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냐? (2)
[부르르]
연락이 왔다.
유재하에게.
물론 운명왕은 처음엔 누구 번호인 줄 몰랐다.
등록이 안 되어 있는 번호니까.
새로운 고객인가?
"여보세요?"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지금 통화 가능하지?]
그 낯익은 목소리에 그들은 당황했다.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호구왕?"
"유재하 이놈이 왜?"
그들은 정말로 황당해했다.
그건 운명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타이밍에.'
서주헌의 수작인가?
그는 이상했지만 일단 받기로 했다.
"뭐야, 호구왕. 말해두지만 서주헌 이 새끼 가만 안 둘 거야."
그는 호기롭게 답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Un-know(언노운).]
"......?"
[판도라 이사들의 유물. 그거 가지고 있지?]
"...!"
운명왕은 얼어붙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판도라와 결탁하고 있는 독식자들에겐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왜?
'그걸 왜 이놈이 알고 있어.'
그걸 알고 있는 건 권 회장을 비롯해서 판도라 설립 때부터 함께 했던 왕급들 밖에는 없다.
'설마 정보가 새어나갔나?'
아니다.
그게 새어나갔을 리는 없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왜 유재하 놈이 그걸.
그렇게 운명왕의 동공이 흔들릴 때였다.
[언노운이 다른 놈들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싫을 거고, 세상에 새어나가는 건 더 싫겠지? 그거 알려지면 니들 다 골치 아플 걸?]
이 새끼.
"너 어디서 그걸..."
[됐으니까 나랑 딜하자고.]
"딜?"
[서주헌의 정보는 줄게. 확실하게 처리도 할 수 있게 해줄게.]
"?!"
운명왕은 당황했다.
이 자식 서주헌의 발굴단 아니었나?
'이게 돌았나? 서주헌을 배신하려는 거야?'
"목적이 뭐야?"
[별 거 아냐. 대신 나한테도 언노운을 줘. 그거 엄청 탐나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운명왕은 헛웃음을 흘렸다.
"자격도 없이 야매로 왕급이 된 주제에 감히 어디서 그걸...!"
[왜? 니들한테는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난 무려 니들이 잡고 싶어도 못 잡는 서주헌을 잡게 해준다고 말하는 건데. 왜, 싫어? 싫음 말고.]
이 자식이.
그리고 운명왕이 유재하의 속내를 파악하려고 할 때 유재하가 재빨리 치고 들어왔다.
[오해하진 말고. 지금 내가 잘못하면 서주헌한테 죽을 수도 있는 처지거든.]
"뭐?"
[내가 사고를 좀 쳐서. 그러니까 우리 단장한테 걸리기 전에 살 구멍 마련해 놓는 거야.]
운명왕은 미간을 좁혔다.
***
"뭐라고? 유재하가 기억을 되찾은 것 같다고?"
한 편 클로에에게 연락을 받은 율리안과 설아는 다급해졌다.
심지어 기억을 찾은 직후, 유재하가 어디론가 도망친 모양이었다.
율리안이 클로에에게 물었다.
"연락은?"
"안 받아요. 무시하는 것 같아요."
"서주헌한테는 연락했고?"
"그게..."
클로에는 핸드폰을 보며 탄식했다.
"아무래도 단장님도 핸드폰이 망가지신 거 같아서."
"뭐? 정말이야? 왜!"
설아의 외침에 율리안은 미간을 짚었다.
왜긴 왜야.
'보나마나 또 부셔먹었겠지!'
주헌은 무덤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꼭 핸드폰 하나씩 갈아치우는 놈이니까.
아마 운명왕의 저택에서도 한바탕 할 테니 벌써 망가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뭐 그때는 TKBM에서 자기네 핸드폰을 항상 지급해주긴 했지만.
"어쨌든 연락이 안 된다는 거지..."
그들은 다급해졌다.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자신들이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온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유재하가 배신자가 맞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억을 되찾았는데 도망칠 리가 없다. 자신 역시 기억을 되찾아봤기 때문에 잘 알았다.
얼싸안고 이산가족 상봉까진 아니더라도 인사정도는 나눌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 새끼가 튀었어?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역시 그놈이 우리를 팔아넘긴 거야. 상황적 증거도 충분하고."
"...!"
설아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클로에는 내심 초조해보였다.
율리안은 연락이 두절된 유재하의 번호를 보면서 이를 갈았다.
'그래도 진짜라고 믿기는 싫었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넘쳐흐르는 건지, 율리안의 주변에서 번개가 파직 거렸다.
곧 그가 재빨리 물었다.
"설아야, 위치 추적 못하겠어?"
설아는 뛰어난 수색꾼이자 정찰꾼이다.
단원들을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곧 귀신들을 부려 레이더를 펼치던 설아가 망설이며 율리안을 보았다.
위치를 알려주면 율리안이 정말 유재하를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
"괜찮아, 말해."
"단장님한테 말씀 안 드려도 될까요? 단장님과 합류해서 말씀을 드린 뒤에 움직여도...!"
율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사기왕이 그 사이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결국 고민하던 설아가 말했다.
"아무래도 뉴욕시내에 있는 것 같아요."
"좋아. 멀리 도망가진 못했군."
주헌이 있는 플로리다 주에서는 비행기로 세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신들이라면 30분도 안 걸린다.
율리안은 재빨리 병실에서 빠져 나갔다.
'유재하.'
가만 두지 않으리라.
그래도 단원이랍시고 주헌이 얼마나 그를 챙겨줬는데.
그러니 열 받는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저... 부단장님."
"단장은 아직 이 사실을 몰라."
아니. 주헌에겐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주헌이 알기 전에 처리하자."
양 쳰, 그리고 권 회장과 함께 세상에서 없애버리리라.
***
[왜, 딜하기 싫어?]
한편 유재하의 제안에 운명왕은 눈빛이 흔들렸다.
이놈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젠장. 이 자식이 하는 말이 진짜야. 아님 가짜야.'
결국 침묵이 길어지자 유재하는 질린 듯 전화를 끊으려 했다.
[뭐 싫으면 말아. 지금 너네 집에 있을 언노운에 대해 까발리면 그만이니까.]
"아, 아니 잠깐! 니가 그걸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걸 본 적도 쓴 적도..."
[뭐래. 지금 서주헌한테 쓰려던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운명왕은 눈살을 찌푸렸고, 아래층의 부하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조슈아 씨! 빨리요! 서주헌이 바로 앞까지 쳐들어왔어요!"
부하들은 파죽지세로 들이 닥치는 주헌 때문에 울부짖었다.
"아오! 그만 부숴 이 새끼야!"
"그게 얼마짜린 줄 알아!"
그럴 때였다.
콰앙!
기어이 주헌이 아래층 침실까지 들이닥쳤다.
무덤을 박살 내는 실력으로 집까지 박살 내며 들어온 주헌은 툭툭 옷의 먼지를 털었다.
"아 짜증나. 진짜 방 한 번 더럽게 많네."
그걸 감시카메라로 보고 있던 운명왕이 파르르 떨었다.
"저, 저 새끼가...!"
그 와중에 감시카메라 속 주헌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항우의 초천검과 초진창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경호원들이 붙었지만 글쎄, 동아줄이 튀어나와 경호원들의 몸통을 잡고 쾅쾅 절구를 찧어댔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마!
결국 화면을 보고 파르르 떨던 운명왕이 유재하에게 외쳤다.
"알았어! 줄게! 줄 테니까 저 새끼 좀 막아봐! 지금 당장!"
수화기 저편의 소리에 유재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걸렸다, 요놈.'
[그럼 일단 지금 쓰려고 하는 언노운 중지하고.]
"뭐?!"
이때 주헌이 가까이 다가오자 부하들이 급히 비밀 통로로 들어가려고 했다.
결국 운명왕이 다급하게 막았다.
"멈춰! 일단 언노운은 보류해!"
부하들은 당황했다.
"네?! 하지만... 그래도 그걸 써야 서주헌을 완전히 보내버릴 수가...!"
운명왕은 고개를 저었다.
유재하 이자식이 알아차린 이상 지금 그걸 쓰는 건 위험했다.
괜히 그게 세상에 드러나도 골치 아프고.
그리고 다급해진 운명왕이 저택 전체에 나가는 방송을 켰다.
[스톱! 스톱!]
그는 주헌을 멈춰 세웠다.
[알았어, 내가 나갈 테니까 우리 집은 이제 그만 때려 부숴!]
그 방송이 울려 퍼졌지만, 주헌은 하하하 웃어댔다.
"늦었어, 새끼야!"
콰과과과광!
운명왕은 끄아아 비명을 질렀다.
[야! 멈추라고 했잖아! 아이고 우리 집! 저거 1억짜리! 아오 저거 3천만...]
거품을 무는 그가 외쳤다.
[아씨, 내가 너한테 좋은 미래 정보를 팔 테니까!]
미래 정보는 개뿔이.
주헌은 같잖다는 듯 콰앙! 벽을 부셨다.
"니놈보다 내가 아는 게 더 많다!"
그러고는 기어이 운명왕이 있는 침실로 들이닥쳤다.
"안녕, 운명왕. 목은 잘 닦고 있었어?"
주헌의 살벌한 미소에 운명왕은 다급해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운명왕은 주헌에게 짓밟혔다.
"자, 선호하는 원하는 부위부터 말해봐. 친절하게 서비스 해줄 테니."
그러자 짓밟힌 운명왕이 급하게 외쳤다.
"아이고! 서주헌, 니가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야! 너, 니 부하 조심해야 한다고!"
주헌이 우뚝 멈춰섰다.
안 그래도 짐작 가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주헌이 멈추자 운명왕은 잘 됐다 싶었다.
"내 예언 중에 그런 게 있었거든? 사기왕이 나타나면 서주헌은 죽는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
"......"
"니 부하 중에 사기왕으로 거론되는 놈이 하나 있긴 있잖아. 일단 그놈 먼저 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운명왕이 말하는 건 유재하다.
그걸 주헌이 모를 리가 없었다.
얼마 전에 신문에 실렸으니까.
그리고 주헌이 침묵하자 운명왕이 신나서 지껄였다.
"실은 걔가 나한테 딜을 해오더라? 너한테 죽을 거 같으니 니 정보를 팔겠다고."
"..."
"내가 자세히 네 미래를 읽어봐 줄게. 어? 보아하니 그놈 병원에서 튄 것 같은데 위치 추적해줄까? 걔 어딨는지 모르지? 그러니까..."
"필요 없는데?"
"뭐?"
"여기 있으니까."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쾅! 벽이 무너져 내렸다.
세트 유물로 벽이 무너지자 옆방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옆방에 숨어있던 장본인.
유재하는 식겁했다.
'아씨, 완전히 기척을 숨겼는데!'
그렇다.
설아가 인지한 뉴욕의 유재하는 가짜.
그리고 자신은 몰래 주헌을 따라온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눈치채다니?
우연일 수도 있어 숨을 죽이고 숨어있자 주헌이 비웃었다.
"나와라, 등신아. 언제까지 몰래 쫓아다닐 거야."
"...!"
유재하의 손이 잠시 떨렸다.
어쩌지.
나가야 하나?
그럴 때 주헌이 짜증을 냈다.
"빨리 안 나오냐, 이 거지야?!"
그 말에 망설이던 유재하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커흠, 기침을 하며 구멍 쪽으로 슬쩍 기어 나왔다.
"아, 아이쿠, 들켰네요."
"왜 쫓아왔냐?"
"에이, 왜긴요. 단장님 도우려고 왔지."
유재하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주헌에게 다가왔다.
"제가 뭐 도울 거 없어요? 보너스라도 받게."
하지만 그 순간.
"!"
주헌의 단검이 유재하의 목에 겨누어졌다.
유재하는 당황했다.
"다, 단장님?"
주헌은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오호, '병신 단장'이라고 안 부르네?"
그 말에 유재하가 굳었다.
당황한 그가 되물었다.
"......네, 네? 그게 무슨..."
"왜 놀라? 너 이미 기억 찾았잖아."
"...!"
곧 유재하의 얼굴에서 포커페이스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주헌은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네가 기억 찾았다는 걸?"
정적이 흘렀다.
혹시 동료들에게 연락을 받은 건가?
그런 눈빛을 보냈지만 주헌은 망가진 제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연락을 받을 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유재하는 목에 드리워진 칼에 침을 꿀꺽 삼켰다.
"여, 연락도 안 받았으면서 어떻게..."
"네 뻔한 수법이 어디 하루 이틀이야?"
뭐 이놈이 거짓말을 한다는 건 진작 알았다.
어떻게?
'내구도를 보면 딱 알지.'
유재하가 가지고 있던 진짜 까마귀 유물.
분명 그걸 쓴 건 세 번이었는데 네 번이 줄어 있었으니까.
그 뒤엔 이놈의 습성을 떠올렸을 때 톱니바퀴가 척척 맞춰졌다.
그래서 일부러 모른 척 놈을 풀어준 것이다.
놈의 행동반경은 예상이 갔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처리하기 위해.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항우의 검을 바짝 세웠다.
"자, 그럼 좋은 말로 할 때 질문에 답해라. 거짓말 하면 그 즉시 목을 날려버릴 테니."
"...!"
주헌의 가벼운 미소가 유재하의 얼굴에 꽂혔다.
"너도 우릴 배신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