물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서주헌이 데리고 있는 부하들은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범급이었다.

모두 일리야의 손을 거쳐 자신의 콜렉션으로 삼아주리라.

'하지만 그전에 우선 서주헌이다.'

주헌은 숱한 호랑이들 중에서도 특상품일 테니까.

"일리야한테 말해. 서주헌부터 빨리 길들이라고."

하지만 길들이기는 개뿔.

"아악! 거긴 안돼! 그만!!"

"안 닥쳐? 움직이지 마. 죽여버린다."

"악!"

그가 헤집고 다니는 손의 위치는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심 꼼꼼. 치졸한 성격답게 일리야는 몸 곳곳에 유물을 숨기고 있었다.

물론 그냥 숨긴 건 아니다.

마법서 유물을 활용해 유물에 온갖 트랩을 걸어놨다.

이를테면, 반지를 만지면...

퍼엉!

"커헉!"

일리야는 폭발하는 유물에 직격타를 맞으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귀고리를 만지면...

치이이익!

"아아악!"

염산이 뚝뚝 떨어지고.

그리고 벨트를 벗겨내면...

"컥, 커허억!"

벨트가 스스로 움직여 일리야의 목을 졸랐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도난방지 장치일 텐데 어째서인지 주헌이 아닌 일리야에게 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미쳤나!'

이건 뭐 잡으라는 도둑은 안 잡고 애꿎은 주인만 때려잡는 꼴이니!

그리고 그런 일리야를 보며 주헌이 비웃었다.

"허 자식, 장치도 많이 해놨네."

이자식이.

왜 도난방지장치가 제대로 발동하지 않나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억을 조작해둬야 한다.'

일리야는 자신에게 내려온 지령을 떠올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서주헌의 기억을 조작해서 내 부하로 만들어놔.'

서주헌은 왕의 비보를 얻는데 방해가 될 인물.

주헌을 탐내는 상관을 위해서라도 기억을 조작해야했다.

그렇게 일리야는 기억을 조작하기 위해 유물을 썼다.

아주 막강한 유물이었다.

***

"아 진짜, 이놈의 병신 단장은 어디로 튄 거야!"

율리안과 유재하, 두 왕급은 씩씩거리면서 주헌을 찾고 있었다.

CCTV에 나온 주차장으로 향했지만 주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아야, 단장님 못 찾겠어?"

"이 근방에는 안 계셔!"

그 말에 유재하는 식겁했다.

설아가 금방 못 찾아낼 정도라면 최소 국경이라도 넘었다는 증거인데.

"와씨, 이놈의 단장 놈은 사내놈을 끌고 세계 여행이라도 떠났나!"

결국 그는 걱정하는 여자 단원들과 달리 미련 없이 돌아섰다.

"아 됐어, 됐어. 보아하니 단원들 도움은 필요 없나본데. 우리도 됐다 이거야. 그치? 공명아?"

"그러게. 알아서 다 하라지."

그러자 그런 둘을 보던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일리야를 단원으로 삼으시려는 것뿐일 테니까.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

"뭐라고?! 일리야를 단원으로 삼아?!"

"우리는 죄다 쫓아냈으면서?!"

율리안과 유재하는 눈에 불꽃을 튀겼다.

"아니, 우리조차도 단장님한테 못 돌아가고 있는데 뭐가 어째?! 그놈이 뭔데!"

"아, 아니 단장님이 늘 그러셨잖아. 일리야는 성격은 그 모양이더라도 능력은 있으니까..."

그 말에 둘은 아예 입에서 불을 뿜어낼 기세였다.

"능력은 우리도 있거드으은!"

"우리가 훨씬 더 능력이 좋거든!"

"맞아! 우린 왕급이라고! 그 새끼는 고작해야 꾼급이잖아!"

유재하의 외침에 클로에가 쯧쯧 혀를 찼다.

"일리야도 능력만 보면 왕급이지. 리스크에 대한 트라우마만 없었다면 너보다..."

그러자 유재하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꺼져! 단장님 오른팔은 나야아아!"

아무래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존심을 건든 건지도 몰랐다.

"아씨, 공명아! 넌 단장님 하나 못 찾아내고 뭐하는 거냐! 무능력한 새끼!"

"뭐...?"

그 말에 클로에가 한 마디 했다.

"언제는 이미 단원이 아니라 신경 안 쓸 거라며?"

클로에의 말에 유재하는 울부짖었다.

"존심 상해서 안 돼! 단장님 어딨냐고! 어딨어!"

그러자 설아의 얼굴이 드물게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모르겠어. 단장님의 기운이 안느껴져."

"뭐?!"

"...단장님 괜찮으시겠지? 일리야한테 기억조작 당하실 리는 없겠지?"

결국 단원들은 침묵했다.

일리야의 사후처리실력이 얼마나 골치 아프고 뛰어난지는 자신들이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때 일리야는 전 세계인의 기억을 조작해 아예 역사와 관념조차도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만약에, 혹시라도 주헌이 일리야에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럴 때였다.

쿵!

어디선가 유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단원들이 급하게 움직였다.

'일순 오라가 사라졌다는 건...'

기억이 조작당한 증거.

그렇게 되면 그가 자신들을 잊어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덕분에 달려가는 단원들은 똥줄이 탔다.

"진짜 일리야 개새끼, 단장님 기억에 손대기만 해봐라!"

곧 자신들이 간다며 단원들은 기도했다.

***

하지만 무시해달라는 기도는 개뿔.

"뭐야, 장난해?"

일리야는 주헌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조작이 통하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 조작 유물을 사용했다.

하지만 주헌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주헌은 웃고 있었다.

"벌써 다 한 거냐? 그런 거야?"

"큭!"

주헌이 같잖다는 듯 웃고 있었다.

놈의 유물을 파괴한 건 아니었다.

왜?

일리야가 쓰는 조작 유물은 기생형.

때문에 파괴를 하려면 일리야의 눈을 뽑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부하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

'뭐, 이놈이 내 부하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주헌은 까마귀의 눈물을 두고 잠시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어쨌든 고작 그 수준으로 내 기억을 조작하려 하다니."

일리야가 방금 사용한 조작 술법은 고작해야 2단계 중 1단계.

'나한테는 안 통한다.'

보통은 1단계 정도로도 왕급까지는 처리할 수 있지만, 왕급 중에서도 지배력이 높은 놈들은 좀 까다로워했다.

왜?

지배력이 높다는 의미는 자신에 대한 주관과 믿음이 뚜렷하다는 의미.

보통의 힘으론 조작하기 힘든 케이스다.

'할 수 없지.'

일리야는 리스크 때문에 쓰기 싫지만, 단계를 최고로 높였다.

'2단계!'

동시에 일리야의 눈이 금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주헌에게도 다급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분 나쁜 조작의 힘이 당신의 머리에 들어옵니다.]

[기억에 변화가 생깁니다.]

[당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확실히 이번엔 강렬했다.

간혹 있는 까다로운 왕급들도 이걸로 전부 넉다운 되었을 정도니 만만치는 않았다.

실제로 주헌의 기억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친 곳은 없니?'

꽤나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그 정체는 바로 권 회장의 의형제 권혁수.

그는 태연하게 주헌의 기억 한자리를 차지하고 들었다.

바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준 형, 김 형사.

자신이 친가족이라고 생각하는 형사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형사의 자리에 권혁수가 태연하게 들어섰다.

주헌이 아끼는 김 형사의 존재가 권혁수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하필이면 제 동료들의 얼굴이 권 회장과 TKBM 놈들로 바뀌었다.

그렇게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기억들이 생기고, 삭제되고 주헌의 기억을 조작했다.

곧 주헌이 인상을 찡그리자, 일리야가 웃었다.

'됐다.'

척하면 척이었다.

'이제 그분의 부하였다는 기억으로 완전히 바뀔 거다.'

그럴 때였다.

"이 빌어먹을 러시아 놈 새끼, 너 뭐하는 거냐!"

"!"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결계를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이 쳐들어왔다.

주헌의 동료들이.

그리고 율리안은 오라의 기운을 확인하고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일리야가 조작 유물을 썼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저 자식 벌써 조작 유물을 썼어!"

그들을 보며 일리야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사냥감들이 제 발로 어슬렁어슬렁 기어오네."

그는 안 그래도 잘 됐다는 듯 도굴단 멤버들을 향해 돌아섰다.

"다음은 니들 차례다."

웃는 미소가 상당히 간악했다.

율리안과 클로에는 난처하다는 듯 주헌을 살폈다.

'주헌의 기억이 바뀌었으면 곤란한데.'

하지만 빌어먹게도 기억이 바뀌었을 확률이 컸다.

'이미 2단계 조작까지 사용한 흔적이 있다.'

일리야의 조작 능력은 강하다.

왕급들의 기억까지 쪼개놓을 정도로.

1단계면 지배력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2단계면...

'솔직히 나조차도 2단계는 위험해.'

실제로 주헌이 단원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걸 보고 단원들은 몸을 떨었다.

자신들을 보는 주헌의 표정이 시큰둥하고 차가웠기 때문이다.

"다, 단장님."

그리고 그걸 보며 단원들이 이를 갈았다.

"당장 단장님 기억 돌려놔!"

그러나 일리야가 같잖다는 듯 주헌에게 말했다.

"그래봐야 서주헌은 내 부하로 기억 조작을 시켜놨어. 이제 내 부하거든? 니들이 외쳐도 소용없..."

이때였다.

뻐어억!

"?!"

일리야는 눈앞이 번쩍이는 환각을 보았다.

둔탁하고 아픈 뭔가가 자신의 얼굴을 걷어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헌의 발이라는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자신은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크 크윽!"

이빨이 나갈 것 같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들려오는 말이 더 충격이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그 노친네를 내 동료로 만들다 못해 내가 누구 부하라고? 야 이 러시아 놈아. 돌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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