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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28화 (228/409)

228화. 기억에 우는 자 (5)

"잠깐만요. 단장님! 저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쟤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주헌은 그런 유재하의 멱살을 잡았다.

"걱정 마. 그건 내가 판단한다."

곧 주헌이 유물 하나를 사용했다.

기억을 살리기 위한.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까마귀의 눈물을 꺼낸 주헌이 유물을 발동 시킨 것이다.

'이걸로 놈의 기억을 되찾는다.'

물론 리스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놈은 다른 놈들에 비해 골치 아프니까.

게다가 율리안의 말마따나 이놈이 배신자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해볼 만한 이유는 단 하나.

'TKBM의 비밀을 말해라.'

자신들이 죽고 난 이후의 정보를 말해!

사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정보지만, 주헌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양 쳰의 말도 흥미롭고.'

주헌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충분히 기억을 돌려낼 가치는 있다.'

그리고 마침내 까마귀의 유물이 유재하에게 작렬하는 순간!

"아아악!"

유재하는 머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듣자하니 기억이 돌아올 땐 꽤나 머리가 아픈 모양이니.

'뭐 그래봐야 다른 녀석들 보단 좀 낫겠지.'

다른 놈들은 죽을 때의 감각까지 생생할 테지만, 유재하에게는 죽음의 감각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윽."

유재하가 구역질을 하면서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허억... 허억. 단장님."

그는 도대체 뭘 본 건지 굉장히 괴로워하면서 주헌을 보았다.

눈물까지 흘리는 유재하는 경련을 일으키면서 주헌을 알은 체 했다.

"단장님, 단장님...... 죄송해요.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 반응에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옳지, 생각이 났구나.

'그래. 어서 말해라!'

정보를 말해!

우리들은 모르는 정보를!

'재하. 너는 내게 정보를 말할 수 밖에 없을 거다.'

이걸로 양 쳰의 말이 사실인지, TKBM의 비밀이 무엇인지, 복수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게 된다.

유재하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까마귀 유물을 든 주헌의 팔을 잡았다.

"......진짜, 진짜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래. 괜찮으니까 말해라."

유재하는 꺽꺽 거리면서 주헌에게 사죄했다.

"...실은 단장님이 방금 쓰신 유물 가짜..."

뭐?

"지, 진짜 죄송......."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재하는 꽥 기절하고 말았다.

털썩.

"......?!"

동시에 멍해진 주헌이 정신을 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야, 방금 이 자식이 뭐라고 지껄였냐?"

살벌한 음성에 율리안은 땀을 삐질 흘렸다.

"......저, 저기 그, 눈물 유물. 가, 가짜라고..."

"진짜냐? 이거 실화냐?"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결국 율리안은 난처한 얼굴로 주헌을 보았다.

"그... 지금 보니 가짜 맞네. 근데 너도 이미 눈치채지 않았어?"

"그럼 얜 가짜를 사용한 부작용으로 기절했단 거냐?"

"응."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와장창 깨져버린 가짜 까마귀 유물!

동시에 흉흉한 지배력이 맴돌았고, 단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아아악! 단장님. 진정, 진정하세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거품을 물고 기절한 유재하의 머리를 낚아챘다.

"안 일어나, 새끼야?"

"...... 커, 커헉. 자, 자모해씁니다. 단장님이 저한테는 이걸 안 쓰셔서... 그러니까 딱 한 방울만 몰래 써보려고..."

결국 유재하는 또 깨꼬닥 기절하고 말았다.

거참. 멋대로 가짜로 바꿔놓고 멋대로 기절해버리다니.

실제로 주헌의 지배력에 박살이 났다는 것이야말로 유재하가 만든 가짜라는 증거였다.

하지만 짜가(?)를 쓴 부작용 탓인지.

새하얗게 질린 유재하는 정말 괴로워보였다.

마치 충수염과 장염이 동시에 와서 탈진해 쓰러진 것 같은.

결국 혀를 차던 주헌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됐어. 일단 그 새끼 자게 냅둬라."

"어, 어? 그럼 진짜 눈물 유물은요?"

"주머니에서 찾았어. 그리고 그 새끼는 일단 병원에 쳐 넣어라."

"잠깐... 단장님! 어디에 가시려고...!"

어디에 가긴.

"몰라서 물어?"

양 쳰을 살벌하게 보던 주헌은 박살난 운명왕의 카메라를 보았다.

"영 거슬린단 말이야."

그렇다.

주헌은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양 쳰을 찾아온 탐식왕과 운명왕이 거슬리는 것이었다.

물론 찾아와서 미래 해독을 시키려고 한 건 탐식왕이지만, 유물을 빌려준 건 운명왕이다.

지들 딴에는 읽을 수 없는 미래가 있으니 똥줄이 타 찾아온 것이겠지만...

'양 쳰한테 아직 찾지 못한 동료들의 정보를 준 것도 그렇고.'

거슬렸다.

아주.

"운명왕 새끼. 앞으로 쓸 곳이 있어서 일부러 설치게 내버려뒀더니."

전부터 자꾸 비위를 건드렸다.

그러니.

"잠깐 교육 좀 시키고 온다."

주헌은 주먹을 우드득 거렸다.

***

한편 그 무렵.

"조슈아 님?"

"왜. 뭐."

운명왕 조슈아는 수면 안대를 쓰고 쿨쿨 자고 있었다.

자신의 고객들이 하도 '서주헌 좀 처리해줘라.' 어쩌라 빽빽거려서 최근 초과근무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부하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조슈아님! 서주헌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 말에 조슈아는 짜증을 내면서 벌떡 일어났다.

"야씨, 또 서주헌이냐! 부탁이니까 스톱! 그리고 걔 일은 진채원 그 여자한테 맡겨놨잖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진채원 그 여자가 주헌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유물까지 빌려주면서 서주헌의 일은 그녀에게 맡긴 참이 아닌가.

"서주헌 그깟 놈. 미래만 읽어내면 별 거 아니..."

"별 거 아니긴요! 서주헌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고요! 미친 속도입니다!"

물론 운명왕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미친 속도인데 어쩌라고.

"비행기라도 탔나 보지.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권 회장의 사저? 어디 정부기관? 무덤? 그 새끼가 어디에 가든 알게 뭐..."

"그렇게 태연하실 때가 아닙니다!"

"아 왜! 어디 룸싸롱이라도 갔대?!"

"젠장, 아닙니다! 이 건물로 오고 있다고요!"

"뭐, 뭐? 이 건물...?"

곧 잠에서 덜 깨 어리둥절해 하던 운명왕이 입을 떡 벌렸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잠깐 지금 뭐라고?

"...미친!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고?!"

도대체 왜!

당황한 그들이 벌떡 일어났다.

"당장 방어 준비해! 그걸 쓰라고!"

그들은 뜻밖의 비상사태에 다급해졌다.

***

"진짜 태평하게 잘도 잔다."

설아는 새하얗게 질려서 기절해 있는 유재하를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일단 병원에 입원을 시킨 건 좋은데...

"특별히 위험한 곳은 없어. 그냥 배탈 난 거거든."

으이구, 이 바보 놈.

"그러게 누가 멋대로 유물을 복제해서 바꿔치기하래?"

약도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고.

유물에 욕심을 내니까 그런 거라며 단원들은 혀를 찼다.

그럴 때 설아가 조심스럽게 율리안을 보았다.

"그런데 부단장님은 정말 재하가... 배신자라고 생각하세요?"

"그래."

율리안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 때 우리 유물이 그렇게 엉망이었을 리도 없어."

재하를 보는 율리안의 눈빛은 싸늘했다.

그 눈빛에 움찔하던 설아는 클로에를 보았다.

"설마 클로에 너도?"

"한 83.7%는 그렇다고 생각해."

무슨 숫자가 그 모양인가 싶었지만 클로에는 유재하를 힐끗 보았다.

율리안 만큼 분노에 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보는 눈빛이 곱지는 않았다.

"아마 단원들이라면 전부 유재하를 의심할 걸. 원래부터 사기왕은 자기가 불리하면 단원들을 팔아먹었잖아. 뭘 새삼."

클로에는 굉장히 침착했다.

"처음부터 팀에 유재하가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불안했어. 나도 유재하가 우릴 배신했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뭐?! 하지만...!"

"단지 단장님이 얠 믿는 것 같아서 아무 말 안하고 있을 뿐이었지."

그 말에 율리안이 쯧 혀를 찼다.

"주헌이 그래보여도 정이 많아서 그래. 단원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던 놈인걸."

툭하면 TKBM에서도 떨거지라 불리는 직원들에게 유물 과외를 해주며 키워주려고 했고 말이다.

주헌의 그런 면모를 알기에 율리안도 주헌을 괜찮게 생각한 적도 있던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배신자는 안 돼."

"걱정하지 마세요. 단장님도 공사 구별을 못 하는 분은 아니시니."

클로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주헌이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는 남자가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러니 만약 배신자가 맞다면 주헌은 반드시 유재하를 없앨 것이었다.

단지 주헌이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있다면...

"대체할 복원사를 찾는 일이겠지."

유재하 정도 되는 복원사는 이 세상에 없으니까.

아니, 사실 유재하 뿐만 아니라 도굴단에 속한 모든 멤버들은 대체할 인력이 없었다.

한 명이서 수천 명을 대체할 수 있는 인력.

그리고 주헌과 호흡을 맞춘 부하들

"그래서 차라리 기억을 안 살리고 능력만 이용하자는 생각인지도 몰라."

둘의 말에 설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둘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단원들 치고 유재하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유재하 때문에 다들 한 번 이상은 모아둔 재산을 날렸고 배신도 당하고 함정에도 빠졌고 목숨의 위험도 느꼈다.

그러면서 정작 뭐라 하면 뻔뻔하게 '속는 사람이 잘못이지!' 라고 하던 새끼.

그 정도로 답이 없긴 했지만...

'야. 이거 봐라! 단장님이 내 그림 사줬다?'

'허. 그거 또 니가 강매한 거잖아.'

'이씨, 아니거든! 유일하게 내 그림 인정해주는 사람이거든!'

진짜 그 녀석이 배신했을 거라곤...

그리고 이때 주헌의 연락을 기다리던 설아가 문득 말했다.

"저기... 단장님 홀로 운명왕의 자택에 보내도 괜찮은 걸까요?"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 율리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주헌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놈도 아니고.

"특히 운명왕은 무력 위주의 유물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그놈이 가진 유물들은 자신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처 방법도 잘 안다.

주헌은 오히려 때론 홀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설아는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적진 한복판에... 혼자서 가셨다가 무슨 일이 생기시면..."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클로에가 한숨을 쉬었다.

"정 그러면 너도 다녀와."

"뭐? 재하는?"

그러자 클로에는 꾸에엑 기절한 상태로 자고 있는 유재하를 보며 말했다.

"여긴 내가 보고 있을 게. 부단장님도 다녀오세요."

"그럴까?"

아무래도 율리안도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별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동료로서 신경은 쓰이니까.

"가는 길에 단을 만나서 같이 가자."

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이 나가고 클로에는 병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

기절한 줄로만 알았던 유재하가 일어나 있었다.

"깨어났어?"

"아... 죽을 것 같아... 토할 거 같아... 클로에, 화장실 어디..."

유재하는 끙끙거리며 밖에 나가려고 했다.

"어유, 화장실은 왼쪽이야."

그렇게 클로에가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어주었다.

동시에 들려오는 클로에의 귓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다시 봐도 다행이다."

말투가 평소의 유재하와 달랐다.

그래서 깜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유재하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문을 닫는 것이었다.

쾅!

순식간에 병실에 갇힌 클로에는 당황했다.

"잠깐, 야! 유재하!"

문을 열려고 했지만, 유물의 힘인지 문이 콘크리트마냥 꼼짝도 안 했다.

하지만 유재하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건어물. 넌 위험하니까 여기 있어. 단장님한테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순간 보인 낯익은 눈빛에 클로에가 깜짝 놀랐다.

저 눈빛과 호칭... 분명!

"야! 유재하!"

저 자식.

설마 기억이 돌아왔는데 속인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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