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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32화 (232/409)

232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냐? (4)

"내가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너라면 잘 알거라고 본다. 이놈은..."

"그래."

주헌은 뭔가 결정한 듯, 냉정한 눈빛으로 유재하를 보았다.

"이놈은 배신자가 아니야."

"그래. 배신자가 아니..."

율리안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잠깐.

지금 뭐라고?

"야! 서주헌! 지금 뭐라고 했어!"

"?"

주헌은 왜 그러냐는 듯 율리안을 보았다.

"배신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허."

단원들은 기겁했다.

설마하니 주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탓이다.

결국 클로에와 설아는 둘째치더라도 율리안이 화를 냈다.

"서주헌! 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왜? 무슨 문제 있어?"

"문제 많지! 배신자를 용서하겠다는 소리를 하려는 거잖아! 설마 감싸주려는 거야?"

그 말에 서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감싸주기는 개뿔.

"내 성격 알잖아?"

그래 잘 알지!

'누구든 제 잘못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서주헌의 방식이 아닌가.

그걸 잘 아니까 오히려 더 답답한 거지!

"그럼 도대체 뭔데! 저 녀석이 우릴 팔았다는 상황적 증거는 확실하잖아! 그런데 배신자가 아니라니...!"

"뭐? 상황적 증거? 무슨 상황적 증거?"

"뭐긴 뭐야! 유물 복원도 안 됐고, 무덤에도 안 왔고, 우리 정보까지 빼돌렸어!"

"아, 그거."

주헌은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고작 그걸 말하는 거냐는 듯한 웃음에 율리안은 황당했다.

"이봐... 서주헌! 니가 그러면 안 되지! 어?"

죽었던 단원들을 위해서라도 단장이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확실히 그때 우리들 유물은 풀 복원이 안 되어 있었어."

주헌이 슬쩍 유재하를 보자, 유재하는 몸을 덜덜 떨었다.

"뭐 보나마나 전날 우리랑 싸운 걸로 심술을 부린 게 분명하다만..."

뻔했다.

이놈은 쪼잔한 꾀돌이니까.

그래서 제 나름대로 작은 보복을 했던 것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를 죽이려고 그런 건 아니야."

율리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서주헌! 너...!"

"닥쳐, 감정적으로 하는 말 아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에 그 무덤에선 유물의 내구도는 의미 없었어."

"...!"

"사리 판단이 잘 안 될 일이란 건 아는데, 평소처럼 냉정하게 생각해라."

주헌은 그 당시 무덤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생각해봐. 그때 그 무덤이 유물의 내구도와 관련이 있었냐?"

"......."

물론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그 무덤에서는 애초에 유물이 통하지 않았다.

왜?

유물에 지배력을 싣는 그 순간 유물은 전부 박살이 났으니까.

아니.

'아예 유물의 존재를 부정하듯 가지고 있던 유물들이 다 박살 났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갈 것도 없다.

그건 유물을 증오하는 듯한 까마귀의 무덤.

그 어떤 유물이 와도 까마귀의 흉포한 기운에 죄다 박살이 나던 거겠지.

'아니면 그런 함정이거나.'

덕분에 그 무덤에선 아예 유물을 쓰지도 못했다.

도망치는 게 전부였고, 귀속성 유물조차도 한 번 쓰고 박살.

그나마 S급의 유물을 딱 한 번 쓸 수 있을 정도.

어쨌거나 그딴 거지 같은 무덤이었다.

그런데 풀복원이 어쩌고 저째?

'아예 유물을 들고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던 무덤이거늘.'

"그러니 복원사로서 풀복원을 하지 않은 건 괘씸하다만. 그건 그 정도 괘씸죄.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의 죽음이랑은 관련 없어. 풀복원 상태였어도 우린 죽었어."

"......"

정확한 지적에 율리안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로서는 완전히 납득이 안 될 것이다.

"그래도 그날 무덤에도 안 왔잖아."

"비밀 역량 테스트."

"!"

낯익은 단어에 유재하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반응에 주헌이 같잖다는 듯 웃었다.

"뭘 그리 놀라? 내가 사내에 도는 소문도 몰랐을 것 같아?"

"그, 그건...!"

율리안이 급하게 물었다.

"잠깐만, 비밀 역량 테스트라니?"

"아.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대충 팀별로 비밀 역량 테스트를 진행하려 했나봐. 뭐 대충 복원사들은 공통적으로 참가 안 하고."

"......"

"뭐, 그 노친네는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우리 묫자리를 만든 것 같지만."

그 말을 하는 주헌의 눈빛이 살벌했다.

솔직히 자신도 뭔가 있다곤 느꼈지만 권 회장의 본색까진 몰랐다.

설마하니 그곳에서 죽여 버릴 줄 누가 알았나.

그리고 그 말까지 들은 율리안이 답답한 듯 외쳤다.

"그럼 저 녀석이 우리 정보를 빼돌린 건! 사실 그 정보만 유출 안 되었어도...!"

주헌이 하하하 웃어댔다.

"아, 빼돌린 우리 정보? 그거 아무 짝에도 쓸모 없었을 텐데?"

그 말에는 유재하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쓰, 쓸모가 없다니요? 왜요?"

"왜긴 왜야. 내가 먼저 고쳐놨으니까."

"......!"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는 시선을 보내자 주헌은 눈 깔라는 듯 유재하를 보았다.

"그땐 사방이 적이었어. 우리 팀원의 약점을 빼내려는 하이에나들도 많았고, 당연히 고쳐놨지."

그건 자료를 만든 클로에한테도 말을 안 했으니 아무도 몰랐겠지만.

율리안은 황당했다.

"그, 그럼..."

"우리의 정보는 이놈을 통해서 빠져나간 게 아니야."

"그럼 누가!"

주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있어. 왕급 중에 그럴만한 놈이."

"왕급? 잠깐만... 그렇다는 건."

"여기서부턴 내 추측이지만, 우리를 죽인 건 TKBM뿐이 아니라고 봐서."

"......!"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놈은 배신자가 아니다."

율리안은 유재하를 쏘아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TKBM에 붙어서 히히덕거리면서 승진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아닐 걸."

주헌은 유재하가 기억을 찾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엔 가짜 유물을 썼다고 생쇼를 했던가.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기억을 되찾는 모습이었고, 그 역시 괴로워했다.

다른 단원들처럼.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는 그 눈빛은 다들 하나같이 똑같았다.

그리고 유재하한테서도 그런 눈빛을 봤다.

그러니.

"아마 이 녀석도 죽었을 걸. 우리가 죽은 후에."

"......!"

유재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파르르 떨었다.

권 회장은 세상에 하나 남은 복원사라며 자신의 다리까지 망가트리고 도주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여러 이유를 들어 모든 유물의 내구도를 떨어트린 그 순간.

유재하 나름대로 저항이라는 걸 했다.

숨겨둔 권총형 유물로.

물론 주헌은 그런 그를 굉장히 한심하게 보았다.

"등신. 그냥 권 회장한테 붙어서 잘 먹고 잘 살다 늙어서 뒈질 것이지."

"너, 너무해."

물론 그 뒤로 TKBM이 무너지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유재하의 저항은 유의미한 결과를 냈지만, 거대한 체계를 박살내기엔 좀 약했다.

그리고 이쯤 되자 율리안이 기가 막힌 듯 봤다.

"서주헌. 그럼 너 처음부터 저 녀석이 배신했다곤..."

"너 바보냐? 배신자를 내가 왜 단원으로 받아들여?"

"......"

이자식이.

그러나 주헌은 진심이었다.

배신자라고 생각 했으면 애초에 이놈을 찾아내지도 않았을 터.

결국 단원들은 유재하를 쏘아보았다.

단장이 저렇게 말하니 의심은 좀 사라지긴 했지만...

"그럼 왜 도망간 거야! 다빈치 유물까지 버리고!"

"...그건!"

유재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기억을 되찾은 사기왕은 동료들에게 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고 여겼으니까.

그리고 동료들은 다 죽었는데, 자신 혼자만 살아남는 게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 결과 사기왕의 상징인 다빈치 유물을 반납하고 주헌에게 처벌받자고 생각했을 뿐.

사기왕의 유물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도망갈 궁리를 할지 모르니까.

"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처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욕이라도 듣지 않으면, 여기서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발..."

그러나 주헌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유재하를 보며 비웃었다.

"닥쳐."

"!"

"니 새끼 맘 편할 짓을 내가 왜 해?"

주헌은 코웃음을 쳤다.

"넌 죽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하지?"

그는 망가진 핸드폰에 끼운 하드케이스를 보았다.

하드케이스로 보이지만 그건 엄연히 함무라비 법전 유물이다.

거기엔 노예 계약을 맺은 단원들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노예 1호 주제에 어디서 도망칠 궁리를 하려고. 당분간 어디서 죽을 생각하지 마.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도 없고."

"..."

주헌이 말했다.

"찔리는 게 있으면 사고치지 말고 닥치고 일해. 사기왕 때처럼 등쳐먹고 개기면 그땐 가만 안 둘 테니."

그 말에 유재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단원들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

그들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죄책감.

유재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넌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일을 해줘야 해."

"네, 네?"

주헌은 언제 까칠하게 굴었냐는 듯 유재하의 어깨를 잡았다.

"재하야.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주헌의 말투가 꽤 부드러웠다. 그게 새삼 겁이 나 유재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기 단장님."

"너 우리 죽고 나서 TKBM의 비밀을 봤지."

주헌은 정말 안 어울리게도 굉장히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언노운 이라는 건 뭐지?"

그는 꽤나 흥미로워했다.

주헌의 성격상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모르는 유물이라니.

흥미롭지 않을 리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리스크긴 하지만 과거 고고학자 유물의 리스크.

지식의 탐욕.

그리고 지금은 유물에 대한 탐욕.

"말해. 무슨 유물이야?"

"저, 저 그, 그게..."

주헌의 눈이 무섭다고 생각한 탓인지, 유재하가 몸을 떨면서 답했다.

"그... 저기 언노운은 대충 판도라 이사들이 가진 유물이거든요?"

"그래.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저, 저기 그게..."

"자세히 말해봐. 운명왕하고 딜을 할 정도면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거잖아."

유재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저 단장님. 그 전에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

"저기 솔직히 단장님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기억력이 좋잖아요? 그러니까 과거에 있었던 무덤이나 유물의 정보를 다 아시는 거잖아요? 그거 보통 사람은 기억을 찾아도 무리란 거 아시죠? 그쵸?"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 그러니까 기억이 안 난다고요! 본 기억은 있는데... 에이씨, 몰라! 미쳤어요?! 과거의 일을 어떻게 다 기억해! 단장님이 이상한 거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멍멍이 유물들이 소환 되었다.

그리고.

"배신자다. 처리해."

"?!"

"시체는 남기지 말고."

유재하는 꺄으악 비명을 질렀다.

***

"와, 이거 인간적으로 너무 한 거 아니냐?"

유재하는 이를 갈았다.

눈앞에 가득 쌓인 유물, 심지어 청소에 빨래에 유물 돌보기 등 온갖 쌓인 잡일들 때문이었다.

결국 참다 못한 그가 외쳤다.

"이봐요. 병신 단... 아니, 단장님. 상식적으로 이건 내 담당이 아닌데?"

호구를 벗어난 유재하는 바로 반기를 들었다.

이딴 작업.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 때려 치워. 계약이고 자시고 난 다른 일 해도 먹고 살 수 있어. 이런 취급 받으면서 일 못 해."

그는 바로 다빈치 유물을 가지고 도주하려고 했다.

툭하면 동료들을 버려두고 잠적하기.

그런 건 사기왕 시절에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보는 동료들도 저놈이 저럼 저렇지. 하고 골치 아파했다.

호구였던 저놈의 기억도 돌아왔겠다, 또 저놈한테 뒤통수 맞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까 재하야."

"뭐요, 병신 단장."

"니가 풀복원을 했으면 우리가 그 무덤에서 좀 더 오래 버텼을 것 같긴 하더라고."

"......"

"그렇지? 말로는 단원들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팀원 정보도 빼돌리고 말이야."

"..."

"아, 무덤에서 잘린 내 다리가 아파오는 것 같..."

"아아아악! 할게요. 하겠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 단장님!"

도망가려던 유재하는 울면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호칭도 아주 공손해졌다.

사기왕이라고 한들, 과거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는 아직 힘든 것이리라.

뭐, 주헌의 입장에선 능력 있는 호구가 탄생한 것이겠지만.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면서 단원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예상은 했지만 시끄럽네요."

그들은 신문에 실린 기사들을 보며 혀를 찼다.

[세계 VIP 운명왕 행방불명.]

[납치? 범인에게서 아직 요구는 없나.]

[비선실세 사라지다.]

[세계 정상들 패닉.]

[도대체 어디로 향했나. 생사불명.]

[목격자에겐 1억 달러.]

[무슨 일이 있어도 VIP 찾아라.]

"뭐, 세계를 주무르는 운명왕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개판이겠지."

"흠, 이제 어떻게 하죠?"

그들은 힐끗 화장실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야! 씨팔! 도대체 날 이대로 둘 셈이야! 날 어떻게 할 셈이냐고오!"

주헌에게 유괴된 VIP가 성질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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