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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31화 (231/409)

231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냐? (3)

한편 그 무렵.

뉴욕 시내에 도착한 율리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 자식이?"

그들이 도착한 곳은 뉴욕 타임스퀘어.

그 분주한 인파들 속에서 그들은 귀신 같이 유재하를 찾아냈다.

제아무리 왕급이 기를 쓰고 숨는다고 한들, 그들은 명색이 주헌의 부하들이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다만.

"가까워질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만."

"...이 자식."

그들은 눈앞의 물건에 뒷목을 잡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율리안, 설아, 클로에의 앞에는 아주 잘 만들어진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서는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며 꺄악 꺄악 거리고 있었지만.

"사, 사람이 죽었어요!"

"아니야! 사람이 아니야! 꺄아악! 지금도 봐!"

피를 뿜으며 쓰러졌던 시체는 벌떡 일어나 난동을 부렸다.

마치 쫓아온 놈들을 향해 '등신들아 속았지? 속았지?' 하고 약 올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걸 보며 율리안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 자식, 잡히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물론 유재하를 추적했던 설아도 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왜?

"말도 안 돼. 재하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물을 버리고 가다니."

그렇다.

유재하의 가짜 시체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물이 있었다.

사기를 칠 때 절대로 빼놓지 않은 그 유물이었다.

그래서 사실 설아도 그 유물에 더 집중해서 탐색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왜 다빈치 유물을 버리고 갔지?"

도주를 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유물이 필요할 텐데.

설령 추적에서 벗어나려는 속셈이라고 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빈치 유물은 사기왕의 가장 주력 유물.

비유하자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을 버리고 간 셈이니까.

"이 귀한 걸 버리고 가다니..."

아니, 자신들이 회수할 걸 알고 일부러 버리고 간 느낌이지만.

그래서 일까.

다빈치 유물을 회수한 율리안도 당황스러워했다.

'다빈치 유물이 있으니까 우리도 항상 농락당한 건데.'

이게 없다면 유재하는 복원 능력만 있는 이빨 빠진 호랑이.

심지어 소유권도 포기해놨다.

'도대체 왜?'

그리고 그럴 때였다.

레이더를 펼치던 설아가 눈을 반짝 떴다.

"진짜 유재하를 찾았어요!"

율리안과 클로에가 집중했다.

"정말? 어디에 있어?"

"저, 그게..."

설아는 미국 대륙의 지도를 쏘아보았다.

플로리다 주.

주헌이 있는 운명왕의 저택이었다.

***

"너도 우릴 배신했냐?"

귀에 작렬하는 그 말에 유재하는 몸을 떨었다.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럴 법도 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눈앞에 있는 걸.

물론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웃고 있었다.

딱히 화가 난 음성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재하가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는 건 주헌의 눈빛 탓이었다.

'틀림없다.'

개수작을 부리면 정말 죽이겠다는 눈빛.

그런 면에서 주헌은 정말 칼 같았다.

하물며 주헌이 화가 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단원이라면 모를 리도 없었다.

실제로 되돌아온 기억 속에도 살벌한 주헌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나.

특히 주헌은 적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이 동료들을 배신한 일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친 순간 유재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하지만 고작 그딴 것에 겁을 먹을 사기왕도 아니다.

애초에 '속는 놈이 잘못, 뒤통수 맞는 놈이 잘못.' 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였다. 이번에도 당연하게 그렇게 지껄이면 된다.

실제로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맞아요, 양 쳰이랑 똑같이 단장님이랑 단원들을 죽였어요."

"......."

하지만 그게 왜?

그러게 누가 평소에 권 회장에게 밉보이래? 당한 놈이 바보인거지.

유재하는 그렇게 평소처럼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

그 가벼운 입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동료들의 죽음을 겪었을 때의 일이 스쳐지나가면서 유재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유재하는 뜻밖에도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박았다.

남에게 무릎은 안 꿇는 사기왕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마를 쾅쾅 박는 그는 울었다.

가짜 눈물도 아니고, 연기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요. 제가 그러려고 그런게... 아닙니다. 제 잘못 맞아요! 제가 단장님이랑 단원들을 죽였어요. 저 때문에..."

유재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그때... 그때 단원들 정보를 빼내서 상층부에 넘겼어요."

주헌의 도굴단은 압도적이었다.

어떤 무덤을 가져다줘도 그들은 능숙하게 클리어해냈고, 결국 그게 질투와 시기를 불러왔던 모양이었다.

'아, 서주헌 도굴단 완전 운 좋아. 항상 쉬운 무덤만 걸리잖아.'

'그러니까. 뭐, 비공식 발굴단이니까 적당히 쉬운 무덤만 던져주나 보지.'

그들은 어떻게든 주헌의 팀을 흠집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 음해에 울컥한 유재하가 말했다.

'등신들. 꼴갑을 떨어요. 지들이 실력이 안 되는 거면서.'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인정할 만한 무덤을 클리어하고 와봐. 그럼 니들 실력을 인정해주지.'

'허, 꺼져. 상대할 가치도 없네.'

'왜? 니들 단원들 정보 확실하게 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확실히 난이도 조정해보자고!'

그 시대쯤엔 판도라가 어느 정도 외부에서 무덤의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었는데, 그걸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유재하는 개소리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권 회장은 흥미롭게 생각한 모양이다.

'좋다. 단원들의 역량 테스트를 해보도록 하지.'

양 쳰은 유재하한테 팀원들의 자료를 부탁했다. 유재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양 쳰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테스트 때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 솔직히 단장님 무시당하는 것도 열 받잖아.'

그러니 팀원들의 자료를 빼돌려 달라는 말을 했다.

'모든 팀들의 정보를 토대로 난이도에 맞는 무덤이 배정될 거야. 그래야 누구는 쉬운 무덤 걸렸네 마네 말이 없지.'

양 쳰은 이번 기회가 공식 발굴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재하야. 너도 유령팀보단 양지에 당당하게 나오고 싶지 않아?'

'난 별로 상관없는데.'

자신은 뭐 권 회장 직속의 복원사에 왕급이라 처우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으니까.

그에 비해 동료들은 TKBM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잘 안다.

서류상으로 비공식 발굴단, 인사조직도에도 나오지 않는 유령부서.

그런 이유로 회계팀에서도 지원금이나 지원유물은 곧 죽어도 안 주고, 월급도 남들의 3분의 1수준.

사실상 권 회장을 사황으로 올려주고 TKBM의 80%의 이익을 가져다준 게 주헌의 팀인데 말이다.

'이게 다 비공식 발굴단이라는 이유야. 나도 솔직히 이번 기회에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다고.'

팀원 중 하나인 양 쳰이 그렇게 말해왔고, 유재하는 클로에의 진료기록을 뒤져 팀원의 자료를 몰래 빼돌려줬다.

고생하는 팀원들이 최소한 음지에서 양지 아래로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지고 볶고 짜증나는 놈들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받은 것도 많으니.

'도와주자.'

물론 과정은 모두 기밀이었다.

팀원들이 테스트라는 걸 예측하게 되면 효과가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게 주헌의 팀을 지워버리기 위한 권 회장의 술수였을 줄이야.

심지어 테스트를 앞둔 전날, 단원들하고 시시한 말다툼도 있어서.

'에이씨, 나도 몰라. 무덤에서 유물이 제대로 작동 안해야 내 중요성을 깨닫지.'

몸도 피곤하고, 기분도 상했고.

유재하는 그만 꾀와 심술을 부렸다.

'나중에 테스트 끝나고 나오면 재하야 미안해, 역시 너 없으면 안 돼 소리를 하게 해주지.'

그래서 풀복원도 안 했다.

어차피 미리 건네받은 무덤의 정보를 봤을 때도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테스트용 무덤인데 뭐.'

하물며 꿀 같은 지시도 내려왔었다.

[단원들의 테스트를 할 예정이니 비밀 엄수를 위해 무덤에 들어가지 말 것.]

그 말에 자신은 '좋구나, 오랜만에 휴가구나.' 하고 여자하고 술 마시고 내내 놀았다.

며칠 띵까 띵까 놀고 나면 사무실에서 볼 수 있겠지.

하지만.

'네? 뭐라고요?'

돌아온 건 전원 사망 했다는 소식.

유재하는 황당했다.

심지어 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주 잘 했다. 유재하. 네가 빼돌려준 정보 덕에 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승진을 시켜주지.'

결국 빡친 그가 양 쳰을 찾아가 멱살을 잡았다.

'테스트라며! 왜 테스트를 하는데 사람이 죽어!'

'글쎄, 재수가 없었던 거지. 거기서 역대 최악의 고분화가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이 개새...그걸 왜 몰라! 판도라 개새끼들이 자랑하는 기술력은 어디에 두고!'

그러나 TKBM 직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듯, 유재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잊어. 이걸로 너도 출세할거야. 네 발목을 잡는 구질구질한 도굴단은 사라진 거라고.'

'야 새끼들아...'

유재하는 치를 떨었다.

그는 이 개 같은 놈들을 붙잡고 항의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면 넌 관련 없다고 할 거야?'

'뭐?'

'니가 빼돌린 도굴단의 개인 정보를 토대로 그 무덤을 찾아낸 건데? 함정도 맞춰서 구상해놓고.'

'.......'

'게다가 너 풀복원도 안 해서 줬다며. 너도 사실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그런 거 아냐?'

'존경한다. 사기왕. 동료들한테까지 죽음으로 사기를 치다니. 역시 급이 달라.'

'앞으로 잘해보자. 이제 회장님을 노리는 암 덩어리는 사라졌으니.'

깨닫게 된 건 자신이 동료들을 죽였다는 확인사살뿐.

'재하야, 그거 알아? 단장님이 니 그림 산 거 모아서 카페에 전시 부탁했다? 크진 않은데 그래도 전시회야!'

'사람들이 작가가 누구냐고 묻던데?!'

유재하는 울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빈 사무실에서 자책감에 울었다.

'왜 아무도 안 와. 왜. 활자중독 병신 단장은 저기서 책이나 읽어야 하고... 건어물은 붙어서 잔소리 하고... 호구는 보면서 한숨 쉬고...'

그래서 모든 것이 TKBM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고 유재하는 복수를 품었다.

시간은 꽤 걸렸다.

한 1년 정도?

복수라고 해봐야 아주 작은 손해만 끼쳤을지도 몰랐다.

그야말로 상대는 제국의 황제라 비유되는 TKBM의 회장.

그러나 자신은 그래봐야 그 조직의 일개미.

개미가 저항해봐야 과연 얼마나 손해를 끼칠 수 있을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복수를 했다.

물론 그 뒤에 TKBM이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

왜?

왜냐하면 자신도 그 다음의 미래는 모르니까.

'시팔! 유재하 이 새끼 죽었어! 전 세계에 딱 하나 남은 복원사가 자살했다고!'

'유물 내구도도 0인데!'

하지만 동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설령 의도였든 아니든, 어쨌든 자신의 행동이 동료들이 죽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지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유재하는 주헌에게 사죄를 했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헌에게 잡혀 있던 운명왕은 지금이야말로 도망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주헌의 정신이 팔려 있는 지금이 기회다.'

그렇게 슬쩍 탈출 유물을 쓰려는 그 순간!

콱!

"아아아악!"

주현은 대수롭지 않게 운명왕의 손을 짓밟았다.

가긴 어딜 도망가느냐는 것이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넌 해야 할 게 있으니까."

이때 유재하가 말을 이었다.

"용서해달라는 말은 안 합니다. 지금이라도 처벌하세요. 제가 배신자에요. 하지만 그 전에 단장님께 알려드려야 할게..."

그럴 때였다.

"드디어 실토하는구나."

"!"

분노에 찬 목소리가 유재하의 귀를 강타했다.

고개를 돌리니 유재하를 쫓아온 율리안, 클로에, 설아가 있었다.

주헌이 한참 저택을 부수고 있을 때 가짜를 파악한 동료들이 유물까지 써서 날아온 것이다.

율리안은 유재하를 보면서 치를 떨었다.

"단장. 너무 귀 기울이지 마.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거야."

율리안의 분노에 유재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범죄자든지 형을 선고 받기 전에 하나같이 과거를 반성하지. 잘못했다고 빌어."

아주 눈물로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다들 입으로만 반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형량이 줄어드니까.

저놈도 비슷하리라.

"양 쳰도 양 쳰이지만, 저놈 때문에...!"

율리안은 억울하게 죽은 동료들 때문에라도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숨을 삼킨 율리안은 말을 아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감정적인 말을 토해봤자 남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의 처리니까.

"내가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너라면 잘 알거라고 본다. 이놈은..."

"그래."

주헌은 뭔가 결정한 듯, 냉정한 눈빛으로 유재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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