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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38화 (238/409)

238화. 우리도 귀한 몸인데 (3)

"딱 걸렸어. 일리야 새끼."

주헌은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그 큰 소리에 안에서 자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 왠지 단장님 목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들은 것 같고 자시고 정말 주헌의 지배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자고 있던 클로에가 눈을 반짝 떴다.

"단장님?"

틀림없는 주헌의 지배력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평소 주헌의 몸을 샅샅이 만지는 클로에는 확실하게 느꼈다.

"단장이 여기 왔어?"

클로에가 다급히 방문을 열고 나오자 바로 설아가 보였다.

"단장은?"

설아는 대답 대신 밖을 가리켰다.

그녀는 주헌을 쫓아나가려고 했지만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 화면이었다.

주헌이 보고 뛰쳐나가기도 한 바로 그 화면.

아무래도 유재하의 작업실에는 유물들이 있다 보니 설치한 CCTV였다.

물론 평범한 카메라는 아니다.

'유물.'

감시 유물로 사각지대가 없게끔 다 찍고 있지만...

"뭐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은데?"

클로에가 그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이때였다.

"있네. 일리야가."

말한 것은 율리안이었다.

그는 잠에서 덜 깬 듯,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건 주차장. 거기서 뭔가 작업을 하는 듯한 20대 후반의 청년이 있었다.

육안으로는 결계를 쳐서 보이지 않겠지만, 공명의 유물로는 분명히 보였다.

"아직 CCTV를 조작한 것 같지도 않으니, 지금 가면 잡을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단장이 여기 왔었어?"

"단장님 진짜 여기 왔어?"

유재하까지 끼어들었다.

그들은 뭔가를 굉장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내심 눈이 반짝이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단장님이 왜 오셨대? 우리 찾으러 온 거야? 어? 어? 우리 복지 해주신대?"

설아는 주헌이 나간 방향을 보며 끄덕였다.

"어... 아무래도 일리야 때문에 잠시 도굴단을 해체하신 거 같아. 그 이후에 복직을..."

그 말에 율리안과 유재하의 얼굴이 환해졌다.

"복직? 복직이라고?"

"단장님이?"

둘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헤맸었지만 설아의 시선에 시치미를 뚝 뗐다.

"허, 서주헌이 그럼 그렇지."

"봐봐! 역시 우리만 한 인재가 없다니까?"

"어차피 복직 시켜줄 줄 알았어."

"내 말이!"

알기는 개뿔이.

유재하는 핸드폰을 붙잡고 엉엉 울었고, 율리안은 멘탈이 나가 있었으면서.

하지만 그들은 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웠다.

"복직시켜준다고 해도 말이야."

"우리가 순순히 가줄 줄 알아?"

"내 말이. 좀 더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한다니까?"

그 말에 설아가 딱 잘라 말했다.

"둘은 복귀시켜준다는 말 안 했는데요."

그 말에 히죽거리던 얼굴들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지금 뭐라고?

"복귀를 안 시켜준다고?!"

"왜!"

그들은 필사적으로 설아의 팔을 붙잡았다.

"왜?! 무슨 이유로! 왜!"

설아는 당황했다.

"모, 모르죠! 저하고 클로에만 복직을..."

그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건 차별이야아아아! 남녀차별이라고오!"

"음모야, 음모라고!"

"갑의 횡포다! 으아아아악!"

두 왕급의 멘탈은 또 다시 뽀개졌다.

***

한편 그 무렵이었다.

"그래, 그렇게 어르신께 알려드려."

일리야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곧 놈들의 작업실을 습격할 거야."

그는 이제 유재하의 작업실에 들어가 멤버들의 기억을 조작할 예정이었다.

왜?

"아무래도 완전히 해체된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너무 타이밍이 좋았다.

자신이 놈들을 해체시키기 전에 서주헌이 놈들을 해고해?

뭐 이런 미친 타이밍이 있지?

아니 실상은 이들이 사직서를 제출해서 받아준 것 뿐이지만 어쨌든.

'너무 작위적이야.'

마치 자신이 노리는 걸 알고 도굴단을 해체한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철수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서주헌 도굴단을 무척 싫어하셔서."

[그럼 확실히 끝장을 내야 한다는 거군요? 근데 그럴 거면 포교왕한테 의뢰하지 그랬어요? 포교왕의 암살 부대 있잖아요.]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그분이 서주헌의 멤버를 탐내는 것 같아서..."

그럴 때였다.

"그분이 누군데?"

"?!"

일리야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식겁했다.

그건 당연했다.

'서주헌?'

왜 저 녀석이!

아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 결계를 쳐서 자신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날 찾아냈지?'

일리야는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마치 주변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사물들이 뒤틀리고 있는 투명한 내부 공간.

그 결계를 통해 일리야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결계는 멀쩡한데.'

실제로 일리야의 모습까진 보이지 않는 건지 주헌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일리야 볼고프가 어디에 있다고?"

일리야는 황당했다.

'나를 찾아낸 게 아닌 건가?'

그럴 때였다.

"아, 그쪽이냐?"

"?!"

주헌이 성큼 일리야에게 다가왔다.

"아 좀 더 왼쪽이라고?"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턱!

일리야는 식겁했다.

성큼 다가온 주헌이 자신의 멱살을 붙잡은 것이다.

일리야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탐지 유물을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자신을 붙잡았지?

하지만 주헌에게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왜?

서주헌! 서주헌이다아아!

여기야! 여기! 빨리 조져! 조지라고!

비록 유물로 모습은 감췄을지 몰라도 정작 유물 놈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야야, 그분이라는 놈이 서주헌 네 동료들을 노리고 있대!

지금부터 니네 동료들을 습격할 예정이었대!

잘했지! 잘했지!

그러니까 월세는 좀 깎아줘라! 응?

주헌은 하하 웃었다.

"그래, 깎아주지, 일단은 10만원."

와! 만세! 만세!

물론 정작 그 말을 듣는 일리야는 당황했다.

아니 이놈은 도대체 혼자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하지만 그 와중에 유물들이 불만을 호소했다.

야! 왜 얘만 깎아줘! 이 녀석 붙잡아 둔 건 나거든!

아니야! 나야, 나!

정보를 말해준 건 나거든! 야야, 서주헌! 이놈이 포교왕이랑 연줄이 있대!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오, 너 포교왕이랑도 연락이 닿고 있었어? 잘  됐네."

"?!"

일리야는 점점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자식 도대체 뭐야.'

솔직히 무서웠다.

이때였다.

안 되겠다고 여긴 일리야가 주헌을 뿌리치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늦어, 자식아."

"!"

쿵!

세트의 유물이 발동되었다.

"크윽!"

세트의 유물이 발동되자 주헌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칼바람이 일어났다.

콰과광!

캬캬캬캬! 죽어라! 주인을 건드는 놈은 다 죽어라!

최근에 프렌차이즈 치킨 가게를 선물 받은 세트는 신이 나 있었다.

뭐 하루에 치킨을 열 마리씩 주문할 바에야 아예 가게를 주는 편이 이익이었던 것뿐이지만, 세트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약간이지만 치킨을 팔아서 돈도 벌어오고 있었다.

어엿한 치킨집 사장님이었다.

콰과과광!

결국 건물조차도 재로 만드는 모래바람이 주변에 작렬했다.

쿠궁!

바닥이 갈라지고, 주변의 나무들이 토막이 나고.

그 공격적인 바람이 일리야의 결계까지 단숨에 박살나고 유물까지 부숴버렸다.

쨍그랑!

"크윽!"

결계와 유물이 깨짐과 동시에 일리야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주저앉은 일리야.

그리고.

"잡았다, 요놈."

그를 짓밟은 주헌이 해맑게 웃었다.

***

"뭐라고? 사황급?"

율리안은 깜짝 놀랐다.

그는 설아에게서 주헌의 말을 전해 듣던 참이었다.

아니 주헌이 도굴단을 해체한 게 일리야를 처리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일리야의 배후에 사황이라니...!"

분명 과거의 사황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전쟁왕 키이라.

'키이라는 이미 단장이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냈고.'

탐식왕 진채원?

설마 그녀인가 싶었지만, 그랬다면 진채원이라고 확실히 말했겠지.

그럼 남은 것은...

'포교왕?'

주헌이 아베스타 경전을 가져간 시점에서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 놈.

설마 그놈인가?

그러나 그 말에 설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얼핏 사황급 '영감'이라고..."

그 말에 유재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감? 그럼 그 권 회장 노친네 말하는 거 아냐?"

권 회장도 사황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유재하가 낄낄낄 웃어댔다.

"근데 그 노친네는 지금 람세스 유물로 뼈가 삭아있을 텐데? 오래 살려면 적당히 쳐야 할 텐데 말이지."

그 말에 탄식하며 골을 잡던 클로에가 물었다.

"확실히 사황급 중에서 영감이라면 권 회장 밖에 없잖아요. 그럼 일리야가 이미 권 회장 밑으로 들어갔다는 소린가요?"

"그래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

"아니."

"?"

유재하의 말을 자른 율리안은 미간을 좁혔다.

"아니 한 명 더 남아있어."

과거, 아주 짧은 순간 사황이었던 남자였다.

더욱이 TKBM을 제국으로 만드는데 공헌한 세력가.

"자애왕."

그것도 권 회장과 의형제 사이였다.

하지만 그만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황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왜?

'사황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그래? 그럼 형이 해.'

누구나 원하던 사황의 자리를 권 회장에게 넘겼다.

정말 망설임도 없이.

덕분에 전쟁을 각오하고 있던 주헌마저 당황할 정도로.

'그 영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

따지고 보면 그가 사황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을 때 과거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몰랐다.

'진짜 패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남자.'

어디 그뿐인가.

짧은 시간이지만 주헌의 스승이었다는 소문도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유물사용능력으로는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 능력자.'

그리고 율리안의 말에 단원들은 놀랐다.

"자애왕이라면 그...!"

남들은 마더 테레사의 유물이라도 가진게 아니냐고 할 정도로 성인에 평화주의자로 불렸지만 글쎄.

'권회장보다 더하면 더한 놈이지.'

"잠깐만요. 그 노친네가 일리야의 배후로 있다고요? 에이, 설마. 벌써?"

"단장의 예감이 틀린 적이 있었어?"

"......"

뭐 그건 그렇다.

비록 자신들의 입사지원서를 다 씹어버린 쪼잔한 단장이지만.

'어쩌면 단장님이 말한 배후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자신들을 죽인데 일조한.

"그래도 그 인간의 이름은 아직 유물사용자 명단에서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보나마나 수면 밑에서 움직이고 있었겠지."

그 말에 설아가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 전 주헌이 자신들에게 날아온 스카웃 서류들을 보며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뭐 일리야를 통해서 머리채를 끄집어내고 싶은 놈도 있고.'

'끄집어내고 싶은 놈?'

'지금껏 계속 숨어 있는 독식자들이 있어. 하지만 왕급이나 되는 놈들을 스카웃도 안하고 내버려둘 녀석이 아니지.'

주헌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어보였다.

***

그리고 그 무렵.

"오, 지금 일리야가 서주헌하고 만났다고?"

하와이의 해변.

파라솔 밑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노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주변에 방해꾼은 없고?"

[네. 회장님이 바라시던 대로 서주헌의 도굴단은 해체되었습니다.]

"오호."

권 회장의 의동생 권혁수.

그는 굉장히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내였다.

권 회장과 같은 성이라는 이유로 형제를 맺자고 한 재력가.

세계 금융의 3대 세력가 중 하나인 그는 은밀하게 TKBM을 돕고 있었다.

그런 만큼 권 회장을 괴롭히는 주헌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뭐, 오히려 그는 그런 주헌에게 흥미를 느낀 것 같지만.

"그래, 그래서 형님은 어떠시고?"

[여, 여전히 서주헌을 죽이시려고 노력 중...]

그 말에 권혁수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이야, 형님 그 나이에 대단하시다니까. 역시 내 형님이야. 다음엔 여자라도 보내드릴까."

[저, 저기... 그러다가 진짜 죽으실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서주헌, 탐나던 인재인데 잘 됐군. 어차피 서주헌도 일리야한테는 상대가 안 될 테고..."

권혁수의 눈빛이 번득였다.

"일리야한테 전해. 그놈의 기억을 조작해놓으라고. 곧 내가 찾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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