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기억에 우는 자 (4)
"우선 한 가지 확인하지."
"...!"
"너 나 기억하냐?"
주헌의 미소에 양 쳰은 쿵 주저앉았다.
"아... 아."
그의 얼굴에서 30대 남짓의 주헌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서주헌.
남들은 무슨 마약 환자로 착각했지만, 실제론 사황급을 처리하던 권 회장의 킹메이커이자 막강한 도살견.
동시에 자신이 죽여버린 리더.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양 쳰은 사지가 떨렸다.
그리고 달달 떠는 그가 주헌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 단장...니..."
그 중얼거림에 주헌은 전과는 다른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그 한마디로 대답은 충분히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이 양 쳰의 목을 짓밟았다.
"커헉!"
졸지에 목을 밟힌 양 쳰은 숨이 막혔지만 결코 도망칠 수 없었다.
귀에 작렬하는 살벌한 음색이 그의 척수에 내리 꽂혔기 때문이다.
"오호, 기억 하나 보네?"
여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살의였다.
지금까지는 그 살의를 잘 숨기고 있었던 것뿐일까.
양 쳰이 자신을 알아보자마자 섬뜩한 지배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양 쳰은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단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커헉!"
"됐으니까 묻는 말에 답해라."
주헌은 양 쳰을 죽일듯한 살벌한 눈빛으로 말했다.
"첫 번째. 네놈의 왕명을 말해라."
평소라면 왜 주헌의 말에 답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죽을 것 같았다.
대답하지 않으면 주헌에게 정말 그 사진에서 본 것처럼 난도질당할 것 같았다.
"태양, 태양왕."
"두 번째. 의료왕이 가지고 있던 유물이 뭔지 답해. 그리고 놈들이 차지한 무덤의 위치도."
"...의, 의료왕의 유물? 무덤?"
그 말을 들은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놈이 어디까지 정보를 알고 있나 테스트해본 것이긴 하다만.
'다행히 미래의 중요한 정보는 기억 못하나 보군.'
딱 알맞게 자신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랄까.
'잘 됐다.'
물론 주헌과 함께 왔던 단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단장님! 저 자식 죽여버리죠."
"정보를 아는 놈을 내버려둘 순 없어요!"
외친 건 설아와 클로에였다.
물론 그 말엔 주헌도 동의했다.
제 소중한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이 간교한 놈을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으니까.
단지 궁금한 게 생긴 것뿐이다.
'TKBM의 비밀.'
그리고...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사기왕 유재하.'
주헌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황당해하는 유재하를 보았다.
'유일하게 우리 중에 생존했을 놈.'
그래서 자신들이 죽고 난 이후의 일도 알고 있을 놈.
그때의 일이 궁금하긴 했지만 놈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은 건 사실 귀찮아서.
툭하면 동료를 팔아먹는 놈이었으니 교육시키기 골치 아파서.
그리고 카피캣 시절의 기억은 하지 말라는 배려에서.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들이 죽음과 관련해서.
'심지어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다.'
자신들이 모르는 정보를.
실제로 유재하를 본 양 쳰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 사기꾼 새끼야!"
"뭐, 뭐라고?! 누가 사기꾼? 이 새끼가 뭔 개소리를 해?"
그러자 양 쳰은 억울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에 TKBM이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알아...!"
"?"
유재하는 얘가 뭔 개소리를 하는 거냐며서 주헌을 보았다.
"아니 내가 TKBM한테 뭔 짓을 했... 아니, 있긴 한데... TKBM이 미워서 인터넷에 블랙컨슈머 질 좀 하긴 했는데... 그게 뭐! 왜!"
설마 지금 그것 때문에 그런 거냐며 유래하는 외려 화를 냈다.
"설마 지금 블랙컨슈머질 좀 했다고 이래? 솔직히 니네 같은 대기업이 그깟 악플 때문에 손해를 보면 얼마나 본다고! 어?!"
양 쳰은 답답했다.
"그게 아니잖아. 이 멍청아!"
양 쳰도 전생과 현실이 헷갈리긴 하지만 무의식중에 화를 냈고, 주헌은 힐끗 유재하를 보았다.
딱히 자신들이 죽고 이놈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생각도 안 했다.
왜?
보나마나 이놈이라면 알아서 권 회장에게 잘 붙어먹고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불만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속물적이고 나쁜 놈이었다. 원래도 도굴단에 좋아서 온 것도 아니고.
그래서 도굴단원에게도 그다지 정을 붙이지 않는.
'그런데 복수?'
하물며 TKBM의 비밀이라니.
그리고 그 눈빛을 읽은 건지 양 쳰은 아차 싶었다.
전생의 기억이 혼재된 상태에서 유재하를 본 나머지 아무렇게나 소리를 쳤지만...
'안 돼. 이건 극비 정보다. 다른 왕급들하고도 관련된 일이야.'
잘은 모르겠지만 비단 전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TKBM의 비밀은 지금 현재 다른 왕급과도 연관이 깊었다. 그러니 주헌이 알려고 하면 곤란했다.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 일까.
머리를 굴린 양 쳰은 다급하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되는대로 외쳤다.
"사실 그때 단장님을 배신한 건 저뿐이 아니라고요!"
그는 눈을 부릅뜨고 재빨리 유재하를 보았다.
"저놈도! 사실 저놈도 그때 같이 배신했으니까!"
그 말에 단원들은 깜짝 놀랐고,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
"재하는 한 팀에 넣지마."
아마 율리안이 까마귀의 유물로 기억을 되찾았을 때일 것이다.
율리안은 주헌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재하의 실력은 인정해. 하지만 다시 팀원으로 들이는 건 난 좀 반대인데."
율리안의 시선은 별로 좋지 못했다.
왜?
율리안은 사실 사기왕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도 제갈공명의 유물로 감식가 일을 하던 율리안은 유재하와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감정사와 사기꾼의 관계였으니까.
게다가.
'이건 내 추측인데.'
기억을 되찾고 난 후, 율리안이 주헌에게 은밀하게 말해왔다.
'난 우리를 배신한 게 양 쳰만 있다고 생각 안 해.'
그는 유재하의 배신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그때 가지고 있던 유물들. 전부 풀복원 상태 아니었잖아.'
그건 그렇다.
풀복원 상태라며 가져다 준 유물들은 모두 내구도가 절반만 차 있었다.
심지어 유물들도 금방 고장 났지.
그래서 무덤 안에서 더 빨리 전력을 잃기도 했고.
'우리들의 유물을 늘 관리하니까. 유물을 조작해놓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야, 공명이.'
'그뿐이야? 재하만 그때 무덤에 안 들어왔잖아. 아프다면서.'
'늘 있는 앓는 소리였잖아.'
결정적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게다가 우리들의 상세 데이터가 담겨 있는 클로에의 차트 유물. 그거 최후의 무덤에 들어가기 몇 주 전에 유재하가 빼돌린 거 잊었어?'
클로에의 진료기록표가 복제본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원본은 어디로 빼돌렸을까?
'뻔하지. 그때 본인은 클로에가 눈치 채나 못 채나 장난을 친 거라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를 죽이려는 놈들에게 데이터를 넘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현재.
율리안은 여전히 그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유재하를 보고 있었다.
"유재하도 배신자라고?"
율리안의 눈빛이 평소보다도 흥분한 듯 고요하게 불타올랐다.
그 증거로 그의 주변에서 파직 파직 번개가 튀기고 있었다.
사용자의 감정 상태에 맞춰 인드라 유물이 반응하는 것이리라.
"역시 저놈도 배신자였어."
율리안의 살벌한 음성에 설아가 깜짝 놀랐다.
"자, 잠깐만요! 부단장님! 양 쳰의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 너희들도 알잖아! 그럴 만한 상황적 증거가 있다는 건!"
"그, 그건...!"
하지만 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늘상 유재하와 얼굴을 붉히고 원수처럼 싸워댔지만, 동시에 그를 동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종 동료들을 다 버리고 도망치는 일이 흔해서 그렇지, 그건 그냥 성격이라 생각했다.
"재하가 진짜로 배신했을 리가...!"
"너희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무덤에 우리 복원사는 들어오지 않았어."
"부단장님!"
제갈공명의 유물을 쓰고 있으니 무덤에 들어왔던 유재하가 가짜라는 건 잘 알았다.
그리고 부단장으로서 동료들을 아끼고 믿은 그는 누구보다도 배신자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상황이 빡칠 수밖에!
"서주헌. 너도 알잖아! 유재하가 수상했다는 것 정도는! 증거가 없고 능력이 탐나니까 가만히 있던 거지!"
"부단장님!"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정작 유재하는 황당했다.
아니, 이 사람들이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래.
"아니, 저기요. 항상 저 빼고 이상한 달나라 이야기 하는 건 알았는데 이건 나도 진짜 못 따라가겠는데? 배신자라니? 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단장님 유물 복원했는데! 억울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번개가 휘몰아쳤다.
쿵!
그러더니 율리안이 눈을 번득였다.
"일단 반쯤 죽이고, 저놈들의 기억부터 되살리자. 그리고 죄가 확실해지면 그땐...!"
곧 그의 번개가 양 쳰과 유재하를 옭아매려고 했다.
그 모습에 양 쳰과 유재하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잠깐, 단장님! 단장님! 악! 살려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유재하가 주저앉아서 비명을 질렀고, 이를 보는 설아도 당황할 때였다.
"부단장님!"
역시 율리안도 괜히 왕급이 아닌지라 그 힘과 지배력이 상당했다.
콰과과광!
마침내 그 힘이 양 쳰과 유재하에게 내리칠 때였다.
쾅!
주헌의 유물이 율리안의 유물을 집어 삼켰다.
"!"
그가 부리는 세트의 유물이 사납게 율리안의 유물을 억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커, 커헉!"
어디 그뿐인가.
[오시리스가 지옥의 명부를 소환합니다.]
[율리안 밀러의 이름이 적힙니다.]
[심판의 준비가 거행됩니다.]
그 메시지가 떨어지기 무섭게 율리안은 비명을 질렀다.
하늘에서 갑자기 쾅쾅, 쇠창살이 떨어지면서 수상쩍은 감옥에 갇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옥에 갇히자 순식간에 떨어진 지배력.
율리안은 황당해서 주헌을 보았다.
"이봐! 이게 무슨 짓이야!"
"됐으니까 멘탈관리 하고 니 유물 폭주하는 거나 막고 있어."
"뭐? 잠......!"
"안 닥쳐? 단장 명령이다."
"...!"
율리안은 주헌의 싸늘한 눈빛에 움찔했다.
동시에 주헌은 쯧 혀를 찼다.
복수심에 불타올라서 잠시 이성을 잃는 건 이해는 한다만.
"배신자들을 응징한다는 것엔 동의한다. 기억을 되살려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뽑아내는 것도 동의해. 하지만."
그는 양 쳰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낚아챘다.
"공명아. 미래에 대한 정보는 소중한 거야."
그래서 자신도 믿는 놈들에게만 기억을 되살려준 것이고.
미쳤다고 그 귀한 미래정보를 이딴 놈들에게 씌워?
'기억을 되찾게 하는 건 지금이 아니다.'
모든 것을 이룬 그 순간.
그때 권 회장을 비롯한 이 배신자들에게 뿌릴 것이었다.
그리고 일그러지는 얼굴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주헌의 말에 율리안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정보를 뽑아내려고!"
"일단."
주헌이 손을 까닥 거리자 클로에가 다가와 양 쳰의 어깨를 잡았다.
양 쳰은 당황해서 클로에를 쏘아보았지만...
"크아아악!"
양 쳰은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토했다.
동시에 양 쳰은 아차 싶었다.
자신의 몸에서 지배력이 점점 사라지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파르르 떨며 주헌과 클로에를 쏘아보았다.
"내, 내 몸에 무슨 짓을......!"
뭐긴 뭐야.
"진짜 기억 안나?"
"...!"
그렇다.
'치료와 형벌의 간호사.'
클로에의 별명이다.
그녀는 리스크나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리스크와 병을 기억해 상대방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양 쳰도 그렇게 한 것뿐.
주헌은 양 쳰을 보며 싸느랗게 웃었다.
"감히 내게 세치 혀를 놀리려는 죄다. 이걸로 네놈은 D급 유물 사용자다. C급 이상의 유물은 사용할 수 없어. 아니, D급도 제대로 못 쓸 걸?"
그 말에 양 쳰은 다급히 주헌의 허리춤에 있던 열쇠를 붙잡았다.
그건 A급 소모성 유물.
그러나 그것에 지배력을 실어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정말 상위급 유물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젠장, 젠자아아앙!"
울부짖는 그는 억울한 듯이 주헌을 보았다.
"처벌하려면 저만 하면 안 되죠. 저놈도 같이 처벌해야...... 커헉!"
양 쳰은 주헌에게 짓밟혔다.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이 양 쳰을 노려보았다.
"닥쳐라. 그 이상 혀를 놀리면 지금 당장 목을 날려버리겠어."
"......!"
동시에 주헌이 유재하를 힐끗 보았고, 정작 유재하가 몸을 떨었다.
무슨 말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잠깐만요. 단장님! 저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쟤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주헌은 그런 유재하의 멱살을 잡았다.
"걱정 마. 그건 내가 판단한다."
곧 주헌이 유물 하나를 사용했다.
기억을 살리기 위한.